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터 남원 광한루

林 山 2004. 7. 23. 20:12

때는 2002년 1월 9일.11시에 일어나다.하늘엔 구름 한점 없이 맑다.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옥계타운 앞산이 병풍처럼 다가온다.어제 지리산 만복대에서 폭설과 사투를 벌였던 기억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옥계타운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다.온 몸에 쌓였던 피로가 눈녹듯 사라진다.나는 평소 목욕탕을 자주 가는 편이다.벌거벗은 채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기에.......목욕탕에서 나는 홀가분한 자유를 만끽하곤 한다.

목욕을 마치고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라면을 끓여 국삼아 밥을 먹었다.남은 밥을 인스턴트 짜장에 비벼서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제법 맛이 괜찮다.

오후 2시 35분.옥계타운 앞 다리 건너 간이 버스정류장에서 남원행 버스에 오르다.온 산과 들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어제 내려온 만복대 능선을 바라보니 설화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난다.

운봉을 뒤로 하고 버스는 여원재를 넘는다.작년 5월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넘었던 고개다.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다가온다.강촌마을을 지날 때 어느 집 은행나무에 얹혀 있는 까치집이 정겹다.어제 지나온 성삼재에서 고리봉,만복대,정령치에 이르는 눈덮인 하얀 능선을 차창너머로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3시 15분 남원 도착.시내 곳곳에 눈이 쌓여 있고 도로는 빙판길이다.지붕위에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20분 정도 걸어서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이야기 무대인 광한루에 들렀다.

옥황상제가 있는 玉京에는 廣寒殿이 있으며,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광한루는 바로 천상의 광한전을 지상에 재현한 것이다.광한루는 한겨울인데도 보수공사가 한창이다.담을 따라 둘러싼 대나무숲이 이채롭다.대숲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어 지저귄다.

먼저 丹心門을 지나 춘향의 사당에 들렀다.丹心은 춘향이의 임향한 一片丹心을 줄여서 만든 말이다.춘향의 영정앞에 서니 푸른색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를 입은 조선미인이 다소곳이 나를 반긴다.이 사당에서 청춘남녀가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후세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춘향의 사당을 지나니 연못이 나타나고 그 안에는 구름다리로 연결된 세개의 섬이 떠 있다.왼쪽 섬은 영주산이라 하는데 영주각이 세워져 있고,가운데 섬은 봉래산으로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오른쪽 오작교옆 섬은 방장산으로 6각의 방장정이 자리잡고 있다.이 세 섬을 이름하여 三神山이라 이르는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연못에는 춘향이가 그네를 매고 뛰었음직한 고목이 몇 그루 서 있다.

삼신산을 나와 玩月亭으로 갔다.완월정은 사람이 달을 완상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마치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 전통 조선식 누각은 겹처마 팔작지붕에 오방집으로 되어 있다.누각 안에는 여러 시인 묵객들의 한시를 새긴 편액들이 걸려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심에 젖게 한다.누각의 앞 연못에 잠겨 있는 돌확에는 많은 동전들이 보인다.아마도 완월정에 오른 사람들이 행운을 빌면서 던졌을 것이다.

완월정을 내려와 璇聚閣에 들렀다.선취각이란 구슬처럼 귀중한 자료를 모아 전시한 집이란 뜻이다.현판은 宇蘭 韓甲洙님이 작명을 하고 雲山 梁澤述님이 글씨를 썼다.정면에는 징,꽹과리,북,장고 등 사물이 전시되어 있고,한켠에는 남원지방의 관광명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실물모형을 갖춰 놓았다.한쪽 벽에는 이몽룡의 어사시와 춘향이의 옥중시가 걸려 있다.

御史詩는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 변사또가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서 벌인 잔치자리에서 읊어 탐관오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시다.

