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미륵산 당래선원 관음암을 찾아서

林 山 2008. 4. 14. 14:33

지난 주말에는 전국의 사찰 순례차 통영의 미륵산(彌勒山) 용화사(龍華寺)와 미래사(彌來寺)를 찾았었다. 오늘은 미륵산 당래선원(當來禪院) 관음암(觀音庵)을 돌아보려고 한다. 관음암을 둘러본 다음에는 동국선원(東國禪院) 도솔암(兜率庵)을 거쳐 미륵산에도 오를 생각이다.

 

천리길을 달려와 통영운하 건너편의 미륵도를 바라본다. 불자들 사이에서 미륵하생지로 일컬어지는 미륵도에는 바야흐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연두색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미륵산 산기슭에 약동하는 생명기운이 차고 넘친다. 

 

통영운하에서 바라본 미륵산

 

한국의 불교문화는 산에서 꽃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때로 산은 부처나 보살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통해서 신심이 깊은 불자들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이 산이름에 투영된 결과이다. 그래서 전국각지의 산이름을 보면 미타산, 불암산, 비로봉, 석가봉, 관음봉, 보현봉, 문수봉, 반야봉, 천왕봉, 나한봉, 도솔봉 등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가진 이름들이 많다. 통영의 미륵산도 마찬가지다. 당시 민중들의 미륵불 신앙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산에다가 미륵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과거불인 연등불(燃燈佛)과 현세불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다녀가셨어도 이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민중들은 절망적인 이 세상이 뒤엎어지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해방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민중들의 이러한 여망을 이용해서 미륵불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났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이들은 진정한 미륵불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민중들은 더욱 더 진짜 미륵불이 어서 빨리 나타나서 썩어빠진 세상을 구원해줄 것을 갈망했다.

 

민중들은 미륵불이 하생할 땅을 찾았다. 그 땅은 바로 통영의 미륵도였으며, 미륵산이었다. 미륵산은 도솔천에서 머물던 미륵보살이 이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서 성불한 뒤 세 차례에 걸친 설법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진리의 눈을 뜨게 할 이상적인 장소로 믿어져 왔다. 그리하여 불자들은 미륵산 기슭에 미륵도량을 마련하고 미륵불이 하생하여 용화세상을 열어줄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미륵산 기슭에 자리잡은 용화사, 미래사, 관음암, 도솔암은 이러한 미륵불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찰들이다. 

 

용화사와 관음암, 도솔암을 품고 있는 미륵산 북쪽 기슭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의 산세를 가지고 있다. 즉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장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며, 새로운 세상이 열릴 자리니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할 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 모악산 금산사와 더불어 미륵산 용화사가 미륵불 신앙의 중심지가 된 것은 바로 이러한 풍수지리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륵산의 산세를 살펴보자. 작은망(정토봉)은 금닭의 머리와 몸통, 미륵산 제일봉 큰망(미륵봉, 461m)에서 봉평동을 감싸안듯 뻗어내린 산줄기는 오른쪽 날개, 천지봉에서 봉평동을 휘감으면서 뻗어내린 산줄기는 왼쪽 날개에 해당한다. 작은망에서 뻗어내려 봉긋이 솟은 봉우리는 안산으로 금닭의 알에 해당되는 자리다. 용화사는 바로 이 안산에 자리잡고 있고, 용화사 산내암자인 관음암과 도솔암은 왼쪽 날개가 품고 있는 형국이다. 

 

사찰의 건립연대를 보면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은 도솔암, 중간에 있는 관음암, 맨 밑에 있는 용화사 순으로 세워졌다. 즉 이들 사찰들은 위에서부터 아래를 향해서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이 땅에 내려오듯이...... 그렇다면 도솔암은 미륵보살이 머물면서 천인들에게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 관음암은 미륵불이 하생하기 전까지 미륵불을 대신해서 중생들을 구원하는 관세음보살의 상주처, 용화사는 미륵불이 하생한 뒤 '삼회도인'을 통해서 새롭게 열릴 용화세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통영시 봉평동 벚꽃길

 

봉평동 봉숫골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우수수 꽃비가  되어 내린다. 마침 '봉숫골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좁은 거리가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음암 가는 길

 

용화소류지를 왼쪽으로 끼고 관음암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선다. 산기슭에 우거진 나무들은 새봄을 맞아 이제 막 연두색 새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관음암 차밭

