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부채를 야생에서 처음 만난 곳은 2006년 7월 초 강원도 인제 대암산에서였다.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2022년 6월 중순 경기도 포천에 있는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도깨비부채를 또 만났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벗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왔다.
도깨비부채는 잎이 부채처럼 생긴 것은 알겠는데, '도깨비'라는 접두어가 붙은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날카롭게 갈라진 모습이 마치 도깨비가 들고 다니는 부채와 같다고 해서 도깨비부채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 설은 '과연 도깨비가 들고 다니는 부채를 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는 '도깨비부채라는 이름은 잎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갈라진 잎 모양이 도깨비를 연상시키며, 부채 모양으로 크다(넓적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나와 있다.
도깨비부채는 장미목 범의귀과 도깨비부채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도깨비부채를 독개비부채, 독깨비부채, 산우, 작합산, 수레부채라고도 한다. 본초명은 모하(慕荷), 반룡칠(盤龍七)이다. 북한명은 수레부채이다. 꽃말은 '행복, 즐거움'이다.
도깨비부채의 학명은 로제르시아 포도필라 아사 그레이(Rodgersia podophylla A.Gray)이다. 속명 '로제르시아(Rodgersia)'는 미국 해군의 아시아 전대(戰隊) 사령관이었던 존 로저스(John Rodgers, 1812~1882)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존 로저스는 1871년 청나라 주재 전권공사 프레드릭 로우(Frederick Low)의 지시로 강화도를 침략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종소명 '포도필라(podophylla)'는 '줄기(stalk)'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도스(podos)'와 '잎(leaf)'을 뜻하는 '필론(phyllon)'에서 유래했다. '아사 그레이(A. Gray)'는 유신론적 진화주의자로서 하버대대학 식물학 교수를 역임한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다. 유신론적 진화주의자였음에도 아사 그레이는 모든 종의 생명체가 공통 조상의 후손이라는 학설을 정립한 진화생물학의 시조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도깨비부채의 영어명은 로저스 브론즈립(Rodger's bronzeleaf)이다. 봄에 새잎이 나올 때 청동색(bronze)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명은 야구루마소우(ヤグルマソウ, 矢車草)이다. 고이노보리(こいのぼり, 鯉幟)의 야구루마(矢車)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고이노보리(鯉幟)는 단오절에 올리는 천 또는 종이로 만든 잉어 드림, 야구루마(矢車)는 축(軸)의 둘레에 화살 모양의 살을 방사상(放射狀)으로 박은 것으로 풍차(風車) 등에 쓴다. 중국명은 꾸이덩칭(鬼灯檠), 이명에는 싀츠차오(矢车草), 뉴쟈오치(牛角七), 라오셔롄(老蛇莲) 등이 있다.
도깨비부채는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이 원산지다. 전 세계에 5종이 있다. 동히말라야, 네팔, 티베트 등지에도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중부 이북의 1,000m 이상의 산지에 자란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北海道)와 혼슈(本州)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지린(吉林)과 랴오닝(遼寧) 등지에 난다. 샹하이(上海) 일대에서는 재배한다.
도깨비부채의 근경(根莖)은 비대하고 옆으로 뻗는다. 줄기는 1m까지 자란다. 잎은 손 모양 겹잎(掌狀複葉)이다. 근생엽(根生葉)은 엽병(葉柄)이 길고, 5개의 소엽(小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것은 지름이 50cm에 달한다. 윗부분의 것은 1~4개의 소엽으로 된다. 소엽은 거꿀달걀 모양이고 3~5개로 얕게 갈라진다.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소엽 길이는 15~35cm, 너비는 10~25cm로서 뒷면 맥(脈) 위에 털이 있다. 엽병의 윗부분에도 털이 있다.
꽃은 6~7월에 취산상(聚傘狀) 원뿔 모양 꽃차례에 황백색으로 핀다. 꽃차례는 길이 20~40cm이고, 젓꼭지 모양의 털이 있으며, 가지끝이 처음에는 말려 있다. 꽃받침 조각은 4~8개이고, 길이 2~4mm로서 수평으로 퍼진다. 꽃잎은 없다. 수술은 8~15개로서 꽃받침보다 다소 길다. 암술대는 2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넓은 달걀 모양이고, 길이는 5mm이며, 2개로 갈라진다.
