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금강산 기행-외금강 망양대

林 山 2004. 7. 27. 13:55

아침 6시 반에 일어나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7.4 남북공동성명이 있었던 날이다. 온 겨레의 염원을 안고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도 벌써 3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이 각각 독재정권 강화에 이용함으로써 그 내용이 훼손되고 나아가 남북조절위원회의 가동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이것은 민중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한 권력자들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평화.민족의 대단결'이라는 남북통일의 3대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 공교롭게도 30여년 전의 그 날 나는 지금 금강산에 와 있는 것이다.

7시 해금강호텔 1층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는다. 뷔페식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먹고나면 언제나 허전한 그 무엇을 느낀다. 장전항에는 해무가 짙게 끼어 있다. 잠시후 해무가 걷히면서 금강산의 장관이 드러난다. 장전항 건너편으로 고성읍이 고즈넉하면서도 평화로와 보인다.
8시에 버스에 올라 외금강 만물상으로 향한다. 온정각을 향해 가는데 바로 앞에 군용트럭 1대가 북한 경비병들을 싣고가고 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도 아무런 대꾸도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북한주민 전용도로에는 일터를 향해서 걸어가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부지런하다. 인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어린이들도 까아만 얼굴로 등교를 하고 있다. 온정각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북한측 안내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8시 50분 북측 안내인들이 도착하여 그들의 안내로 온정각을 떠나 만물상으로 향한다. 김정숙 휴양소, 금강산 여관, 금강산 초대소를 차례로 지난다. 여관은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 이용하는 곳이고, 초대소는 외국의 귀빈들이 머무는 영빈관이라고 보면 된다. 금강산 온천의 원수가 나오는 곳을 지나 버스는 울창한 송림사이로 난 길로 접어든다.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들이 기상도 좋게 자라고 있다. 이 곳은 세계 3대 송림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유명한 숲이다.

드디어 금강산에 들어온 것이다. '금강산을 보기전에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그 절경을 노래한 금강산! 19세기말 영국의 세계적인 여행가 이자벨라 비�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세계 그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보다도 뛰어나다'고 찬탄한 금강산! 그런 금강산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금강산은 태백산맥줄기의 북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으로는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통천군 등 3개 군에 걸쳐 있다. 남북으로 60km, 동서로 40km의 규모를 가진 금강산의 주봉은 비로봉으로 그 높이가 해발 1639m에 이른다. 이 비로봉을 중심으로 금강산은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나뉜다.

비로봉의 동쪽지역은 외금강인데 산세가 웅장하고 씩씩하여 남성적이라 할 수 있다. 내금강은 비로봉의 서쪽 내륙지방을 차지하고 있는데 산세가 수려하고 우아한 것이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해금강은 외금강의 산줄기가 동해쪽으로 뻗어나가 바다의 금강을 이루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한 금강산은 봉우리가 유달리 많아 1만2천 봉이라고도 한다.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새싹이 돋아나고 만물이 소생하며,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철을 금강석과 같은 보석에 비유하여 금강산이라고 한다. 녹음이 우거진 계곡과 산봉우리에 흰구름과 안개가 감도는 여름철의 금강산은 마치 신선과 선녀가 사는 산이라고 해서 봉래산이라고 한다. 가을에는 단풍으로 온 산이 붉게 타는 듯 하다고 해서 풍악산이다. 겨울에는 흰눈에 덮인 바위들과 고목들의 모습이 마치 뼈와 같다고 해서 개골산 또는 설봉산이라고 한다.

