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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휘의 장편소설 '내 생의 적들'

林 山 2005. 11. 7. 12:04

'내 생의 적들' 표지

   
나는 요즈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시집이나 소설, 수필집을 거의 안 보는 편이다. 대신 직업적인 작가들보다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낸 책들을 즐겨 읽는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환자를 돌보는 직업적인 일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것이 제일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되지만.....

 

2005년 여름, 비가 구죽구죽 내리던 어느 날 내가 자주 가는 선술집에 그가 나타났다. 그와는 처음 만나는 사이였음에도 마치 오랜지기처럼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면서 문학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늦도록..... 그는 바로 소설가 이인휘였다.

 

이인휘가 서울로 떠난 며칠 뒤 내 앞으로 우체국 소포 하나가 바람처럼 배달되어 왔다. 그 안에는 이인휘의 장편소설 '내 생의 적들'이 들어 있었다. 책을 받아들었을 때 나는 이 소설을 최소한 한번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부담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틈도 별로 없거니와 진료가 끝나면 피로에 지치기 일쑤여서......

 

그러나 '내 생의 적들'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나는 소설속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책을 가지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때로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였다. 그것은 나 자신도 생생하게 겪은 암울했던 80년대가 그 시대적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도 당시 내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치열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거나 독재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어서 더 그랬으리라. 나 자신도 교육민주화운동에 참여해서 독재정권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해직된 경험이 있었기에 소설속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화벨이 울리면서 소설의 프롤로그 '먼 기억 속으로'는 시작된다. 주인공 '김광훈'은 잠결에 가리봉파출소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아내의 친구 남편인 '나경중'이라는 사람을 데려가라는..... 나경중은 구로공단 4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부수려고 하다가 파출소로 연행된 것이었다. 택시를 타고 구로공단으로 들어섰을 때 광훈은 먹고살기 위해 고무냄새에 찌들어 늘 휘청거리던 타이어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20대 시절을 회한처럼 떠올린다. 0.8평의 독방같은 벌통집과 사람을 팔고사던 인력 시장과 함께.....

 

김광훈이 나경중을 알게 된 것은 89년 4월 그가 어렵게 대학에 복학했을 때였다. 나경중을 만나면서 광훈은 그가 운동권 학생 출신으로 광주항쟁 시절, 모진 고문을 받고 일 년 육 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는 것과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잘 모르고 있던 주인공은 나경중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노동운동가라는 사람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한다. 나경중은 노동운동이 갈수록 그 기본정신을 잃고 타락해가고 있다며 안타까와 할 뿐만 아니라 점점 개인과 조직의 욕망으로 치닫고 탐욕을 채우려는 모습들이 늘고 있다고 보는 인물이다. 그리고 80년대 중후반까지 소중하게 인식되어온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순결성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직도 노동운동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운동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자신에 대해 회한에 젖는 그런 인물이다.

 

김광훈은 나경중이 부수려고 했던 바로 그 이정표를 바라다 본다. 이정표는 여기서 자본과 노동의 경계를 상징한다. 나경중이 이정표을 부수려고 했던 이유에 대한 답은 그의 말속에 들어있다. '..... 한 블록만 건너가면 내(나경중)가 살고 있는 집이고, 그 허름한 집과 내 사는 모습은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저 거리는 디지털 거리로 첨단산업단지로 변해가고 있는 겁니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내가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은 지 이십사 년, 그 이십사 년의 세월을 두고 저 거리와 내가 살고 있는 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혼란스럽더군요. 도대체 이십사 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 세상을 바꾸고자 청춘을 저당잡히면서까지 노동운동에 투신한 결과가 절망 뿐이었을 때, 그는 그 이정표를 부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경중이 화두처럼 던진 '저 거리와 이 거리라는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이십사 년 동안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라는 생각에 빠지자 김광훈은 갑자기 숨이 막히고 답답한 기운이 온몸을 짓눌러 댄다. 왜냐하면 김광훈도 바로 이 거리에서 썩을 대로 썩은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들로부터 문명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망보다 더한, 아니 지옥보다도 더한 끔찍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광훈의 마음 한 구석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시간은 1980년 5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무역학과 3학년인 그는, 부모는 일찍 죽고 결혼한 형과 누이마저도 살기가 어려웠던 까닭에 삼 년째 내 집처럼 살고 있던 대학의 문학동아리 방에 있었다.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한 그는 입학한 지 6개월만에 문학동아리에 들어간다. 거기서 시인 지망생인 철학과 선배를 만나면서 그의 삶은 점차 바뀌게 된다. 학과공부를 등한시하면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철학책이나 초현실주의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몽상가가 되어 갔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80년 5월 17일..... 당시는 대규모 시위로 인해 정부가 중대발표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고, 재야단체를 비롯한 시민들도 그 발표가 민주화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문학동아리 같은 회원이자 학생회 간부인 '이상현'이 찾아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대학생 대표자 회의가 열리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학생회 사무실로 함께 가자고 한다. 흥사단 회원이었던 그는 학생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소위 운동권이었다. 학생회 사무실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광훈에게 관념과 허무의 세계에서 나와 사회문제로 눈을 돌려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광훈은 그를 향해 세상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만 결국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고 냉소를 비친다.

 

밤 9시 경 야음을 틈타 검은 승용차가 학내로 들어오더니 검은 양복차림의 사내들이 학생회실로 들이닥친다. 학생처에 상주하던 정보과 형사를 앞세우고 들이닥친 그들은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안기부 직원들..... 악명높던 소련의 KGB나 나찌의 SS 친위대 못지 않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비밀경찰 안기부 요원들이었다. 그들에게 이상현과 김광훈은 학생회 지도부가 있는 곳을 대라며 그야말로 복날 개패듯이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이상현은 운동권 학생이어서 그렇다 치지만, 운동권의 '운'자도 모르는 광훈에게는 맑은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그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일에 끌려 들어가 무작정 두들겨 맞은 것이다.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죽여줄까'라고 서슴지 않고 내뱉는 안기부원들, 국가 공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과 만행 앞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국 비상계엄 확대, 긴급조치 발동, 휴교령, 일체의 시위금지, 언론 방송의 사전 검열, 국가 전복을 기도한 대학생 및 재야인사들에 대한 대거 검거 등과 같은 전두환 군부독재의 폭압과 야만의 전주곡이었으며, 곧 바로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강형사는 그들을 끌고 서부경찰서로 가다가 갑자기 근처 여관으로 데리고 간다. 그것은 이상현을 달래고 을러서 학생회 간부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한 술수였다. 이튿날 통금이 해제되어서야 그들은 악몽같았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상현과 헤어진 김광훈은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영등포 뒷골목을 찾아 든다. 그곳은 그가 프레스 공장을 다니면서 야학에 다니던 곳이었다. 학교가 군인들에게 점령당하자 잠잘 곳을 뺏긴 그는 '똥칠이 형님'네 집에 머물면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때마침 K대학을 다니는 공민학교 출신 '상호'가 농사일을 거들러 시골에 간다고 해서 동행하기로 한다. 같은 공민학교 출신으로 공대로 진학한 '광남'이 찾아온 날, 그들 셋은 음악신청을 받아주는 민속주점 '가로등'으로 술을 마시러 간다.

