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눈을 뜨다. 오늘은 8월 15일 수요일, 광복절의 아침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타운(Cape Town)에서 맞이한다. 어제 밤에는 객실에 난방이 되지 않아 추워서 벌벌 떨다가 할 수 없이 윈드 자켓과 등산복을 입어야만 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자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케이프 반도 지도
Imaliyam-남아공 드라켄스버그 소년합창단
케이프 반도 지도를 펴놓고 하루의 일정을 잡아 본다. 오늘은 먼저 넬슨 로히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hihlahla Mandela, 1918~) 남아공 전 대통령이 감옥생활을 했던 로빈 아일랜드(Robben Island)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케이프 타운의 강남이라는 워터프론트(V & A Waterfront)를 돌아볼 생각이다. 그 다음 시 포인트(Sea Point)에서 남쪽으로 캄프스 베이(Camps Bay), 하우트 베이(Hout Bay)를 거쳐 환상적인 해안도로라는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Chapman's Peak Drive)를 따라 대서양의 해안경치를 두루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에 오를 생각이다.
라군 비치 호텔
라군 비치 호텔(Ragoon Beach Hotel) 레스토랑에서 빵과 베이컨, 햄, 소시지,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남아공에 여행차 왔다는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남편이 공주와 인천에서 노인요양병원을 하고 있다는 전미자 씨는 케이프 타운 대학교 의과대학에 아들의 유학을 알아보기 위해서 어린 딸과 함께 왔다고 한다. 케이프 타운에는 현재 약 백여 명 정도의 한국 유학생이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중년의 부부는 남아공과 한국을 오고가면서 할 수 있는 유망한 사업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산 너머 물 건너 머나먼 이국 땅에서 서로 말이 통하는 고국의 동포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작별을 고한다.
라군 비치 호텔에서 바라본 로빈 아일랜드
밀너톤의 라군 비치 호텔 백사장에서 바라본 테이블 마운틴
호텔에서는 테이블 베이(Table Bay)와 그 너머로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워터픈론트를 출항한 대형 선박이 어디론가 떠나고 그 옆으로 로빈 아일랜드가 떠 있다. 바닷가를 따라서 드넓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을 가로질러 거대한 절벽의 산 정상이 대패로 민 듯 탁자처럼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식탁산, 1087m)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오른쪽으로 사자 머리 형상의 라이온스 헤드(Lions Head, 669m)와 시그널 힐(Signal Hill, 350m)이 나란히 솟아 있다.
테이블 마운틴의 왼쪽 끝 봉우리가 데빌스 피크(Devils Peak, 악마의 봉우리)이고, 오른쪽 끝에 케이블 카 승강장(Upper Cable Station)이 있다. 평일에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 시그널 힐은 사자의 엉덩이에 해당한다고 해서 라이온스 럼프(Lions Rump)라고도 부른다. 시그널 힐 바로 앞이 워터프론트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시그널 힐로 이어지는 스카이 라인이 멋지다.
요하네스버그의 비트워터스랜드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아들 정하가 운전하는 포드(Ford)사의 해치 백 피에스타(Piesta) V6를 타고 워터프론트로 향한다. 피에스타는 어제 케이프 타운 공항 근처에 있는 '아비스 렌트 카(Avis rent car)'에서 3일에 1435란트(land, 한화로 약 18만6천5백5십원)를 주고 빌렸다. 정하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종일 운전을 해야 한다.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하만이 국제운전면허를 갖고 있고, 가족 중 유일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한국과는 정반대로 자동차의 핸들이 오른쪽에 달려 있고, 차량도 우측 통행이어서 나같은 사람은 면허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워터프론트 항
테이블 베이의 해안도로를 따라서 워터프론트 항으로 들어선다. 워터프론트 항은 산과 바다, 그리고 유럽풍의 건물들이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항구다. 크고 작은 배들이 내항의 잔잔한 수면을 가르면서 분주하게 오고간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이 날카롭게 우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갑자기 새하얀 구름이 테이블 마운틴을 뒤덮더니 테이블 베이로 쏟아져 내려온다. 이른바 테이블 크로스(Table Cross, 식탁보)라는 것이다. 수시로 몰려왔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곤 하는 테이블 크로스가 장관이다. 테이블 크로스는 가끔 빗방울을 뿌리기도 한다. 대서양의 파도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테이블 마운틴을 넘어올 때 고도에 따라 차가와지면서 구름이 끊임없이 생성된다고 한다.