한하계[寒霞溪]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웅장한 관음연봉들이 아득한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한하계는 아침저녁으로 찬 안개가 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른쪽으로는 수정봉, 세지봉, 망양대,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뾰쪽뾰쪽한 암릉들의 기세가 우렁차다. 버스가 힘겹게 올라가는 온정령[북한에서는 승리고개라고 함]의 양쪽 산기슭으로는 한하계의 계곡물과, 송림,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곰바위를 지난다. 까마득한 암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앞발을 뻗치고 목을 쭉 빼든 채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 꼭 곰을 닮았다. 곰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비로봉에서 살던 곰 한 마리가 봄을 맞아 먹이를 찾아서 양지쪽을 향해가고 있었다. 곰이 막 중관음봉을 넘어서는데 계곡물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문주담 맑은 물속에 도토리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허기가 진 곰은 물속의 조약돌들을 도토리로 착각했던 것이다. 곰은 도토리를 먹으려고 힘껏 내려뛰었다. 그런데 너무 굶주린 탓에 문주담에 이르지 못하고 절벽중턱에 떨어졌다. 이 때 그만 뒷발이 바위틈에 끼이고 말았다. 곰은 그래도 도토리를 먹으려는 생각으로 한눈을 팔지않고 물속만 바라보았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곰은 한 알의 도토리도 먹어보지 못한 채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관음폭포를 지난다. 관음연봉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비가 오지않아서 그런지 수량이 많지않다. 물이 많이 흐를 때는 높이 37m, 폭 4m에 달한다고 한다. 육화암[六花岩,눈꽃바위]도 보인다. '육화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상관음봉쪽에 있는 바위를 육화암이라고도 한다. 바위색이 희끗희끗하여 달빛이 비칠 때면 마치 눈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육화암에서 한하계는 끝이 나고 그 상류는 만상계다.

9시 30분 만물상 등산로입구에 도착했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615m다. 주차장 바로 위에는 만상정이 있는데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다. 그 뒤에는 김일성 주석이 1947년 9월 27일 여기서 교시를 내렸다는 비석이 있다. 이 곳은 금강산의 네거리로서 산행객들의 쉼터구실을 한다. 여기서 온정령을 넘어 내금강, 회양으로 가는 길과 서북쪽으로는 고성읍으로 가는 길, 서남쪽으로는 구성동과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는 만상천이 있다. 시원하고 맛이 좋아 한 번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샘물이다.

9시 48분 장수바위를 지난다. 그 생김새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 지대는 문짝과 지붕이 없는 대문과 같아 만물상대문이라고도 한다. 장수바위를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삼선암이 나타난다. 나란히 선 세개의 바위가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데 구름이 흐를 때 바위들이 움직이는 듯 한 모양이 꼭 하늘에서 신선들이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높이가 30~40m는 되어 보인다. 삼선암 오른쪽으로 그믐달이 떠 있다. 곳곳에 북한 안내인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삼선암의 바로 위에 우뚝 솟아있는 암봉이 귀면암이다. 그 모양이 흡사 귀신상을 꼭 빼닮았다. 귀면암은 단층현상과 풍화과정을 연구하는데 좋은 대상으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귀면암을 보고는 도깨비의 험상궂은 얼굴모양과 같다고 하면서 제발 꿈에 보이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9시 55분 거북이와 토끼바위를 지난다. 오봉산이 바로 위에 보인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만물상이다. 만물상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들이 수십길, 수백길 하늘높이 치솟아올라 천태만상을 이루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형태의 물체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것 같다. 거북이바위, 토끼바위, 메뚜기바위, 그 뒤로 독수리바위, 으뜸바위, 코뿔소바위, 왕관을 쓴 사자바위, 솥뚜껑바위 등등................ 없는 것이 없다.

10시 8분 7층암에 도착했다. 40여m나 되는 7층암 꼭대기에는 뽀뽀를 하는 원앙새바위, 그것을 시샘하는 강아지바위가 있다. 오른쪽으로 세지봉 능선과 절부암 위로는 두더지바위, 독사바위, 애기곰바위, 도마뱀바위, 부엉이바위, 물개바위, 꼬부랑 할머니바위 등 온갖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볼 수 있다. 만물상이란 이렇듯 세상만물이 이곳에 다 모인 것 같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곳에 나와 있던 북한 여성안내인이 내 수염을 보더니 '수염이 꽤나 인기가 있구만요.' 한다. 절부암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절부암은 옛날 어느 힘센 장수가 도끼로 바위중턱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0시 35분 망양대와 천선대 갈림길을 지난다. 오른쪽이 망양대로 가는 길이다. 돌계단길이 계속 이어진다. 가파른 곳에는 철계단이 놓여 있다. 망양대로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에서 삼지구엽초[음양곽] 군락지를 발견했다. 지금 한창 연분홍색의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남한쪽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는 한 포기도 보지 못했는데 여기와서야 보게 되다니........... 그만큼 북한의 자연생태계는 잘 보존되어 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담배꽁초 한 개, 버려진 휴지 한 조각도 볼 수 없다. 금강산에는 금을 비롯하여 많은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주석은 금강산을 보존하기 위해서 금광의 개발을 금지시켰다고 안내인은 전한다. 남한이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백두대간을 마구 파헤치는 것과는 좋은 비교가 된다.

