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제리 개관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Algeria)은 동쪽으로 튀니지와 리비아, 남쪽으로 말리와 니제르, 서쪽으로 모로코와 서사하라, 모리타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지중해에 접하고 있는 나라다. 국토 면적은 2,381,741㎢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다. 남북 길이는 2,000km, 동서 너비는 1,800km이다. 알제리 인구는 4,343만 명(2019년 4월 현재, IMF)이다.
알제리의 국기는 1962년 7월 3일에 제정되었다. 알제리의 국기는 알제리 임시 정부가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사용했던 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국기에는 초록색과 흰색이 각각 절반인 바탕에 빨간색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초승달과 별은 알제리의 국교인 이슬람교를 상징한다. 초록색은 번영, 흰색은 순결과 평화를 상징한다. 빨강색은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의 피를 의미한다.
수도는 알제리의 북쪽 끝 지중해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알제(Algiers)다. 알제는 알제리 인구 최대의 도시이다. 알제에는 약 35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알제는 정치와 행정,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알제리 최대 규모의 도시이다. 알제리의 영토는 넓지만 사하라 사막이 차지하는 면적 때문에 북부 지역의 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단연 알제의 인구밀도가 높다.
고대에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도시를 세웠고, 이코시움(Icosiu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5세기 반달족(Vandals)의 침입으로 파괴되었고, 10세기에 베르베르족(Berber)에 의해 상업도시로 재건되었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로 이베리아에서 쫓겨난 무어인(Moors)들이 이곳에 근거지를 만들고 해상무역을 장악하자 스페인은 인근 섬에 해군기지를 만들었지만 하이르 앗 딘(Khayr ad-din)에 의해 격파되었다. 1830년 프랑스가 이 도시를 점령할 때까지 무어인들의 해적질은 계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유 프랑스의 임시수도였고, 1962년 알제리가 독립한 후 알제리의 수도가 되었다.
2. 알제리의 주요 도시
알제리의 주요 도시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따라 북부에 밀집되어 있다. 주요 도시는 오랑(Oran), 콩스탕틴(Constantine), 안나바(Annaba), 틀렘센(Tlemcen), 베자이아(Béjaïa), 블리다(Blida), 세티프(Setif) 등을 꼽을 수 있다.
2-1. 오랑(Oran)
오랑은 알제리 서북부의 도시로,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요충지이다. 도시명은 베르베르어로 '두 사자'라는 뜻이다. 이 지역에 서기 900년 경까지 바르바리 사자가 서식했는데, 마지막 두 마리가 사냥되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오랑은 알제에 이은 알제리 제 2의 도시이며, 인구는 120만 명이다. 오랑에는 아메드 벤 벨라 국제공항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La Peste)'가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병으로 패닉에 빠진 도시를 다룬 이 소설은 알제리 아랍인들을 철저하게 비중 없는 엑스트라로만 취급한다. 남아공 도시를 다룬 소설에서 흑인을 엑스트라로만 다룬 소설들이 정치적 문제로 매장당한 것처럼 '페스트'도 알제리인 사이에서는 무시를 받고 있다.
2-2. 콩스탕틴(Constantine)
콩스탕틴은 알제리 제3의 도시이며, 인구는 61만 명이다. 고대 누미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콩스탕틴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도 번영하였으나 AD 311년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와 도미티우스 알렉산데르(Domitius Alexander) 간의 내전으로 파괴되었다. 그 후 AD 313년에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에 의해 도시가 재건되면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콩스탕틴은 1837년에 프랑스에게 점령되며 현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알제리 동부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하고 있는 콩스탕틴에는 무하메드 부디아프 공항이 있다. 콩스탕틴이 로마 황제의 이름이고, 알제리 독립전쟁 상대였던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이 라틴어 계열인 로망스어군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잔재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도시명을 바꾸자는 운동도 있다.
