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디지탈리스(Foxglove) '열애, 뜨거운 사랑'

林 山 2022. 6. 19. 00:21

디지탈리스(Grecian Foxglove)는 예전에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소설 'The Thirteen Problems, also The Tuesday Club Murders'(열세 가지 수수께끼, 또는 화요일 클럽의 살인)을 영화화한 'The Herb of Death(죽음의 약초)' 편에 나오면서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식물이다. '죽음의 약초'는 미스 마플(Miss Marple)의 추리로 디지탈리스의 잎에서 추출한 디지탈린(digitalin)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실비아 킨(Sylvia Keene)을 죽인 앰브로즈 버시(Ambrose Bercy) 경의 범행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디지탈리스는 독초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꽃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디지탈리스(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디지탈리스는 통화식물목 현삼과 디지탈리스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도 있다. 학명은 디지탈리스 퍼퓨리아 린네(Digitalis purpurea L.)이다. 라틴어 'g'는 뒤에 'e, i'가 오면 'ㅈ'으로 발음한다. 속명 '디지탈리스(Digitalis)'는 '장갑의 손가락'을 뜻하는 '디지투스(digitus)', '손가락'을 뜻하는 라틴어 '디지탈루스(digitalus)'에서 온 말이다. 꽃 모양이 장갑의 손가락 또는 골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숫자의 디지털이나 컴퓨터 용어의 디지털과도 어원이 같다. 종소명 '퍼퓨리아(purpurea)'는 '보라색(자주색)'이라는 뜻이다. 

 

디지탈리스의 영어명은 팍스글로브(foxglove, 여우장갑) 또는 커먼 팍스글로브(common foxglove), 그리션 팍스글로브(Grecian Foxglove)이다. 불어명은 강 드 노트르담(Gant De Notre Dame, 노트르담의 장갑)이다. '피 묻은 손가락' 또는 '죽은 자의 종'이라는 별명도 있다. 

 

디지탈리스의 일어명은 디기타리스(ジギタリス, 実芰答里斯) 또는 기츠네노데부쿠로(キツネノテブクロ, きつねのてぶくろ, 狐の手袋)이다. '기츠네(きつね, 狐)'는 '여우', '데부쿠로(てぶくろ, 手袋)'는 '장갑' 또는 '깍지'란 뜻이다. 디기탈리스라는 이름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디지탈리스의 중국명은 마오디황(毛地黄)이다. 이명에는 양디황(洋地黄), 즈화양디황(紫花洋地黄), 즈여우종(自由钟), 즈딩화(指顶花), 더궈진종(德国金钟), 신장차오(心脏草), 샨바이차이(山白菜) 등이 있다. 양디황은 잎새의 표면의 굴곡 등의 특징이 지황(地黄)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디지탈리스는 18세기부터 서양의학에서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어 왔기에 심장풀(心脏草), 강심초(强心草), 양지황(洋地黄)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열애, 뜨거운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숨길 수 없습니다'라는 꽃말도 있다.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을 할 때 딱 맞는 꽃말이다. '불성실, 화려'라는 꽃말도 있다. 

 

디지탈리스(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서양에서 디지탈리스는 어둡고 쓸쓸한 장소에서 잘 자라 불길한 식물로서의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희생 의식이 열리는 여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대 갈리아 및 브리튼 제도에 살던 켈트족의 종교인 드루이드(Druid) 교도들이 디지탈리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디지탈리스의 원산지는 헝가리, 루마니아, 발칸반도 등 유럽이다. 디지탈리스는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20여 종이 분포한다. 일반적으로 약용 또는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는 종은 Digitalis purpurea이다. 한강토(조선반도)에서는 전국에서 재배한다.

 

디지탈리스(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디지탈리스는 키가 1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는 전체에 짧은 털이 있으며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난상 타원형이다. 밑부분의 잎은 엽병이 있고, 양면에 주름이 있다. 잎 가장자리에는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다.

 

꽃은 5~8월에 적자색으로 핀다. 흰색과 노란색, 분홍색, 홍황색의 꽃도 있다. 원줄기 끝에서 꽃줄기가 수상으로 발달하며, 밑부분에서부터 꽃이 피어 올라간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열편은 난상 피침형으로서 예두이다. 꽃부리는 홍자색이고 짙은 반점이 있다. 꽃은 종 모양이지만 가장자리가 다소 입술 모양으로 된다. 2강수술이 있고, 암술머리는 2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다. 삭과는 원뿔모양이며 꽃받침이 남아 있다.

 

디지탈리스는 초여름 꽃이 드문 시기에 키가 크고 화려하게 피기 때문에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거나 화단의 경계부에 심는다. 꽃대가 곧고 꽃들도 가지런히 달려 꽃꽂이용으로도 재배하고 있다. 디지탈리스는 식물원이나 꽃박람회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디지탈리스(포천 국립수목원, 2022. 5. 8)

디지탈리스의 잎을 60℃ 이하의 열로 말린 것을 본초명 모지황(毛地黃)이라고 한다. 강심(强心), 이뇨(利尿), 심근의 수축을 강화하고 심장박동수를 감소시키는 효능이 있어 울혈성 심부전 환자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심방 세동이나 조동, 심실 수축률을 낮추는 데 사용된다. 또, 심기능부전(心機能不全), 심장무력(心臟無力), 만성판막증(慢性瓣膜症), 부종(浮腫) 등을 치료한다. 디지탈리스는 심장변막결손심근염, 만성 심장쇠약에 유효한 심장 강장제이다. 그러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의사나 의사의 지도 없이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의사들은 임상에서 디지탈리스를 거의 쓰지 않는다.  

 

디지탈리스의 주성분은 디지톡신(digitoxin)이라는 극독 성분이다. 디지탈리스는 영국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윌리엄 위더링(William Withering FRS, 1741~1799)이 부종의 치료에 최초로 처방했다. 전초에 독성이 있으므로 관상용으로 재배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디지탈리스의 활성 성분은 심근배당체라는 스테로이드군에 속하는 물질이다. 디지탈리스 치사량이 유효량의 3배 정도이므로 투약량을 결정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디지톡신에 중독되면 부정맥, 심동계(心動悸) 등의 순환기 증상, 오심이나 구토 등의 소화기 증상, 두통이나 현기증 등의 신경계 증상, 시야가 노랗게 비치는 황시증(黃視症) 등이 나타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Sunflowers(해바라기)' 등의 작품에서 선명한 노란색을 표현한 것은 디지탈리스 복용에 의한 황시증이 원인이라는 설도 있다. 고흐 만년의 작품 'Portret van Dr. Gachet(가셰 박사의 초상화)'에는 디지탈리스가 그려져 있다. 

 

2022. 6. 19.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