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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기행-하우트 베이와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林 山 2008. 7. 24. 10:43

케이프 타운(Cape Town) 테이블 베이(Table Bay)의 워터프론트(V&A Waterfront)에 있는 '투 오션스 아쿠아리움(Two Oceans Aquarium)'을 돌아본 뒤, 무일레 포인트(Mouille Point)로부터 남쪽으로 씨 포인트(Sea Point)와 캄프스 베이(Camps Bay), 하우트 베이(Hout Bay)를 거쳐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Chapman's Peak Drive)에 이르는 M6번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여정에 오른다. M6번 도로는 빅토리아 드라이브(Victoria Drive)라고도 한다. 

 

빅토리아 드라이브는 테이블 베이의 워터프론트를 기점으로 대서양의 해안선을 따라가다가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를 통과한 뒤, 산악지대를 횡단하여 폴스 베이(Fals Bay)의 글렌케언(Glencairn)에 이르는 도로다. 대서양과 테이블 마운틴 산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곳곳의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관광지 중에서 캄프스 베이와 하우트 베이는 경관이 아름다운 해안마을로 유명하다. 험준하기로 이름난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는 곳곳에 가파른 바위절벽이 도사리고 있어 위험하다고 한다.

 

맨 처음 들른 곳은 씨 포인트다. 씨 포인트는 라이온스 헤드(Lion's Head)와 시그널 힐(Signal Hill)을 배경으로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휴양도시다. 이곳에는 케이프 타운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바닷물 수영장이 있다. 해변의 해수욕장을 놔두고 수영장을 따로 만든 까닭은 대서양의 바닷물이 차가운데다가 거센 파도가 수시로 밀려와 해수욕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닷물 수영장에서는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안전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기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캄프스 베이

 

Imaliyam-남아공 드라켄스버그 소년합창단

 

데이지

 

씨 포인트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클�톤(Clifton)이다. 클�톤은 캄프스 베이의 북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갯길을 내려오다가 해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와서 차를 잠시 세우고 경치를 감상한다. 길가에 활짝 핀 하얀색 데이지꽃들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캄프스 베이와 클�톤은 전 세계 부호들의 저택과 리조텔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별장지대다. 이곳 주민들은 거의 다 백인들이고 집값도 엄청나게 비싸다. 클�톤에는 네 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그중에서 세번째는 게이 비치다. 일광욕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네번째 해수욕장이다. 지금은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클�톤에서는 해마다 2월에 'Moon Struct Concert' 라는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과는 달리 남아공은 2월이 한여름이다.  

캄프스 베이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을 따라 지중해풍의 멋진 별장들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앞에는 넘실대는 대서양의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펼쳐져 있고, 뒤에는 라이온스 헤드가 멋진 모습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야자수가 자라는 열대풍의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백사장이 아름답다. 아담한 만에는 작은 바위섬들이 옹기종기 떠 있다. 대서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레스토랑에 앉아 칵테일이나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황혼이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도 좋으리라. 

 

캄프스 베이를 떠나 다시 남쪽으로 향한다. 왼쪽으로는 웅장한 테이블 마운틴 산맥과 12사도(Twelve Apostles)봉의 연봉들이 연달아 나타나고, 오른쪽으로는 가없이 넓은 대서양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코엘 베이(Koeel Bay)는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rain)의 맨 왼쪽 봉우리부터 차례로 솟아 오른 12사도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코엘 베이를 지나면 우드 크랄(Oude Kraal)이다. 우드 크랄에서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고개를 넘자 아름다운 하우트 베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우트 베이의 보초봉

 

 

하우트 베이와 보초봉

 

 

하우트 베이와 일란두노봉

 

 

하우트 베이와 표범봉

 

 

하우트 베이와 이스턴 배터리봉

 

하우트 혹은 후트(Hout)는 네덜란드어가 토착화된 아프리칸스어로 나무(Wood)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겨졌었다는데, 지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우트 베이는 남쪽 끝에서 만을 향해 튀어나온 디 조지(Die Josie)에서 가장 잘 조망된다. 디 조지에는 옛날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벙커와 참호가 있다. 벙커 지붕은 전망이 아주 좋다. 벙커의 지붕에 올라가서 대서양과 하우트 베이를 내려다 본다. 대서양은 파도가 잠잠하다. 바다의 물결이 너무나 잔잔하여 온세상이 온통 고요하고 평화로와 보인다. 낮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대서양의 수면을 은은하게 비친다. 어두운 빛이 감도는 대서양의 바다에 신비감이 감돈다. 하우트 베이는 정말 아름다운 만이다.

