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쯤 일어나다. 어제 과음을 한 탓으로 머리가 묵직하다. 잠이 채 덜 깬 상태로 1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죽 한 사발과 고등어구이를 반찬으로 밥을 조금 먹는다.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식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6층으로 올라오면서 장전항 내항을 바라보니 물결이 잔잔하다. 하늘에는 우중충한 비구름이 몰려와 있다.
8시 5분 버스에 올라 온정각으로 향한다. 온정각에서 북측 안내인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휴식을 취한다. 30분 정도 지나자 북측 안내인들이 도착하여 그들의 안내로 해금강을 향해 떠난다. 길가에는 옥수수밭이 많이 보인다. 옥수수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더러 눈에 띈다. 들에서 풀을 뜯는 소들이 한가로와 보인다. 온정천 다리를 건너 온정리 청년역을 지난다. 청년역은 지금은 역사로서보다는 마을사람들의 회의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비포장도로여서 버스가 심하게 흔들린다. 길 양쪽으로는 철조망이 높게 쳐져 있고 북한주민이 다니는 길목에는 예외없이 초병이 보초를 서고 있다.
운곡리와 봉화리 마을을 지난다. 논에는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군데군데 북한주민들이 일손을 놓고 모여앉아서 쉬고 있다. 논둑의 시멘트판에다가 붉은 글씨로 '자폭정신'이란 글귀를 써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남한의 곳곳에 '간첩신고'나 '좌익세력 분쇄'라고 씌어져 있는 입간판을 볼 때마다 섬뜩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것은 분단의 비극이다.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는 현실에 기가 막힌다.
참대사업소를 지난다.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선물로 받은 대나무를 이 곳에다가 옮겨 심었다고 한다. 대나무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나무식생의 북방한계선을 아무래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길 오른쪽으로는 적벽강이 흐르고 있다. 물이 참 깨끗하다. 강에서 북한주민들이 투망으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강 저편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풍경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9시 5분 삼일포 마을을 지난다. 길가에 있는 삼일포 고등중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아마 수업중인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인민학교 4년을 마치고 고등중학교 6년을 다닌다. 북한의 인민학교는 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하고, 고등중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삼일포 마을을 지나자 드넓은 고성평야가 나타난다. 엄청나게 넓은 평야지대다. 한 무리의 백로떼가 가까이에 내려앉아 있다. 고성평야 한가운데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고성역사가 보인다. 6.25때 미군의 폭격을 맞아서 저렇게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고성역에서 간성까지는 기차로 15분거리라는데........... 남쪽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13.7km라고 한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장장 4시간이나 돌아서 오다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란 말인가!
9시 15분 북한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통문을 통과한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4~5m의 너비로 이중철조망이 쳐져 있다. 철조망이 좀 허술해 보인다. 남측 철책선은 거의 장벽수준인데............북한에서는 이 곳이 최남단으로 북한주민들은 출입할 수 없는 최전방지역이다.
9시 20분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나타나는 해금강! 기기묘묘한 바위섬들이 바다위에 떠 있다.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는 해금강은 바위절벽과 소나무와 바위섬, 그리고 바다가 어울려 빚어낸 한 폭의 진경산수다. 섬들사이로 작은 거룻배들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해변 곳곳에는 해당화가 자라고 있다. 바다물결은 더없이 잔잔하다. 에메랄드빛의 바다위로 해무가 살짝 드리웠다. 해수면의 바위에는 작은 홍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해안은 금강산을 그대로 바닷가로 옮겨놓은 듯 하다.
서해의 몽금포와 구미포, 남해의 다도해와 함께 4대 해안의 하나인 해금강은 북쪽 수원단으로부터 남강하류 대봉도, 영랑호를 거쳐 화진포까지에 걸쳐 있다. 해금강의 절경으로는 해돋이, 해만물상, 물속의 해만물상, 입석과 솔섬, 사공바위와 칠성바위라고 하는데 관광객들에게는 극히 일부분만 개방되어 있어 아쉽기 짝이 없다. 더구나 단체관광으로 인해 개별행동을 일체 할 수 없고 시간에 대한 제약도 많아서 수박겉핥기식이 될 수 밖에 없다.
북쪽 해안의 바위절벽에는 북한군 포대가 바다쪽으로 포신을 겨누고 있다. 이 곳에서도 어김없이 분단의 실상을 목격하고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가슴에 들이댄 총칼을 거두고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 내 마음같아서는 155마일에 걸쳐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을 당장이라도 뜯어내버리고 싶다.
10시 10분 해금강을 떠나 삼일포로 향한다. 아까 올 때와는 달리 삼일포 고등중학교 운동장에는 빨간 머플러를 목에 맨 학생들이 교단을 중심으로 줄을 지어 모여 있다. 버스는 삼일포 인민학교와 끊어진 채 방치된 철교를 지나 송림이 우거진 언덕길을 오른다. 전망대 입구에서 내려 송림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서 걷는다. 오솔길이 참 좋다.
