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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25.BBC] 레바논,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최소 550명 사망' 발표

Thousands flee homes as Lebanon says more than 550 people killed in Israeli strikes since Monday. 'We just had to flee': Fear and tension in Lebanon under deadly Israeli bombardment.  레바논,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최소 550명 사망' 발표   레바논이 월요일 이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550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천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치명적인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레바논인들 사이에 두려움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레바논 남부 전역에서 가족들은 소지품을 챙겨 차와 트럭, 오토바이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시아파 무장..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아리' 지키기 서명 운동

'아리'를 지킵시다! 평화의소녀상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합니다! 베를린 평화의소녀상은 식민지 억압과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지속적인 시도에 맞서 존치되어야 합니다! 2020년 9월, 베를린 미테구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기리는 평화의소녀상 '아리'가 세워졌습니다. 당시 일본군에 의해 성노예로 끌려간 소녀들과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이 소녀상은 이후 그 역사적 맥락을 넘어 전쟁 무기로서의 성폭력을 반대하는 국제적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베를린 평화의소녀상이 설치된 직후 일본 정부는 철거를 시도했고, 관련 소식들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2020년 10월 시민 사회가 철거 반대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덕분에 소녀상 철거를 막을 수 있었으나, 현재 다시 철거 위협을 받고 있..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성명서] 사제단을 일으켜 세운 순교자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 성명서] 사제단을 일으켜 세운 순교자들 1. 50년 전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신부들이 안락한 성소를 박차고 서울로, 명동으로 집결했던 것은 주교 지학순의 수감 때문만도 아니요, 독재자 박정희의 폭압 때문만도 아니었으니 그것은 이곳 지하묘소에 잠들어 계시는 순교자들의 비상호출 때문이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열린 세상을 꿈꾼 죄로 국가폭력에 희생되신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우리 강토 곳곳에 뼈를 묻으신 순교자들의 천둥 같은 부르심이 아니었으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출현할 수 없었으며, 반세기에 이르는 줄기찬 실천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제단의 등장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마땅히 가야했으나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새롭고 험한 길을 비로소 걷기 ..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 770] Simon & Garfunkel - Sound of Silence

'Sound of Silence(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는 1964년 10월 19일 발매된 USA 포크 롹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데뷔 스튜디오 앨범 'Wednesday Morning, 3 A.M.' A면 6번 트랙이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앨범에 수록된 이 트랙의 원제(原題)는 'The Sounds of Silence'다. USA 음악사에서 1960년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60년대라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최고의 포크 송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감수성 넘치는 멜로디, 운율이 기막히게 들어맞는 문학적인 가사, 그리고 듀오의 아름다운 화음이 특히 인상적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시그니처 곡으로서 이 노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요즘도 라디오 전파..

장기표 전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의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 안장을 반대한다!

장기표 전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의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 안장을 반대한다! 별세한 장기표 전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민주화운동의 대부라는 현정권과 언론의 위선을 규탄하며, 이천민주화운동기념공원 안장을 반대한다. 장기표 재야 정치인이 별세하였다. 1945년생, 대학재학시절 전태일의 분신을 겪었던 그는 1970년대부터 재야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나서서 활동하였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그는 국회의원선거에 여러 차례 나가면서 국회 진입을 시도하였지만 한 번도 당선을 못하였다. 기록에 나와있는 본선 낙선만도 4차례, 1992년에 민중당, 1996년에는 민주당, 2004년에는 녹색사민당, 2012년에는 정통민주당 후보로서 공천을 받고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을 하였다. 당적도 여러 가지, 자신이 주가 되어 창당한 당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