 

가로등에서 김광훈은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까만 단발머리, 둥글면서도 가냘픈 턱선, 허공에 박힌 듯 고요한 눈빛을 가진 여인, 약대를 졸업한 뒤 약사의 길을 걷고 있는 '오연희'와..... 그러나 그녀는 어릴 때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김광훈이 영웅적인 학생운동을 하다가 비상계엄 때문에 경찰에 쫓기는 신세라는 광남이의 말을 듣고 오연희는 여성 특유의 모성 보호본능을 느낀다. 김광훈도 다리를 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릴 때부터 아물기 힘든 깊이 각인된 그녀의 상처를 감싸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김광훈이 시골로 떠나는 날 오연희는 역까지 나와 배웅을 하면서 '몸조심하시고 힘들면 전화나 편지를 해주세요.'라고 쓴 쪽지를 3만원과 함께 하얀 봉투에 담아서 건네준다. 김광훈은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둘 사이에 사랑의 싹은 그렇게 움을 틔우고 있었다.

 

상호네 집은 전주에서 버스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삼례에 있었다. 거기서 상호 큰형님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김광훈은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고,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개울가로 다니다가 상호와 함께 축사도 청소하고, 밭으로 풀을 뽑으러 다니기도 하면서 생활을 한다. 광훈은 시골생활을 담은 편지를 연희에게 보낸다. 답장 대신 어느 날 꿈결처럼 연희가 삼례에 찾아온다. 그녀는 신문에서 5.18 광주민중항쟁 소식을 듣고 광훈이 걱정이 돼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마을어귀에 있는 대밭을 산책하다가 처음으로 포옹을 한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함께 밤을 보내면서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다음날 함께 서울로 올라온 그들은 매일같이 똥칠이 형님네 포장마차나 가로등에서 만나서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는 동안 연희의 집이 청주고, 일남이녀 중에 맏딸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 J대학을 다니는 여동생과 함께 서울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행한 가족사로 인해 단 한번도 행복했거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광훈은 그녀를 만나면서 차츰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와 광훈이 늦은 밤 가로등 술집을 나와 영등포시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갈 때, 장발단속을 하는 계엄군들에게 붙잡힌다. 군인들은 광훈을 어두운 골목으로 끌고가서 군화발로 차고 두들겨 팬 뒤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어버린다. 땅에 떨어지는 머리털과 함께 광훈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짓밟히고 만다. 나도 대학시절 장발단속을 하는 경찰들에게 잡혀서 머리털을 잘린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모멸감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당시는 이처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독재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며칠 지나서 광훈과 연희는 강화도로 여행을 떠난다. 보문사를 둘러본 뒤 눈썹바위에서 소원도 빌고..... 광훈은 '부처님, 연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만 해준다면 당신의 존재를 믿을 것입니다.'라는 생각까지 한다. 주홍빛 노을이 밀려오자 광훈은 소나무 가지에 목매고 죽은 어머니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린다. 광훈을 사랑하는 연희의 노을은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지난날의 불행했던 과거에 사로잡힌 광훈의 노을은 슬픔 그것이었다. 핏빛 노을은 그에게 뭉크의 그림 '절규'를 떠오르게 하고..... 온통 붉은 색의 바탕에 공포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절규하고 있는 한 사내..... 여기서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힌 그 사내는 바로 김광훈과 그의 어머니을 상징한다. 또한 핏빛 노을은 암울했던 그 시대적 상황과 술만 마셨다하면 어머니를 두들겨 패던 아버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맞아 미친 몸이 무의식적인 공포에 휩싸였거나 매질을 당할 때마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다가 뇌리에 박혀버린 어떤 죄의식이 가학적이 되어 몽둥이로 스스로의 몸에 매질을 한 뒤 목매달고 죽은 그의 어머니는 앞으로 다가올 김광훈의 절망적 상황과 오버랩된다.

 

연희의 제안으로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게 된 그들은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며 한몸이 된다. 서로에게 몸과 마음의 문을 연 그들은 황홀한 사랑을 한다. 그날 민박집은 광훈에게는 전혀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었다. 강화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들의 순애보와도 같은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사랑은 광훈의 자취방을 오가며 이어진다. 그녀의 사랑은 광훈에게 초등학교 이학년 때 여선생님에게서 받았던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광훈은 시인이 되려던 생각을 바꿔 선생님이 되어 연희의 부모에게 인정도 받고, 시인의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꿈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휴교령이 해제되고 광훈이 다시 학교에 나가던 날, 난데없이 강형사가 나타나 그를 끌고 간다. 강형사는 광훈을 안기부 요원들에게 넘긴다. 안기부 요원은 바로 오월 십칠일 학생회실에서 광훈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댔던 놈이었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온몸에 소름을 일으키면서 광훈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가 끌려간 곳은 악명높은 안기부 고문실이었다. 거기서 그는 아무런 죄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온갖 고문을 받는다. 안기부원들은 광훈을 발가벗기고 물에 적신 수건을 감은 각목으로 무자비하게 때라는가 하면, 구두발로 사정없이 정강이를 차댄다. 그것 뿐인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 머리를 욕조에 처넣는 지독한 물고문으로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난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칠성판 고문도 받는다. 기절했다가 깨어나면 다시 반복되는 고문으로 그는 의지는 산산조각나고 본능마저 잃어버린 '벌레'가 되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수긍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광훈은 고문을 받으면서 이상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상현은 당시 안기부나 보안사, 경찰의 대공분실 등에서 고문이나 타살에 의해 의문사를 당했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바로 안기부원들은 광훈이 이상현을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런 끔찍한 고문을 했던 것이다.

 

고문에 망가진 광훈은 오직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는 완전히 짐승같은 인간으로 변한다. 그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신념도 하찮은 것으로 변해버리고, 문학과 철학도 낡은 먼지처럼 날아가버린다. 그가 온몸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오연희와의 사랑도 속된 감정으로 갈가리 찢겨져버린다. 그는 오직 살 수만 있다면 안기부원들의 발바닥이라도 핥으며, 부모라도 물어뜯을 것같이 잘 길들여진 개같은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신이었고 광훈은 한낱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고문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작가는 고문에 갈가리 찢긴 광훈을 통해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독재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 의해 자행된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기부원들이 지독한 고문을 해서 광훈을 상현의 살인범으로 몰아간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들은 오연희의 아버지인 청주의 재벌 오윤식으로부터 광훈과 자신의 딸을 떼어놓도록 사주를 받고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안기부원들과 오윤식의 공모는 바로 권력과 재벌의 야합과 유착을 상징한다. 당시는 바로 이런 시대였으며, 한반도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이었다.

