2021년 12월 5일 역사연구모임 해방동모에서는 3차 역사기행으로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 404~4번지 소재 독립지사 우근(友槿) 류자명(柳子明, 1894년 1월 13일~1985년 4월 17일) 선생 생가터를 찾았다. 김성동 작가, 김인국 신부, 신명섭 동의회 회장, 임종헌 등 4명이 함께 했다.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영평리 류자명 선생의 생가터를 찾았지만 생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논으로 변해 있었다. 생가터 바로 옆 가옥에는 선생의 세째 손자 류인택씨가 살고 있었다. 류인택씨는 출타하고 부인만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은 선생 생가터에는 그 흔한 표지석 하나조차 없었다. 독립지사를 홀대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의 유품들이 충주박물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중국에는 류자명 선생의 동상과 기념관까지 세워져 있다. 정부나 충청북도의 선출직 공무원은 그렇다 치자. 충주의 선출직 공무원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갈했다. 그래서 투표를 잘해야 한다. 매판 세력에게 정권을 맡기면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인민은 그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역만리 중국 땅에서 제국주의 왜적(倭敵)과 투쟁하다가 돌아가신 류자명 선생에게 술 한 잔 조촐하게 올리다.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한강토 위를 떠도는 중음신 아나키스트 류자명 선생'이라는 제목의 글을 지어 제문에 가름했다. 다음은 김성동 선생이 쓴 글 전문이다. <林 山>
한강토 위를 떠도는 중음신 아나키스트 류자명 선생 - 김성동(金聖東)
류자명(柳子明) 선생이 충주군 이안면 삼주리(현 충주시 대소원면 영평리 404-4)에서 태어난 것은 1891년 신묘년(辛卯年)이었으니 고종 28년이었다. 제주도에서 관노 출신 리재수(李在守 1877~1901) 장군이 반란을 일으키고, 연해주에 있던 조선인들이 러시아로 향화(向化)함으로써 이른바 한인1세가 되었던 해였다.
아호는 우근(友槿)이고 본 이름은 흥식(興湜)이다. 자명은 최강 항왜무장 두럭이었던 <의열단>(義烈團) 참모가 되면서, 왜제 식민지가 된 조국의 광명을 되찾자는 다짐으로 지은 딴 이름이었다.
신채호(申采浩), 노신(魯迅)과 손잡고 친왜파 우두머리들을 베어버리는 데 사나운 장수였던 선생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원예학자 농학박사로 살았던 데는 까닭이 있다. 집에서 진서 궁구를 하다가 수원농림학교를 나와 옛살라비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원이 된 것이 1916년이었다. 1919년 3.1혁명에 들었다가 두억시니 같은 왜경 눈을 피해 상해로 간 것은 같은 해 6월이었으니, 29살 때였다. 같은 충청좌도 옥천(沃川) 출신 범재(凡齋) 김규흥(金奎興 1872-1936) 선생이 세운 <동제사>(同濟社)에 든 여운형(呂運亨) 시켜 만든 <신한청년당> 비서가 되었으니, 공산주의자보다 더 무섭다는 ‘아나키스트’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정세를 살피다가 1922년 다시 중국으로 가서 김원봉(金元鳳) 장군이 채잡는 <의열단>에 들어 조국으로 통신연락과 선전책임을 맡아 김창숙(金昌淑)과 함께 라석주(羅錫疇 1892~1926) 의거를 이루었다.
좌파 독립운동단체가 항뜨려진 <조선민족전선연맹>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 지도위원이 되어 1942년 좌우합작이 이루어졌을 때,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평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땅에서 1983년 「나의 회억」이라는 자서전을 쓰며 납죽 엎드려 농학 관계 저술에만 힘썼던 것은 리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리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극악한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95년 한평생을 계급해방을 바탕으로 한 민족해방을 넘어 착취와 억압의 본산인 ‘국가’를 없이 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선생을 옥죄었던 것은 197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씌워준 <국기훈장제3급>이었다. 조국이 해방된 지 76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과 북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한강토 휴전선 위 구만리 장천 허공중을 중유(中有)의 넋으로 떠돌고 계신 선생이시다. 나무 미륵보살 마하살.
김학철(金學鐵 1916-2001)이라는 외다리 조선의용군이 쓴 「격정시대」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소설 형식을 빌려 엮어놓은 항왜무장독립투쟁사인 「격정시대」를 보면, 류자명 선생이 나온다. 류자명 선생만이 아니라 리청천(李靑天), 김구(金九), 리승만(李承晩)이 나오는데 좌파 독립운동가가 보는 우파 독립운동가들 모습이다. 장강(長江)을 건너 태항산(太行山)으로 걸어가며 싸울아비 동무들이 나누는 말이다.
“리청천이두 어지간한 대포쟁이야.”
“어째서? …”
“전에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때의 일이었네. 한 번은 왜놈토벌대 일굽 놈이 소로길루 줄을 서서 오더라나. 그래 덤불 속에 납작 엎드렸다가 다 지나보내 놓구 뒤에서 보총 한 방을 갈겼다지 뭐야. 아 그랬더니 글쎄 일굽 놈이 일제히 뒤를 한번 돌아보더라잖아. 그리구 일제히 나가 널브러지는데… 꼬챙이루 꿴 북어처럼 가지런히 한쪽으루 나가 널브러지더라지 뭐야.”
