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비아 개관
리비아국(دولة ليبي 데윌트 리비야, the State of Libya)은 동쪽으로 이집트, 남동쪽으로 수단, 남쪽으로 니제르와 차드, 서쪽으로 튀니지와 알제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에는 지중해가 있다. 리비아는 마그레브(Maghreb) 지역에 속한 나라다. 마그레브는 리비아를 비롯해서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이 있는 북아프리카 북서부 일대를 총칭하는 말이다. 리비아는 지중해에 면한 아프리카 국가 중 해안선이 1,770km로 가장 길다.
그리스 신화에서 리비아(Libya)는 벨로스(Belos)와 아게노르(Agenor)의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바람둥이의 제왕 제우스(Zeus)와 이오(Io)의 아들인 이집트 왕 에파포스(Epaphus), 어머니는 나일 강의 신이 낳은 멤피스(Memphis)이다. 리비아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하여 벨로스와 아게노르 쌍둥이 형제와 에티오피아 왕 케페우스(Cepheus)를 낳았다. 벨로스는 아시리아와 아라비아, 이집트, 리비아를 포함하는 왕국을 다스렸고, 아게노르는 페니키아의 왕이 되었다. 벨로스의 자손들은 그리스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 여러 왕조의 조상이 되었다. 리비아의 나라 이름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지역을 리뷔에(Libyē, Λιβύη)라고 불렀다.
리비아 지도
리비아의 국토 면적은 1,759,540㎢이며, 한반도의 8배에 이른다. 리비아의 인구는 2019년 10월 기준 660만 명이다. 수도는 트리폴리(Tripoli)다. 또 다른 중요 도시로는 제2의 도시 벵가지(Banghazi), 제3의 도시 미스라타(Misrata), 그외 시르테(Sirte), 투브루크(Tubruq, Tobruk) 등이 있다.
수도 트리폴리는 리비아의 북서부에 있으며, 지중해에 접한 항구도시이다. 리비아 최대의 도시이다. 해안지대의 좁은 오아시스에 있고, 30km 떨어진 내륙은 사막지대이다. 오리엔트풍의 구시가와 이탈리아풍의 현대적인 신시가로 나뉜다. 해변의 야자수에 둘러싸인 신시가지에는 관청, 상사 등 현대적인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구시가지는 노르만인, 아랍인, 에스파냐인, 십자군, 투르크인 등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어서 오래된 유적이나 건물이 남아 있다. 특히 성을 이용한 미술관과 민속박물관, 로마인 개선문 등이 볼 만하다.
트리폴리(Tripoli)
트리폴리라는 도시명은 기원전 7세기 카르타고에 의해 건설된 페니키아인의 식민 도시 3개를 통틀어서 그리스어로 '3개의 도시'를 의미하는 트리폴리스(Tripolis)라고 하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643년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군사, 행정의 중심을 오에아(Oea)-지금의 트리폴리에 두었으므로 다른 두 시는 쇠퇴해서 폐허가 되었다. 트리폴리는 아랍어로 타라불루스(طرابلس)이다. 레바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기 때문에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서트리폴리 또는 서타라불루스(طرابلس الغرب)로도 부른다. 그리스 아르카디아(Αρκαδία) 현의 소재지 이름도 트리폴리다.
벵가지는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Cyrenaica)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기원전 8세기 경 페니키아인들이 교역항으로 사용하였고, 리비아 왕국 때 수도로서 번창했다. 1911년 이탈리아군에 점령당한 바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제국주의 서구 열강들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리비아 최초의 대학인 갈리오누스 대학(Galionus University )이 벵가지에 있다.
벵가지(Banghazi)
아프리카 오지를 드나드는 대상들의 기지였던 벵가지는 지중해의 상업도시로서 번창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유에스페리데스(Euesperides), 이집트-로마 시대에는 베레니스(Berenice)라고 불리다가 이슬람 시대부터 벵가지라고 불렀다. 벵가지는 지금도 낙타에 짐을 실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오가는 등 이슬람 전통이 강한 도시이다. 아프리카의 다른 주요 도시들보다 발전이 뒤떨어졌지만, 석유개발 기지가 된 뒤부터 빠르게 발전하였다.