2-3. 안나바(Annaba)
안나바는 알제리 동북부에 위치한 산업 항구도시이다. 현재 인구는 26만 명으로, 알제리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다. 콩스탕틴에서 동쪽으로 80km 가량 떨어져 있고, 튀니지와의 국경과는 50km 떨어져 있다. 고대에는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가톨릭 성자인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그 유적이 교외에 남아 있다.
2-4. 틀렘센(Tlemcen)
틀렘센은 알제리 서북부 틀렘센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18만 명이다. 동북으로 80km 떨어진 대도시인 오랑이 해안도시라면 틀렘센은 내륙의 거점이다.
틀렘센은 708년 이슬람의 정복 이후 베르베르인들의 도시가 되어 번영하였는데, 주로 서쪽의 시질마사(Sijilmassa, 모로코 동부), 남쪽의 사하라 사막의 물산이 집결하여 오랑을 거쳐 온 상인들과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슬람 정복 이후, 모로코 지방에 가까운 이유로 모로코에 기반을 둔 무라비트 왕조(Almoravid dynasty), 무와히드 왕조(al-Muwahhidun dynasty), 마린 왕조(Marinid dynasty)의 지배를 200여년 동안 받다가 근대 알제리의 모태가 된 틀렘센 왕국(Kingdom of Tlemcen)-자얀 왕조(Zayyanid Kingdom, 1235~1554년)-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16세기 초에 오랑을 점령한 스페인은 1534년 틀렘셈을 공격하였지만 함락에는 실패하였다. 그 과정에서 하이르 앗 딘의 형이자 바르바리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바 우르지(Baba Oruç)가 격전 끝에 틀렘센 인근에서 전사했다. 틀렘센은 유대인 재상 아브라함의 관용 하에 안달루시아에서 쫓겨난 무슬림들을 받아들였다. 그 후 오스만 제국에 자발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 틀렘센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기에 휴양도시로 개발되었다.
2-5. 베자이아(Béjaïa)
베자이아는 알제리 북부의 해안도시이다. 인구는 18만 명이다. 베자이아에는 숨만 아반 람단 공항이 있다. 베자이아는 수학과 연관이 있는 도시이다. 이탈리아 피사 공화국 출신의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가 무와히드 왕조 시절의 베자이아에서 인도와 아랍 수학을 배운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아라비아 숫자를 보급했다.
고대 카르타고 시대의 살라다에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베자이아는 로마 시대에는 누미디아인-베르베르족이 거주하였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에 의해 퇴역 군인들을 위한 도시로 변모되었다. 베자이아는 반달 왕국(Regnum Vandalum)과 함마드 왕조(Hammadid dynasty, 1008~1152)의 수도였다가 해적의 근거지, 에스파냐 요새를 거쳐 1833년에는 프랑스가 점령하였다. 스페인의 지배(1510~1555) 당시 1545년에 지어진 카스바(Kasbah, 요새)는 지금도 도시의 랜드마크이다.
카본 곶에 둘러쌓여 있는 베자이아 항구는 카빌리 고원(Kabylie plateau)과 세티프 분지(Sétif basin)의 농축산물과 하시 메사우드(Hassi Messaoud) 유전의 석유를 해외로 수출한다. 1959년 하시메사우드 유전과 송유관으로 연결되어 석유 적출항(積出港)이 되었다. 동쪽의 스키크다(Skikda)에는 해안 절벽 위를 지나는 관광도로가 있다.
2-6. 블리다(Blida)
블리다는 알제리 북부 블리다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16만 7000명이다. 블리다 아틀라스(Atlas de Blida) 산맥의 슈레아 산(Mount Chrea) 북쪽 기슭 선상지 위에 형성된 도시로 1553년 안달루시아에서 이주한 아랍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지중해 연안 미티자 평야(Mitidja Plain)의 중심 도시다. 수도 알제에서 남서쪽으로 48km 떨어져 있다. 오랜 기간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도시 전체가 프랑스풍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내에서 사용되는 물은 치파 강의 지류인 엘케비르 강에서 공급되며 발전 용수로도 쓰인다.