워터프론트는 부두나 선창을 을 뜻하는 보통명사인데, 여기서는 고유명사화 되어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문득 터키 출신 엘리아 카잔(Elias Kazanjoglou, 1909~2003)이 감독하고,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Jr. 1924~2004)와 칼 말든(Karl Malden, 1912~), 리 제이 콥(Lee J. Cobb, 1911~1976), 로드 스타이거(Rod Steiger, 1925~2002), 에바 마리 세인트(Eva Marie Saint, 1924~) 등 쟁쟁한 명배우들이 출연한 로맨스 멜로물에 범죄물이 가미된 영화 '워터프론트(원제 on The Waterfront)'가 떠오른다. 뉴욕의 부두를 배경으로 항만노동조합의 폭력조직 두목 조니(리 제이 콥)의 부하 테리 맬로이(말론 브란도)가 자기 때문에 죽은 친구 조이의 여동생 에디(에바 마리 세인트)의 사랑에 감화되어 노조를 장악한 무리들과의 목숨을 건 대결 끝에 새로운 삶의 행복을 찾는다는 다소 사회성이 짙은 영화다. 극중 인물 배리 신부(칼 말든)는 부두의 성자로 알려진 존 그리단이라는 실존인물이다.
1950년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의 선동으로 불어닥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엘리아 카잔도 1952년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고백하고 전향하여 미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동료 영화인을 고발하는 일에 동원된 전력이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변명과 반성의 의미로 엘리아 카잔은 1954년 흑백필름으로 '워터프론트'를 만들었다. 당시 어두웠던 미국 사회를 처절하게 비판한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편집상 등 8개의 상을 휩쓸고,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도 수상했다. 또 '미국 영화 백주년의 해'를 맞아 미국 영화연구소가 선정한 100대 명화 중 8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런 명화가 한국에서는 1995년이 되어서야 비디오로 출시되고, 1998년에서야 TV에 방영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짙은 사회성 때문일까? 엘리아 카잔은 '워터프론트' 외에도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드 주연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제임스 딘과 줄리 해리스 주연의 '에덴의 동쪽',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 주연의 '초원의 빛', 그레고리 펙과 도로시 맥과이어 주연의 '신사협정'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가 감독한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말론 브란도는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프라시스 포드 코플라가 감독한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월터 E. 쿠르츠 대령 역과 '대부'에서의 비토 꼴레오네 역을 맡아서 보여준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명연기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클? 타워 쇼핑 센터
넬슨 만델라 게이트 웨이
로빈 아일랜드로 가는 배표를 구하기 위해 클러크 타워 쇼핑 센터(Clock Tower Shopping Centre) 바로 앞에 있는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Nelson Mandela Gateway)로 향한다. 게이트웨이는 관문(關門)을 말한다. 쇼핑 센터 광장에 세워진 붉은색 벽의 시계탑이 인상적이다. 시계탑 벽에는 워터프론트 안내지도가 붙어 있고, 안에는 관광안내원이 근무하고 있다.
게이트웨이로 들어가니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거려 마치 인종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배삯표를 보니 탐방비를 포함해서 1인당 150란트다. 정하가 창구에서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이틀 뒤인 금요일분까지 배표가 매진되었단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조벅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올 걸..... 로빈 아일랜드 감옥를 찾아 야만적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 정책으로 악명 높은 백인정권에 대한 넬슨 만델라의 고귀한 투쟁의 흔적을 되새겨보고자 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할 수 없이 게이트웨이 2층 전시실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이곳에는 넬슨 만델라를 비롯해서 로빈 아일랜드 감옥에 수감되었던 유명 인사들의 사진과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빈 아일랜드는 테이블 베이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작은 바위섬으로 게이트웨이에서 배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4백여 년 동안 네덜란드인에 이어 영국인들의 백인정권은 이 섬에 감옥을 설치하고 식민지배와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아프리카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 사회적으로 추방된 정신병자와 나환자들을 격리 수용하였다. 특히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이곳은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악명높은 감옥으로 유명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 전투조직인 '국민의 창' 사건이 터지자 넬슨 만델라는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964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이곳에 갇혀 있었다.
로빈 아일랜드에는 투옥된 인사들에게 살인적인 강제노동을 시켰던 채석장과 그 바로 위에 황량한 돌무덤이 있다. 무자비한 중노동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면 스스로 판 구덩이에 자기자신이 묻혔던 것이다. 그러나 백인정권의 혹독한 탄압에도 흑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흑인들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직면한 백인정권은 마침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기하고 1991년 마지막으로 정치범들을 석방하였다.