미스라타(Misrata)
미스라타는 리비아 북서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다.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2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미스라타 주의 주도이다. 트리폴리와 벵가지 다음으로 리비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다.
시르테(Sirte)
시르테(Sirte) 또는 수르트(Surt)는 시르테 주의 주도이며, 지중해 시드라 만(Gulf of Sidra) 남부 연안에 위치한다. 시민혁명으로 축출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Gaddafi, 1942~2011)의 고향이다. 196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카다피가 자신의 친족이나 같은 부족 출신 인사들을 적극 기용하면서 시르테는 카다피 정권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1999년 아프리카통일기구 정상회의, 2007년 다르푸르 분쟁 평화협상이 이곳에서 열렸다.
투브루크(Tobruk)
투브루크는 리비아 동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알부트난 주(al Buţnān State)의 주도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요새가 있던 곳이다. 1911년 이탈리아 왕국에 정복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투브루크 전투가 일어나기도 했다.
2. 리비아의 국기
리비아의 현재 국기는 1951년부터 1969년까지 리비아 왕국이었을 당시 사용한 국기다.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1977년 리비아 왕국의 국기를 폐지하고 전체가 녹색인 국기로 바꿨다. 카다피 정권이 몰락하면서 등장한 리비아 정부는 2011년 2월 27일 다시 이전의 국기를 채택하였다.
현재 리비아 공화국의 국기는 리비아가 영국의 신탁통치로부터 독립한 이후 채택된 적, 흑, 녹 삼색기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국기이다. 적색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통치 당시 희생된 리비아인들의 피를 나타내며, 검은 바탕에 하얀 초승달은 키레나이카 토후국(土侯國, emirate) 국기에서 따왔다.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교를 상징한다. 녹색은 독립, 자유와 리비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
현재의 리비아 국기
초승달-국기에 그려진 달은 사실 그믐달-이 이슬람의 상징처럼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초승달과 별 문양의 월성기(Ay yıldız, 月星旗)를 국기로 채택한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 세계를 석권한 이후부터이다.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기 전까지 초승달은 이슬람보다는 투르크족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20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후신인 터키와 오스만 제국령이었던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가 독립 후 월성기를 국기로 채택하고, 여기에 영향을 받아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말레이시아, 모리타니 등의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도 월성기를 국기로 채택하면서 초승달 문양은 투르크의 상징에서 이슬람권 전체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월성기는 적신월(赤新月, Red Crescent)처럼 국제기구의 상징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은 월성기를 오스만 압제의 상징으로 보고 이를 거부한다. 근본주의가 강한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나 다에시(IS), 알카에다(Al-Qaeda) 같은 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기에는 초승달은 없고 코란의 글귀만 있을 뿐이다. 터키,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리타니 외에 이슬람 아랍 국가들의 국기에는 초승달이 아예 없다.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아랍 세계에서는 월성기를 오스만 통치의 상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성기를 이슬람의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77~2011년까지 사용한 리비아 국기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는 삼색 기를 폐지하고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해 이집트의 국기와 비슷한 국기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1977년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Muhammad Anwar Sadat, 1918~1981)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맺은 것에 반발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녹색 단색기로 바꿨다. 2011년까지 사용된 이 녹색기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한 단색 국기였다. 녹색은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색이므로 리비아가 이슬람 국가란 뜻이었다.
3. 리비아의 민족 구성
리비아 사회조직의 기본단위는 카빌라(qabilah)-부족-이다. 주요 인종집단이었던 베르베르족은 거의 아랍문화에 동화되었다. 인구 구성은 아랍계 48%, 베르베르족 20%, 투아레그족(Tuareg) 12%, 아랍인과 흑인 혼혈 15%, 유럽계 5% 순이다. 리비아에 정착한 아랍인은 약 14개 파 대부족에서 많은 소부족이 분파하여 현재 약 500여 부족이 있다. 베르베르족은 주로 남부에 거주한다. 그밖에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흑인, 유대인 등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카다피가 집권하기 시작한 1969년 이후 대부분이 본국으로 철수했다.
