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주문진 소돌항

林 山 2004. 7. 29. 01:03

오늘은 금요일이다. 오전에 두 시간짜리 방사선학을 마지막으로 오늘 강의는 모두 끝났다. 내일은 토요일이라 강의가 없다. 소풍이라도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제천에서 충주로 향한다. 천등산을 넘어가는 다릿재를 넘는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천등산 기슭에서도 가을기운이 느껴진다.

충주에 도착하여 칼국수로 유명한 '우리분식'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중학교 동창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동해바다를 보러가고 싶은데 같이 가 줄 수 있겠느냐고 한다. 나는 그러마고 대답하고는 친구네 집으로 곧 가겠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친구의 부탁이라면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들어 준다.

이 친구는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도 못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신부전증으로 신장 두 개를 다 떼어 낸 상태라 이틀에 한 번씩 신장투석기 신세를 져야만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이 친구는 그의 장애인용 승용차를 장시간 운전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부탁을 하곤 한다. 그러니 내가 어찌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으랴!

친구네 집으로 가서 운전대를 넘겨 받아 충주를 떠나 동해로 향한다. 충주 MBC 아나운서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퇴직해서 보안기기 판매대리점을 하는 친구도 함께 가기로 한다. 이 친구도 뇌출혈로 의식불명 상태까지 갔다가 회복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차는 목계를 거쳐 귀래를 지난다. 벼들이 익어가는 가을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남원주 톨게이트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 다음 얼마쯤 달리다가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동해바다가 가까와질수록 산들이 높아지고 깊어진다. 멀고 가까운 산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충주를 떠난 지 두 시간도 안되어 대관령 터널을 지난다. 순간 검푸른 동해바다가 눈을 가득 채운다.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주문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소돌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소돌해수욕장을 지난다. 드넓은 백사장에는 파도가 밀려와서는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파도는 잔잔한 편이다.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떼가 부산하다.

곧 우리가 동해바다에 오면 자주 들르곤 하는 아들바위 포구에 도착했다. 아들바위 포구는 조그만 어항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부두로 나가니 아주머니들 예닐곱 명이 고무 함지에 자연산 물고기를 담아 놓고 손님을 부른다. 그 중 한 아주머니에게서 4만원을 주고 자연산 광어 세 마리와 돌삼치 두 마리를 샀다. 생선회를 뜨는 아주머니의 솜씨가 일품이다. 한석봉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할 정도다.

생선회를 뜨는 동안 방파제로 바다를 보러 나간다.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마주 대하고 서서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저편에 수평선이 가물거린다. 서녘 하늘로 기운 태양이 저녁노을을 바다에 드리우고 있다. 황혼빛이 감도는 가을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이 바다 위로 점점이 떠 있다. 저 바다 끝까지 가면 어디에 닿을까?

방파제 곳곳에는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연신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 오늘은 학꽁치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학꽁치는 과메기로도 만들거니와 생선횟감으로도 그만이다. 학꽁치회의 맛은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나 할까! 고소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학꽁치가 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바다를 한 없이 바라보는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것일까?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이 순간만이 소중한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 아니던가! 그러니 사랑을 할 때는 미친듯이 사랑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인연이 다하면 그 뿐!

방파제 끝에 있는 무인등대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동해바다를 가슴에 품은 채. 횟감을 샀던 아주머니에게로 가니 회를 벌써 다 떠 놓았다. 생선회와 매운탕거리를 들고 부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수니네집'으로 향한다. '수니네집'은 해물찜과 생선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매운탕을 어찌나 맛있게 잘 끓이는지 친구와 이 곳에 올 때마다 들르는 집이다.

매운탕이 끓기 전에 생선회부터 맛을 본다. 뼈째 친 세꼬시회라 고소하면서도 찰지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동해의 청정바다에서 잡아올린 자연산 생선회라서 그런지 그 맛이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소주 한 병이 금방 동이 난다. 생선뼈와 머리로 끓인 매운탕도 얼큰하고 구수하다. 어두일미(魚頭一味)라고 하지 않았던가! 매운탕에다가 밥을 넣어 어죽을 끓이니 이 또한 별미다.

친구는 요독증의 위험이 있음에도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신부전증 환자에게 있어 술과 날고기는 금물인데도 연신 회접시에 손이 간다. 소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주치의는 술과 날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데, 나는 먹고 싶으면 실컷 먹으라고 했다.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삶의 길이보다 질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친구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동해바다도 보았겠다 싱싱한 회를 안주로 술까지 한 잔 걸쳤으니 기분이 좋아질 만도 하다. 병원에 다니느라 지난 봄에 와 본 뒤로는 그 동안 바다구경도 못했던 터라 더 그럴 것이다. 모처럼 친구의 소원을 풀어 준 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어둠속에 잠긴 동해바다를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른다. 두 시간을 달려 충주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다.

200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