로빈 아일랜드 감옥 유적은 이처럼 남아공의 어두운 역사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또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천부적 인권에 대한 인간정신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6년 이 감옥 유적은 남아공 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지정되었고, 1999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백인들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반문명적 반인류적 범죄의 현장을 길이 잘 보존해서 인류에게 영원한 교훈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워터프론트의 대형 상가
조선소
넬슨 만델라 게이트웨이를 나와 워터프론트 상업지구 중심가를 돌아보기로 한다. 대형 쇼핑 몰과 편의점, 레스토랑, 주점, 카페테리아, 해양 스포츠 레저 시설들이 부두를 따라서 죽 늘어서 있다. 조선소 도크에는 선박 기술자들이 선체를 빨갛게 칠한 니베라(Neavera)호를 올려놓고 수리하고 있다.
'뮤지카(Musica)'라는 초대형 음반전문매장에서 남아프리카 뮤지션들이 만든 시디(CD) 3장을 샀다. '이피 은톰비(Ipi N'tombi)'라는 타이틀의 시디는 1974년 버사 에그노스(Bertha Egnos Godfrey)가 작곡하고 그녀의 딸 게일 라키어(Gail Lakier)가 가사를 쓴 뮤지컬이다. 남아프리카 줄루(Zulu)족의 민요였던 '이피 은톰비'는 '내 사랑은 어디에?(Where is the beloved?)'로 번역된다. 한 흑인 청년이 고향을 떠나자 그의 젊은 부인은 요하네스버그의 광산에서 일을 하면서 남편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다른 두 장은 'African Ladies of Song'과 'The Great South African Trip'이라는 타이틀의 시디다.
남아공 역대 노벨상 수상자 동상
소웨토 봉기 기념 조형물
'뮤지카' 음반매장 바로 앞에는 광장이 있다. 광장에는 남아공 역대 노벨 평화상 수장자 네 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한 나라에서 네 명씩이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나라가 또 있을까?
맨 왼쪽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은 1952년에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총재로 당선된 앨버트 루툴리(Nkosi Albert Luthuli, 1898~1967)다. 그는 1960년 당시 남아공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저항하는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 옆에 뒷짐을 지고 선 사람은 데스몬드 투투(Emeritus Desmond Tutu, 1931~) 주교인데 1984년 역시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수상 2년 뒤인 1986년 그는 케이프 타운 대주교 및 남아공 성공회의 의장 대주교가 되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1989년에서 1994년까지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 Frederik Willem De Klerk, 1936~)와 넬슨 만델라다. 데 클레르크는 백인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남아공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한 공로로 1993년 넬슨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만델라는 남아공 민주화 이후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남아공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들 네 사람 외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두 사람 더 있다. 한 사람은 1951년 황열병 백신에 대한 연구 업적이 인정되어 생리학 의학 부문 노벨상을 받은 미생물학 전공 의학자 맥스 테일러(Max Theiler, 1899~1992)이고, 또 한 사람은 '보호주의자'라는 작품으로 199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여류 소설가 나딘 고디머(Nadine Gordimer, 1923~)다. 그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의 사회와 정치를 뛰어난 심리묘사와 장엄한 서사문학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소웨토(Soweto) 봉기(蜂起)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소웨토는 남아공 백인정권이 요하네스버그와 인접한 남서쪽에 세운 남아공 최대의 흑인 거주지역이다. 소웨토 봉기는 1976년 백인정권이 소웨토에서 아프리칸스(옛 네덜란드 식민정부 언어)를 정규 교과과목으로 채택하려는 데 대해 반대시위를 벌이던 군중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13세의 흑인 소년이 사망함으로써 일어난 흑인 저항운동이다. 봉기 이후 1년간 남아공 전역으로 확산된 흑인 저항운동으로 공식 추산 575명(민간조사기구 발표는 1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백인정권은 소웨토 봉기를 계기로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흑인들의 불만이 폭발직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유화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봉기를 통해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잠재력이 백인정권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더 치열하게 저항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1992년, 350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백인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이 철폐되고,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 후 남아공 흑인들은 소웨토 봉기가 일어난 날을 '의식개혁의 날'로 정해서 흑인 최대의 기념일로 삼고 있다.
소웨토 봉기는 여러모로 광주민중항쟁과 비교가 된다. 소웨토 봉기를 시발점으로 남아공 흑인들은 야만적인 백인정권을 종식시키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권리들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돌이켜 보면 한국은 역사상 단 한번도 민중봉기가 성공하지 못하고, 또 단 한번도 부끄러운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지식인 나아가 지성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식인이나 지성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하는 지성인의 사명이 새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아공의 흑인들이 진실로 존경스럽다.