4. 리비아의 언어와 문화
리비아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며, 베르베르족 가운데 소수는 고유의 함어(Hamitic languages)를 쓰지만 대개는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한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며, 예전에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아서 노인층 등에서는 이탈리아어 사용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리비아의 문화는 이슬람 문화이다. 이슬람 문화는 리비아의 사회주의에도 영향을 주어, 이슬람 사회주의(Islamic socialism)라는 독특한 이념을 형성하였다. 현재 리비아는 술을 팔지 않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5. 리비아의 종교
리비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다. 리비아 국민의 97%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에서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겠다라고 밝혔다. 리비아 국민의 2.5%는 기독교도이다. 기독교 교회의 대부분은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Oriental Orthodoxy)인 콥트교회(Coptic Orthodox)이다. 콥트교도는 약 6만 명이다. 리비아에는 2개의 로마 캐돌릭 교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두 명의 주교가 있다. 로마 캐돌릭 교도는 약 5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두 명의 주교가 지도한다. 리비아에는 또 소수의 성공회 교회가 있으며, 이집트 교구에 속해 있다. 유대인 공동체는 기원전 300년 경에 생겨났다. 기독교인들은 주로 현지 체류 외국인이다.
6. 리비아의 정치와 언론
리비아는 2020년 현재 온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임시정부가 들어서 있다. 내전이 종식되면 향후 헌법 및 정치체제가 확정될 예정이다. 리비아는 카다피 집권 이후 사회복지 사업이 크게 확대되고 개선되었으며, 노인과 장애자를 위한 사회보장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의료는 전 국민이 무료 혜택을 받고 있다. 카다피는 2003년도 제9회 불교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불교인권위원회는 매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리는 창립 기념법회 때 불교인권상을 시상한다.
리비아의 언론은 엄격히 통제되며 방송매체도 국가가 운영한다. 리비아에는 5개의 라디오 방송국과 4개의 TV 방송국, 4개의 일간지, 7개의 주간 및 월간지가 있다. 자나(JANA, Jamahiriya News Agency) 통신사는 국영이다.
7. 리비아의 교육
리비아 교육 정책의 주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문맹 퇴치이며, 중등교육 과정까지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1977년 사립학교제가 폐지된 뒤 모든 학교는 국공립으로 운영된다. 리비아에는 2002년 현재 총 25개의 대학이 있다. 리비아의 대학 등록금은 자국민과 팔레스타인은 무료이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아랍인과 외국인은 50% 면제된다.
벵가지 대학교(Banghazi University)
1973년 리비아 종합대학교는 두 개의 대학으로 분할 되었다. 1976년 벵가지의 리비아 종합대학교를 가리우니스 대학교(Garyounis University), 트리폴리의 리비아 종합대학교 분교를 알파테 대학교(Al-Fateh University)로 개칭했다. 리비아 종합대학교는 1955년에 설립된 리비아 최고의 대학이었다. 가리우니스 대학교는 2011년 리비아 내전이 끝난 후 다시 벵가지 대학교(Banghazi University)로 개칭했다. 벵가지 대학교에는 23개의 학부, 230개의 부서 및 센터가 있다. 이 대학교에는 약 85,000명의 학부생과 3,000명의 대학원생이 있다.
트리폴리 대학교(Tripoli University)
알파테 대학교는 1957년 리비아 종합대학교의 과학학부로 설립되었다. 1966년 농학부, 1972년 석유 및 광물대학이 추가되었다. 1973년 리비아 종합대학교에서 분리된 직후에는 트리폴리 대학교(Tripoli University)라고 했다. 1976년 학생 소요사태 후 친정부 학생들에 의해 알파테 대학교로 개칭되었다. 이 대학은 트리폴리 전투 중에 봉기한 학생회(SU)의 근거지였다.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몰락함에 따라 다시 트리폴리 대학교로 개명되었다. 한국 정부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알파테 대학의 전산화 사업 프로젝트를 지원한 바 있다.
