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바로 알기

아프리카 대륙 바로 알기

林 山 2010. 1. 27. 15:53

비록 열흘이지만 남아공을 여행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거나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건 아시아나 남북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왜 유럽의 백인들에게 영토를 빼앗기거나 식민지가 되어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하늘의 태양과 달, 별들과 같은 천체현상과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바라보면서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 그 이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바라본 자연은 인간까지도 그 일부분으로 포함되는 것이었다. 황제나 교황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연현상과 인간사회에 대한 유럽 지식인들의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탐구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자연현상에 대한 분석적 합리적 인식은 과학혁명을 낳았으며,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정치 사회적 개혁을 부르짖는 철학을 태동시켰다. 과학혁명으로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전했으며, 총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들이 발명되었다. 과학혁명을 바탕으로 일어난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은 무서운 속도로 전유럽으로 번져갔다. 산업혁명은 직접적으로 기술의 혁명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화적 방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은 경제혁명이면서 동시에 사회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은 유럽을 농경에 기초한 봉건제 사회에서 상공업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가능케 했다. 

 

산업혁명의 결과 자본가계급을 중심으로 한 시민계급이 성장했다. 그 선봉에 유럽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절대왕정의 봉건주의적 지배질서를 시민계급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존재로 인식했다. 볼테르와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비판정신과 합리주의 사상, 진보적 가치들을 전파했으며, 존 로크 등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을 제공하였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은 시민계급은 종교혁명과 사회혁명의 주동세력이 되었다. 중세의 암흑시대가 타파되고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유럽 시민계급은 정치적 자유를 쟁취하고 사회적 진보를 이루기 위한 빅뱅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럽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의 천부적 인권에 대한 자각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열망은 절대왕정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16세기 후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절대왕정은 급속하게 성장하는 시민계급과 제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계급과 제휴한 절대왕정은 관료제와 상비군을 설치하고 부강한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중상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중앙집권화된 관료제는 민족주의와 국민국가로 가는 길을 열었으며, 상비군은 각종 최신식 무기와 전함으로 무장했다. 근대적 국가체제와 군사력을 갖춘 유럽 각국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의 확보를 위해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아프리카는 어떠했는가? 아시아인인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지식은 사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시간에 배우거나 뉴스에서 보고 들은 것이 고작이다. 이집트 문명, 클레오파트라, 파라오, 나일강, 사하라사막, 킬리만자로산, 유럽의 식민지, 유럽과 아메리카로 팔려간 흑인 노예, 부시맨, 열대밀림, 동물의 왕국, 종족분쟁, 에이즈, 기아와 빈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넬슨 만델라, 희망봉,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국제기구의 원조, 한국의 선교사나 연예인들의 활동 등...... 나는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천연자원은 풍부하지만 종족간의 분쟁이 극심하고, 에이즈 감염자의 수가 엄청나며, 천성이 게을러서 지독하게 가난한 대륙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아프리카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 것인가! 해방이후 한국은 유럽의 백인들이 건너가서 세운 미국의 영향을 너무나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은 유럽의 백인들이 심어준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미개한 인종이기에 그들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서는 배울 것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지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유럽인들이 주장한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설이다.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땅에 금을 강탈하고, 향신료를 얻기 위해 아메리카에 상륙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또 한국에서 판을 치던 미국 헐리우드 영화들은 백인들을 정의롭고 용감한 신사와 영웅들로 묘사한 반면 인디언들은 사악하고 잔인한 존재로 보이도록 했다. 세계사를 보자! 누가 더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이었는가! 이집트 문명조차도 아프리카 문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갈색 피부를 가진 흑인 파라오, 흑인 클레오파트라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천만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분쟁의 근원에는 영국이 있다! 또 영국은 식민지에서 강탈해간 자원과 노예매매로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은 신사의 나라는커녕 날강도 깡패 국가가 아닌가!