 

오연희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으며 여기서 나가자마자 군대에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광훈은 지긋지긋한 안기부 고문실에서 풀려난다. 공포의 고문실에서 밖으로 나오자 광훈은 안기부원들에게 벌레처럼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그의 모습이 스스로도 끔찍해진다. 또한 아이들이 지렁이를 갖고 놀듯 안기부원들이 그의 성기를 막대기로 툭툭치던 장면도 수치스러워 벽에 머리가 깨지도록 찧고 싶은 심정이 된다. 고문의 고통을 참아내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그의 존재가 너무도 비굴하고 하찮게 보인 나머지 차라리 죽지 못한 것을 원망한다. 광훈이 군대에 끌려가는 것은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녹화사업'을 상징한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정권은 '녹화사업'이란 작전명으로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화를 부르짖던 젊은이들을 군대로 강제로 끌고 갔다. 군대로 끌려간 젊은이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진 고생을 다했다. 그들 중에는 의문의 죽음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군대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 들른 자취방에서 광훈은 연희와 가슴이 새까맣게 타도록 안타까운 마지막 만남을 갖는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아무런 설명도 못한 채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연희는 그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모르고..... 잠시후에는 광훈이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가야만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광훈은 사랑하는 연희를 남겨두고 그렇게 군대로 끌려 간다. 기억하기도 싫은 안기부 고문실에서 나온 그는 또 다시 감옥같은 세상의 어둠속으로 갇히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한상황으로 내몰리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의 비극적 역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넘어 분노에 이르게 한다. 나는 이 장면을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읽어야만 했다.

 

군대에 끌려간 광훈은 최전방부대에 배치된다. 5월의 어느날 그는 철책선에서 보초를 서다가 노루를 만난다. 경계심조차 담지않은 맑은, 잘 익은 까마중 열매를 닮은 새까만 눈빛을 가진 노루는 비무장 지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노루가 자유롭게 뛰노는 비무장지대는 광훈이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가장 자유스러우며 아름다운 곳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야만적인 인간의 모습이라든지, 명령과 복종뿐인 광기에 찬 계급사회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루와의 두 번의 만남은 그에게 잔인한 기억과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 내무반에 배치되던 날, 그는 대학생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쌍꺼풀이 굵게 진 부리부리한 부엉이 같은 눈'을 가진 고참병에게 발길질로 심한 구타를 당한다. 광훈이 대학에 다닐 때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그러나 광훈은 한번도 데모에 참가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나는 공수부대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기에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수부대원들은 수개월간 군화도 못벗고 하루 8시간씩 폭동진압훈련을 했다. 외출 외박까지 금지된 공수부대원들은 모든 원인을 대학생들의 데모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출동하기만 하면 대학생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나는 당시 계엄군으로 대전 충남대학교에 배치되었는데, 공수부대원들은 대학생들만 보면 수위실로 끌고 들어와 군화발로 마구 때리고 짓밟았다. 그 때는 이런 시대였다.

 

고참병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잠자리에 든 광훈은 오월 십칠일부터 어긋난 그의 느닷없는 삶의 순간들,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들이 믿기지 않는다. 그것은 폭력의 연속성이었고, 밀렵꾼들의 덫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는 철창에 갇힌 짐승처럼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군대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만 했다. 훈련소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명령. 복종, 충성'이라는 말을 몸에 새기고 또 새겼다. 어릴 적 조회시간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당하듯 훈련소에서 조교들은 '명령 불복종은 사형이다.', '복종하지 않는 자는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자다.'라는 말을 늘 복창시켰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에게는 맹독을 품고 있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국가기관이라는 안기부에 의해 이유 없는 고문을 당하고 군대까지 끌려온 그에게 무슨 충성을 하라는 말인가!

 

그날 밤 광훈을 때렸던 고참병은 그를 깨워 술을 따라주면서 '군대생활은 무조건 고참을 믿고 따르면 된다.'고 달랜다. 고참병은 신경통에 좋다는 고양이 갈비뼈까지 주면서 힘들어도 참으라고 한다. 그 고참병은, 광훈이 처음 프레스공장에 들어갔을 때 조금이라도 기계 오작동을 하면 발길질을 서슴지 않았던 고참을 떠올리게 했다. 그 고참도 욕설을 해대고 발길질을 해댄 다음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사주면서 기술은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달래곤 했다. 또 고참병은 광훈이 어렸을 적 아침밥상에서 그의 머리통을 갈겨댔던 날이면 퇴근 때 술에 취해도 어김없이 과자나 사탕, 군고구마를 사오던 그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했다. 광훈은 갑자기 그 모든 행위와 표현들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어디로부터 연유된 것인가 의구심을 품는다. 이런 그의 자각이 힘있는 자들의 일상적인 폭력이 사회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확장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철책에서 잠들어 있던 노루를 본 지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오윤식이 면회를 와서 연희를 단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연희가 3일 뒤에 그를 만나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광훈은 그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삶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연희에게 기다려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한다. 수표를 남기고 오윤식은 돌아가고..... 사흘 뒤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들고 연희가 면회를 온다. 광훈이 사라지고 난 뒤 약국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사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그의 소재를 알아낸 것이었다. 연희를 만나자 그는 목이 메고 입술과 가슴이 말라붙는다. 그가 지금까지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고통만 더해 줄 것 같아서 차마 말을 못한다.

 

연희가 돌아간 다음날부터 둘 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담긴 편지가 오고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연희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외과 전문의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불안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날아든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던 편지가 오지 않는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라도 하듯 광훈의 소대원들에게 노루가 잡힌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중대장은 살아있는 노루의 목에 대나무 대롱을 박고는 피를 빨아댄다. 노루의 피가 계급순서로 돌아가면서 빨리고 이윽고 노루는 숨을 거둔다. 여기서 노루는 연희의 운명을 암시한다.

 

평소 광훈을 괴롭히던 병기계 조병장은 총의 안전장치를 잠그지 않았다고 그를 세면장으로 끌고가 군홧발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쪼그려 뛰기와 축구골대 돌아오기도 시킨다. 조병장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려온 광훈의 뺨을 후려친다. 순간 지금까지 온갖 굴욕과 자존심을 참으면서 순응해왔던 광훈은 이성을 잃고 만다. 그는 총을 집어들고 안전장치를 푼 다음 내무반으로 가서 개머리판으로 조병장의 몸을 찍는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군홧발로 조병장을 개 패듯이 가격한다. 또 조병장의 정강이도 사정없이 찍는다. 자물쇠가 풀린 총구앞에서 조병장은 광훈의 목소리와 몸짓과 표정에 의해 잘 길들여진 개처럼 움직인다. 중대장이 달려와 '이 자식이 어디서 총을 겨누고 있어! 총 내려 놔!' 하는 순간 광훈은 방아쇠를 당긴다. 사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헌병대가 달려오고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연행된다. 그에게는 이제 아무런 걱정도 미련도 없다. 다만 연희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 막막할 따름이다.

