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9시 55분 EBS 1TV에서는 제21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2024) 출품작인 마잔 호스라비(Marjan Khosravi) 감독의 2023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란 부인의 이런 남편(Mrs. Iran's Husband)'이 방영되었다. 러닝 타임은 27분이다.
마르잔 호스라비 감독은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이란 여성 감독이다. 중편 데뷔작 '창밖에는 눈이 쌓이고(The Snow Calls, 2020)'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학생 경쟁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란 부인의 이런 남편'은 2023 핫독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최우수 국제단편영화상을 받았다.
호스라비 감독은 험준한 산 위에 있는 집에서 이란(Iran)과 사라(Sara)라는 이름의 두 아내와 11명의 자녀, 그리고 양 떼를 거느린 바흐티야리(Bakhtiari) 부족의 한 이란 남성의 가정에 카메라의 촛점을 맞춘다. 남편 술탄 모하메드(Sultan Mohammad)는 산 위 자신의 왕국에서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왕과 같은 존재다.
이란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다. 술탄(Sultan)은 이슬람교 나라의 군주, 오스만 제국의 황제를 뜻하는 말이다. 이름 그대로 술탄은 집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통치자다. 온 가족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의 강력한 통치자가 되어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술탄은 모든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군림만 할 뿐 별로 일도 하지 않는다. 그의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는 역할과 의무는 주로 두 아내의 어깨에 달려 있다. 아이들의 양육 외에도 양을 치거나, 땔감 마련하기 등 온갖 힘든 일은 주로 두 아내가 도맡아서 한다.
술탄은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 세 번째로 결혼할 생각이다. 그는 "일은 대부분이 여자들이 한다. 우린 일손이 필요하다. 일할 사람 말이다. 양을 100마리 더 살 거라서 새 아내가 두 아내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결혼 이유를 밝힌다. 그가 세 번째 아내를 얻으려는 것은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공짜 가사 노동자를 하나 더 데려오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아내 이란은 술탄의 세 번째 결혼에 대해 거의 체념적이다. 이란은 "내 이름은 이란이다. 남편은 '당신은 살림을 못하잖아'라며 새 아내를 원한다고 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아내 사라는 남편에게 거부와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다. 사라는 "남편한테 속아서 결혼에 응했다. 부인과 이혼할 거고 도시에 집도 있다더니 이혼도 안 하고 집도 없었다."면서 남편을 비난한다.
호스라비 감독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통치자의 도착에 대한 공식 절차를 수행해야 했다. 우리 나라 부족의 모든 남자들은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아내는 결코 여왕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하녀 역할을 한다. 남편을 위해 힘든 육체 노동과 쉬지 않고 봉사하는 것은 바흐티야리 부족의 여성들에게 중요한 의무이며, 때로는 여성들이 모든 기본적 권리를 완전히 망각할 정도다. 요즘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사라와 같은 이란의 신세대 여성은 기본적 권리를 이해하고 자유와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호스라비 감독이 이 다큐 영화를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이 들어있는 발언이다.
호스라비 감독은 한 명의 남성이 여러 명의 여성을 아내로 두는 결혼 형태인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Polygyny)가 허용되는 사회에서 '기본적 권리를 이해하고 자유와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카메라의 촛점을 맞추고 있다. 감독은 여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란의 일부다처제라는 제도, 더 나아가 교리로써 일부다처제를 합리화하는 이슬람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 polyandry),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monogamy), 독신제(獨身制, celibacy) 등 각종 결혼제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리, 환경, 종교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본능이나 욕망 등 생물학적 조건도 결혼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존이 우선시 되는 환경에서는 일부다처제가 많은 자손을 퍼트리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환경이 안정되면 일부일처제가 유전적 다양성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환경의 변화로 인한 종의 멸종을 막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수렵 채집 시대에는 뛰어난 사냥꾼이나 족장의 경우 여러 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문명이 발달된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시대의 지배자들은 수 명에서 많으면 수천 명의 아내를 두었다. 고려, 조선 시대만 해도 수백 명의 후궁을 거느렸던 왕이 있었고, 양반들도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혼인하지 않고 여자 노비와 관계하여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었다.
기독교가 도입되기 이전 유럽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주류였다. 고대 로마와 게르만족도 일부일처제가 원칙이었다. 고대 로마는 상속문제 등으로 일부일처제에 특히 엄격했고, 게르만족은 소가족 제도로 일부일처제가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고대 켈트족은 일부다처제 사회였지만 로마와 게르만의 정복에 의해 일부일처제가 정착됐다.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는 7세기 아랍에서 잦은 전쟁으로 가장이 죽은 경우 가족의 부모와 아내,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된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권 나라들에서는 입양을 허가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인류의 보편적 제도였던 일부다처제가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소한 명시적으로 사라진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보급과 경제적 자본주의 발달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 다수의 손에 분산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이득이 집중되는 일부다처제가 존립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일부다처제는 흔히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교 국가인 미얀마와 스리랑카, 기독교 인구가 많은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남아공 등 아프리카 나라들, 힌두교 나라 인도 등도 일부다처제를 인정 내지 관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는 기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아제르바이잔, 알바니아, 튀르키예, 튀니지만 법적으로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다.
이혼이 일상적인 나라들, 특히 USA에서는 사람들이 이혼을 통해 일부다처제를 이룬다는 주장도 있다. 능력이 있는 남자는 한 번 이혼하고 나서 다시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일이 통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다처제가 아니라 난혼(亂婚, promiscuity)에 더 가깝다.
이슬람교 경전인 꾸란에 따르면 아내를 4명까지 두는 것을 허용한다고 되어 있다. 이슬람의 정통 교리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는 것일뿐이지 권장하지는 않는다. 이슬람권의 초창기 일부다처제는 거친 사막환경에서 남자들이 전쟁으로 수없이 죽어나가는 시대였기에 사회복지 차원에서 살 길이 막막했던 전쟁과부들을 거둬서 먹고 살게끔 하려던 의도로 시행된 것이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남자가 생각보다 많은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샤리아에서 남성은 결혼을 원하는 여성에게 3~4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현금 혹은 현물을 일시불로 줘야만 한다. 지참금은 오직 신부만의 소유로 남편이나 신부 가족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아내가 많으면 그만큼 남편의 지출 비용이 증가한다.
남편이 아내를 더 맞으려면 기존 아내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남편은 모든 아내를 평등하게 사랑하고 대우할 의무를 지게 된다. 만약 아내들 중 누구 하나만을 편애하거나 반대로 누구 하나만을 홀대하면 이는 명백한 이혼사유가 되기 때문에 남편은 엄청난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
그래서 일부다처제를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남자는 극히 적다.이는 통계가 말해 준다. 1907년 이집트에서는 6%의 남성이 두명 이상의 아내와 결혼했는데, 1992년이 되면 2.8%까지 떨어진다. 알제리는 1.0%(1998), 모로코는 1.1%(1994)였다.
아랍에미리트 부통령이자 맨시티 구단주인 만수르는 마음만 먹으면 수십 명 이상의 아내를 둘 수 있는 억만장자다. 그런 만수르는 몇 명의 아내를 두었을까? 2명이다. 그것도 두바이 왕족과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부인들이라고 한다.
호스라비 감독의 다큐 영화 '이란 부인의 이런 남편(Mrs. Iran's Husband)'을 보면서 결혼 제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본다. 어떤 경우든지 강요되는 결혼 제도는 타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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