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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2024] 어떤 프랑스 청년(A French Youth) - 아랍계 투우사 벤하무와 바쿨 이야기

林 山 2024. 8. 20. 14:45

8월 19일 제2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2024)의 막이 오른 날 밤 9시 55분 EBS 1TV에서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프랑스계 캐나다 감독 제레미 바타글리아(Jérémie Battaglia)의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가 방영되었다. 싸구려 저질 영화만 일년 내내 돌아가면서 주구장창 틀어대는 케이블 TV 채널들에 식상한 영화 팬들에게 EIDF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영화제다.  

다큐멘터리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 포스터

 

제작사 엑세리아 주르(Extérieur Jour)를 공동 설립한 제레미 바타글리아는 자신을 평범한 영웅의 팬이라고 말한다. 바타글리아는 2012년 퀘벡의 학생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Pots and pans(취사 도구)'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지도를 얻었다. 그는 "사회의 부당한 차별에 맞서 인간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 의지로 만든 영화가 바로 그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A French Youth'다. 이 영화는 2024년 북미 최대 다큐멘터리영화제인 핫 독스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Hot Docs Canadian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에서 초연되었다.  

제레미 바타글리아

 

바타글리아는 2020년 핫 독스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2021년 퀘벡영화상(Prix du cinéma québécois) 최우수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부문상 후보.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Canadian Screen Awards) 후보에 올랐던 영화 'Perfect, The Brother(완벽한, 형제)', 그리고 'ADONIS(아도니스)'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역경, 신체 및 그 한계에 대한 주제를 즐겨 탐구한다. 애니메이션, 연극, 무용, 음악과 같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도 종종 협력하는 그는 조한느 마도레(Johanne Madore)와 함께 서커스 영화 'The sum of our dreams(우리들 꿈의 총합)', 멜라니 데메르(Mélanie Demers)와 함께 댄스 영화 'The goddam Milky Way(빌어먹을 은하수)'를 공동으로 감독하기도 했다.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의 한 장면

 

바타글리아 감독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Maghreb) 지역 모로코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벨카셈 벤하무(Belkacem Benhammou)와 자와드 바쿨(Jawad Bakloul)에게 카메라의 촛점을 맞춘다. 또 한 사람의 주요 등장인물은 벤하무의 둘도 없는 친구 티토 산체스(Tito Sanchez)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신이 태어난 조국, 정든 고향을 버리고 타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정치적 박해에서 벗어나거나 가난과 궁핍을 면하기 위해서다. 자녀 교육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벤하무와 바쿨의 부모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벗어나 먹고 살 길을 찾아서 모로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다. 그러나, 이민 생활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프랑스에서도 백인 이민자들에 비해 흑인, 아랍계, 로마니(Romani, 집시)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벤하무와 바쿨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 편견과 차별에 맞서 수없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특히 아랍계 무슬림은 종교적 편견 때문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듣는다. 아랍계 이민자들은 취업을 하고 싶어도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기 일쑤여서 변변한 직업을 갖기도 어렵다. 이들은 결국 먹고 살기 위해 폭력 조직이나 마약 밀매 조직 등 암흑가에 발을 담그게 된다.   

벤하무도 처음에는 취업을 하기 위해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다. 그러나, 그를 부르는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막다른 길에 내몰리자 벤하무는 마약 밀매 조직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반대파 마약 밀매 조직의 습격으로 동료들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본 벤하무는 암흑가를 떠나 새로운 직업을 찾기로 한다.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의 한 장면

 

그래서, 벤하무와 바쿨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현대판 글래디에이터(Gladiator, 검투사)-꺄마흐그(Camargue, 영어식 발음 카마르그) 투우사가 된다. 벤하무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 유명한 꺄마흐그 투우사였다. 지금 그는 현역 시절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에 걸려 알제리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꺄마흐그의 정식 명칭은 쿠흐스 꺄마흐그(Course Camargue, Camargue Bullfighting, 꺄마흐그 투우)다. 꺄마흐그 투우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에서 분기한 론강(프랑스어 Rhône, 프로방스어 Rôno)과 지중해에 둘러싸인 삼각주 지대인 꺄마흐그에서 유래한 경기다. 그래서 쿠흐스 꺄마흐그, 더 간단히 꺄마흐그로 불린다.  