블리다는 밀, 보리, 포도, 담배, 올리브, 감귤류 등이 재배된다. 알제와 철도가 연결되어 있어 주변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감귤류, 야채가 이곳으로 모인다. 블리다는 기계, 비료, 제분이나 올리브유 등 식품가공업도 발달하였다.
2-7. 세티프(Setif)
세티프는 알제리 북동부 세티프 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23만9,195명이다. 수도 알제에서 동쪽으로 약 306 km 떨어진 곳에 있다. BC 225년 누미디아인들이 세티프를 건설했지만, 유구르타 전쟁(Jugurtha War) 중에 파괴되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황제 네르바(Nerva, Marcus Cocceius)가 세티프를 재건했다.
3. 알제리의 인종과 언어
알제리는 역사적으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인종이 다양하다. 알제리의 민족 구성은 아랍인 80%, 베르베르인 20%로 구성되어 있다. 토착민인 베르베르인은 까빌라족, 샤위야족, 마자브족, 따와리끄족 등 4개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르타고인과 그리스인, 로마인, 터키인, 카탈란(스페인) 후손들도 혼재한다. 아랍인은 7세기 이후에 들어왔다. 유럽인은 소수지만 대부분 프랑스계이고 약간의 이탈리아인, 에스파냐인, 러시아인도 섞여 있으며, 흑인도 있다.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구분은 사실상 애매하다. 원주민인 베르베르인 중에서도 아랍화가 완전히 진행된 사람들의 경우 아랍인으로 간주하고, 아랍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고유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베르베르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
알제리의 공용어는 아랍어와 따마지흐어(Tamazight, 베르베르어)이고, 불어도 통용된다. 독립 후 알제리는 프랑스어와 베르베르어를 부정하고 아랍어 언어문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베르베르인들이 베르베르어 인정을 거세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6년 알제리 정부는 아랍어 사용의 일반화에 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초중고와 대학에서 아랍어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국어인 아랍어는 고전 아랍어이기에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알제리의 아랍어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알제리인 10명 중 8명은 고전 아랍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2002년부터 헌법에서 아랍어를 국어 및 공식어(langue officielle), 베르베르인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따마지흐어를 국어로 규정하였다. 2007년 이래 베르베르어가 대학수힉능력시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어나 프랑스어에 비해 사용 인구가 매우 적다. 2016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베르베르어도 공식어로 지정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으로 국민 대다수가 아랍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언어를 쓴다. 특히 프랑스어는 알제리인 대부분이 모어로 사용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외국인이 프랑스어만 구사해도 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만큼 여전히 프랑스어가 실생활에서 쓰이는 상용어이다. 공문서도 프랑스어로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의학이나 공학 같은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프랑스어로 교육하고 있다.
알제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랑스어 사용국이다. 대학생 중에는 프랑스어로 읽고 말하고 쓸 줄 알면서도, 아랍어는 읽고 쓰는 것이 불편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외 약간의 영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러시아어 사용자도 있다.
4. 알제리 문화의 특성
알제리는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이슬람, 오스만 터키, 프랑스가 차례로 지배함으로써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으면서 지중해에 접해 있고, 중동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다문화의 복합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알제리는 오랜 기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뒤 엄청난 희생자를 낸 혹독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기에 국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독립을 이끌어낸 군사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재건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립에 기여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존경심과 예우가 각별하다.
독립 이후 프랑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범국가적 정체성 회복과정을 거쳤음에도 전반적으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계속 받고 있다. 이는 프랑스로 이주한 알제리 출신 이민자들과 양국 간 국제결혼 등을 통한 긴밀한 인적 관계에 기인한다. 알제리-프랑스 이중국적자는 약 200만 명, 알제리 출신 프랑스 국적자는 약 5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알제리와 프랑스 국내 선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알제리는 이슬람 전통을 따라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혼 남성이 또 다른 여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본처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본처는 남편의 중혼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부다처제를 따르는 가정은 거의 없다.