 

하우트 베이 건너편에 솟아 있는 보초봉(The Sentinel) 산마루에 솜처럼 새하얀 구름이 걸려 있다. 대서양과 하우트 베이를 오가는 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에 보초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리라. 저 봉우리를 보니 2006년에 개봉된 '센티넬'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클락 존슨이 감독하고 마이클 더글라스, 키퍼 서덜랜드, 킴 베이싱어, 에바 롱고리아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미 국가안보국 내에서 벌어지는 초유의 대통령 암살음모를 둘러싸고 요원들 사이의 긴박한 두뇌게임을 다룬 범죄 스릴러다. 여기서 '센티넬'은 미국의 안보를 수호하는 파수꾼을 상징한다. 

 

보초봉 바로 오른쪽에는 케이프 타운의 라이온스 헤드와 비슷한 삼각형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마침 지나가는 흑인이 있어 봉우리 이름을 물어보니 일란두노(Ilanduno Peak)봉이라고 일러준다. 그 오른쪽에 흰구름을 이고 있는 봉우리가 표범봉(The Leopard)이고, 표범봉 남쪽으로 이스턴 배터리(Eastern Battery)봉이 하우트 베이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배터리봉이란 이름이 특이하다. 

 

하우트 베이의 관광명소는 물개들이 서식하는 뒤커 아일랜드(Duiker Island)다. 뒤커 아일랜드는 하우트 베이에서 배로 20분쯤 걸리는 작은 바위섬으로 온통 물개들로 뒤덮여 있어 물개섬(Seal Island)이라고도 부른다. 이 섬에는 물개들이 계절에 따라 많을 때는 천5백마리나 모여든다고 한다. 물개의 수명은 20~40년 정도 되고, 몸무게는 3백 킬로그램까지 나간다. 물개들이 있는 곳에는 이들을 먹이로 하는 범고래나 상어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물개섬에서는 범고래와 백상아리들이 물개를 사냥하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원조 물개섬은 여기가 아니라 폴스 베이에 있다. 그런데 폴스 베이에 있는 물개섬은 편의시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디 조지의 해안에 피어난 야생화

 

디 조지의 가파른 해안기슭에는 연보라색의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난 처음에 이 꽃들이 한국에서 보던 쑥부쟁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파리를 보니 쑥부쟁이와는 많이 다르다. 꽃 모양을 보면 목마가렛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이 꽃들은 혹시 남아공의 들국화가 아닐까?   

 

디 조지에서 정하

 

디 조지에서 바라보는 하우트 베이의 풍광에 매료되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겠다.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채프먼봉로는 하우트 베이에서 시작된다. 채프먼봉로는 23란트(약 2990원)의 통행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채프먼봉로 입구에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고, 흑인 시큐리티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어제 채프먼봉로에 무너져 내린 바위덩어리들을 아직도 치우지 못해서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눈빛이 선하게 보이는 시큐리티가 설명해준다. 아들 정하가 시큐리티에게 가족들이 먼 한국에서 왔으며, 아마 이번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사정을 하자 시큐리티가 바리케이트를 열어준다.   

 

이스턴 배터리봉의 연봉들 

 

 

채프먼봉과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채프먼봉의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시큐리티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를 돌아보지 못할 뻔 했다. 채프먼봉로는 험준한 바위절벽을 깎아서 만든 도로라 아슬아슬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웅장한 바위봉우리들과 까마득한 바위절벽, 그리고 넘실대는 대서양이 어우러진 경치는 가히 절경이다. 채프먼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수직암벽지대를 ㄷ자형으로 파내어 길을 낸 곳도 있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가파르고 휘어진 도로가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경치만큼은 환상적이다. 채프먼봉로가 세계 제일의 드라이브 코스라더니 과연 그 말이 허언이 아니다.

 

얼마쯤 갔을까? 무너져 내린 바위덩어리들이 도로를 완전히 막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할 수 없이 차를 되돌려서 나오는데 산사태가 일어나 차를 덮칠까봐 은근히 겁이 난다. 하지만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이런 길은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여행을 해야 한다. 여행은 땀을 흘린 만큼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드라이브를 따라 라군 비치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오른다. 대서양에 눈부신 석양이 지고 있다. 케이프 타운에 들어와서 두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다. 호텔 레스토랑도 문을 닫은 시각이라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여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라군 비치 호텔은 콘도식 호텔이라 객실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전기밥솥은 없지만 대신에 토스터와 냄비는 갖춰져 있어서 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밥을 지을 수가 있다. 냄비에 끓인 라면맛이 기가 막히다. 아침 점심을 양식으로 먹은 터라 더 맛있다.  

 

라면을 먹은 뒤 호텔 앞 잔디밭을 잠시 산책하다가 잠자리에 들다. 테이블 베이의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2007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