8. 리비아의 자연 환경과 기후
리비아는 해발 200∼600m의 광대한 북아프리카 고원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나라다. 리비아는 크게 동부의 키레나이카, 북서부의 트리폴리타니아(Tripolitania), 남서부의 페잔(Fezzan) 지역으로 나뉜다. 북서부의 트리폴리타니아와 북동부의 키레나이카를 제외하고는 전지역이 사하라 고원이다.
리비아 지도
트리폴리타니아는 북쪽의 해안 오아시스와 리비아 해안평원(Libyan coastal plain)-알지파라 평원(Al-Jifarah, Jafara, Jeffara, Djeffara, Gefara plain), 그리고 해발 610∼915m의 나푸사 산맥(Jabal Nafusa, Nafusa Mountains)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나푸사 산맥은 북쪽의 알지파라 평원에서 남쪽의 트리폴리타니아 고원(Tripolitanian Plateau)으로 이어진다.
트리폴리타니아 지역의 대부분은 사막이지만 북부 연안의 일부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겨울에 내리는 비를 이용한 올리브, 오렌지, 레몬 등의 재배가 주를 이룬다.
나푸사 산맥(Jabal Nafusa, Nafusa Mountains)
키레나이카의 알마르지 해안평야(Al-Marj coastal plain)는 '푸른 산'이라 불리는 알아크다르 산맥(Jabal Al-Akhḍar, Akhḍar Mountains)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다시 반사막지대의 초원과 만난다. 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평야에서는 밀이나 과일이 재배된다. 그밖에 양과 염소, 소, 낙타 등의 목축도 주요산업이다.
알마르지 해안평야(Al-Marj coastal plain)
1960년부터 사막지대에서 유전이 개발된 이후 해안까지 송유관이 부설되고 관련 산업도 점차 일어나고 있다. 1970년대 초 리비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는 폐지되었으나 지역명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넓은 사하라(Sahara)에는 군데군데 오아시스가 있다. 사하라는 사막이란 뜻을 가진 아랍어 사라(صحراء)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하라 사막이라고 하면 사막 사막이라고 한 말과 같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은 이미 관용적으로 굳어진 말이다.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은 250만 년 전에 생겨났으며, 그 넓이는 940만km²에 달한다. 아프리카 북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는 지구에서 남극 다음으로 넓은 사막이다. 북쪽으로는 아틀라스 산맥 및 지중해, 서쪽으로는 대서양, 동쪽으로는 홍해와 접해 있다. 사하라 사막은 대부분 고도 180~300m의 평탄한 대지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부에는 해발고도 180m 이하의 저지대가 곳곳에 있는가 하면 아하가르 산맥(Ahaggar Mountains)-호가르 산맥(Hoggar Mountains)-이나 티베스티 산맥(Tibesti Mountains) 같은 고원지대가 나타나기도 한다.
티베스티 산맥(Tibesti Mountains)
사하라 사막은 서사하라,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의 북부 사하라와 모리타니, 니제르, 차드, 수단, 남수단 등의 남부 사하라로 나뉜다. 리비아는 건조지역이 차지하는의 비율이 99%, 이집트는 98%이다. 두 나라는 거의 완전히 사하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사바(Sabhā)
남서부 페잔 지역은 사구지대이다. 서쪽으로는 알제리, 남쪽으로는 니제르, 차드와 접한다. 페잔 지방의 중심 도시 사바(Sabhā)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에 속한다. 사바 근처에는 세바 오아시스(Seba Oasis)가 있다. 북부의 시르테-수르트-분지는 리비아의 주요 유전지대이다.