'우리 주변 식물 생태도감'에는 도깨비부채에 대해 거풍습(祛風濕), 해열(解熱), 활혈조경(活血調經)의 효능이 있어 관절염(關節炎, Arthritis), 월경불순(月經不順, irregular menstruation), 타박상(打撲傷) 등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중국어판 빠이두백과(百度百科)에는 꾸이덩칭(鬼灯檠)의 근경에 대해 수렴지혈(收敛止血), 지통생기(止痛生肌), 소영해독(消瘿解毒)의 효능이 있다고 나와 있다. 영(瘿, 중국어 잉)은 영류(癭瘤)다. 병적인 원인이나 타박상 등으로 살가죽에 툭 불거진 군더더기 살덩이를 말한다.
도깨비부채의 유사종에는 개병풍(골평풍, Common astilboides, フキモドキ), 깃도깨비부채, 깃도깨비부채 '수페르바', 덧도깨비부채, 칠엽도깨비부채, 헨리도깨비부채 등이 있다.
개병풍[정명 Astilboides tabularis (Hemsl.) Engl., 이명 Rodgersia tabularis (Hemsl.) Kom.]은 한강토의 강원도 이북, 중국에 분포한다. 국내에 자라는 육상식물 중에서 가장 큰 잎을 가지는 희귀식물이다. 줄기에는 센털이 있고, 잎은 방패 모양이다. 꽃은 흰색이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개병풍이 도깨비부채의 유사종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개병풍은 개병풍속(Astilboides) 식물로 속이 다르다.
깃도깨비부채(Rodgersia pinnata Franch.)는 중국 쓰촨(四川)과 윈난(雲南), 꾸이저우(贵州)에 분포한다. 중국명은 위예꾸이덩칭(羽叶鬼灯檠)이다. 키는 0.4~1.5m 정도이다. 꽃은 12~31cm 길이의 원추꽃차례에 별 모양의 작은 흰색 꽃이 핀다. 재배종은 흰색, 크림색, 분홍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이 핀다. 깃도깨비부채 '수페르바'(Rodgersia pinnata 'Superba')'는 키가 1.5m 정도이다. 소엽의 길이는 20cm 정도이다. 꽃은 50cm 길이의 원추꽃차례에 별 모양의 밝은 분홍색으로 핀다. 흰색 꽃도 있다.
덧도깨비부채(Rodgersia sambucifolia Hemsl.)는 중국 쓰촨, 윈난, 꾸이저우이 원산지다. 중국명은 옌투어(岩陀)이다. 키는 0.8~1.2m이다. 꽃은 6~8월에 13~38cm 길이의 원추꽃차례에 흰색으로 핀다. 칠엽도깨비부채(Rodgersia aesculifolia Batalin)는 중국 북부에 자생한다. 잎이 마로니에(horse chestnut)와 비슷해서 애스쿨리폴리아(aesculifolia)라는 별칭이 붙었다. 키는 2m까지 자란다. 잎은 최대 25cm이고, 손바닥 모양이다. 꽃은 60cm의 원추꽃차례에 별 모양의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핀다. 개화기는 여름이다. 헨리도깨비부채(Rodgersia henrici Franchet)는 중국 윈난 서부, 시짱(西藏, 티베트) 남동부, 미얀마 북부 등지의 2,300~3,800m 고산 지대에 분포한다. 중국명은 띠엔시꾸이덩칭(滇西鬼灯檠)이다. 잎은 손바닥 모양이고,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꽃은 우산 모양 꽃차례에 작은 별 모양의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핀다.
'야생화백과사전'에는 범부채(Blackberry lily, ひあうぎ)와 대청부채(Vesper iris, 얼이범부채)를 도깨비부채와 가까운 식물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이는 오류로 보인다. 이름만 보고 유사종으로 판단한 듯하다. 범부채는 범부채속(Belamcanda), 대청부채는 붓꽃속(Iris) 식물이다.
2023. 1. 3.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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