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중순 포천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국립수목원 초입에서 단풍나무인 듯 아닌 듯 단풍나무 같은 나무를 만났다. 고로쇠나무였다. 잎을 보면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 식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겨울이 채 물러가지도 않은 이른봄 산행을 할 때 종종 링거 바늘을 꼽고 있는 환자들처럼 수액 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고로쇠나무를 볼 수 있다. 고로쇠 수액의 인기가 높아지자 요즘에는 여러 그루의 고로쇠나무에 꽂은 링거줄 같은 관을 연결하여 산 아래에서 수액을 모으는 기업형 농가도 있다. 고로쇠 수액은 지리산이나 조계산, 백운산에서 많이 난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1~2개의 구멍을 뚫어 적당량의 수액을 채취하면 나무의 생장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고 한다. 나무껍질을 뚫어서 상처가 난 부위는 여름이 되면 저절로 아문다고 한다. 하지만, 수액은 나무의 피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 피를 많이 흘리면 목숨이 위태롭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수액을 지나치게 많이 빼앗기면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고로쇠 수액이 인기가 많은 것은 전설 때문이기도 하다. 왕건(王建)의 고려(高麗) 건국에 많은 도움을 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깊은 산속에서 오랫동안 좌선을 한 뒤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도선이 옆에 있던 나무를 잡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자 이번에는 가지가 부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허망하게 나무를 바라보니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 갈증을 느낀 도선은 그 물로 목을 축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무릎이 쭉 펴지는 것이었다. 이후 이 나무는 뼈에 이롭다는 뜻으로 골리수(骨利樹)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백제군과 신라군이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화살이 박힌 고로쇠나무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자 갈증이 풀리고 힘이 솟아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또, 상처를 입은 지리산 반달곰이 고로쇠나무 물을 마시고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고로쇠나무는 무환자나무목 단풍나무과 단풍나무속의 낙엽 활엽 교목이다. '고로쇠'라는 이름은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인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골리수-고리수-고로수-고로쇠 식으로 음운 변화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로쇠나무를 고로쇠, 고로실나무, 골리수, 오각풍(五角枫), 수색수(水色树), 색목(色木)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에 등재된 고로쇠나무의 학명은 아케르 픽툼 섭스피시즈. 모노 (막시모비치) 오하시[Acer pictum subsp. mono (Maxim.) Ohashi]이다. 속명 '아케르(Acer)'는 ‘날카로운(sharp)’의 뜻을 가진 라틴어 '아크리스(acris)'에서 유래했다. 로마 병정들이 단단한 단풍나무로 창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단풍나무의 갈라진 잎이 뾰족뾰족하고 끝이 날카롭다는 데서 유래했다. 종소명 '픽툼(pictum)'은 '장식하다(decorate, embellish), 그림물감(paint), 색조(tint), 색(colour), 그리다(portray)'의 뜻을 가진 라틴어 '핑고(pingō)'에서 유래한 말이다. '핑고(pingō)'는 '작은 언덕(small hill)'이라는 뜻을 가진 그린란드어(Greenlandic) 또는 이누이트어(Inuktitut) '핑구(pingu)'에서 유래했다.
'subsp'는 '섭스피시즈(subspecies)'의 줄임말로 '아종(亞種)'의 뜻이다. 아종명 '모노(mono)'는 '혼자, 단독으로(alone)'라는 뜻의 그리스어 '모노스(monos)'에서 유래한 말이다.