10시 40분 삼일포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를 장군대라고 하는데 충성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장군대에서는 삼일포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호수를 송림이 우거진 암봉들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호수와 아름드리 소나무,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태풍 '라마순'의 영향이 이 곳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삼일포는 옛날에 어떤 왕이 관동팔경을 하루에 한 곳씩 보기로하고 떠났는데 이 곳에 와서는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3일을 놀았다는데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삼일포는 통천의 총석정,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대, 평해의 월송정과 함께 관동팔경중의 하나이다. 호수의 둘레는 8km이고 수심은 9~13m에 달한다고 하는데 물이 맑기가 이를 데 없다. 삼일포는 원래 만이었던 것이 동해안의 융기로 인해 모래가 쌓이면서 바다와 끊어져서 이루어진 호수다.
호수위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아담한 섬과 작은 바위섬 몇 개가 떠 있다. 아담한 섬이 와우섬이다. 생김새가 마치 누운 소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단서암은 여러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섬이다. 옛날 신선들이 이 섬에 와서 놀다가 '술랑도 남석행'이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는데 글자가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단서암이라고 불린다. 그 외에도 옛날 영랑, 술랑, 남석행, 안상 등 네 신선이 삼일포에서 놀고간 것을 기념하여 정자를 세웠다는 사선정, 네 신선이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무선대와 같은 돌섬이 있다.
11시 5분 장군대를 내려와 출렁다리를 건넌 다음 봉래대에 올라선다. 200여명 정도 들어설 수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다. 여기서도 호수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봉래대라는 이름은 16세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서예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 곳에 와서 공부를 했다는데서 유래한다. 바위밑에는 암굴이 있는데 바로 양사언이 공부했다는 봉래굴이다. 봉래굴의 바위벽에는 삼일포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양사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연꽃같은 서른여섯 봉우리는
거울같은 호수에 그림자를 비끼고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는
구름가에 우뚝우뚝 솟았네
그 중간 물가에 놓인 반석은
경치를 즐기는 벗과 함께 와
한가로이 놀기에 참 좋겠네
11시 35분 단풍관을 떠나 송림사이로 난 길을 걸어서 연화대로 오른다. 연화대에는 1964년에 세웠다는 정자가 있다. 정자에는 현판이 있을 법도 한데 보이지 않는다. 또 시인, 묵객들의 시들이 걸려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곳곳에 북측 안내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11시 50분 연화대를 떠나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출발하자 북측 안내인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이것으로 금강산관광은 끝났다. 아쉽기 짝이 없다. 이렇게 제한된 지역만 보는 것으로는 영 마음이 차지않는다. 이런 식의 관광이라면 차라리 오지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만 뱅뱅 도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후 12시 10분 온정각에 도착해서 북한땅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제법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이 지역도 태풍 '라마순'의 영향권에 들어간 모양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온정각을 떠나 장전항으로 향한다. 금강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2시 출입국 사무소에서 관광증을 반납하는 등 간단한 출국수속을 마치고 설봉호에 오른다. 객실에서 남북한 왕래자 휴대품신고서를 작성한다. 삼십분 뒤에 설봉호는 장전항을 떠나 속초로 향한다. 장전항을 벗어날 무렵 바다를 내려다보니 해파리떼가 하얗게 떠 있다. 이렇게 많은 해파리는 난생 처음 본다. 비는 계속 내리고, 사방을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해무가 바다를 뒤덮고 있다. 육지는 이제 해무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고성항으로 돌아가는 어부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그들도 손을 흔든다. 가끔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나타난다. 인공기를 단 북한 경비정이 어선들 주위를 돌고 있다.
바다는 잔잔한 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무가 잠깐 걷히면서 금강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골짜기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다. 잠시후 금강산은 안개속으로 다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설봉호는 쉬지않고 남쪽으로 항해를 한다.
3시 30분 해무가 걷히면서 육지의 산맥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프론트에 물어보니 배는 벌써 북한 영해를 벗어나 공해상으로 나왔다가 해안을 따라서 속초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간 뒤쯤 남쪽 군사분계선을 넘을 예정이라고 한다. 갑판에서 해안경치를 구경한다. 갈매기 한 마리가 뱃전과 나란히 날고 있다. 비가 점점 더 쏟아지기 시작한다.
5시 50분 드디어 속초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봉호 직원이 입국수속요령을 설명한다. 내릴 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출입신고서, 휴대품 신고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한다. 배는 이미 속초항 내항으로 들어와 있다. 곧 설봉호는 현대국제여객 터미널에 정박한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차를 몰고 충주로 향한다.
빗길을 뚫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막을 내렸다.
20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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