세바 오아시스(Seba Oasis)
남부 티베스티 산맥에는 리비아 최고봉인 베테 봉(Bīkkū Bitti peak, Picco Bette, 2,300m)이 솟아 있다. 티베스티 산맥은 대부분 차드 공화국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니제르 북동부와 리비아 남부까지 뻗어 있다. 길이는 480㎞ 정도이며, 너비는 280㎞에 달한다.
베테 봉(Bīkkū Bitti peak, Picco Bette)
티베스티 산맥 주변에 거주하는 약 8,000명의 테다 주민과 다자 주민들은 대부분 유목민이다. 티베스티는 텅스텐, 주석, 석유 등의 광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와 제휴한 사막연구소가 있다. 티베스티 북부의 아오주 지대(Aouzou Strip)에는 큰 우라늄 광상이 있다. 면적이 약 7만㎢에 이르는 긴 띠 모양의 아오주는 1973년 이후 리비아령이 되었다.
아오주 지대(Aouzou Strip)
리비아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막과 흡사한 기후가 나타나며 아주 건조하다. 하지만 바다에 면한 북쪽 지방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이다. 리비아에는 1~2년 계속되는 가뭄이 5, 6년 주기로 찾아온다. 리비아 남부는 대부준 사하라 사막이다. 때때로 사하라 사막에서 열풍이 불어와 피해가 나기도 한다. 리비아인들은 이를 기블리(gibli)라고 부른다. 기블리는 봄과 가을에 1~4일에 걸쳐 종종 불어온다. 리비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는 가장 중요한 식수 공급원이다. 리비아 사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육군, 나치 독일군의 격전지였다.
9. 리비아의 경제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이자 세계 10위의 산유국이다. 원유 매장량은 약 484억 배럴, 점유율은 2.8%이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4조㎥로 세계 21위, 점유율은 0.7%이다. 리비아는 1959년 유전이 발견되면서 갑자기 부자 나라가 되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농경지가 지중해안의 좁은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카다피 통치 시절 리비아는 석유 무기화를 제창하여 생산 제한, 수출 금지, 가격 인하 등을 이끌었다. 리비아는 본래 농업국으로 밀, 보리, 감자, 대추야자 등의 식량작물과 올리브, 감귤류 등을 생산한다. 가축은 양이나 염소, 낙타 등을 사육한다.
리비아의 명목 GDP는 2019년 기준 330억 달러, 1인당 명목 GDP는 5,020달러이다. 경제성장률(EIU)은 -19.1%이다. 교역 규모(EIU)는 수출이 250억 달러, 수입이 148억 달러이다. 수출품은 주로 석유이다. 피혁, 양털도 소량 수출한다. 주요 수입품은 기계류, 자동차, 금속제품, 전기기기 등이다. 리비아는 식량의 85%를 수입에 의존한다. 화폐는 리비아 디나르(Libyan Dinar)이다. 1US 달러=1.39LYD이다.
10. 리비아와 남북한
한국과 리비아는 1978년 3월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1980년 12월에는 대사급 수교가 이루어졌다. 1983년 11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한국의 동아건설이 수주하기도 했다. 1991년 6월에는 5,727명의 노동자가 리비아에 체류하고 있었다. 1999년 9월 한국-리비아 간 문화협정을 체결했지만 발효되지는 않았다. 2001년 4월에는 경제·과학·기술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2007년 2월에는 무역협정, 3월에는 투자 증진 및 보호협정을 체결했다. 1965~2018년까지 한국의 리비아 수출 누적액은 5.3억 달러, 리비아의 한국 수출 누적액은 1,734만 달러였다. 2019년 기준 리비아 거주 한국 교민은 4명이다.
리비아는 쿠데타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정치노선을 지지하면서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리비아와 북한은 1974년 1월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무역협정, 항공운수협정, 경제·과학·기술·문화협정을 체결했다. 1982년 10월에는 카다피가 북한을 방문하고 우호협력동맹조약을 맺기도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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