'막시모비치(Maxim)'는 러시아의 식물학자 카를 막시모비치(Karl Maximovich, 1827~1891)이다. 막시모비치는 평생 그가 방문한 극동 아시아의 식물군을 연구하고 많은 새로운 종의 이름을 지었다. 그는 185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식물원에서 식물 표본 수집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1869년에는 감독이 되었다. 오하시(Ohashi)는 일본의 식물학자 오하시 히로요시(大橋広好, 1936~)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아케르 픽툼 툰베리 바. 모노 (막시모비치) 막시모비치. 엑스 프랑셰[Acer pictum Thunb. var. mono (Maxim.) Maxim. ex Franch.]'가 정명으로 등재되어 있다. '툰베리(Thunb)'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페테르 툰베리(Carl Peter Thunberg, 1743~1828)이다. 툰베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식물학의 아버지', '일본의 린네'라고 불린다. 웁살라 대학교에서 '식물학의 시조' 칼 폰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에게 배운 툰베리는 1771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의(船醫)가 되었고, 1775년에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1777년 7월 떠날 때까지 식물을 수집했다. '바(var.)'는 '변종(variant, 베리언트)'의 약자이다. '엑스(ex)'는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유효한 출판을 하지 못하고, 다음 사람이 유효한 출판을 했다는 뜻이다. '프랑셰(Franch.)'는 프랑스 식물학자 아드리앙 르네 프랑셰(Adrien René Franchet, 1834~1900)이다. 프랑셰는 동아시아에 파견된 선교사들이 수집한 식물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식물상을 정리하였다.
고로쇠나무의 영어명은 페인티드 메이플(Painted maple)이다. '페인티드(painted)'는 '그린, 색칠한, 가짜', '메이플(maple)'은 '단풍나무'이다. '국표' 추천 영어명은 모노 메이플(Mono maple)이다. 중국판 '위키백과', '바이두백과'에는 고로쇠나무의 중국명이 스무치(色木槭)로 나와 있다. 이명에는 슈이스슈(水色树, 中国树木分类学), 띠진치(地锦槭, 中国高等植物图鉴), 우쟈오펑(五角枫, 华北经济植物志要), 우쟈오치(五角槭, 江苏南部种子植物手册), 스무펑(色木枫) 등이 있다.
'국생정'에는 고로쇠나무의 일어명이 츠타모미지(つたもみじ, 蔦紅葉)로 나와 있다. '츠타(蔦)'는 '담쟁이덩굴', 모미지(紅葉)'는 '단풍(丹楓), 단풍나무'이다. 일본 자료 'Flora of Mikawa(三河の植物観察)'와 일본판 '위키백과'에는 이타야카에데(イタヤカエデ, 板屋楓)가 정명으로 나와 있다. '이타야(板屋)'는 '판자로 인 지붕, 판잣집', '가에데(楓)'는 '단풍나무'이다. 잎이 밀집하여(密集) 널빤지 지붕(板屋)처럼 되어 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나는 고로쇠나무를 에조이타야(エゾイタヤ, 蝦夷板屋)라고 한다. 이명에는 이타기(イタギ), 츠타모미지(ツタモミジ, 蔦紅葉), 도키와카에데(トキワカエデ, 常磐楓) 등이 있다. 일본의 '쇼쿠부츠와메이(植物和名) YList'에는 에조이타야(蝦夷板屋)가 정명, 에조모미지이타야(エゾモミジイタヤ, 蝦夷紅葉板屋)가 이명으로 나와 있다.
고로쇠나무는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몽골, 극동 러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와 혼슈(本州)의 아키타(秋田), 시코쿠(四国), 규슈(九州)의 태평양 연안 지역에 자란다. 중국에서는 창강(长江) 유역의 각 성(省), 화베이(华北), 동베이(东北) 등지의 해발 800~1,500m 지대에 분포한다. 동베이 지방에는 특히 샤오싱안령(小兴安岭)과 창바이산(长白山)에 집중되어 있다. 한강토에서는 전국 각지에 분포한다. 수액이나 목재 생산을 위해 재배하기도 한다.
고로쇠나무의 뿌리는 천근성(淺根性)이고, 방사상(放射狀) 또는 수평으로 발달한다. 키는 20m 정도까지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웅대하게 퍼지며, 껍질은 분백색으로 평활하다. 하지만, 장령목(壯齡木)이 되면 세로로 골이 져 갈라진다. 일년생 가지는 회황색(灰黃色)으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기하고 달걀형 또는 열편 달걀형이며, 꼬리 모양으로 길어지는 점첨두(漸尖頭)에 심장저(心臟底) 또는 아심장저(亞心臟底)이다. 잎 길이는 5cm, 너비는 8cm 정도이다. 잎 뒷면 맥액(脈腋)에는 흰 털이 있다.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다.
