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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 김기중 상임대표] 역사의 변곡점과 ‘대무평’ 운동

林 山 2024. 8. 9. 10:10

역사는 인과관계로 엮인 꾸러미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특히 19세기 이후 세계사는 자본주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식민지 쟁탈전으로 점철되어왔다. 자본주의의 강고한 토대 위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우리 삶의 시간들을 빼곡히 채워왔다. 그러는 동안, 개인이나 국가 모두의 의식 속에는 제국과 지역, 기계와 인간, 자본과 노동의 이중 구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전자가 소유라면 후자는 존재이고, 전자가 물질이라면 후자는 정신이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의 잣대는 바로 철학의 영역이다. 철학하지 않는 삶의 잣대는 전자를 높게 쳐주겠지만, 철학하는 삶은 자본주의 ‘마몬의 교회’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과 노동의 가치, 진정한 행복의 조건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철학이 종교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기중 대학무상화-평준화전남운동본부상임대표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와 수정 자본주의, 작금의 신자유주의로 대변되어 온 자본주의의 역사는 20세기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잠시 주춤거리는 듯했으나 다시 그 세력을 온전히 회복하였다. 그 역사의 변곡점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태평양 전쟁’의 피아(彼我) 당사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오늘날 둘도 없는 형제 사이가 된 것은,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인 연합국 48개국이 미국의 주도 아래 패전국 일본에게 서명해 준 문서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국이 자본주의의 걸림돌로 등장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파트너로 인정해 준 이 사건이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일본은 이 산을 배경 삼아 불법적인 식민 침탈과 위안부 동원,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커녕, 오히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시킴으로써 재침략의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간과할 수 있겠는가? 

2018년 10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판결은 70년 가까이 굳건히 유지돼 온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1965년 ‘한일 협정’을 인정하지 않은 역사적인 판결로 평가된다. 판결문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65년 체제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 부정과 모독, 주권의 훼손, 영토주권 위협,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권 사실상 방기, 헌법정신의 부정’ 등을 적시함으로써 일본 식민지배의 잔혹성과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과 단죄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는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물론 한미일 극우 세력과 윤석열 내각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철옹성같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극복하고 국내외 반전 평화, 인권 의식 고양을 위한 의미 있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또 하나의 변곡점 위에 우리 ‘대무평’ 운동이 서 있다. ‘대무평’은 ‘대학무상화·평준화’의 약칭이다. 대학 무상화와 대학 평준화는 개념상 차이가 있겠으나, 소수 특권교육을 배격하고 교육복지와 평등교육 실현을 통한 사회 공동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중요한 것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외세 의존의 서막을 연 샌프란시스코 체제로부터의 자주 선언이라면 ‘대무평’ 운동은 참교육과 진정한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주권 선언이라는 점이다. 대학무상화와 평준화가 실현되어 소득 고하에 상관없이 국가의 무상 보편교육을 받은 젊은이라면 엘리트(특권)의식에 쉽게 사로잡히지 않고 공동체 의식에 견인되어 사회 공동선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고 저 안에 태풍 몇 개와 천둥 몇 개‘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렇다. 이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대무평‘ 운동 또한 그 안에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 열정과 헌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다시 윤석열 정부의 교육 시장화, 퇴행 정책으로 이들의 땀과 노력이 눈물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 십수 년 전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공공성과 민주주의는 교육체제의 두 가지 기본 원리이다. 이 원리를 실행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에 근거하여 취학 전 보육 단계에서부터 대학까지 교육비용 전액을 국가가 책임 지원하는 공공재로서의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민주공화국의 의무이자 민주공화국을 사는 국민들의 권리이다. 시장에서 이뤄졌던 자본에 의한 학교의 지배를 벗어나 교육정책 결정과정에 교육주체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확장을 이루어야 한다. 대학서열체제는 한국교육의 거대한 질곡이다. 대학평준화로 대학 서열체제를 타파하는 것은 교육혁명의 근본 동력이다. 대학입시를 폐지하고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한 공동선발-공동학위제로 대학 선발과정을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즉 공동학위대학(대학연합체제-대학통합네트워크)을 건설하여 고등교육의 상향적 발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운동사 2-2, P.669) 

글쓴이 - 김기중 대학무상화-평준화전남운동본부상임대표

출처 - 목포시민신문 http://www.mokpo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