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중순 백두대간 정선 함백산을 오르다가 이제 막 꽃이 피어나고 있는 가는범꼬리를 만났다. 가는범꼬리는 무성한 풀섶 사이에서 가녀린 모습으로 꽃이삭(花穗)을 내밀고 있었다.
가는범꼬리는 꽃차례(花序)가 범(호랑이)의 꼬리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는범꼬리는 꽃차례가 범꼬리보다 가늘고, 잎도 피침형 또는 선상 피침형으로 좁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가는범꼬리는 마디풀목 마디풀과 범꼬리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비스토르타 알로페쿠로이데스 (투르크자니노. 엑스 베서) 코마로프[Bistorta alopecuroides (Turcz. ex Besser) Kom]이다. 속명 '비스토르타(Bistorta)'는 '두 번'의 뜻을 가진 라틴어 '비스(bis)'와 '꼬이다, 비틀리다'라는 뜻을 가진 '토르투스(tortus)'의 합성어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뿌리의 모양을 표현한 속명이다. 종소명 '알로페쿠로이데스(alopecuroides)'는 '뚝새풀속(Alopecurus)을 닮은'의 뜻이다. 꽃차례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전 명명자 '투르크자니노(Turcz.)'는 러시아의 식물학자이자 식물 수집가인 니콜라이 스테파노비치 투르크자니노(Nikolai Stepanovich Turczaninow, 1796~1863)이다. '엑스(ex)'는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유효한 출판을 하지 못하고, 다음 사람이 유효한 출판을 했다는 뜻이다. '베서(Besser)'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식물학자 빌리발트 스비베르트 요제프 고틀리브 폰 베서(Wilibald Swibert Joseph Gottlieb von Besser, 1784~1842)이다. 베서는 러시아 제국에서 활동했으며, 대부분의 생애를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보냈다. 명명자 '콤(Kom)'은 러시아의 식물학자 블라디미르 래온티에비치 코마로프(Vladimir Leontyevich Komarov, 1869~1945)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가는범꼬리의 정명이 비스토르타 알로페쿠로이데스 (투르크자니노. 엑스 코마로프) 나카이[Bistorta alopecuroides (Turcz. ex Kom.) Nakai]로 등재되어 있다. 명명자 'Nakai'는 일본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며 한강토(조선반도)의 식물을 정리하고 소개하였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발견된 한강토 자생 식물의 학명에는 대부분 그의 성 'Nakai(中井, 나카이)'가 명명자로 등재되어 있다. 그는 특히 물푸레나무과(Oleaceae)에 속하는 세계 1속 1종의 한강토 특산식물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속(Abeliophyllum)을 최초로 학계에 보고한 인물이다.
가는범꼬리의 영어명은 슬렌더 비스토트(Slender bistort)이다. '슬렌더(slender)'는 '날씬한, 호리호리한, 가느다란', '비스토트(bistort)'는 '범꼬리'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 추천 일어명은 호소바이브키토라노오(ホソバイブキトラノオ, 細葉伊吹虎尾)이다. '호소바(細葉)'는 '가는 잎', '이부키(伊吹)'는 일본 긴키(近畿) 지방 북동부에 있는 내륙 현인 시가현(滋賀県) 마이바라시(米原市)의 지명이다. 이부키산(伊吹山)의 서쪽 산기슭에 있다. '도라노오(虎尾)'는 '범꼬리'이다. 잎이 좁고 가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중국명은 후웨이랴오(狐尾蓼)이다. '후웨이(狐尾)'는 '여우꼬리', '랴오(蓼)'는 '여뀌'이다. 중국에서는 가는범꼬리의 꽃이삭을 여우꼬리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가는범꼬리를 긴잎범의꼬리, 둑새범꼬리풀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키다리'이다.
가는범꼬리는 한강토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몽골,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긴키(近畿) 지방의 남부 와카야마(和歌山) 현의 기이 반도(紀伊半島), 시코쿠(四国), 규슈(九州)의 고산 지대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네이멍구자치구(内蒙古自治区), 랴오닝성(辽宁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롱쟝성(黑龙江省) 등지에 자란다. 헤이롱쟝성에서는 푸위(富裕), 허강(鹤岗), 쟈무쓰(佳木斯), 빠오칭(宝清), 헤이허(黑河), 무란(木兰), 베이안(北安), 후마(呼玛) 등지에 분포한다. 러시아에서는 극동 지방, 시베리아 등지에 자란다. 한강토에서는 제주도 한라산과 경기도, 강원도 함백산 등지의 초원에 분포한다.