 

용화사의 산내 암자로, 1618년(조선 숙종 7년) 옛 정수사 자리에 청안 선사(淸眼禪師)와 담찬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관음암에 이른다. 관음암 바로 앞에는 자그마한 녹차밭이 마련되어 있다. 관음암 스님들이 마실 차를 여기서 재배하는 것이리라. 다선일체(茶禪一體)라는 말이 있다. 다도(茶道)와 선법(禪法)은 하나라는 뜻이다.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는 과정을 통해서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렷다! 그러니 차 한 잔도 몸과 마음을 다해서 마실 일이다.  

 

관음암 보광루

 

 

당래선원 편액

 

 

보광루 편액

 

가파른 돌계단 위에 돌로 쌓은 홍예문에는 '제일가람불이문(第一伽藍不二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불이문 위에 세워진 다포계 팔작지붕의 보광루(普光樓)가 성문의 누각처럼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정면에는 '당래선원(當來禪院)'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불자들이 극락왕생을 위해서 시방(十方)의 부처와 보살의 이름을 염불하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란 것이 있다. 칭명염불을 십념(十念)이라고도 한다.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구품도사(九品導師) 아미타불(阿彌陀佛), 당래하생(當來下生) 미륵존불(彌勒尊佛), 시방삼세(十方三世) 일체제불(一切諸佛), 시방삼세(十方三世) 일체존법(一切尊法), 대성(大聖)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대행(大行) 보현보살(普賢菩薩), 대비(大悲)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地藏菩薩), 대지(大智) 세지보살(勢至菩薩), 제존(諸尊)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 기도에 감응해 주시는 보신 노사나 부처님, 중생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화신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극락세계 주인이신 아미타 부처님, 미래중생의 구원자이신 미륵부처님이시여, 시공을 초월하여 두루 충만하신 모든 부처님이시여, 시공을 초월하여 두루 충만하신 모든 거룩한 진리여, 반야지혜의 큰 복덕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는 문수사리보살님, 큰 실천으로 중생을 인도하시는 보현보살님, 큰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님, 큰 원력으로 중생을 구제하시는 지장보살님, 큰 지혜의 위세로 중생을 구원하시는 세지보살님, 거룩하신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 지극정성으로 귀의하오니 큰 지혜로 중생들을 불국정토로 인도하소서.'

 

당래하생 미륵존불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륵산은 불자들 사이에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에 이어 미륵불 하생 후 3차 설법지로 믿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당래선원은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3차 설법을 하러 미래에 오실 당래교주인 미륵불을 염원하면서 참선하는 도량이란 뜻이다. 이 선원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은 바로 미륵불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구도자는 스스로 미륵불이 되기를 서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當來禪院' 편액 글씨는 미래사(1960)와 용화사 주지(1962∼1984)를 역임했던 회광 승찬(廻光僧讚, 1924∼1996) 스님의 필적이다. 불기 2532년은 서기 1978년이니 회광 스님이 용화사 주지로 있을 때 이 글씨를 쓴 것으로 보인다.

 

회광 스님은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효봉(曉峰) 스님을 은사, 탄허(呑虛) 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어 통도사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은 이후 해인사 가야총림에서 12하안거를 보냈다. 1984년 전국 불일회(佛日會) 총재와 효봉문도회 문장(門長), 1987년 송광사 부설 연구기관인 보조사상연구원의 총재, 1990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1994년 조계총림 제4대 방장, 1995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단일계단 수계산림 증사(證師)의 자리를 두루 역임한 회광 스님은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세속 나이 73세, 법랍 50년으로 입적하였다. 

 

一擧一投卽禮佛 일거일투즉예불
言言語語是誦經 언언어어시송경
若無禮佛誦經時 약무례불송경시
 閑日樓上一太鍾 한일누상일태종 

 

일거수 일투족이 곧 예불이어야 하고
내뱉는 말마다 경전 암송이 되어야 하리 
만약에 예불과 송경을 게을리 할 때에는 
어느 날 누각 위에 걸린 크고도 큰 종을 보게 되리.

