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찍 일어나 온천욕을 하다. 노천탕으로 나가자 찬 기운이 선뜩선뜩 느껴진다. 몇 개 안 남은 새벽별들이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이부스키 해안마을의 가로등불도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먼동이 터오는 새벽하늘과 잔잔한 가고시마만을 바라보는 경험은 색다른 것이었다.
목욕탕에 갔을 때 느낀 일이다. 목욕탕 안에서 알몸으로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들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목욕실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중요한 부분을 손이나 수건으로 가린다. 불과 몇 미터 안 되는 거리인데도.....
또 여직원이 세탁물을 치울 때는 남자 탈의실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드나든다. 어제 모래찜질을 하러 갔을 때다.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물기를 닦고 있는데 여직원이 불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전혀 무방비 상태였는데..... 순간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당혹감이었다. 그래서 외국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그 나라의 중요한 관습이나 예절을 미리 잘 배워두는 것이 좋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오니 시장기가 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생선요리를 위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름도 모를 생선요리의 가지 수가 매우 많다. 아마도 일본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라서 생선요리가 특히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요리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담백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일본음식에 대한 호기심에 어제부터 계속 과식이다.
호텔을 나와서 마쓰다가 운전하는 버스에 오른다. 먼저 시로야마 공원을 보러 간단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 자비에르 교회터를 보았다. 종교백화점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외국에서 수입된 종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종교라고 할 수 없는 신도만을 믿을 뿐..... 일본의 신도는 다신교이다. 일본인들은 모든 만물은 죽어서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고양이신을 비롯해서 벼라별 신이 다 있다.
처음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많은 일본인들이 기독교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층은 유일신을 교리로 하는 기독교가 천황제를 위태롭게 하리라는 것을 간파했다. 왜냐하면 일본의 지배층은 천황을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신이라고 일본인들을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도들을 철저하게 탄압한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종교가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된다.
태평양전쟁에서 죽은 일본의 전쟁영웅들을 신사에 안치하면서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것은 천황이 여전히 인간신임을 합리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천황제와 군국주의, 신도는 이처럼 긴밀하게 결합되어 오늘의 일본을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다. 보수파인 일본수상이 주변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영웅이 안치된 신사를 참배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지배층은 바로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을 단결시켜 다시 한번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 시로야마 공원에서 내려다 본 가고시마시내 전경.가고시마만 건너 사쿠라지마 활화산이 보인다.
별로 높지 않은 산위에 조성된 시로야마 공원에서는 가고시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배들이 오가는 가고시마만 바다와 그 건너 사쿠라지마 활화산도 아주 잘 볼 수 있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하늘은 온통 뿌연 연기로 가득차 있다. 공원에는 일본의 전국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가고시마시는 인구가 약 30만명에 달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고층빌딩은 여간해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고층빌딩은 지진에 취약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되도록 고층빌딩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일본에 목조건물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시멘트 벽돌로 지은 건물은 지진이 일어나면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지기 쉽다. 그러나 목조건물은 지진에 대한 내구성이 시멘트 건물보다 훨씬 강하다.
▲ 사이고 자살동굴.일본 최후의 사무라이 사이고가 할복자살한 곳이다.
시로야마 공원을 떠나 일본의 마지막 사무라이 사이고가 자살했다는 동굴을 보러 갔다. 사이고는 일본 최초의 육군참모총장으로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의 쇄국정책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조선으로 말하자면 대원군과 같은 존재다. 사이고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가 세력을 얻자 반란을 일으킨다. 비극적이게도 그는 자신이 창설한 군대에 패하여 이 동굴로 도망을 친다. 포위망이 좁혀지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된 사이고는 결국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이고는 오늘날 일본인들로부터 진정한 사무라이로서 추앙을 받고 있다.
사이고의 정책이 채택되어 쇄국정책을 폈다면 과연 오늘의 일본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판단과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역사는 이처럼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쇄국정책을 썼던 조선이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반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한 때 미국과 쟁패를 다툴 정도의 대제국이 되지 않았던가!