10시 58분 제2망양대[1040m]에 오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위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니 온몸이 다 짜릿하다. 저 멀리 비로봉이 바라보인다. 또한 수정봉, 문주봉, 집선봉, 채하봉, 세존봉, 옥녀봉, 관음연봉, 월출봉, 장군성까지 다 보인다. 전망이 기막히게 좋은 곳이다. 푸르른 동해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작은 섬 몇 개가 그림처럼 떠 있다. 제일 멀리 보이는 섬이 알섬, 뒤에 있는 섬이 솔섬, 가운데 섬이 간섬, 남쪽섬이 개지섬, 가까이 있는 섬이 삼섬이다. 북한측 안내인이 자신을 한철이라고 소개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우리 일행이 한의학도라는 것을 알고는 몸이 매우 차고 앨러지가 생기는 증세에 대한 처방을 묻는다. 그래서 부자이중탕을 일러주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비로봉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회에 젖어 '그리운 금강산' 한 소절을 불러본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 만 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내 노래를 듣고나서 한철 지도원이 '임선상님은 노래를 참 잘도 하시누만요.'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좀 쑥스럽다.

11시 17분 제3망양대[1045m]에 올라선다. 만상계와 한하계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여기도 전망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해금강일대의 섬들과 남강, 까치봉, 멀리는 남한쪽 산들도 다 볼 수 있다. 비로봉을 향해서 장쾌한 기세로 치달려가는 외금강의 산능선들과 장엄한 산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11시 30분 돌아오는 길에 제1망양대로 오른다. 등대봉 너머로 형제섬이 보이고 영지반도가 장전항을 가리우고 있다. 천불동과 선창계, 촛대바위도 볼 수 있다. 남쪽으로는 만상계를 거쳐 온정령을 넘어 금강군의 산들이 보이고, 앞으로는 상등봉, 관음연봉, 옥녀봉, 영랑봉, 비로봉을 조망할 수 있다. 금강산 연봉들을 바라보느라 넋을 잃는다.

11시 30분 안심대를 지난다. 안심대는 망양대와 천선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아래위가 다 절벽이지만 이 곳만은 말안장처럼 생겨 마음놓고 쉴만하다고 해서 안심대라고 한다. 안심대를 지나 가파른 돌계단길을 잠깐 오르니 망장천[945m]이 나타난다. 망장천에는 산행에 지친 사람들이 물을 받느라고 줄을 서 있다. 예로부터 이 샘물을 마시면 새힘이 솟는 바람에 짚고 올라온 지팡이를 그만 잊어버리고 단숨에 천선대까지 오른다고 하여 '잊을 忘', '지팡이 丈', '샘 泉'자를 써서 망장천이다.

망장천을 떠나 가파른 돌계단길을 올라 하늘문[천일문]을 통과한다. 이 문을 나서면 하늘에 오른다고 하여 하늘문이라고 한다. 금강산의 여러 돌문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사방이 꽉 막힌 벼랑에 이 문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하늘문이 없었다면 천선대로 가는 길은 결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서쪽벽에는 '금강제일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늘문을 나서면 바로 천선대다.

12시 정각 천선대[936m]에 오르다. 만물상의 경치가 너무나 좋아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천선대라고 한다. 오른쪽으로는 수백길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다. 천선대는 만물상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만물상의 뛰어난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천선대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될 만큼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천선대를 중심으로 오봉산[1263m]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의봉, 무애봉, 천진봉과 하늘을 떠받들고 선 기둥같은 천주봉, 천녀봉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까닭에 오봉산이라고 한다. 오봉산 오른쪽으로는 사람모양의 세지봉이 빙 둘러 솟아올랐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상등봉과 옥녀봉, 영랑봉, 관음연봉, 세존봉, 멀리는 집선봉, 채하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만화경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비로봉을 바로 저 앞에 두고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금강산을 왜 왔던가! 겨우 금강산의 끝자락만 밟아보고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메인다. 그래도 금강산의 한자락을 보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떨어지지않는 발길을 돌려 하산을 시작한다. 금강산아! 통일이 되면 너를 다시 찾아오마.