-회광 스님 오도송(悟道頌)-

 

念起念滅卽生死 염기염멸즉생사
無起無滅卽涅槃 무기무멸즉열반
生死涅槃誰由事 생사열반수유사
古往今來手裏掌 고왕금래수리장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곧 생사요
일어남도 사라짐도 없는 것이 곧 열반이라.
생사 열반이 누구로 말미암아 있는 것일까?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손등과 손바닥일 뿐.

-회광 스님 임종게(臨終偈)-

 

회광 스님은 송광사의 '목우가풍(牧牛家風)'을 늘 강조하면서 철저한 수행과 지계행(持戒行)으로 존경받던 큰스님이었다. 입적시에 남긴 스님의 오도송과 임종게 한 구절 구절이 죽비로 날아들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누문 안쪽에 걸린 '普光樓' 편액 글씨는 주자서체(朱子書體)로 유명한 차우 김찬균(此愚金瓚均 1910~?) 선생이 썼다. 편액 우측 상단에는 '일체유심조(一切惟心造)'가 새겨진 한반도 형상의 두인이 찍혀 있다. 그런데 이 편액 글씨를 쓴 연대가 불기 297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이상하다. 불기 2974년은 서기 2420년에 해당한다. 아마도 서기 1974년을 잘못 쓴 것이 아닐까? 아니면 2420년에 쓸 것을 미리 쓴 것일까?

  

관음전

 

 

관음암 전경

 

보광루를 지나 잔디가 깔려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선다. 청기와를 얹은 ㄷ자형 팔작지붕의 관음전(觀音殿)은 정면에서 왼쪽으로 살짝 비켜서 앉아 있다. 관음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미륵존불탑(彌勒尊佛塔), 그 왼쪽의 연지(蓮池)에는 팔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보광루 바로 앞에는 속세의 번뇌를 모두 씻으라는 듯 석조(石槽)를 세워 놓았다. 그 오른쪽에는 삼탑불사기념비(三塔佛事記念碑)가 서 있다.

 

맨 오른쪽에는 산기슭에 기대어 청기와 지붕의 요사채 한 채가 앉아 있다. 절 살림을 맡은 보살님이 인기척에 밖을 내다본다. 관음전과 요사채 사이에 세워진 돌기둥 위에는 돌기러기 한 마리가 선정에 든 듯 고요히 앉아 있다.  

 

관음전 뒤편 언덕에는 백의관세음보살상(白衣觀世音菩薩像)을 새긴 탑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으로 거지전(車遲殿)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전각이 자리잡고 있다. 거지전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작은 전각은 산신각(山神閣)이다.      

 

관음전 석조관세음보살좌상

 

 

관음전 신장상

 

관음전 안으로 들어가 관세음보살님 전에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존재들이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빌면서 합장반배의 예를 올린다.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이 석조관음보살좌상(統營龍華寺石造觀音菩薩坐像, 경남유형문화재 제438호)은 강희(康熙) 22년(癸亥, 1683년)  색난(色難) 금어(金魚:불상을 그리는 사람)와 그 제자들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이 42cm의 작고 아담한 이 석불좌상은 몸통에 비해 머리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단정한 자세로 선정에 든 모습이다. 가부좌를 튼 자세에서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올린 오른쪽 발을 짚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아래로 향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석가모니불의 오른손이 취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흡사한 수인이다. 오른쪽 무릎 위에 얹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중지와 무명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손가락 모양만으로 보자면 이것은 아미타구품정인(阿彌陀九品定印) 중에서 중지를 구부려 엄지에 대는 중생인(中生印)과 무명지를 구부려 엄지에 대는 하생인(下生印)을 동시에 취한 다소 특이한 수인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고, 그 위에 대의를 두른 변형통견식이다.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빼내어 왼쪽 어깨 위로 넘긴 대의 자락은 바닥까지 길게 늘어지도록 하였고, 가슴의 승각기는 수평으로 접은 다음 띠로 묶어서 처리하였다. 결가부좌 위로 흘러내려 부채살처럼 퍼진 주름진 옷자락의 곡선미가 아름답다.