 

광훈은 육군 보통군법회의 1심에서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는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죄명은 '불순한 의도를 감추기 위해 고참을 폭행하고 북한을 찬양하며 탈영을 시도한 죄'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한 고무찬양죄 위반자 곧 시국사범이 된 것이다. 나도 대법원에 의해서 무죄판결을 받아내기는 하였지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남한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된다는 것은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부대관리 소홀로 징계를 당할 것을 두려워한 중대장이 그의 사건을 엉뚱하게 조작했던 것이다. 그가 연희에게 쓴 편지 내용 중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움과 평화스러움, 어쩌면 지상낙원이 그곳일지도 모른다는 구절들이 그가 마치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말로 둔갑된다. 마침내 그는 인간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곳, 지옥과도 같은 육군교도소 속칭 남한산성에 수감된다. 거대한 높이의 산성처럼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육군 교도소는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그곳은 기합과 구타와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남한산성은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군도'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보다도 더 절망적인 공간이다. 절망의 땅에서 광훈은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입마저 닫아버린다.

 

1년 8개월 후 그는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대대 본부중대로 되돌려진다. 거기서 그는 취사병으로 내쫓긴 다음 군부적격자로 판명되어 의가사 제대조치가 내려진다. 국방부는 그를 내쫓았지만 광훈은 오히려 자유를 되찾은 심정이 되어 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그에겐 지나간 시간들이 꿈만 같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감격스럽다. 그는 연희가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서 자유를 향하여 내달린다. 마치 그녀를 앞세우고 가는 것처럼.....

 

그러나 언덕길 위에 올라섰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까만 승용차였다. 그가 '놈들이다!' 하고 생각한 순간 온몸의 세포들이 바짝 긴장한다. 그들은 바로 광훈의 일거수일투족을 환하게 알고 있는 안기부원들이었던 것이다. 안기부원들은 매월 말일마다 광훈의 위치를 보고하라고 하면서 '제일실업 김명국 차장'이라는 명함과 돈을 놓고 간다.

 

80년 9월 3일에 끌려간 지 근 2년 8개월만에 그는 다시 서울 땅을 밟는다. 양평동 사거리를 지날 때 지난 날의 끔찍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잔혹하고 집요했던 인간들과 함께..... 영등포에 다가가면서 그의 생각은 온통 연희에게 가있다. 하지만 '우리네약국'은 '상록수약국'으로 변해 있었고 연희는 보이지 않는다. 약국에 그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광훈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그는 연희의 양평동 집 주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연희는 보이지 않고 그녀의 여동생이 그를 맞는다. 여동생은 광훈의 책가방과 함께 '내 생의 순간들'이라는 표제가 붙은 연희의 일기장을 내어주면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연희는 광훈의 면회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덤프트럭에 깔려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광훈은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비명도 눈물도 나오지 않고 그냥 눈앞이 온통 어둠뿐이었다. 암흑이었다. 그는 일기장만 몸서리치도록 움켜잡고 있다가 가방을 들고 그녀의 집을 나선다. 어둠에 잠긴 길을 걷다가 그녀가 죽었다는 소리가 머리를 울리면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넋을 잃는다. 그의 가슴은 쪼그라들고 신음소리만 흘린다. 입술은 말라서 딱 붙어버렸고, 두 다리는 힘없이 건들거렸다.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광훈은 여인숙으로 들어선다. 그는 연희와 함께 묵었던 여인숙 203호로 들어간다. 그는 엎드린 채 연희의 일기장을 펼친다. 그녀의 일기장에는 온통 광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과 걱정과 안타까움이 흘러넘쳐 있었다. 눈물샘이 터져버린 듯 그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그녀가 광훈에게 마지막 남겼던 글을 보았을 때, 그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이불 끝을 이빨로 물고 비명을 잘라내야만 했다.

 

'눈부신 여름 태양을 밟고 그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그 사람이 걸었을 그 길을 걸으면 어느새 그 사람은 내 곁에 있습니다. 비록 만질 수는 없어도 나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내 마음을 그 사람에게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행복한 날입니다. 사랑해요, 광훈 씨. 내일이면 우린 또 만날 수 있겠군요. 너무 보고 싶어요.'

 

그날 이후 광훈은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잃고 술독에 빠져버린다. 그가 연희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면서..... 연희를 통해 붙잡았던 삶의 의지도 희망도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가 술해 취하면 취할수록 혼자라는 외로움의 공포가 거세지는 것이었다. 그는 두려움에 쫓기듯 영등포 쌍칼형님을 찾아간다. 쌍칼형님만은 찰거머리같은 안기부 놈들도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쌍칼이나 똥칠이는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지만 광훈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다. 쌍칼형님을 만났을 때 그가 도피생활을 하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삼청교육대를 갔다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똥칠이 형님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왔다. 삼청교육대는 당시 사회정화라는 미명하에 신군부가 저지른 악명높은 반인권적 만행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었다. 필자가 현역으로 복무할 당시에도 삼청교육대에 끌려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머리는 박박 밀고 빛바랜 훈련복을 걸친 그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고 고문과 구타로 폐인이 된 사람도 허다하다. 쌍칼이나 똥칠이는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지만, 작가는 이들을 통해서 삼청교육대를 가야할 사람들은 오히려 독재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광훈은 자신으로 인해 삼청교육대와도 같은 끔찍한 일을 또다시 겪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쌍칼형님의 집을 떠난다. 똥칠이형님네 집에도 찾아가고 싶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발길을 돌린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영등포역. 수많은 역 이름이 게시판에 박혀 있었지만 그가 아는 곳이나 그를 부르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낡은 기와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영등포 뒷골목의 미로같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광훈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공장생활을 시작했던 구로공단으로 돌아온다. 속칭 벌통집에서 기거하며 '국제타이어'라는 회사의 노동자로 취직한다. 연희의 죽음 이후 그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되는 대로 살아오던 터였다. 타이어 공장에서 그는 지독한 노동을 이겨내며 스스로 끊을 수도 없는 목숨을 버겁게 이어간다. 화장실도 없는 한 평도 안되는 0.8 평짜리 벌통집에서 3년 8개월을 보낸다. 타이어 공장에 다니기 전, 광훈은 이미 작은 공장들이 몰려 있는 독산동 속칭 마찌꼬바라고 불리는 곳의 주물공장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유리창도 없는 두 평쯤 되는 감옥과도 같은 기숙사에 머물며 주물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기까지 한다. 광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밑바닥을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굴러다니다가 결국 원점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인생역정인가!

