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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23] '끝나지 않는 인형극(Dolls Don't Die)' 사라져가는 예술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

林 山 2023. 8. 24. 20:09

2023년 8월 23일 밤 11시 30분 EBS 1TV에서는 인도 라나지트 레이(Ranajit Ray) 감독의 '끝나지 않는 인형극(Dolls Don't Die)'이 방영됐다. 늦은 밤이었지만 EIDF(EBS 국제다큐영화제) 출품작이기에 졸면서도 끝까지 정독을 했다. 러닝 타임은 1시간 10분이다.     

라나지트 레이 감독

라나지트 레이는 인도 동부 서벵골(West Bengal, 서벵갈) 주도 콜카타(Kolkata, 캘커타) 소재 자다브푸르 대학(Jadavpur University)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레이는 인도 영화 텔레비전 협회(Film and Television Institute of India, FTII)에 가입하기 위해 데칸 고원에 위치한 마하라슈트라 주 제2의 도시 푸네(Pune)로 갔다. 푸네에서 그는 촬영 관련 전문 학위를 받았다.

 

레이는 이후 키노-아이(Kino-Eye) 프로덕션을 세우고, 1990년 영화 '체나 아테나(Chena Athena)'를 통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2001년 레이의 단편영화 '아조파 가차(Ajopa Gacha)'는 인도 파노라마(Indian Panorama)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 그는 제62회 인도 국립영화 시상식(National Film Awards)에서 다큐멘터리 '쿠마르툴리의 점토 이미지 메이커 기록(Documentation of Clay Image Makers of Kumartuli)'으로 라자트 카말 상(Rajat Kamal Award)을 받았다. 그의 다큐멘터리 '올랭(Aoleang)'도 같은 상을 받았다. 레이는 현재 연출 외에도 제작자와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사실 고백하자면 '끝나지 않는 인형극'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면 영화 제목만 보고도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강토(조선반도)에서는 벌써 인형극이 거의 다 사라져서 구경하기조차 힘든 시대가 되었다. 방송에서도 인형극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오티티(Over The Top, OTT)와 3D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들은 전통 인형극에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 인도의 인형극도 이제 한강토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레이 감독은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소멸해가는 인형극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로(初老)의 주인공 마다브에게 카메라 앵글을 들이댄다. 인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마다브는 아버지로부터 전통 인형극을 전수받았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인형을 움직이면서 말하게 하고, 웃고, 춤추고, 울게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영화의 한 장면

마다브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인 인형극은 이제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존재 이유가 되었다. 그러기에 마다브는 돈벌이도 거의 되지 않는 인형극을 공연하면서 부인의 노골적인 잔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도 인형극단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마다브는 마치 필생(畢生)의 숙명이나 되는 것처럼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열정을 인형극에 쏟아붓는다.  

마다브가 세상 물정도 모르고 고지식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흔히 잘못된 생각, 그릇된 신념이 인생을 망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다브가 인생을 낭비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마다브가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마다브의 인생은 제3자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

인도 오지의 시골 마을 아이들은 대도시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인형극마저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마다브는 인형극 도구들을 자전거에 연결한 수레에 싣고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한다. 인형극에 흠뻑 빠진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다브의 얼굴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번져간다. 마다브에게 이보더 더한 보람, 이보다 더한 대가가 있을까?  

레이 감독의 카메라는 자신의 신념 하나로 답답할 정도로 꿋꿋하게 살아는 인형극 마스터 마다브의 외고집 인생을 따라간다. 마다브는 인형극의 인기가 날로 사라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는 인형극의 인기가 차갑게 식으면 자신의 극단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냉혹한 현실은 예술가의 열정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다. 그럼에도 마다브는 인형극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외롭고 힘든 싸움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

EBS는 '끝나지 않는 인형극'의 작품평에서 "이 영화는 냉혹한 현실과 열정적인 예술가의 황홀경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투쟁과 꿈을 그린다. 이 작품은 자신의 예술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다브의 외롭고도 끈질긴 싸움에 보내는 찬사다."라고 극찬했다. 매우 적절한 작품평이다.  

마다브가 걸어가고 있는 인생 역정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냐면, 인형극의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다브도 그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인형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형극 마스터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는 마다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23. 8. 24.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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