 

관세음보살 옆에는 비파로 보이는 악기를 든 신장상이 봉안되어 있다. 신장님께도 반배합장으로 예를 올린다. 비파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천왕 가운데 한 분인 동방(東方)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역대 조사 초상화

 

 

효봉 대종사 사진

 

관음전 왼쪽 벽에 설치한 불단에는 두 분 조사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고, 그 바로 위에는 효봉 대종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세 분 조사님 앞에서도 반배합장으로 예를 올린다. 왼쪽의 초상화는 탕건을 쓴 모습으로 볼 때 효봉 선사의 스승인 석두 보택(石頭寶澤, 1882~1954) 선사가 아닌가 추측된다. 오른쪽의 온화하고 인자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스님의 초상화는 어느 분인지 모르겠다.

 

초상화 한가운데에는 시방법계일체유주무주각열위열명영가(十方法界一切有主無主各列位列名靈駕)라고 쓴 위패(位牌)가 모셔져 있다. 삼단으로 이루어진 위패의 하단에는 오색운(五色雲), 중단과 상단에는 비조(飛鳥)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명(銘)에 씌어 있는 대로 주인이 있건 없건 시방세계의 모든 영가들을 모신 위패다. 이처럼 모든 영가들을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시고 있는 관음암 스님들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깨닫는다.   

 

위패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 위패를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겨 단(檀)과 묘(廟), 원(院), 절 등에 모신다. 위패를 목주(木柱)나 영위(靈位), 위판(位版), 신주(神主)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위패는 죽은 사람의 성명이나 법명(法名)을 적어서 제사를 지내는 직사각형의 나무패를 말한다. 그 기원은 유가(儒家)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용 과정에서 불교적 장엄이 가해져 위패 자체의 장식이 화려하다.

 

관음암 나무미륵존불탑

 

 관음전 앞뜰에 고즈넉이 서 있는 미륵존불탑비에는 붉은색으로 오목새김한 나무미륵존불(南無彌勒尊佛)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3차 설법을 하러 오실 당래교주인 미륵존불님이 이 세상에 미리 오셔서 이렇게 돌비석으로 서 계심인가!  

 

관음암 연지 팔층석탑

 

물이 바싹 말라서 바닥이 드러난 연지 한가운데에는 돌을 깎아 팔각형의 섬을 만들어 팔층석탑을 세운 연지에는 물이 바싹 말라서 바닥이 드러나 있다. 가파른 산허리를 파서 연못을 만든 까닭에 물이 고여 있기가 힘들 것이다. 호리호리하고 날씬해서 더욱 높아 보이는 팔층석탑은 왠지 관음암의 전각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얼레지꽃

 

연지 뒤편 산기슭에는 때마침 보라색 얼레지꽃이 아래를 향해서 활짝 피어 있다. 가재무릇이라고도 하는 얼레지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보춘화 가운데 하나다. 꽃이 아름다와 분재로 만들어도 좋고 화단에 심어도 좋다.

 

봄철에는 얼레지의 어린 잎으로 국을 끓이거나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가을에는 비늘줄기를 캐어서 쪄 먹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먹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늘줄기에는 건위지사(健胃止瀉), 진토(鎭吐)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위장염이나 구토, 설사, 화상 등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했다. 

 

관음암 거지전

 

 

거지전의 미산전 편액

 

관음전을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면 고색창연한 거지전 앞에 서게 된다. '거지전(車遲殿)'은 '수레바퀴를 천천히 굴리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이 전각에서 수행하는 납자들은 단박에 깨달은 뒤 수레바퀴를 굴리듯 서서히 번뇌를 소멸시키자는 그런 뜻이리라. 효봉 문중이 보조국사 지눌의 선맥을 잇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 편액에는 바로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거지전의 양쪽 옆 처마밑에는 각각 미산전(彌山殿)과 회광전(廻光殿)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아마도 미산 스님과 회광 스님이 여기 주석하셨던가 보다.

 

관음암 백의관세음보살상

 

관음전 바로 뒤편 산기슭에는 백의관세음보살상을 새긴 탑비가 세워져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다. 뒤에는 광배가 그려져 있다. 

 

관세음보살님 전에 반배합장으로 예를 올린다. 그 명호만을 일심으로 부르기만 해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구원을 바라는 중생의 근기에 맞게 천변만화의 모습으로 보문시현(普門示現)하여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한 줄기 봄바람이 대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 저 대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문득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삼마디에 들었다가 대나무숲에 스치우는 바람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동산(東山) 대종사가 떠오른다. 나도 한 줄기 바람인 것을......

 

관음암을 떠나 도솔암으로 향하다.

 

  

2008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