“아하하! …”
“그런 천하의 … 히히허허 아이구 배야!…”
“허풍을 쳐두 유분수지…”
“북어처럼 나가널브러져? 움후후 …”
“축지법한단 소린 않던가?”
“전설적 영웅을 어느 놈처럼 제 입으루 불어서 만들잔 수작이지 뭐야”
“그래두 광복군의 총사령이 된다는 소문이 있더라니”
“아이구 그럼 이리 또 숱한 왜놈들이 북어꿰미가 될 일 났구먼”
“한방에 일굽 씩? …”
와하하 웃고 지껄이는 통에 길이 잘 불었다.
“김구가 완고는 해두 반일사상은 철저해. 문자 그대루 불공대천의 원수야 왜놈하군.”
“그야 그렇지. 헌병보조원 놈의 배를 가르구 날간을 내서 씹었다는데.”
“지금 환진갑이 다 지났어두… 그 80노모가 화가 나서 장죽으루 두드리면 꿇어앉아 말으면서 눈물을 뚝뚝 떨군다데.”
“그렇지만 낙후하긴 뭐 형편없이 낙후하더라니.”
“어떻게?…”
“글쎄 루즈벨트를 …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말이야. 라사복(羅斯福)이라잖아. 한더를 우리 식으로 발음하는 거지 뭐야. 그리구 영국 수상 처칠은 구길이(丘吉尓). 난 듣다가 웃음이 나는 걸 참느라구 죽을 뻔했다니까.”
“라사복, 구길이 하하하하”
“본인들이 들었으면 기가 차겠군.”
“그리구 일본천황은 꼭 왜왕유인(倭王裕仁)이라구 얕잡아 부르데”
“그야 당연하지 뭐”
“아뭏든 그놈의 영감 체력두 보통이 아니야. 재작년 장사에서 그 자식… 그 자식 이름이 뭐더라?”
“어느 그 자식?”
“김구한테 총을 쏘구 달아난….”
“오 그 자식… 권성수.”
“그래 그래 권성수, 몸속에 그 자식이 쏜 총알이 세 알인가 네 알인가가 들어박혔는데두 죽지 않구 살아난 걸 보면 체력이 보통이 아니야.”
“권총탄은 좀 작으니까”
“작아두 그렇지!”
“그 때 아마 윤대성 동무가 위문단으루 갔었지”
“그렇지만 그놈의 얽음뱅이 좌익서적만 보면 기가 나서 살라버린다며?”
“히틀러의 본을 따는 게루군”
“히틀러는 무슨 놈의 히틀러! 진시황의 본을 딴거지”
“장개석이 말을 할 때는 꼭 장개석씨가 하더라니”
“나두 들었어. 손중산은 꼭 손문 선생이라구 하구”
“그래두 이승만이 도적놈에 비하면 인격자야.”
“그야 그렇지, 비교나 되나”
“이승만이 그 도적놈이 임시정부의 국고금을 가루채 가지구 미국기선에 오른 걸”
“미국 기선엔 왜?”
“미국으로 도망을 치려는 거지. 그런 걸 최우강 선생하구 또 누구하구 쫓아가 따졌다지 뭐야. 그 서슬에 할 수 없이 착복했던 돈을 도루 다 게워냈대여.”
“아니야, 다 게워낸 게 아니고 일부만 게워냈어”
“버젓이 특등실을 탔더래. 그 자가 물 쓰듯이 하는 그 돈이 다 국내에서 애국동포들이 군자금으로 헌납한 거지 뭐야.”
“임시정부 대통령 꼴좋다.”
“너절한 놈!”
진득진득한 진눈까비가 일변 날리매 일변 녹아서 길이 질어 걷기가 말째었으나 걷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는 줄곧 그치지 아니하였다.
“내 보긴 유자명이두 본때가 있어.”
“어느 유자명이?…”
“어느 유자명이는 어느 유자명이야? 무정부주의자 유자명이지!”
“어떻게 본때가 있어?”
“그 사람 내 한 번 보니까 저수지공사판에서 인부들 하구 같이 막노동을 하잖겠어. 그러다가 쉴 참에 나무그늘에 삽을 짚구 서서 연설을 하는데 수백 명 인부가 기침 하나 안 하구 귀들을 기울이지 뭐야. 인부들 속에서 신망이 여간만 높잖대”
“선동연설은 그네들의 특기니까.”
“이하유나 나월한이두 다 만만찮은 사람이지”
“다 유자명이의 고족제자들이 아닌가”
“다 표범같은 사람들이지”
주막거리에서 호르래기 부는 소리가 났다. 점심요기를 하고 다리를 쉴 때가 된 것이다.
한강토(韓彊土) : 우리나라를 일컫는 옛땅인 한반도는 왜노들이 고구리, 옛땅인 동북삼성을 빼고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오그라뜨리면서 불리우는 이름이므로 죽어도 써서는 안 되니 저 삼한(三韓) 때부터 우리나라 땅을 일컫는 말인 한강토가 맞음.
글쓴이 김성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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