 

중금속 유독가스 중독에서 깨어나자 광훈은 사는 것이 막막해지고 마음을 둘 곳도 없어서 서러워진다. 몸이 지치자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그 때 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을 때마다 그를 감싸고 울면서 대신 매를 맞았던 누이의 얼굴이..... 그러나 막상 누이를 찾아갔을 때 그는 후회를 한다. 누이의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매형의 공장은 부도가 나서 문을 닫기 일보직전이고..... 안기부에서 두 번, 어떤 여자가 한 번 찾아왔었다는 말을 하면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누이의 얼굴을 뒤로 하고 그는 누이의 집을 떠난다. 대학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등록금 마련도 어렵고, 경찰서와 안기부놈들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자 그마저도 포기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잠이 든 채로 세상과의 인연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살할 수가 없었다. 자살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그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꿈에 연희가 나타나 '나가! 나가! 빨리 나가!'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무작정 주물공장 기숙사를 나온다. 인력시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돼지농장으로 노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 하루를 일한 다음, 그날 복덕방을 통해서 월세 삼만 원짜리 이 벌통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83년 6월부터 87년 2월까지 3년 8개월을 그곳에서 보냈고, 나이는 서른 살이 되어 있었다.

 

연희에 대한 그리움을 술로 달래던 광훈이 타이어 공장에 들어온지 5 개월쯤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술집 여자를 만난다. 연희의 가슴에 손을 얹을 때마다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였던 순간을 잊지 못해 술집 여자의 가슴을 만져보지만..... 그의 눈앞엔 온통 연희의 모습만이 어른거린다. 가슴만 더듬거리는 술집 여자와의 묘한 관계는 그가 '국제타이어'를 그만두고 구로공단을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

 

87년 5월로 접어들자 세상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벌통집 화장실 벽에 느닷없이 '전두환을 처단하자!'라는 문구가 볼펜글씨로 씌어 있더니, 어느 날은 '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문구가 유성펜으로 굵게 씌어져 있었다. 가끔 그의 벌통집에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소식지가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광훈은 그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가 원하지도 않은 일에 휩쓸려 겪은 고통만 떠올려도 치가 떨렸기 때문이다. 6.10 항쟁과 이한열이라는 연세대생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도 텔레비젼을 통해서 알게 된다.

 

6.10 항쟁에 이어 7월부터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생존권과 민주노조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 거센 분노의 불길은 광훈의 회사로 옮겨붙는다. 삼십대 초반의 노동자가 유인물을 뿌리면서 현장작업자를 위해 무엇 하나 앞장서서 노력한 적이 없으면서 조합비만 갈취하고 있는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세워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자고 부르짖지만 회사 경비들에게 끌려 나간다. 그러나 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은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고 있던 그들은 억울해도, 불만이 많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아도, 고무가루로 몸이 망가져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는 그를 위장취업자로 몰아 해고시켜 버린다. 그는 노무과장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회사에서 쫓겨난다.

 

광훈은 허탈해진 몸이 한없이 무거워져 어디론가 가서 눕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목욕탕을 찾는다. 거기서 그는 그가 왜 국가보안법 위반을 했으며, 왜 그가 이렇게 쫓겨다녀야 하는지 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어 눈을 감아버린다. 그로서는 이 기막힌 현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그의 삶이 몸서리쳐지도록 지겨워짐을 느낀다. 목욕탕을 나오면서 저울 위에 올라서자 군대에서 65킬로그램이었던 몸이 54킬로그램으로 줄어 있었다. 술과 노동에 찌든 몸통은 갈비뼈가 불거져 있었고, 눈밑에도 짙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광훈의 몸과 마음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먹고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하는 성매매여성들보다도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구차하고 모든 게 귀찮고 의미가 없어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난다.

 

그러다가 공단 오거리에 있는 취업광고판을 보게 된다. 거기서 '광부모집'이라는 전단을 보고 사북탄광으로 가서 광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길 위에서 선택하는 곳이 광부의 길이라고 들었었다. 이제 그는 가장 비참한 상태가 되어, 갈 데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막장인생을 선택한 것이다. 돈을 조금 더 마련하려고 인력시장에서 며칠을 일한 뒤, 어느 비오는 날 삼 년 동안 그가 외롭고 힘들 때 만났던 술집 여자를 떠올린다. 그를 무척이나 따뜻하게 대해주고 가슴으로 끌어안아주었던 여인..... 그는 술집 여자를 사북으로 떠나기 전에 한번 보고 싶어서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의 눈길이 여인숙 앞에서 돌아서서 걸어가던 연희의 출렁거리던 어깨처럼 그의 마음을 흔든다. 광훈은 그녀에게 자신의 지나온 인생역정을 모두 다 말해준다. 그러고나서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취한 몸을 이끌고 술집을 나오려고 할 때, 술집 여자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돌아오면 연락해줄래요?'라고 하면서 애잔한 눈길을 던진다. 그리고 그와 술집 여자는 진심으로 따뜻한 포옹을 나눈다.

 

광훈은 비를 맞으며 벌통집 골목으로 들어서서 걷다가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벌통집으로 들어왔지만 혼수상태에 빠져버린다. 몸이 죽을 것같이 아프자 그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병원을 찾아간다. 의사로부터 폐가 많이 상해서 힘든 일을 해서도 안 되고 나쁜 공기를 마셔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그는 사북탄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그나마 남은 의욕마저 거품처럼 사라지고.....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만 싶어진다. 사람도 없고 소리도 없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으로..... 그의 눈앞에는 비무장지대가 신기루처럼 펼쳐지고 그러다가 문득 상호네 시골하늘이 떠오른다. 광훈은 상호네 큰형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시골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광훈은 7년만에 삼례 상호네 큰형님댁을 다시 찾는다. 상호 큰형님 부부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튿날부터 그는 축사에서 지내면서 돼지 키우는 일을 돕는다. 시골생활에 익숙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연희와 함께 했던 시간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연희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으면, 그녀를 처음 안았던 대숲에 들어가서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앉아 있곤 한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그는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몸이 튼튼해지면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 과정을 마친 뒤,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리라는 의욕이 꿈틀거린다. 그는 굳게 닫아두었던 가방 꾸껑을 열고 연희의 일기와 전공도서, 교육학 개론을 꺼낸다. 그는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어느덧 설날은 다가오고, 상호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다. 설날 연휴도 끝나고 상호도 떠난 다음날 아침 돼지우리 문을 열었을 때 무리로부터 밀려난 육성돈을 발견한다. 그 돼지는 귀를 물어뜯겨 피멍이 맺혔고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맥없이 주저앉았다가 힘겹게 일어나는 짓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자 광훈은 그 돼지를 죽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 돼지의 모습에서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피가 거꾸로 솟아 거름삽을 쥐고 우리 안으로 뛰어들어가 그 돼지를 들고 나와 시멘트 통로 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친다. 비명과 함께 네 다리를 바르르 떠는 돼지를 막사 옆 거름 더미 위로 던진 다음 거름삽을 쳐들고 거침없이 머리를 향해 날린다. 그는 거름삽을 거푸 휘두르면서 돼지 몸을 찍어댄다. 죽어가면서 꺼져가는 촛불처럼 반쯤 감긴 눈에서 진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돼지를 바라보면서, 그는 처참하게 숨이 끊어져가던 노루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친다. 광훈은 자신의 잔혹함에 스스로 놀라고, 죽어가던 돼지의 눈빛이 그의 눈빛 같아 절망감에 휩싸인다. 그는 절망감을 떨쳐버리고 싶었으며, 새롭게 마음을 세워 살고자 한 길을 스스로 끊어버리기 싫었던 것이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상호로부터 소식을 들은 똥칠이 광훈을 찾아온다. 똥칠은 쌍칼이 사창가를 떠나 여자 서너 명을 거느린 맥줏집을 차렸다는 이야기며, 그 자신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온 다음 의리파 두목이 운영하는 '꽃마차나이트클럽' 종업원인 여자와 동거중이라는 이야기며, 광남이의 주선으로 공민학교 동창회가 성황리에 결성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공민학교 동창들이 광훈을 걱정하고 있으며 등록금을 만들어주자고 하면서 그를 서울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러면서 광훈에게 자기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자고 한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똥칠의 진솔함은 광훈으로 하여금 5월 17일 저녁 7시부터 그에게 닥쳐온 일들을 하나도 숨김없이 털어놓게 만든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것은, 사회에서 소위 '따라지'로 불리는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연대감이다. 이들 사이에 끈끈하게 흐르는 것과 같은 연대감이 없이는 인간사회는 결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악이 판치는 세상에선 착한 것도 죄더라'는 똥칠의 말은 그 당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였던가 하는 것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다.

