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베이(Table Bay) 해변의 밀너톤(Milnerton)에 자리잡은 라군 비치 호텔(Ragoon Beach Hotel) 숙소에서 아침 일찍 눈을 뜨다. 케이프 타운(Cape Town)에 온 지 3일째다. 오늘은 케이프 타운의 상징인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 1087m)에 오른 다음 세계 10대 국립식물원 중 하나인 커스텐보쉬 국립식물원(Kirstenbosch National Botanical Garden)을 돌아보고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로 돌아갈 예정이다.
테이블 마운틴과 라이온스 헤드, 시그널 힐
Imaliyam-남아공 드라켄스버그 소년합창단
테이블 마운틴
테이블 마운틴의 테이블 크로스
라이온스 헤드와 시그널 힐
로빈 아일랜드
호텔의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호밀빵과 땅콩버터, 소시지, 콩요리, 버섯요리, 감자, 과일 등으로 아침을 먹는다. 서빙을 하는 레스토랑 직원들이 참 친절하다. 아마도 이네들의 직업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손님들 식탁에서는 영어, 독일어, 중국어, 또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언어들이 들려온다.
사방이 거대한 절벽인 테이블 마운틴은 정상을 대패로 민 듯 탁자처럼 평평하다. 그래서 테이블 마운틴(식탁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테이블 마운틴은 해발고도로 볼 때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바다에서 바로 시작하기에 꽤 높아 보인다. 테이블 마운틴 오른쪽의 사자 머리 형상을 닮은 봉우리는 라이온스 헤드(Lions Head, 669m), 그 오른쪽의 낮으막한 봉우리가 시그널 힐(Signal Hill, 350m)이다. 시그널 힐은 평일에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시그널 힐은 사자의 엉덩이에 해당한다고 해서 라이온스 럼프(Lions Rump)라고도 부른다. 시그널 힐 바로 앞이 워터프론트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시그널 힐로 이어지는 스카이 라인이 멋지다.
테이블 마운틴의 왼쪽 끝 가장 높은 봉우리는 맥클리어스 비콘(Maclears Beacon), 그 바로 앞에 있는 봉우리가 데빌스 피크(Devils Peak, 악마의 봉우리)다. 테이블 마운틴의 오른쪽 끝에 케이블 카 승강장(Upper Cable Station)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던 테이블 마운틴에 일명 테이블 크로스(Table Cross, 식탁보)가 몰려와 순식간에 뒤덮어 버린다. 해양성 기후 때문인지 테이블 마운틴에서는 수시로 구름이 일어난다.
테이블 베이의 먼 바다는 잔잔한 듯 보이는데, 어쩐 일인지 해안에는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남아공 전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18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던 로빈 아일랜드(Robben Island)가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인다. 워터프론트 항을 출항한 대형 화물선이 로빈 아일랜드를 지나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파도가 몰려왔다가 물러난 자리엔 먹이를 찾느라고 종종걸음을 치는 바다새들...... 개를 데리고 한가로이 산책하는 사람..... 홀로 생각에 잠긴 채 모래사장을 거니는 해변의 여인...... 평화롭고 여유로운 아침이다.
아침 9시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서는데 갑자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테이블 베이에는 거대한 오색 무지개가 떠 있다. 케이프 타운의 날씨는 영국의 런던과 비슷해서 구름이 끼는 날이 많고 비도 자주 내린다고 한다.
데빌스 피크
어퍼 케이블 스테이션에서 라이온스 헤드로 이어지는 암릉
케이블 웨이 스테이션
테이블 마운틴의 해발고도 300m 지점에 있는 케이블 웨이 스테이션(Cable way station)은 전망이 매우 좋다. 워터프론트와 테이블 베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라이온스 헤드와 시그널 힐이 바로 앞에 있다. 잠시 테이블 크로스가 걷히면서 테이블 마운틴과 맥클리어스 비콘, 데빌스 피크, 어퍼 케이블 스테이션(Upper cable station)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뿐, 다시 흰구름이 쏟아져 내리더니 테이블 마운틴을 감쪽같이 감춰 버린다. 구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케이블 카가 외계인의 비행접시처럼 느껴진다.
테이블 마운틴 동쪽에 솟은 해발 천 미터의 데빌스 피크는 1795년 영국군대가 케이프 타운을 점령했을 때 통나무 요새를 쌓았던 봉우리다. 이곳에는 한때 주석을 채굴한 적도 있으며, 지금도 채석장과 갱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테이블 마운틴 정상까지 이르는 차도는 없고, 등산로와 암벽등반 루트가 3백 개 이상 있다. 정상까지는 보통 3시간 30분쯤 걸리는데 안개가 짙게 끼거나 강풍이 불어닥치면 매우 위험하다.