가는범꼬리의 뿌리는 굵고 비스듬하게 들어가며, 선단이 여러 개로 갈라져서 많은 잎이 달린다. 키는 15~30cm 정도이다. 근생엽은 길이 15~22cm, 너비 1cm정도로서 양끝이 좁고 선상 피침형이다. 잎 가장자리는 뒤로 말리고, 맥 끝부분이 특히 굵어져서 튀어나온다. 줄기잎은 밑부분에서 엽초처럼 퇴화되며, 중앙부의 잎은 긴 난상 타원형이고 엽병이 없으며 엽초가 길다. 윗부분의 잎은 길고 끝이 뾰족하며 근생엽과 비슷하다.
꽃은 6~7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핀다. 정생하는 총상꽃차례는 길이 5cm, 지름 1cm이다. 작은포는 피침형이며, 꽃자루보다 길거나 거의 같다. 화피는 5개로 갈라지며, 끝이 둥글고 털이 없으며, 수술보다 훨씬 짧다. 열매는 수과(瘦果)이다. 수과는 길이 3mm로서 3개의 능선이 있고, 털이 없다.
'야생화 백과사전 : 여름편'에는 '가는범꼬리의 어린잎과 줄기는 식용으로 쓰인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어느 지방에서 나물로 먹는지, 어떤 방법으로 나물을 조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가는범꼬리의 근경(根莖)을 권삼(拳蔘)이라 하며 약용한다. 청이열(淸裏熱), 진경(鎭驚), 이습소종(利濕消腫)의 효능이 있다. 열병에 의한 경축(驚搐), 파상풍, 적리(赤痢), 옹종(癰腫), 나력, 제종 하리(諸種下痢), 구내염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권삼은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나 동의보감에는 등재되지 않은 한약재다. 한의사들도 권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가는범꼬리의 유사종에는 범꼬리(Manchurian bistort, 북범꼬리, 만주범의꼬리), 흰범꼬리(White bistort, ウラジロイブキトラノオ), 이른범꼬리(Early-blooming bistort, 봄범꼬리), 씨범꼬리(Alpine Bistort, 큰산범의꼬리, 가는잎씨범꼬리), 호범꼬리(Hairy bistort, オホツクトラノオ), 참범꼬리(Common bistort, ホクセンイブキトラノオ), 눈범꼬리(Ovate-leaf bistort), 넓은잎범꼬리(European bistort), 북범꼬리(Manchurian bistort), 둥근범꼬리(Global-spike bistort, 갈미범의꼬리) 등이 있다.
범꼬리[Bistorta manshuriensis (Petrov ex Kom.) Kom.]의 땅속줄기는 비후하고, 잎자루는 엽초가 되며, 잎 뒤는 흰색이다. 흰범꼬리[Bistorta incana (Nakai) Nakai ex Mori]는 줄기잎의 잎자루가 짧거나 없고, 뒷면에 흰색 털이 밀생하여 은백색을 띤다. 꽃은 연한 붉은색이다. 경북과 북부 지방에 분포한다. 이른범꼬리[Bistorta tenuicaulis (Bisset & S.Moore) Naka]는 근생엽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달걀 모양 또는 긴 타원형, 뒷면은 다소 흰색이다. 잎자루는 길다. 꽃은 흰색이다. 씨범꼬리[Bistorta vivipara (L.) Gray]의 근경은 굵고 짧다. 근생엽은 피침형, 긴 타원상 피침형이다. 꽃은 연한 홍색이다. 결실하지 않는다. 호범꼬리[Bistorta ochotensis (Petrov ex Kom.) Kom.]는 꽃이삭이 씨범꼬리에 비해 성기게 붙어 있다. 둥근범꼬리와 비슷하나 꽃차례가 폭보다 길이가 긴 장타원형이다. 꽃은 연한 적색이다.
참범꼬리[Bistorta pacifica (Petrov ex Kom.) Kom.]는 강화도, 소요산, 평안도, 함경도 등지에 분포한다. 범꼬리와 비슷하지만, 원줄기에 달려 있는 잎에 엽병이 전혀 없는 것이 다르다. 줄기잎에는 잎자루가 없다. 꽃은 연한 홍색이다. 눈범꼬리[Bistorta suffulta (Maxim.) Greene ex H.Gross]는 제주도 한라산 중상부 능선 이상에서 자란다. 꽃이 눈처럼 흰색이다. 넓은잎범꼬리(Bistorta officinalis Delarbre)는 범꼬리의 기본종으로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정보가 없다. 북범꼬리(Bistorta manshuriensis)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범꼬리와 동일종으로 보는 듯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범꼬리의 이명이 북범꼬리, 만주범꼬리로 되어 있다. 둥근범꼬리(Bistorta globispica)는 함경북도 관모봉 해발 2,500~2,540m 에서 자란다. 키는 높이 30~40cm이다. 잎은 화살 모양이다. 호범꼬리에 비해 잎이 엷고, 화경이 가늘다. 소화경이 짧으며, 이삭은 구형 또는 타원형이다.
2022. 10. 17.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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