사이고 자살동굴을 보고나서 사쿠라지마(櫻島.벚꽃섬)로 가기 위해 가고시마항으로 향한다. 항구로 가는 도중 길가에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한다. 생선초밥과 튀김,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이 나온다. 이 식당에는 '韓風燒肉'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우리말로 하면 불고기 또는 삼겹살 구이쯤 될 것이다. 불고기는 일본사람들도 즐겨 먹는 메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점심을 먹기위해 들렀던 식당의 '韓風燒肉'을 선전하는 플래카드
▲ 점심메뉴로 나온 생선초밥과 튀김, 그리고 우동
▲ 가고시마항의 전경
항구에 도착해서 차에 탄 채로 페리호에 오른다. 배가 엄청나게 크다. 고동소리를 울리며 페리호가 사쿠라지마를 향해 항구를 떠난다. 갑판으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본다. 사쿠라지마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사쿠라지마 항구가 바로 앞에 빤히 건너다 보인다. 가고시마와 사쿠라지마 사이를 페리호가 20분마다 왕래하기에 사쿠라지마 주민들은 가고시마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한다. 가고시마만 바다물결이 잔잔하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잠시만에 페리호는 사쿠라지마 항구에 닿는다.
▲ 사쿠라지마로 가는 페리호 갑판에서
▲ 페리호 갑판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항과 활화산
먼저 항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쿠라지마 방문객센터에 들렀다. 센터에는 화산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쿠라지마가 요즘도 활동하고 있는 화산지대라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의 화산에 대한 관심이 각별해 보인다. 영사실에서는 사쿠라지마 활화산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했다. 최근에 발생했던 화산폭발에서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용암이 질풍노도처럼 지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싹쓸어 가버리는 장면에서 나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위력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센터를 나와 연기로 뒤덮힌 활화산을 올려다 본다. 금방이라도 화산이 폭발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화산지대 가까이 붙어서 살고 있는 사쿠라지마 주민들은 매일매일을 화산폭발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리라.
▲ 사쿠라지마 방문객 센터에 있는 용암지대에서
▲ 방문객 센터에 있는 사쿠라지마시 전체 모형도
방문객센터를 나와 사쿠라지마 해변도로를 달린다. 길가에는 비파나무 과수원이 흔하다. 추위에 대비해서 비파열매는 종이봉지로 감싸 놓았다. 이곳에서는 비파열매를 식용한다. 비파나무 잎을 한의학에서는 비파엽(枇杷葉)이라고 하는데,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삭히는 한약재로 쓴다. 분화구로부터 쏟아져 내려온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거대한 산능선들이 해안으로 치달려 내려와서는 바다속으로 사라진다. 용암능선과 능선사이의 계곡마다 언제 흘러 내릴지 모르는 용암을 막기 위해서 설치한 댐들이 곳곳에 보인다. 바닷가 작은 만에는 여러 척의 작은 통통배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아리무라 용암전망대에 올라 사쿠라지마 활화산을 바라본다. 화산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은 북악과 중악, 그리고 남악분화구 등 세 개의 분화구가 있다. 그 중에서 남악분화구만이 활화산이다. 남악분화구 산기슭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분출하는 것이 보인다. 짙은 유황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끝을 자극한다. 사쿠라지마는 원래 섬이었다고 하는데 화산폭발로 용암이 바다건너 육지까지 흘러내려 지금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아리무라 용암전망대는 능선을 따라 산책로를 닦아 놓아서 화산과 용암지대를 잘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도 가고시마만이 아주 잘 내려다 보인다.
▲ 아리무라 용암전망대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활화산. 남악분화구에서 유황냄새가 나는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아리무라 용암전망대를 떠나 기리시마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기리시마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에비노고원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험한 산악도로다.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천길 낭떠러지다. 온몸을 짜릿함을 느낀다. 가끔 가파른 산기슭에 자리잡은 온천이 나타난다. 에비노고원에도 온천이 꽤나 많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에비노고원 산기슭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드리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나무들의 수령이 적어도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한국이 원산지인 소나무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다른 곳과는 달리 왜 이 곳에만 유독 조선소나무가 있는 것일까?