알제리는 법적으로 남녀평등이 보장되어 있어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 여성의 사회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과 전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경기장이나 카페 등 대중적인 장소에는 주로 젊은 남성들끼리만 모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성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여성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또, 외출시 신체를 노출하는 의상은 거의 입지 않는다. 밖에서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는 광경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보수적인 성향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하다.
5. 알제리의 교육
알제리는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교육 및 보건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국립기관에서 행하는 무상교육이다. 5세부터 15세까지는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 5년-중학교 4년-고등학교 3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고등학교 졸업시 치르는 대학입학 자격시험 바깔로레아(Baccalauréat) 결과에 따라 고등교육의 진로를 결정한다.
알제리에는 고등교육과 연구기관으로 26개 대학과 67개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알제리 고등교육의 중심지는 1879년 설립된 알제대학교(University of Algiers Benyoucef Benkhedda)다. 알제리의 대학생 숫자는 100만 명에 달하며, 그중 절반은 여학생이다. 그외 외국인 학생도 8만 명에 이른다. 알제리 국민의 교육열은 매우 높은 편이며,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경우 프랑스나 캐나다 등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
알제리는 전 교과과정을 아랍어로 교육하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랑스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베르베르어가 2002년부터 공용어로 채택되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르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사 부족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등연구기관 역시 기본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과학이나 의학과 같이 전문성이 강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6. 알제리의 언론
알제리의 모든 언론 매체는 정부가 통제한다. 텔레비젼 방송은 1962년부터 단일 국영방송 체제를 유지하며 국영 텔레비전사(ENTV, Entreprise nationale de télévision)에서 Canal Algérie, Algérie 3, Tamazigh tv 4, Coran tv 5 등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 방송은 아랍어와 프랑스어, 베르베르어를 사용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위성방송을 통한 프랑스 방송이나 다른 아랍 국가의 아랍어 방송을 시청한다. 라디오는 주로 국영 라디오로 전국 32개 방송지부를 두고 운영된다. 아랍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 외에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방송된다.
신문은 대부분 민간 언론사로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간행된다. 아랍국이지만 언론의 자유는 어느 정도 인정되는 편이다. 알제리통신사(APS : Algérie Service)는1961년 설립되어 국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어 일간지는 El Watan, Liberté, El Moudjahid, Le Quotidien d’Oran 등이 대표적이다. 아랍어판 일간지에는 El Khabar, Ennahar 등이 있다.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인 엘무자히드(el-Moudjahid)는 정부 기관지다. 신문 매체들의 인터넷판도 상당히 잘 운영되고 있다.
7. 알제리의 종교
알제리는 한법상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로 정해져 있다.이슬람 국가가 되기 전, 알제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이 활동하던 초대교회 신학의 중심지였지만 기독교계 지주들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으로 북아프리카 지역이 이슬람 국가가 되면서 현재 알제리인의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프랑스의 유명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도 알제리 이민 2세로 무슬림이다. 식민지 당시 친프랑스파였던 그의 부친은 알제리가 독립하자 추방되었다. 알제리에서 국교인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는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최근 라마단 기간 중 금식 불이행자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한 형사 처벌이 종교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개인의 신념 및 종교의 자유와 이슬람 규율 사이에는 모순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개종을 불법으로 규정한 새 법령이 공포되면서 26개의 알제리 개신교 교회가 정부에 의해 폐쇄되었다. 알제리는 자국민이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믿을 경우 이를 배반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국 내 외국인의 타종교 신앙은 용인하고 있다. 카빌리 지역에 캐돌릭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8. 알제리의 문학과 예술
알제리 태생 유명 인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철학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가수 앙리코 마샤스(Enrico Macias), 패션 디자이너 입센 로랑(Yves Saint Laurent) 등이 있다. 특히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 중에는 알제리 수도인 알제와 로마 유적지인 티파자(Tipasa), 스페인 유적지가 있는 오랑 등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가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알제리 블리다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FLN)에 투신하고, 알제리 독립전쟁과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 파농이 1952년에 쓴 'Black Skin, White Masks(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일명 '식민주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린다. 이 책은 아프리카의 문학과 철학, 심리학 등 제 학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마친 고전이다. 이 책 이후에 쓰여진 모든 아프리카 저작들은 'Black Skin, White Masks'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또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및 서인도 제도 등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탈식민주의-시대에 정치, 경제, 사회, 특히 문화 등에서 식민주의적 잔재 때문에 고통받는 민중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중세 이슬람 역사학자 이분 칼둔(Ibn Khaldun)은 명저 '역사서설(Muqaddimah)'을 알제리에서 3년 동안 저술했다. '돈키호테(Don Quixote)'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도 알제리에서 5년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 소설 '돈키호테'에는 알제리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알제리 출신 유명 인물로는 프랑스 영화배우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 프랑스 가수 시멘 바디(Chimène Badi) 등이 있디. 이자벨 아자니는 아버지가 알제리인이고, 시멘 바디는 부모가 알제리인이다.