 

똥칠은 가게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고..... 그를 배웅하고 나서 광훈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제일실업 김명국 차장'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그런 사람도 없고, 이곳은 '제일실업'이 아니라 우유배달업소라는 답을 듣는다. 그는 전화를 끊고 돌아오면서 이상현의 사건이 종결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뒤 상호 형님이 광훈에게 중송아지 한 마리와 새끼돼지 세 마리를 그동안의 노임이라면서 준다. 그 순간 똥칠이 형님, 상호 큰형님, 공민학교 사람들이 햇살처럼 따뜻하게 그의 몸과 마음을 감싸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그는 그 자신이 참 못났다는 생각을 한다. 똥칠이 형님이나 공민학교 사람들 모두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 힘든 삶 속에서도 광훈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들 사이의 따뜻한 정과 연대감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광훈은 그들을 언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속마음을 읽으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껴본 적이 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또한 졸업장과 우등상장을 찢으면서 잘 살 거라고 악을 쓴 것도 불현듯 부끄럽게 여겨지고, 공민학교 시절 형들처럼 지지리도 못난 삶은 살지 않겠다고 마음에 각인하듯 새기고 새겼던 기억들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면서 지난날 스치듯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고 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 안에 갇혀 그들 모두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그가 오히려 그들을 불쌍하게 보았고, 한심하게 보았으며, 그들과는 다르다는 듯이 살아온 것도 후회한다. 그것은 그의 삶이, 또 그의 모습이 그들과 닮아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는 것과 대학물을 마셨다는 알량한 자존심에서 기인된 오만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 때부터 광훈은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여기서 광훈은 비로소 사회적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다.

 

칠월 중순쯤 이상현의 여동생 이정혜가 광훈의 막사로 찾아온다. 이정혜는 이상현이 어느 절의 뒤 숲이 우거진 곳에서 목을 맨 채 죽어 있는 사진을 그에게 보여준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이상현의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않고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두개골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고 폐에 응고된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누군가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물고문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상현은 그 때서야 비로소 왜 안기부원들이 그를 살인범으로 몰았으며, 왜 강형사는 그를 안기부원들에게 넘겨주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떠났으며, 왜 강제징집까지 되어야 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안기부원들을 살인범으로 놓고 보자 그가 품었던 모든 의문들이 아귀를 맞춘 것처럼 빈틈없이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강형사나 안기부원들은 그를 철저하게 농락했고, 그를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개 취급을 했던 것이다. 안기부원들이 그를 고아나 다름없는 놈이라고, 가지고 놀다가 죽으면 버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자 그들에 대한 분노와 살기를 느낀다.

 

이정혜는 광훈에게 이상현의 의문사 증인이 돼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관여하기 싫고, 그 날 있었던 기억도 말로 꺼내기 싫어서 거절한다. 강형사며 안기부원들을 죽이고도 싶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또한 이상현의 자살이 타살로 변하고 타살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그를 끊임없이 차단했듯이 그 누군가 철저하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몸이 그 모든 것을 피하고 싶었다.

 

이정혜가 이상현의 자료를 던져놓고 떠난 뒤 광훈은 연희를 안았던 기억이, 그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숲을 찾는다. 대숲 밖으로 나오자 붉은 노을이 강물처럼 흐르고..... 8년 전 그의 영혼에 전율을 일으켰던 그 노을.....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흘러 번져나가는 듯한 노을의 모습..... 그는 오래 전 뭉크의 그림을 떠올렸을 때처럼, 처절한 모습으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풍경 숙의 사내를 또 본다. 그가 노을을 볼 때마다 여지없이 어머니가 떠올랐고, 어머니는 그에게 죄의식을 몰고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비롯된 원죄의식이었으며, 어머니의 죽음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가난과 절망의 모습이었다. 그 사내의 모습은 바로 그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두려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가난과 죽음으로 내몰린 처절한 삶을 어느 날 깨달으면서 그의 뇌리에 박혀버린 두려움이었고,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절규였던 것이다. 뭉크의 '절규'는 이 소설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생의 적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뭉크의 '절규'와 같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

 

이제 광훈은 일어서야만 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더 이상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제 그만 비굴하고 두려움에 갇혀버린 삶을 송두리째 벗겨내고 싶었다. 그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그의 삶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밟아버린 사건을 묻어둘 수는 없었다. 광훈은 그날로 기차를 타고 새벽 3시가 넘어 영등포역에 도착해서 곧장 똥칠의 실내포장마차를 찾아간다. 이상현의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묻자, 똥칠은 상현이의 억울한 죽음과 그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고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답을 듣는다. 광훈에게는 이제 더 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상현의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도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광훈은 먼저 정혜의 어머니를 만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자식으로 인해 각성된 삶을 살게 된 다른 어머니들처럼 상현의 죽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상현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 속에서 그가 왜 죽었으며,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독재정권 치하의 그 야만적인 시대를 알게 되었고, 의문사한 사람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진실한 세상이 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상현이 그녀에게 세상을 다시 보게 해줬다고 오히려 고마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아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광훈은 그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자신을 질책한다.

 

정혜도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삶이 뒤바뀐 인물이다. 그녀는 오빠의 학교 학생회 사람들을 만나고, 오빠의 죽음을 놓고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타살근거가 명확한 증빙서류와 함께 국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위선과 야만스러운 권력의 횡포로 가득한가를 목격하였다.