 

한국과 혈맹의 우방이며 좋은 나라라고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미국은 어떤가! 한국은 1945년부터 3년간 미군정의 통치를 받은 바 있고,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으며, 하와이는 식민지를 거쳐 미국의 한 주로 강제통합되었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버진 아일랜드, 괌, 사이판, 사모아 제도, 북마리아나 제도,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주, 팔라우, 파나마 운하 등을 점령하여 미국령 또는 준 미국령으로 삼았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적 행동도 불사하고, 민주적으로 수립된 타국의 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미국은 그 옛날 침략을 일삼던 대영제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왜곡된 지식, 편향된 교육, 의도적인 세뇌를 받으면서 자랐다. 나는 점차 피부색만 누런 백인 사팔뜨기가 되어갔다. 사팔뜨기 천지인 나라에서 눈을 바로 뜬다는 것은 고립과 정치적 박해를 각오해야만 한다. 이제는 눈을 바로 떠서 사팔뜨기를 면하도록 해야겠다. 

 

아프리카 전도

 

50억년 전 지구가 탄생하고 가장 먼저 형성된 대륙은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원인(猿人)화석들은 수백만 년 전부터 이 대륙에 인류가 지속적으로 거주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쪽의 원숭이)의 화석이 최초로 발견된 곳은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서남부 타웅구스(사자 골짜기)다. 5~8세의 남자 소년의 이 화석은 발견된 곳의 지명을 따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고 명명되었다. 이어 남부 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부근 스와르트크란스와 스테르크폰테인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 케냐 카나포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이디오피아 아파르 계곡에서 루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되었다. 8백만 년~160만 년 전에 걸쳐 출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원인(猿人)들은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화석인류다.

 

또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는 12세 가량의 어린이 아래턱뼈와 옆머리뼈가 발견되어 호모 하빌리스(손쓴 사람)라고 명명되었다. 호모 하빌리스 화석은 케냐의 쿠비포라와 남아공의 스와르트크란스, 스테르크폰테인에서도 발견되었다. 호모 하빌리스는 2백만 년~150만 년 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에 출현했던 멸종  원인(猿人)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이행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들 화석들도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발견된다. 

 

초기 인류 호모 에렉투스(곧선 사람, 대표적으로 베이징 원인이 있음)는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조상인 원인(原人)으로 그 분포범위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대된다. 진화과정상 비교적 최근의 인류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에렉투스는 160만 년~25만 년 전까지 번성하다가 멸종된 원인(猿人)이다. 호모 에렉투스 화석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트리닐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래 중국의 베이징(北京) 부근, 알제리의 테르니페네,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과 쿠비포라, 모로코의 살레, 시드아브드알라만, 라바트에서 발견되었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빌칭슬레벤과 마우어, 그리스의 페트랄로나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아프리카의 카브웨(브로컨힐, 잠비아), 엘란드스폰테인, 하스 동굴, 은두투 호, 오모, 보도 등과 유럽의 스완즈컴, 슈타인하임, 비아슈에링스도르프, 라세즈, 베르테슈죌뢰슈 등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아종(亞種)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사람속(Homo)에 속하는 생물 중 현존하는 종만을 가리키는 호모 사피엔스(슬기 사람, 대표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이 있음)는 40만 년~10만 년 전에 출현한 구인(舊人)이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남부 오모 강 유역에서는 현대형 호모 사피엔스 중 가장 오래된 13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팔다리뼈가 발견되었다. 또 탄자니아의 라에톨리 유적지, 스와질란드와 남아공의 나탈 주 콰줄루 사이에 있는 보더 동굴 유적지에서도 10만 년 전 이상의 현대형 호모 사피엔스 화석이 나왔다.

 

현생인류인 신인(新人)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슬기슬기 사람, 대표적으로 크로마뇽인-백인의 조상, 그리말디인-흑인의 조상, 상동인-황인의 조상이 있음)와 동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 초기부터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인류의 발상지가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인류의 조상들은 만오천 년 전부터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지중해를 건너서 유럽으로, 인도양을 건너서 오세아니아로, 아시아에 정착한 인류 가운데 일부는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남북 아메리카로 이동해 갔던 것이다. 

