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지리산 기행-노고단에서

林 山 2004. 7. 16. 21:53

때는 2002년 1월 6일 밤 9시 20분. 충주시장후보로 출마했던 정재현 선생, 충주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역임한 신건준 군,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은 겨울 지리산 설경을 보러 간다는 설레임을 안고서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충주역에는 정구호, 김연화 부부와 박문선 군이 환송을 나와 주었다.

 

제천발 대전행 열차는 밤길을 달려 10시 30분에 우리를 조치원역에 내려 놓았다. 0시 50분 여수행 무궁화호를 타려면 아직도 거의 2시간 반이나 남아 있다. 그래서 조치원역 앞에 있는 수퍼에 들러 미처 준비하지 못한 물품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필름, 즉석 찌개거리, 초컬릿, 껌, 부탄개스, 커피 등과 양주 한병을 샀다.

 

그래도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역광장 바로 옆에 있는 [청주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5천원짜리 선지해장국 한 그릇과 막걸리를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가 후덕하고 인심 좋게 생겼다. 시레기에 선지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 얼큰하고 구수하다. 막걸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이번에는 소주를 시켰다. 선양소주에서 이름을 바꿨다는 해찬소주가 나온다. 해장국 한그릇이 금방 동이 난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가 덤으로 한그릇을 더 가져다 준다. 시간이 다 되어 주인 아주머니에게 다음에 오면 또 들리마하고는 해장국집을 나섰다.

 

조치원발 여수행 0시 53분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배낭을 선반에 올려 놓고는 자리를 잡았다. 승객들은 거의 태반이 잠들어 있다. 열차는 규칙적으로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남원'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잠이 깼다. 이제 구례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지나고 있다.

 

얼마후 4시 38분 목적지인 구례구에 열차가 도착하여 내리려고 보니 신군이 보이지 않는다. 열차가 출발하려고 할 때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그를 찾아 나섰다. 열차는 이미 구례구를 떠나 순천을 향해 달리고 있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에 가서 찾으니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이젠 순천까지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화장실을 나온 신군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정선생과 나는 그저 어이없이 껄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순천역에 내리니 5시다. 역개찰구에서 역무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니 그냥 가지고 온 열차표를 가지고 구례구까지 가란다. 그 역무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벌금까지 물고 다시 표를 끊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배려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5시 57분 순천발 구례구행 열차에 다시 올랐다. 차창에 빗발이 날리고 있다. 6시 20분 구례구역에 내리니 비가 제법 오고 있다. 지리산에는 지금쯤 눈이 내리고 있을텐데............

 

택시를 타고 구례 터미널로 이동하여 [선호식당]이라는 데서 백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날김에다 밥을 얹고 양념간장을 쳐서 쌈을 싸먹는 맛이 그만이다. 두부를 넣어 끓인 콩나물국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식당주인에게 성삼재 가는 버스를 물으니,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는 버스운행이 중단된단다. 7시 25분쯤,할 수 없이 택시를 불러 타고 성삼재로 향했다. 비는 조금 잦아 들었으나 하늘에는 온통 시커먼 먹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천은사 매표소에 이르니, 직원이 성삼재는 물론이고 시암재까지 진눈깨비로 얼어붙어 차가 다닐 수 없다고 일러 준다. 차를 돌려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에 도착하여 경내를 한바퀴 돌아 보았다. 아침 예불을 마친 스님과 보살님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8시 10분 드디어 화엄사골을 오르기 시작했다. 호박돌을 박아 포장한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길가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따금 동백나무 숲도 보인다. 동백꽃망울이 맺혀 있다. 비는 어느 새 그쳐 있다.

 

돌계단길이 계속 나타난다. 산비탈에 서 있는 활엽수들의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설화가 피었다. 이미 꽤 높은 곳까지 올라 왔다는 증거다. 계곡에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싸락눈이 내린다. 3km쯤 왔을 때 평평한 곳이 있어 쉬어가기로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청년이 웃통을 벗은 채 우리를 앞질러 간다. 이제 싸락눈은 함박눈이 되어 펑펑 날리고 있다. 눈이 어찌나 쏟아지는지 방금 앞서간 두 청년의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눈덮인 돌길을 걷기가 쉽지 않다. 미끄러지기 일쑤다. 더러 위험한 곳도 있다. 갈수록 눈이 더 많이 쏟아진다.