에비노고원에는 한반도가 가장 잘 보인다는 한국악(韓國岳)이 있다. 먼 옛날 한반도에서 이 곳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이 산에 올라 고향땅을 바라보면서 향수를 달랬다. 한국악의 산머리도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반도 유민들은 이 산에 한국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고국의 상징이랄 수 있는 조선소나무 씨앗을 받아다가 여기다 뿌렸다. 그 씨앗들이 자라서 오늘날 이렇게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로 자라난 것이다. 일본의 지배층은 일본의 역사에서 한국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한 때 한국악을 발음만 같은 다른 이름으로 바꿨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주민들의 반발에 부닥친 그들은 한국악이라는 이름을 도로 되돌려 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고고학과 고대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드러난다. 일제시대 조선을 통치했던 일본의 지배층이나 학자들은 식민지 백성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것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볼 때 조선인같은 열등한 민족을 어떻게 자신들의 조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또 조선인이 그들의 조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식민지배의 윤리성이나 정당성에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들의 조상을 침략해서 식민지로 만드는 것은 불쌍놈들이나 할 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식민통치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한반도의 고대사를 말살하고 왜곡하는데 광분하게 된다. 그들은 식민사관과 천황제 합리화를 위해서 온갖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고대사가 빈약하게 된 것은 이처럼 비양심적인 일본학자들에 의한 한국 고대사 말살과 왜곡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가파른 길을 벗어나자 경사가 완만한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다. 사슴 몇 마리가 길가에까지 내려와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사슴은 본래 겁이 많은 동물이라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차에서 내려 먹다 남은 오징어를 사슴에게 내민다. 그러나 사슴은 냄새를 맡고는 이내 머리를 돌린다. 그제서야 나는 사슴이 초식동물이라는 것을 퍼뜩 깨닫는다.
▲ 에비노고원에 나타난 사슴떼. 사슴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를 받아먹는다. 맨 끝 사람이 필자
에비노고원 정상부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전망이 좋지 않다. 억새가 무성한 정상부에는 물이 고인 자그마한 분화구가 하나 있다. 고원 전체가 눈속에 묻혀 있다. '에비'는 일본말로 새우라는 뜻이다. 억새가 우거진 고원이 석양빛을 받을 때 멀리서 보면 마치 새우떼처럼 보인다고 해서 에비노고원이란 이름이 붙었다. 안개때문에 한국악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악에 올라 현해탄 건너 한반도를 바라보려던 생각은 아무래도 포기해야겠다. 움푹 패인 절구통 모양으로 생긴 한국악은 해발 1700m에 이르는 거대산맥이라고 한다. 에비노고원 휴게소에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이 있다. 하얀 김이 피어 오르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앉으니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 에비노고원 휴게소 바로 앞에서 솟아나는 노천온천수.
에비노고원을 내려와 기리시마 신궁을 보러 갔다. 기리시마 신궁은 아름드리 삼나무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궁안에는 수백 년은 묵었음직한 세 아름드리 삼나무가 신목처럼 서 있다. 기리시마 신궁은 일본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아마테라스(태양의 신)의 손자를 모시는 곳이다.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신들을 모시는 곳을 신궁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신사라고 한다. 신궁을 나설 때 쯤 해는 이미 서산에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 기리시마 신궁에서 바라본 일몰.
가고시마 시내로 돌아와 쿄세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온천에서 온천욕을 한 다음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역시 생선요리가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것저것 맛보느라 오늘 저녁도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 쿄세라 호텔의 교회풍 결혼예식장. 일본의 젊은이들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한다고 한다.
객실로 돌아와 물을 한 잔 마시려고 하니 물병이나 정수기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를 틀려고 하는데 일본말로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임'이라고 씌어 있는 쪽지가 놓여 있다. 물을 한 잔 따라서 마셔 본다. 이 정도면 물맛도 괜찮은 편이다. 내가 사는 충주에서도 수도물은 마시지 않는다. 수질이 그만큼 오염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도물은 깨끗해서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일찌기 수질오염이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구마모토 미나마타만 연안주민들이 메틸수은에 중독되어 발생한 미나마타병, 도야마현 미쯔이 아연공장에서 배출한 카드뮴이 원인이 된 이타이이타이병 이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수질오염 문제에 직면한 일본은 이때부터 하천과 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일본의 수도물은 오늘날 사람들이 마음놓고 마실 수 있는 물이 된 것이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테라스로 나간다. 밤공기가 선선하다. 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이다. 깊어가는 가고시마의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다.
200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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