 

아프리카의 호모 사피엔스는 5만 년 ~3만5천 년 전까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이남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호모 사피엔스 로디지엔시스(카브웨인 또는 로디지아인)와 호모 사피엔스 이후에 나타난 니그로산족(族)의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만 년~2만 년 전의 화석인류는 동부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남부 아프리카의 희망봉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160만 년~1만 년 전의 홍적세(플라이스토세)에 아프리카 서부에도 인류가 거주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토착민들은 흑인종, 코이산어족(코이코이족=호텐토트족과 산족=부시먼족 등 반투족을 제외한 아프리카 남부의 어족), 코카서스 인종(동부 함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세 부류는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모양 등 외견상의 특징만으로도 쉽게 구분이 된다. 그러나 골격의 특징만으로는 세 부류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흑인종과 동부 함족은 두개골이 좁고 이마가 둥글며, 부시먼 역시 이마가 둥글다. 코카서스 인종은 후기 홍적세에 북부 아프리카나 서부 아시아로부터 지금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코카서스 인종은 아프리카 토착인종에 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흑인종과 코이산어족은 외모로는 뚜렷이 구분되지만 혈통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종족이 선택에 의해서든 다른 종족에게 쫓겨서든 낯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 환경조건에 신체적으로 적응하게 된다. 단백질이 부족한 숲속에서 살아가려면 작은 키가 유리하다. 따라서 피그미족의 조상은 지금보다 훨씬 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칼라하리 사막으로 쫓겨난 산족의 조상도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흑인종과 코이산어족은 같은 조상이었을 것이다. 또 카브웨인은 플로리스뱃족이나 싱가족의 조상일 가능성도 있다. 흑인종도 후기 홍적세 전까지는 그 존재가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삼림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루펨반인이나 스틸베이인의 후손들은 흑인종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구석기 문명의 발상지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와 주먹도끼로 대표되는 이시밀라 아슐리안 문화가 등장했다. 이어 250만 년 전부터 사하라 지방이 남극 다음으로 광대한 사막으로 변해버리자 아프리카 대륙에 신석기 대변혁이 초래되었다. 신석기 대변혁의 과정속에서 BC 4000년경 북부 아프리카의 나일강 유역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찬란한 이집트 문명이 탄생하였다. 이집트 문명은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대륙으로 이동한 인류가 일으킨 황하 유역의 문명(BC 3000년)이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000년), 인더스강 유역의 문명(BC 3000~2500년)보다 천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이렇게 앞선 문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근현대에 들어와 아프리카 대륙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원주민들은 노예로 팔려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크게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중앙아프리카, 남아프리카로 나눌 수 있다.  

 

북아프리카에 속하는 나라들은 이집트를 비롯해서 수단,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서사하라(사하라위), 모리타니 등 8개국이다. 그외 포르투갈령 마데이라 제도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도 북아프리카에 포함된다. 북아프리카 중에서도 북서부 아프리카를 마그레브(Maghreb)라고 한다.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해가 지는 지역' 또는 '서쪽'이란 뜻이다. 마그레브를 바르바리(Barbary)라고도 부른다. 마그레브는 동쪽으로 이집트, 남쪽으로 사하라 사막, 서쪽으로 대서양, 북쪽으로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마그레브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은 리비아와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서사하라, 모리타니 등이다.  

 

동아프리카에 속하는 나라들은 에리트레아와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코모로, 세이셸 등이다. 코모로와 세이셸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들이다. 동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동북부 지역은 그 모양이 흡사 코뿔소의 뿔을 닮았다고 해서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부른다.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나라들은 에리트리아와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4개국이다.

 

중앙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 이남과 잠베지 강 이북 사이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부 지역을 말한다.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은 차드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르완다, 부룬디, 콩고공화국, 앙골라령 카빈다 등이다.

 

서아프리카 국가들에는 세네갈, 감비아,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기니,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이 있다. 말리와 니제르, 부르키나파소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카보베르데는 섬나라다. 

 

남아프리카에 속하는 나라들은 앙골라를 비롯해서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소토, 스와질란드,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등이 있다. 그외 프랑스령 레위니옹이 있다. 

 

2010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