金樽美酒天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이 시는 오늘날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 나라의 관리들이 꼭 새겨 두어야 할 시다.그 속에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칼날같은 풍자가 들어 있다.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옥중에서 불렀다는 獄中詩에는 님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去歲何時君別妾
昨已冬節又動秋
狂風半夜雨如雪
何爲南原獄中囚


이 시로 볼 때 춘향이는 상당히 교양있는 시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선취각을 나오니 앞마당에 그네가 매어져 있다.모여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번씩 그네를 타 본다.오월 단오에 춘향이가 그네뛰던 정취를 맛보고자 함인지.........

월매집에 들르니 지붕도 담장도 볏짚을 엮어서 이었다.행랑채옆 닭장도 초가지붕이다.닭장에는 닭들이 몇 마리 모이를 쪼고 있고 쥐 한 마리가 연신 들락날락한다.지붕에는 어디선가 참새떼가 한 무리 날아와 쉴 새 없이 '짹짹'거린다.

요천수에 놓여 있는 오작교에 이르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나도 오작교에서 광한루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요천수는 얼음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오작교를 건너 춘향관으로 들어가니 춘향전의 내용을 대형그림으로 그려 전시해 놓았다.그림이 너무나도 일목요연하여 춘향전을 보지않고도 그 내용을 알 수 있겠다.춘향관을 나와 바로 옆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지리산 종주대 기념사진을 찍었다.

4시 40분.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이야기에 취한 채 광한루를 나오다.광한루를 나와 서울,시흥팀과 작별을 했다.그들은 남원역으로 열차를 타러 떠나고,정재현 선생과 신건준 군 그리고 나는 남원 서부버스정류장에서 순창을 거쳐 광주로 가는 5시 15분 버스에 올랐다.

노고단,고리봉,만복대,정령치,바래봉을 잇는 지리산맥의 능선들이 저녁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들고 있다.붉은색으로 빛나는 산봉우리들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언제 다시 지리산맥의 넉넉한 품에 안길 수 있을런지..........

피로가 덜 풀린 탓인지 버스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잠든 사이 버스는 광주 버스터미널에 닿았다.남원에서 2시간 정도의 거리다.목포행 버스는 바로 있었다.7시 25분 버스에 오르자 1시간 10분만에 목포에 닿는다.

목포에 도착하자 오옥현 군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 준다.오군은 내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한계령에서 만났었다.그때 그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상태였다.나는 3일 정도면 종주를 끝낼 수 있는 시점이었고..........우리는 오색에서 민박집을 잡아 함께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점봉산에서 내가 뜯어온 참나물로 삼겹살을 싸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 나누었다.나는 그에게 배낭도 다시 꾸려 주고 대간종주시 주의할 사항도 일러 주었다.그런 인연으로 그는 충주지역 구간을 지날 때 내집에서 사흘을 쉬어서 갔다.이번 목포 방문은 그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목포 뒷개라고도 하는 북항의 홍도회센터로 자리를 옮겼다.이 자리에는 목포 한솔산악회 전 회장을 역임한 박상복씨,현 회장인 조영웅씨,전대윤씨,목포 YMCA산악회장인 황정원씨 등이 우리를 환영해 주기 위해서 참석했다.모두들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산악인들이었다.우리는 서로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곧 우럭과 농어회가 나오는데 상차림이 놀랍다.교자상 두개를 붙여 놓았는데 가득 차리고도 상이 모자란다.충주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음식도 많이 나온다.술이 몇 순배 돌자 우리가 지리산에서 눈과 벌였던 사투가 단연 화제가 된다.이 지방의 소주는 천년의 아침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순하다.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 보니 어느덧 취기가 오른다.산을 주제로 밤이 늦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산에 관한 이야기는 해바라기 치킨호프로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나중에는 한솔산악회와 산.찾.사산악회 사이에 자매결연을 맺자는 말도 나왔다.아주 기분 좋고 화기애애한 밤이었다.술에 흠씬 취한 뒤에야 자리는 끝이 났다.한솔산악회원들과 헤어져 전대윤씨의 신안비치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자리에 눕자마자 꿈나라로 들어가다.

200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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