꺄마흐그 경기는 원형 경기장에서 열린다. 경기가 시작되면 흰색 옷을 입은 8명의 투우사들이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4명은 주전 선수, 4명은 주전을 도와주는 보조선수들이다. 선수 대부분은 아랍계다. 이어 날카로운 뿔을 가진 사나운 수컷 흑소가 경기장으로 뛰어들어온다. 황소의 머리에는 여러 개의 리본이 달려 있다. 그 리본을 많이 따내는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꺄마흐그 투우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기라고 한다. 따라서 황소가 죽는 경우는 없다. 대신 투우사들이 황소의 뿔에 찔려 많이 다치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경기가 격렬해질수록 관중들은 더 열광한다.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에서 목숨을 걸고 잔혹한 싸움을 벌이는 검투사들에게 열광하던 로마인들과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경기에 참가했다가 큰 부상을 입은 바쿨은 위험한 꺄마흐그 투우사를 포기하고 새 직업을 갖기 위해 소방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는 응급구조사 지격증도 갖고 있다. 그의 아내는 간호사다. 그가 많은 부상에도 온전하게 몸을 보전한 것도 순전히 아내 덕분이다. 이제 그는 아내와 함께 꺄마흐그 투우장의 의료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의 한 장면

 

벤하무는 꺄마흐그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어 장차 유망한 챔피언 감이다. 그는 팬도 많고 인기도 많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수입은 턱없이 낮은 편이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경기에 참가하면 600유로(약 89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래도 그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경기에 참가한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것을 알면서도 꺄마흐그에 출전하는 벤하무는 감독에게 "거리에 나가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유명 축구 선수 대접을 받죠. 그 투우사 아냐? 맞네,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다들 저만 바라보고 제게 환호해요. 특별한 느낌이죠. 전에는 못 느껴본 그런 느낌을 경기장에서 느낀 겁니다."라고 말한다. 

어느 날 벤하무는 꺄마흐그 경기 도중 황소의 뿔에 허벅지를 찔려 중상을 입는다. 뿔이 허벅지를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깊은 곳의 근육을 파열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꺄마흐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벤하무가 챔피언 등극이 유력시되는 꺄마흐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관중석에는 알제리에서 날아온 왕년의 꺄마흐그 챔피언-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아들을 꺄마흐그 선수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드디어 머리에 리본을 단 황소 가라넬이 경기장에 들어온다. 손에 리본을 딸 갈고리를 낀 벤하무와 가라넬 사이에는 팽팽한 전의와 긴장감이 감돈다. 벤하무의 눈동자는 살기가 도는 가라넬의 눈을 닮았다. 벤하무가 돌진하는 황소의 머리에서 곡예를 펼치듯 아슬아슬하게 리본을 따내는 찰나의 순간을 정교한 촬영 기법으로 포착한 장면들에는 감독의 절제되고 아름다운 영상미학이 담겨 있다.  

'A French Youth(어떤 프랑스 청년)'의 한 장면

 

맹활약을 펼친 벤하무는 마침내 꺄마흐그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벤하무의 아버지는 처음으로 아들을 꺄마흐그 챔피언으로 인정하면서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은 벤하무는 비로소 진정한 꺄마흐그 투우사로 거듭났음을 자각한다.  

바타글리아 감독은 'A French Youth', 특히 벤하무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프랑스의 이민자 차별과 인종 차별? 그것도 맞다. 하지만, 감독은 더 나아가 암흑가를 탈출한 벤하무가 이민자 차별, 인종 차별을 넘어서 꺄마흐그 챔피언으로 등극하는 인간 승리에도 박수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2024. 8. 20.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