클렄 타워 광장의 루티스 레스토랑
워터프론트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다. 클? 타워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루티스 레스토랑(Rooti's Restaurant)에 자리를 잡는다. 여기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노천 식당이다. 참치에 마요네즈를 곁들인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한끼를 때우기로 한다.
식당에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들이고, 서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흑인들이 정치적 자유는 쟁취했지만 경제적 정의는 실현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 그만큼 남아공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림바 밴드 '아프리칸 드림'
'아프리칸 드림'의 거리 공연
밴드를 구경하는 흑인 젊은이들
광장에서는 '아프리칸 드림'이라는 그룹명을 가진 마림바(Marimba) 밴드가 거리공연을 시작한다. 빠르고 단조로운 리듬이 반복되는 마림바 특유의 경쾌하고 흥겨운 연주가 광장에 울려 퍼진다. 뜻하지 않게 남아공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게 되었으니 행운이다. 세 개의 마림바와 하나의 북, 하나의 사다리꼴 쇠통 비슷한 악기로 오케스트라 못지 않은 연주를 들려준다. 타악기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심장이 힘차게 고동치는 소리다. 그래서 주술사의 주술처럼 빠르고 단조로운 리듬이 끝없이 반복되는 타악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된다.
마림바는 아프리카에서 실로폰을 가리키는 여러 이름들 중 하나로 각각의 소리막대에 음높이를 고정하기 위해 호리병박을 공명체로 사용하는 악기다. 호리병박을 공명체로 사용한 실로폰이 곧 마림바다. 실로폰은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마림바'라는 이름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전해졌다. 그후 마림바는 중앙 아메리카의 대중적 민속악기가 되었다. 공명관을 금속관으로 만든 관현악용 마림바는 관현악용 실로폰보다 음역이 한 옥타브 낮다. 마림바 중에는 실로림바(Xylorimba)라는 초대형 마림바도 있다. 폴 크레스턴(미국)의 마림바 협주곡(1940), 다리스 미요(프랑스)의 협주곡(1947)은 마림바 음악이다.
연주를 잠시 멈춘 밴드 멤버들이 광장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들이 제작한 '이모우션스(Emotions)'라는 타이틀의 음반 시디를 관중들에게 판매한다. 나도 시디 한 장을 산다. 판매를 마친 밴드 멤버들은 시디에 수록된 곡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려준다. 음반에는 'Vulamasango'비롯해서 'Waterfalls", 'Kelorele', 'Emva Kwendlu', 'Ndilandelwa Yinkle', 'Ingculaza', 'Tribal Trance', 'Ny108', 'African Dream', 'Abazingeli' 등 총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때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녀 흑인 고등학생들이 밴드를 둘러싸더니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밴드의 휴식과 함께 잠시 쉬었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바로 춤이 나온다. 흑인들은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느 한 학생이 신호를 하는가 싶더니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꼭지점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이어서 '기차춤'도 보여준다. 케이프 타운에서 꼭지점 댄스를 보다니! 한국에서 본 꼭지점 댄스보다 훨씬 더 율동감이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정말 아름답고 멋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흑인 고등학생들로 인해 광장은 가벼운 흥분이 감도는 축제의 분위기에 빠진다. 나도 신명나는 축제마당의 일원이 되어 참가한다. 음악과 춤에 몰두하는 흑인 학생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저렇게 자유로운 영혼들이 오랜 세월 백인들에 의해 억눌려 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자유로운 영혼들이여 영원하라!
힙합 그룹의 거리 공연
마림바 배드가 공연을 끝내자마자 그 뒤를 이어서 또 한 팀이 등장하여 공연을 시작한다. 검은색 바탕에 두 개의 흰 줄을 박은 바지에 청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중에서 흰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리더로 보인다. 이들이 율동을 하면서 힙합 비스무리한 노래를 부르는데, 무슨 내용인지 도통 모르겠다. 공연하는 모습도 어딘가 아마츄어 티가 나고 엉성해 보인다. 이들도 휴식시간에 시디를 판매하는데, 별로 내키지 않아 사지 않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저들의 공연도 훌륭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래도 나의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겠다. 힙합 그룹의 공연이 끝나자 갑자기 광장이 텅 비어 버린다. 축제의 한마당은 그렇게 끝이 났다.
워터프론트의 해양박물관 '투 오션스 아쿠아리움(Two Oceans Aquarium)'을 보기 위해 클렄 타워 광장을 떠나다.
200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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