 

광훈은 또 서부경찰서 정보과로 강형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강형사는 그를 끝내 모른 척 한다. 광훈은 강형사도 인간이라면, 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다른 형사들도 티끌만큼의 관심을보이지 않는다. 광훈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8년 전과 다름없이 권력을 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강형사 같은 무리들이 놀랍기만 하다. 일제시대 때 일본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조선민족을 탄압하던 자들이 해방후에 이 나라 경찰의 수뇌부를 이루고, 조선인으로 일본군에 입대해서 독립군을 잡아다 죽이던 자들이 해방후에 국방경비대 간부를 차지하던 그 더러운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온갖 몹쓸 짓을 다하던 자들이 민주화가 되었다는 세상에서 버젓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 떵떵거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정보기관의 고위직에 있을 당시 민주인사들을 고문하는데 앞장섰던 자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광훈은 정혜와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의문사에는 안기부나 보안사가 개입되었으며, 묵숨을 빼앗긴 사람들은 군인, 학생, 노동자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와 목사, 그리고 재야인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민주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독재와 기득권 세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의로운 죽음은 해방 이후부터 시작됐으며, 전두환 정권 때 크게 표면화되었고, 88년 5월 30일에도 발생했던 것이다. 고정희라는 사람이 '노태우부정집권'을 고발하는 투서를 미국과 독일 대사관에 넣었다가 대공과에서 조사를 받고 강남성모병원 정신병동에 강제입원된 뒤 투신자살했다고 발표된 것도 모든 사건 정황이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광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문사를 당한 사실에 놀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그 저항을 야만적인 독재권력의 힘으로 짓눌러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 이런 만행들이 저질러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그는 또 정혜로부터 겉으로 드러난 의문사만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며, 부모들의 무지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철저한 거짓말과 공권력의 잔인한 협박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은폐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혜의 제안으로 광훈은 마침내 양심선언을 하기로 한다. 그의 나약함과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떠돌던 모습들을 책망하면서..... 양심선언은 목요일마다 기도회가 열리는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하기로 한다. 그날은 시국사건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정부에 항의를 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시위도 하는데, 그 자리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기로 했다. 언론과 방송에도 알리고, 모든 민주단체들에 알려 이상현의 죽음이 경찰과 안기부가 개입돼 있다는 것을 폭로하기로 한 것이다.

 

다섯 장의 양심선언문을 작성한 날, 정혜는 그를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 사무실로 데려간다. 거기에는 전태일, 박영진, 이한열의 어머니, 박종철의 아버지 등 수많은 부모들이 있었다. 그들도 상현의 어머니처럼 자식들로 인해 세상을 바르게 보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로부터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가 왜 사는지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던 세월'이라는 말을 듣고, 광훈은 자신이 무엇이며 왜 살고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도대체 저 부모님들의 삶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반면에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자각에 이르자 새삼 놀란다.

 

정혜는 광훈을 자신이 속해 있는 '전국교사협의회' 사무실에도 데려간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그 삶을 자신들이 당연히 걸어가야 할 길로 믿고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교육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감옥으로 끌려갔고, 그들 역시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나도 역시 경찰에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강제해직된 바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독재권력과 부패한 자본가에게 순종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교육을 단호히 거부하고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라는 기치아래 교육민주화운동에 투신하였던 것이다. 정혜 역시 그러한 길을 걷고 있는 민주교사였던 것이다.

 

광훈은 정혜를 통해서 불의와 억압과 착취에 저항해 모든 노동자들도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목숨을 내던진 전태일을 만난다. 전태일과의 만남은 그에겐 충격이었고 놀러움이었다. 전태일의 삶이 그가 살아온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이 싫어서 배우려 했고, 배워서 잘 살아보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지금까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가난을 저주하면서 그의 부모를 저주했고, 그와 같은 가난한 자들과는 다르고 싶다고 몸부림치면서 그의 주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는 정혜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정혜가 권해준 고리키의 '어머니'나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과 같은 책들을 보면서 광훈은 삶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정혜야말로 그의 새로운 삶의 길에 징검다리를 놓아준 사람이었다. 광훈은 상현의 집에서 정혜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 그들 두 사람의 길 위에 이상현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상현의 죽음 뒤에는 그들이 살고 싶어했던 삶을 비틀어놓은 권력의 폭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양심선언을 하는 날은 초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비친다. 기독교회관 입구에는 그가 쓴 양심선언문이 쌓여 있고, 연단 뒤로 '의문사 이상현에 대한 양심선언'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목사의 소개로 연단에 올라선 그는 그가 겪었던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말한다. 선언서를 읽는 게 너무도 고통스러워 그는 말을 멈추고 허공을 올려다 본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니 입술이 떨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떤다. 그는 그가 걸어들어간 그 시간 속에서 그의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며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비명을 지르고, 발가벗긴 채 기어다니고, 스스로 목을 꺾으며 모든 것을 인정했던 그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양심선언을 통해서 광훈은 비로소 이제껏 그를 옭아매었던 두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산산히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광훈이 이타적이고 사회적인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양심선언을 마치고 나오자 군중들은 '살인마 정권 타도하자!', '이상현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친다. 어머니들을 앞세운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회관 밖으로 나온다. 순식간에 전투경찰과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시작되고..... 광훈의 눈에는 저 방패를 밀치며, 진실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밀치며 그 어머니들이 살아왔을 십 년, 이십 년의 세월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어머니들이 더 이상 피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을 광훈은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고 시인의 길을 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을 누군가가 이유없이 막는다면 그의 목숨을 내놓고라도 싸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광훈은 정혜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간다. 광훈에게 그녀는 빛이었고 길이었다. 그는 누군가 아주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그녀를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광훈은 말없이 그녀를 안는다. 그의 눈길이 정혜에게 닿을 때 기차는 출발한다. 그의 삶을 새롭게 여는 첫 발자국을 찍으며 삼례로 가는 열차는 출발하는 것이다.

 

이십 년 후, 김광훈은 그 옛날 그가 살았던 벌통집 앞에 선다. 한 평도 안 되는 저 방에서 잠을 자다가 숨이 막히면 밖으로 나가 수도꼭지 아래 철퍼덕 주저앉아 눈을 감던 모습이 징그럽게 떠오른다. 병든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터뜨리던 서글픈 모습과 함께..... 그러다가 불현듯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술집여자를 떠올린다. 그 당시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었던,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그 여자를..... 그러나 그 여자가 운영했던 술집은 횟집으로 변해 있었다. 막장으로 떠난다 해도 절대 지지말라며 눈물을 보였던 그 여자, 어디로 떠난 것일까.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 여자는 이십 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어떤 모습으로 건너왔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난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88년 양심선언을 하고 그해 가을 전주 삼례로 내려간 광훈은 삶의 활기와 의욕을 되찾기 시작했다. 안기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쳐 그를 잡아간다고 해도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을 자신감도 생겼다. 이듬해 그는 삼학년으로 복학을 한다. 똥칠이는 88년 늦가을에 결혼식을 올리고 첫딸을 보았는데, 그 아이가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쌍칼은 여전히 결혼도 하지않고 술집을 하고 있다.