 

11시.코재에 오라서자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눈발이 수평으로 화살처럼 날려 간다. 심원골쪽에서 안개까지 몰려와 사위는 어둑어둑하다. 금방 눈이 5cm도 더 넘게 쌓인다. 눈보라로 인해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다.

 

 

 *노고단에서 필자

 

11시 40분경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일단 취사장으로 들어가 배낭을 벗어 놓으니 살 것만 같다.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꼭 무슨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같다. 눈가루가 바람에 날려와 창문을 때린다. 밥을 할 수가 없어 군용 즉석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건조식이 든 봉지에 끓인 물만 부어서 잠시 기다린 뒤에 먹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식사다.

 

눈을 하얗게 뒤집어 쓴 두사람의 등산객이 취사장문을 열고 들어선다. 문이 열리자마자 눈보라가 취사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들은 연하천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는 도중에 눈이 무릎까지 쌓여 산행이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곧이어 화엄사에서 올라온 등산객 서너명이 합류했다.

 

취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각 팀별로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가운데 식탁을 두고 둘러 앉아 눈보라를 화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추위를 잊기 위해 각자 가지고 온 술들을 꺼내어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눈이 그치기는 커녕 점점 더 거세지는 것을 보고는 산행을 포기하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대피소로 들어와 카시미론 침낭을 펴고 누웠으나 추워서 잠이 잘 오지를 않는다.다음에는 꼭 오리털 침낭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안개는 걷혔으나 눈보라는 여전하다.

 

노고단은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노고단 기슭의 나무들에는 설화가 만개해 있다. 바람은 잠잘 줄도 모르고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다. 어디선가 족제비 한마리가 나타나서는 먹이를 찾는지 대피소 앞마당을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다. 이 추운 겨울을 살아가기에는 족제비도 힘이 부치는가보다.

 

장성에서 왔다는 청년이 구두를 신은 차림으로 올라왔다. 아이젠도 없이.............그는 지리산에는 처음 온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대피소 매점에서 아이젠을 사서 빨리 하산하라고 일렀다.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산행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6시경 라면을 끓여서 저녁을 먹었다. 대피소에는 모두 11명의 등산객만이 남았다. 평소에는 시골장터처럼 붐비던 노고단이 폭설로 인하여 적막강산이 된 것이다. 저녁을 마친 다음 남은 사람끼리 술을 한잔씩 마시며 내일 산행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의견이 내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천왕봉을 향해 가자는 것이었다. 위험이 닥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뭉치게 되는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서로 금방 친해졌다.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 졸업반이라는 심민우, 박석진군, 시화 정왕고교 홍완선 선생, 부산에서 온 이춘일씨, 시흥에서 온 박주관씨, 천안에서 온 이은환씨, 광주에서 온 정승기씨, 성남에서 온 이미정씨와 우리 셋이 노고단 대피소에 남은 전부였다. 심민우군은 다음달에 뉴질랜드로 떠나기에 앞서 지리산을 보러 왔다고 한다. 이춘일씨는 오늘 벽소령에서 눈보라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 생식을 한다는 그는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박주관,이은환씨는 친구사이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지리산 종주를 하러 왔다고 한다. 정승기,이미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한다.

 

밤 10시경 자리를 파하고 대피소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스팀이 들어오기는 하는데도 대피소 안은 추웠다. 그래서 천원을 주고 모포를 빌려서 덮었다. 옷을 있는대로 다 껴입고서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바람때문에 밤새도록 창문이 덜컹거린다.

 

새벽 1시가 넘어 소변을 보러 나오니 눈보라가 여전히 날리고 있다. 대피소 앞마당에는 눈이 무릎높이까지 쌓였다.

 

내일 산행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감한다.

 

2002년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