금강산관광은 산악인들에게는 매력이 별로 없어보인다. 금강산을 한 번 와봤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모를까. 망장천으로 도로 내려와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인다.

12시 18분 아까 지났던 안심대를 지난다. 왼쪽으로 제1,2,3 망양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땀을 식혀 준다. 만물상을 내려오면서 짙은 선글라스를 쓴 북쪽 안내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다른 안내인들과는 좀 다른 임무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남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한 통일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내가 북한도 빗장을 열고 개방을 해야 남북한 자유왕래가 실현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묵묵부답이다. 금강산을 예로 들어보아도 이렇게 제한된 구역만 다닐 수 있다면 그 누가 이 곳을 다시 찾겠는가! 나는 남북한 자유왕래만 실현된다면 통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통일만 고집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1시 20분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쉬다가 북측 안내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다시 온정령을 구불구불 내려가기 시작한다. 관음연봉을 내려가면서 보니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비가 내린 다음 이 곳을 찾으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관음폭포를 비롯하여 수많은 계절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2시가 조금 넘어 온정각에 도착했다.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늘도 북한산 채소를 싫컷 먹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해서 그런지 남한산보다 훨씬 맛이 좋다. 평양소주를 반주로 한 잔씩 했으나 도저히 마실 수가 없다. 소주는 남한산이 훨씬 품질이 좋다.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올 때 남한에서 아예 몇 병 가지고 오는 것이 좋다.

4시부터 온정각 공연장에서 평양교예단 공연이 있지만 관람을 하지않기로 한다. 텔레비젼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휴게실에서 '보심록'이라는 제목의 북한영화를 보았다. 옛날 사극이었는데 나라에 대한 충성, 친구간의 의리, 권선징악 등 여러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스토리전개가 너무나 뻔해서 재미가 별로 없다.

6시가 다 되어 걸어서 금강산온천으로 향한다. 온정각에서 7,8분 걸리는 거리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버스를 이용했지만 나는 될 수 있으면 걸어다니기로 한다. 12달러를 내고 온천장으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니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샤워를 간단히 마친 다음 노천탕으로 나가 금강산을 바라보면서 목욕을 한다. 황토방 사우나실이라는 것이 있어 들어가보니 사람들로 만원이다. 1시간정도 목욕을 하고 나와 2층 전시실로 가서 다시 한 번 그림을 감상했다.

온천에서 온정각까지 또 걸어서 왔다. 온정각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메뉴 중에서 깨죽과 된장국이 특히 맛있다. 북한산 채소도 실컷 먹었다. 저녁을 먹고 기념품매장에서 북한우표를 50달러어치 샀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한 기념우표도 있다. 나는 취미로 우표수집을 한다.

8시 50분 버스에 올라 해금강호텔로 향한다. 어제 양지말을 지나갈 때는 불이 다 꺼져 있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불이 들어와 있다. 윤정숙 조장에게 물어보니 시간제로 전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8,9분 정도 걸려 해금강호텔에 도착하여 1층 북한 토산품매장에서 북한에서 나온 금강산에 얽힌 전설에 관한 책과 금강산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 등을 사는데 10달러가 들었다. 6층 숙소로 돌아오니 침대와 객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번에 함께 간 친구들과 북한산 들쭉술, 다래술, 조니워커 위스키로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로 한다. 안주는 골뱅이 무침과 노가리구이다. 40도짜리 들쭉술은 맛이 괜찮은데 16도짜리 다래주는 너무 달다. 다래주를 마실 때까지는 좋았는데 조니워커를 한 잔씩 마시는 순간 모두들 완전히 취해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한 순간에 취할 수가 있는 것일까?

밤 12시 45분 북한에서의 마지막 밤을 인사불성인 채 잠들다.

200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