 

연희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과 단절하다시피 살아온 그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며 웃을 수 있는 기쁨을 심어준 사람은 정혜였다. 그녀는 어느날 느닷없이 나타나 어둠 속에서 빛의 세계로 그를 이끌어 낸 존재다. 광훈은 언제부터인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정혜는 94년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가 구속되어 일 년 실형을 언도받는다. 광훈은 그녀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일요일마다 구치소로 면회를 간다. 그러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살아간다는 것이 늘 순탄치 않듯이 어느 날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삶의 복병을 만난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로서 선생님이 될 자격이 상실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와 좌절감으로 그는 치를 떤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가 목에 걸려 있는 한 그는 국가로부터 감시와 격리라는 또 다른 감옥에 갇힌 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사건은 그의 삶의 길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그는 적극적으로 사회현실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글을 무기로 부당한 것과 싸우기 시작한다.

 

정혜는 교도소에서 일 년 만기를 채우고 출소한다. 출소하는 날 정혜와 광훈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밤을 함께 보낸다. 그 날은 연희로 인해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이 그녀로 인해 다시 열리던 날이었다. 그 해 늦가을 정혜와 광훈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가을 그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딸아이가 태어난다.

 

가리봉 5거리는 정말 변화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놀랍게도 구종점 인력시장도 아직 남아 있고, 봉고차가 나타나 서너 사람만 태운 뒤 대여섯 사람은 남겨놓고 가는 모습도 여전하다. 남겨진 사람들은 이른 봄 서늘한 새벽바람을 녹이기 위해 예전처럼 깡통에 불을 피워놓고 또 다른 봉고차나 트럭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저들은 광훈이 보낸 이십사 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내다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것인지..... 광훈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여명이 움트고 있는 시퍼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이십사 년 동안 이 거리와 저 거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라며 존재를 박탈당한 사람처럼 나경중이 흘려놓은 말 한마디가 광훈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좋은 학벌이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버리고 공장으로 들어온 나경중이 어느 날 꿈도 잃어버린 채 세상살이에 지쳐버린 중년의 노동자로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광훈은 이해한다.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수첩 속의 이름들처럼 여전히 나경중은 노동자가, 민중이 인간다운 존중을 받으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겉으로는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민중들은 오히려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아마 나경중도 노동자로 변한 자신의 삶이 한층 힘들어진 것처럼 민중들의 삶도 더욱 황폐해졌을 뿐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경중은 공단 일번지가 디지털 일번지로 바뀌고, 가리봉 오거리가 화려하게 변한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한 블록만 넘어가면 여전히 자신의 삶터는, 민중들의 삶터는 이십사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그 분노가 어느 순간 터져나와 그는 이정표로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나경중의 분노에 찬 모습과 그가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모습이 광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광훈은 세상이 늘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변화는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변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화들짝 놀랄 만큼 변하기도 하고, 때론 좋게도 때론 나쁘게도 변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꽃과 나무들이 생명의 빛을 좇아서 움직이듯 세상도 희망을 찾아서 움직인다고 믿는다. 비록 소수의 힘이 다수를 억압하는 사회가 이어져왔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수가 존중받는 그런 사회가 올 것으로 그는 믿는다. 그것은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내일도 그렇게 움직이는 게 역사의 수레바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광훈의 이러한 믿음과 신념은 이 소설이 암울했던 시대의 증언을 넘어서 새로운 희망을 주는 건강성을 담보해주고 있다.

 

정혜는 학교생활과 전교조 활동으로 바쁘고, 정혜의 어머니는 77세의 나이로 백발이 성성하다. 정혜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밝혀지기를 소원으로 갖고 있지만, 의문사 진상규명은 산 넘어 산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대통령 특별부속기관으로 설립되어 민관이 함께 문제를 파헤치고 있지만, 그 어떤 사건 하나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고문을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버티고 있는 현실이니, 참으로 진상규명이 쉽지 않은 것이다.

 

나경중을 보내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광훈은 그의 딸 초롱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무렵에는 그처럼 이렇게 쓸쓸한 추억을 갖지 말고,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추억만 간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세상은 이미 환하게 밝은 아침으로 변해 있다. 나무들의 몸에서는 연초록 새순들이 움트고 있고..... 이제 곧 꽃눈처럼 활짝 피어날 저 소중한 생명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광훈의 눈은 온통 싱그러움으로 가득찬다. 그는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생명의 온기로 가득 찬 노래가 아침을 눈부시게 열고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수의 노동자, 민중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오리라는 것에 대한 밝은 희망을 암시해주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읽었다. 김광훈이라는 한 힘없는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한 야만적인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대한 분노로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잔인하고 비정한 경찰이나 안기부원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광훈의 비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나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광훈이 끝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역사발전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존재가 되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게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일망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내 생의 적들'에서 '적'이란 바로 외적으로는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 그리고 부패한 자본가들이며, 내적으로는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나약함이었던 것이다. 감시받지 않은 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재와 폭력, 야만으로 귀결되기 마련이고, 통제되지 않는 자본은 수탈과 착취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 소설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들에 의해 김광훈이라는 한 인간이 처절하게 짓밟히는 과정을 통해서 이 소설은 1980년대라는 야만적인 시대를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나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독재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저지른 반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에 대해서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작가 후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이인휘가 썼으나, 동시에 어두운 시대를 겪어온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광훈이라는 인물 역시 이인휘가 겪었던 삶과 그가 살아오면서 만나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만들어낸 인물이다. 김광훈이라는 인물은 결코 가상의 인물이 아닌 한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이며, 여전히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진행형의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픽션(허구, 지어진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실화이다.

 

'내 생의 적들'은 베르질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생각나게 한다. 김광훈의 절망적인 인생역정은 요한 모리츠의 짓밟힌 삶과 오버랩된다. 독일 나찌치하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태인이라는 지목을 받고 유태인 수용소에 강제로 수용되고, 수용소에서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헝가리는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반죽음이 되도록 고문한 뒤 포로 노동자로 독일로 보내지고, 독일에서는 컨베이어에 실려오는 단추상자를 트롤리에 옮겨 싣는 일을 하게 되는 루마니아의 평범한 농부 요한 모리츠의 비극적이고 짓밟힌 삶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태를 달리 해서 김광훈의 삶에서 되풀이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극적인 극한상황으로 내몰리는 요한 모리츠의 잔뜩 겁을 먹고 움츠린 표정은,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을 때의 김광훈의 표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에 베르질 게오르규가 있다면 동양 아니 한국에는 이인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05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