산과의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모름지기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산길을 걸으면 그 산이 가지고 있는 기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된다. 또 산길을 걸으면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나아가 산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생명 가진 존재들과의 만남과 인연은 그 자체가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도를 닦으려면 산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크던 작던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산으로 난 길은 곧 우리네 인생길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비행기 시간에도 맞춰야 하기에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아쉽지만 케이블 웨이를 타고 오르기로 한다. 케이블 웨이 티켓은 1인당 120란트(한화 약 15600원)이고, 만 17세 이하는 무료다. 그런데 24세인 아들 정하도 티켓을 끊을 필요가 없다고 중년의 백인 여성 직원이 말해준다. 그 직원은 아무래도 정하의 나이를 어리게 본 모양이다.
어퍼 케이블 스테이션
캄프스 베이와 클리프톤
어퍼 케이블 스테이션
승강장에서 65명 정원의 케이블 웨이에 오른다. 정원이 다 차자 케이블 웨이는 곧바로 360도 회전을 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한다. 케이블 웨이 운행시간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고 승객들이 차는 대로 출발한다. 강풍이 불거나 날씨가 나쁘면 운행이 정지된다. 케이블 웨이는 내부 바닥이 통째로 회전하기 때문에 창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방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케이블 웨이가 점점 올라감에 따라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구름이 수시로 몰려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구름이 걷힐 때마다 테이블 베이의 환상적인 경치가 마술처럼 나타난다. 테이블 마운틴의 수직암벽이 눈앞에 보이는가 하면 어느 순간 워터프론트와 테이블 베이가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라이온스 헤드와 시그널 힐, 두 봉우리 사이로 씨 포인트와 로빈 아일랜드가 보이는가 싶더니 일순간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라이온스 헤드로 이어지는 칼날같은 암릉 너머로 넓고 푸른 대서양과 캄프스 베이, 클리프톤이 발밑으로 보인다.
정상의 테이블 마운틴 모형
테이블 마운틴의 야생화
테이블 마운틴의 야생화
테이블 마운틴의 야생화
테이블 마운틴의 야생화
드디어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 도착했다. 케이블 스테이션을 나오자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케이블 스테이션 가까운 곳에 테이블 마운틴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정상은 바위가 많은 대평원으로 되어 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6백만 년 전에는 바다였다. 그러다가 지층운동에 의해 바다밑에 있던 퇴적층이 융기하여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오늘날의 테이블 마운틴으로 솟아 오른 것이다. 테이블 마운틴은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12사도봉과 같은 첨봉들이 형성되었다.
구름이 춤을 추듯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빗방울을 뿌려댄다. 날씨도 쌀쌀하고 비까지 내려서 할 수 없이 배낭에서 윈드 자켓을 꺼내서 입는다.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는 태양이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빛난다.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있다. 남아공에 와서 처음 만나는 꽃들인지라 이름을 전혀 모르겠다.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싯구처럼 이름을 알고 만나면 훨씬 더 반가운 법인데...... 하지만 이름을 모른들 어떠리.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은 척박한 환경 때문인지 다육질의 이파리들을 가지고 있다. 테이블 마운틴에는 스프링복이나 바분, 케이프 망구스, 사향고양이 등과 같은 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테이블 마운틴 일대는 야생동물 뿐만 아니라 실버 트리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워터프론트와 테이블 베이
캄프스 베이와 클리프톤
12사도봉과 대서양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에는 가장자리를 따라서 산책로가 나 있고, 산책로 곳곳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산책로에서 한 발자욱만 나서면 수백 길의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정상은 다지 워크(Dassie Walk, 15분)와 아그마 워크(Agma Walk, 30분), 클리프스프링거 워크(Klipspringer, 45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다지 워크와 아그마 워크는 장애인도 다닐 수 있도록 산책로를 잘 닦아 놓았다. 조지 전망대(Gorge views)와 맥클리어 비콘으로 가려면 클리프스프링거 워크를 통과해야 한다. 다지 워크 남쪽의 12사도봉 테라스(12 Apostles Terrace) 구역에는 레스토랑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다.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는 시도때도 없이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테이블 크로스가 또 한 차례 몰려와 사방을 하얀 구름으로 가려버린다. 잠시후 테이블 크로스가 바람에 밀려나면서 케이프 타운 시가지와 테이블 베이, 라이온스 헤드와 시그널 힐, 12사도봉, 그리고 에머럴드 빛 대서양의 환상적인 풍경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씨 포인트로부터 캄프스 베이, 코엘 베이를 지나 샌디 베이에 이르는 해안선의 경치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웅장하고 장엄하게 펼쳐진 파노라마에 입이 벌어지면서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특히 대서양의 넓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우뚝 솟아 있는 12사도 연봉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테이블 마운틴을 한 바퀴 다 돌아보았는데도 내려가기가 싫다. 아주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살면 신선이 따로 없겠다.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와 파스타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다음 산을 내려가는 케이블 웨이에 오른다.
2007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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