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시에 일어나다. 아내가 싸 준 보온도시락을 배낭에 챙겨넣고 집을 나섰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 네거리 근처 [단지촌]에서 건국대 의대 정두용교수와 만나 우거지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은 뒤, 매제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괴산에 있는 은티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원래는 여기서 6시 반에 산사랑 산악회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먼저 출발했는지 산사랑 산악회원들이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늦는 바람에 먼저 출발한 모양이다. 미안한 마음에 은티재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차가운 아침공기에 코끝이 '찡'해 온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서녘하늘에 샛별이 유난히도 반짝인다. 은티재를 거의 다 올라섰을 때,사람들이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 온다. 어찌나 반갑던지..........산사랑 산악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날은 이미 밝아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며 먼동이 터 온다. 7시 40분에 백두대간 종주 산행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다. 가으내 떨어져 쌓인 낙엽들이 발길에 채인다. 능선의 여기저기에는 잔설도 보인다. 어느 이름도 없는 암봉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희양산 암봉의 시원한 이마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주 일요일 희양산을 오르던 한 등산객이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지름티재에서 희양산을 오르다가 만난 암벽지대에서 당했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진정 산을 사랑한다면 산에서 죽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 아닐까? 만일 내가 산에서 죽는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장성봉과 악휘봉 갈림길에 이르렀다. 악휘봉은 여기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악휘봉의 암봉이 바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여기서 백두대간은 다시 방향을 틀어 남쪽을 향해 치달린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8시 반경 헬기장을 지났다. 나뭇가지에 무수히 달린 꼬리표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젠 오르막길을 만나도 싫지 않고, 내리막길을 만나도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을 테고, 내리막이 있으면 또 반듯이 오르막이 있을 테니까. 9시경 796봉에 올랐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뒤에 처진 사람들을 기다렸다. 나는 왜 산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 좋아하다 못해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山이 바로 自然이기 때문이리라. 자연으로 상징되는 산은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음이 있고, 변하지 않는 가운데도 변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묵묵하게 세월의 忍苦를 감내한다. 산의 품에 깃들여 사는 그 어떤 존재도 거부하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 준다. 나에게 있어 산은 거의 신적인 존재와 같다. 백두대간은 한동안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추운 날씨인데도 한참동안 땀을 흘린 뒤에야 長城峰[915.3m]에 올랐다. 평평하게 닦여진 정상에는 문경 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시야가 탁 트인다. 뒤로는 희양산, 조령산, 주흘산, 신선봉, 마패봉, 월악산, 군자산이, 앞으로는 대야산, 속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패봉에서 남쪽으로 휘돈 백두대간은 백화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휙 틀어 달리다가 악휘봉에 지맥을 내려놓고, 다시 남쪽을 향해 치달려 온다. 마치 거대한 용 한마리가 꿈틀거리며 달려 오듯이...........백두대간은 길다란 성이 되어 동과 서를 가르고 있다. 그래서 이름을 [長城]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장성봉을 내려와 버리미기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남자회원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후추를 뿌려서 구운 돼지 목살고기의 맛이 참으로 일품이다. 먹다 남은 고기에다 익은 김치를 넣고 만든 볶음밥도 너무 맛있다. 내가 "이 분이 바로 소림사 주방장이군요."하니 모두들 웃는다. 점심을 마치고 12시 40분에 대야산을 오르는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 구간은 대간꾼들 사이에 마의 구간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다. 나도 지난 백두대간 종주 때 이 구간에서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경사진 길이 나타난다. 이미 지쳐 있는데다가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다는 것이 과식을 한 탓에 산행이 힘들다. 한시간 정도 걸려 곰넘이봉에 올라서 잠시 땀을 식혔다. 내려가는 길은 암릉이 많고 가파르다. 또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길은 미끄러질 위험도 있다. 20분 정도 내려오니 불란치재가 나타난다. 불란치재는 괴산의 상관평에서 문경의 가은으로 넘어가는 재다. 촛대봉까지는 한동안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만 한다. 땀을 닦은 손수건이 벌써 흥건하게 다 젖었다. 2시 10분경 촛대봉에 닿았다. 촛대봉은 대간의 마룻금을 밟지 않고 우회해서 통과했다. 촛대봉도 암릉지대여서 로프에 의지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힘든 구간이다. 이젠 대야산을 넘어야 한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이 위협하듯 내려다 본다. 9부능선에서부터 암벽은 시작되었다. 군데군데 눈이 쌓여 있고, 그 눈이 녹아 얼어붙어 빙판이 진 곳도 있다. 로프에 의지하여 한발한발 옮겨 놓는 발걸음이 위태롭다.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한번의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땀으로 인해 모자와 속옷이 다 젖어 축축하다. 오후 3시경 한참동안을 바위절벽과 씨름한 끝에 드디어 대야산[931m] 정상에 서다. 어렵고도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정상을 밟은 기분이란..........문장대에서 천황봉에 이르는 속리산맥이 가깝게 다가온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나서 물을 한모금 마셨다. 물병에는 그새 얼음이 얼어 있었다. 오늘 지나온 백두대간을 되돌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서 밀재까지는 40분, 피아골로 해서 월영대까지는 1시간 20분 거리이다. 대야산 오른쪽으로 온통 산하나를 파먹은 채석장이 있다. 인간들이 하는 짓이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채석장의 주인과 그것을 허가해 준 공무원은 반드시 실명을 공개해서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저렇게 자연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면 내가 이나라 국민중의 한사람이라는 것이 몹시 부끄러워진다. 용추계곡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밀재까지 가서 용추계곡으로 내려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늦어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산죽숲이 나타난다. 곧게 벋은 낙낙장송들이 기암괴석과 어울려 마치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하다. 계곡의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4시 반경 월영대에 이르렀다. 밀재와 피아골을 거쳐서 대야산 가는 갈림길이 여기서 갈라진다. 계곡을 20분 정도 더 내려오자 용추폭포가 나온다. 이곳은 폭포와 소나무, 산죽숲이 한데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용추폭포와 촛대봉 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5시경 마을에 도착하여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니, 먼저 온 회원들이 라면을 끓이고 고구마 튀김을 만들고 있다. 시장기가 돌던 터라 튀김 몇 조각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꿀맛이다. 6시 20분 용추마을을 출발하여 연풍까지 와서 산사랑 산악회원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내렸다. 마침 바로 충주행 버스가 와서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막차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나니 날아갈 것 같다. 오늘은 매우 힘든 산행이었다. 그러나 힘든만큼 보람이 있는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던가! |
200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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