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아프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Taliban)의 학살을 피해 자유의 땅 유럽 벨기에로 탈출한 14살 소년의 생생한 망명기(亡命記)가 영화로 나왔다. 바로 '마인드 게임(The Mind Game)'이다. 목숨을 걸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로드 무비(Road Movie)의 주인공은 아프간 파슈툰족(Pashtuns) 출신의 앳된 소년 사지드 칸 나시리(Sajid Khan Nasiri), 일명 SK다.
SK(사지드 칸 나시리)는 에이피어 블랑케보르트(Eefje Blankevoort, 캐나다), 엘스 반 드리엘(Els van Driel, 네덜란드)과 함께 감독 크레딧 맨 앞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림자 게임(Shadow Game, 2020)'의 후속작인 '마인드 게임'은 사실 SK가 거의 다 만들었고, 블랑케보르트, 반 드리엘 감독은 편집만 했을 뿐이다. 러닝 타임은 62분이다.
때는 탈레반이 부정부패로 인민들의 지지를 잃은 아슈라프 가니 무능정권을 축출하고 아프간 전토를 장악해 가던 무렵이다. SK의 아버지는 탈레반에게 죽임을 당했다. SK도 살해될 운명이라는 것을 안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아프간 탈출을 명한다.
영화는 SK의 아버지가 탈레반에게 살해된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탈레반의 기원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
파슈툰족은 주로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이란계 민족이다. 파슈툰족을 페르시아어로 아프간이라고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명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파슈툰족은 파키스탄에 4,400만 명, 아프간에 1,500만 명, 인도에 300만 명이 거주한다. 파슈툰족은 아프간 전체 인구의 38~42%를 차지하는 최대 민족이며, 파키스탄에서는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다. 이들의 언어는 파슈토어(Pashto)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만든 조직이다. 탈레반이라는 이름은 '마드라사(madrasah, 학교)의 학생 또는 탐구자(探究者), 구도자(求道者)'를 뜻하는 파슈토어 '탈레브(talib)'의 복수형이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Kandahar)에서 파슈툰족 학생 2만5천여 명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걸고 결성한 무장단체다. 이들은 꾸란(Quran)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슬람교 수니파(Sunni) 운동인 와하비즘(Wahhabism)과 파슈툰족의 이슬람 관습법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를 엄격하게 지킴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 방식을 더욱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파슈툰족은 과연 탈레반을 지지할까? 대답은 '노(No)'다. 절대 다수의 파슈툰족은 오히려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죽이는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을 아주 싫어한다. 파슈툰족은 소련-아프간 전쟁 이후 소련군이 철수하고 난 뒤 무자헤딘(mujāhidīn, Mujahedin) 군벌들 사이의 대립과 전투로 인한 혼란기에만 어쩔 수 없이 탈레반을 지지했을 뿐이다.
권위주의(權威主義) 독재정권(獨裁政權)보다 더 무자비하고 폭압적인 신정(神政) 전제정권(專制政治)을 겪고 난 이후 파슈툰족은 탈레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SK의 아버지도 탈레반을 싫어한 파슈툰족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그런 이유로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생뚱맞은 '마인드 게임'일까? SK는 14살이 될 때까지 혼자서 아무데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혈혈단신으로 아프간에서 이란 국경을 넘어 기약도 없는 망명의 길을 떠난다. SK를 기다리는 것은 고난과 위험뿐이다.
무서움을 무릅쓰고 국경에 접근하면 경찰한테 거부당한다. 이럴 때는 밀수업자들을 이용해야 한다. 밀수업자들의 트럭에 숨어서 국경을 넘을 때는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어야 한다. 들키면 바로 추방이다. 경찰한테 두들겨맞기도 일쑤다.
특히, 크로아티아 경찰의 폭력성은 악명이 높다. SK의 등에도 경찰한테 몽둥이로 두들겨맞은 멍자국 투성이다.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코에 깊은 상처가 생긴 이민자도 있다. 때로는 지뢰 매설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국경을 넘더라도 현지 주민들의 냉대와 박해도 심하다. 주민들은 불법 이주자들을 폭력적으로 쫓아내거나 경찰에 신고한다.
SK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이를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으로 여기지 않으면 SK가 이 고난의 여정을 이어갈 수 없다. SK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수많은 게임들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망명 여정에서 만난 블랑케보르트와 엘스 반 드리엘 두 감독과 소통을 한다. SK에게 스마트폰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도구이자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지도이기도 하다.
게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다. 걸어서 국경을 넘으면 도보 게임, 철도를 이용하면 기차 게임, 배를 이용하면 보트 게임, 밀수업자들의 트럭을 이용하면 컨테이너 게임이 된다. SK의 여정은 매일, 매 순간 힘겨운 게임의 연속이다. 위험한 여정에서 두 감독과의 소통은 SK에게 많은 위로가 된다.
어려운 게임에 직면할 때마다 SK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어떤 난관도 걱정하지 않는다. 게임에 실패하면 다시 또 도전한다. 유럽에 가려면 수많은 게임을 해야 한다. 그렇게 이란을 횡단해서 튀르키예 국경을 넘고,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루마니아를 거쳐 헝가리에 이르는 여정은 계속된다. 망명 여정에서 만난 친구는 서로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된다.
아프간에서 비행기로 10시간 정도면 닿을 거리를 SK는 무려 2년이나 걸려 유럽 땅에 발을 딛는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목적지 벨기에에 도착해서 망명을 신청한다. 하지만, 벨기에 당국은 그를 수용소에 가두고 기다림을 요구한다. 난민 인정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2년이란 세월이 또 흐르면서 소년 SK는 수염이 나고 변성기를 거쳐 청년이 되었다.
벨기에에서는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다른 '마인드 게임'이 시작된다. SK는 17세임에도 덩치가 크고 조숙한 외모 때문에 벨기에 당국으로부터 성인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미성년자 인정을 받지 못하면 벨기에에서 학교도 다닐 수 없다. SK는 미성년자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심리적 압박을 극복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SK의 스마트폰에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 벨기에 정부로부터 SK를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통보였다. 마침내 SK는 자신과의 '마인드 게임'에서 승리자 된 것이다. 난민 인정을 받은 날 블랑케보르트, 엘스 반 드리엘 감독은 '마인드 게임'의 진정한 승리자 SK를 만나 따뜻한 축하를 보낸다. SK에게는 인간 승리의 해피 엔딩이다. SK가 곳곳에서 당했던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대우에 마음이 무거웠던 관객들에게도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지금도 아프간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전제정권이나 독재정권의 박해와 탄압을 피해 목숨을 걸고 유럽 또는 북아메리카를 향한 여정에 나서고 있는 수많은 SK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해피 엔딩이 있기를!
2023. 8. 22. 林 山
#마인드게임 #TheMindGame #SajidKhanNasiri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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