꽃은 암수한꽃 또는 암수한그루로 5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핀다. 취산상(聚繖狀) 원뿔 모양 꽃차례는, 새 가지 끝에 달린다. 수꽃은 너비가 8~9mm, 꽃받침은 낮은 컵 모양, 열편은 달걀형에 황록색이다. 암꽃은 지름이 1cm이고, 꽃받침은 낮은 컵 모양이다. 열매는 시과(翅果)이다. 시과는 예각이며, 길이는 2~3cm이다. 종자는 9월 중순~10월 중순에 성숙한다.
고로쇠나무는 도로의 주변이나 공원, 정원에 관상수로 심는다. 가을에 연한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다. 목재나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대량으로 심기도 한다.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하며, 광택이 있어 가구재나 악기재, 각종 기구재, 차량재, 선박재, 건축재, 세공재 등으로 쓰인다. 2차 대전 중에는 일본군이 고로쇠나무를 이용해서 군복을 염색했다고 한다.
새눈이 나올 무렵 고로쇠 수액에는 1.5~2.0% 의 당분이 들어 있다. 수액을 풍당(楓糖)이라고 하는데, 음료로 마시거나 농축시켜서 시럽으로 만들어 먹는다. 또, 풍당은 약알카리성을 띠므로 특히 위장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풍당을 허약체질, 신경통, 치질 등에 쓴다. 잎은 설사 멈춤약으로 사용한다. \
중국 '바이두백과'에는 고로쇠나무의 가지와 잎에 대해 '성질과 맛은 맵고 쓰며 따뜻하다. 거풍제습, 활혈지통의 효능이 있어 주로 정두통, 풍한습비, 질타종통, 습진, 개선 등을 치료한다(性味 : 辛苦温. 功能主治 : 祛风除湿, 活血止痛. 主偏正头痛 : 风寒湿痹. 跌打瘀痛, 湿疹, 疥癣.)'고 나와 있다.
고로쇠나무의 유사종에는 긴고로쇠나무, 집게고로쇠, 붉은고로쇠(Red-petiole mono maple), 털고로쇠나무, 산고로쇠나무, 왕고로쇠나무(Straight-angle mono maple), 만주고로쇠(Manchurian paint maple), 털만주고로쇠, 우산고로쇠 등이 있다.
긴고로쇠나무(Acer mono for. dissectum)는 잎이 깊게 갈라지고, 열편이 피침형이며, 엽병이 매우 길다. 집게고로쇠[Acer mono f. connivens (Nichols.) Rehder]는 열매가 예각(銳角)으로 벌어진다. 붉은고로쇠(Acer mono f. rubripes T.B.Lee)는 엽병이 적색이다. 털고로쇠나무(Acer pictum Thunb.)는 중부 이남에 분포한다. 잎이 얕게 5개로 갈라지고, 뒷면에 짧은 갈색 털이 있다. 산고로쇠나무(Acer mono Maxim. var. horizontale)는 열매가 수평으로 벌어진다. 왕고로쇠나무[Acer mono var. savatieri (Pax) Nakai]는 잎이 대개 7개로 갈라지고, 열편이 넓은 삼각형이며, 열매가 거의 수평으로 벌어진다.
만주고로쇠[Acer pictum var. truncatum (Bunge) C.S.Chang]는 한강토 북부에 분포한다. 키는 5m 정도까지 자란다. 나무껍질이 눈에 띄게 갈라진다. 잎은 7개로 깊게 갈라진다. 털만주고로쇠[Acer truncatum var. barbinerve (Nakai) T.B.Lee]는 경남 지역에 야생한다. 키는 5m 정도까지 자란다. 잎이 5개로 깊게 갈라진다. 잎 뒷면에 잔털이 있다. 우산고로쇠(Acer okamotoanum Nakai)는 울릉도에서 자란다. 잎은 고로쇠나무와 비슷하지만 6~9개로 갈라지고 맥액에 흰털이 있다. 시과는 길이 4~4.5cm이고, 날개는 평행하며, 거의 합쳐지거나 직각으로 벌어진다.
2022. 10. 22.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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