9. 알제리의 문학
알제리 문학에 쓰이는 언어는 대부분 프랑스어 혹은 아랍어이고 베르베르어는 소수이다. 알제리 정부가 강력하게 아랍어화 정책을 펼쳤지만 많은 작가들은 프랑스어를 문학 표현어로 사용하고 있다. 132년 동안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의 언어 말살 정책으로 독립 후 초기에는 아랍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와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없었으나, 민족주의를 지지하고 아랍 이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알제리 정부의 노력으로 오늘날은 아랍어 작품도 많아졌다.
.
알제리 문학 작품은 개인적 낭만주의보다는 과거 민족해방을 위한 무장투쟁, 민족해방전선(FLN)에 의한 혁명의 승리, 농업 개혁법이나 토지 국유화,독립 이후의 자아비판, 민족해방운동과 정체성 확립, 민족주의 고취, 테러와 이에 따른 갈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가부장제와 종교적 엄숙함을 억압이라 보는 여성의 시각을 대변하거나 이주민 및 주변부 하위계층의 애환 등을 다루고 있다.
알제리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는 모하메드 딥(Mohammed Dib)의 '거대한 집(La grande maison)', 카텝 야신(Kateb Yacine)의 '네즈마(Nedjma)', 앗씨아 제바르(Assia Djebar)의 '사랑, 기마 행진(L’Amour, la fantasia)', 야스미나 카드라(Yasmina Khadra)의 '테러 공격(L’Attentat)', '낮이 밤에 빚진 것(Ce que le jour doit à la nuit)', 물루드 페라운(Mouloud Feraoun)의 '빈자의 아들(Le fils du pauvre)' 등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표현된 아랍인 비하적 정서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쓴 카멜 다우드(Kamel Daoud)의 '뫼르소 : 반대 공격(Meursault, contre-enquête)'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10. 알제리 영화
본격적으로 알제리 특유의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2년 독립 이후이며, 대표적인 영화로는 '격동시대 일대기(Chronique desannées de braise)', '알제리 전투(La Bataille d’Alger)', '오레스 지역의 바람(Le vent des Aurès)', '바이야의 산(La montagne de Baya)', '낮이 밤에 빚진 것(Ce que le jour doit à la nuit)' 등이 있다.
11. 알제리 미술
알제리는 19~20세기 초에 서구의 화가를 위시한 예술가들에게 오리엔탈리즘적 창작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당시 알제리에서 영감을 받아 오리엔탈리즘 작품을 남긴 화가로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에티엔-나스레딘 디네(Étienne Nasreddine Dinet) 등이 있다.
대표적인 알제리 화가로는 모하메드 라심(Mohamed Racim), 바야(Baya), 호신 지아니(Hocine Ziani), 바시르 옐레(Bachir Yellès) 등이 있다.
12. 알제리 음악
알제리는 음악 부문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나타난다. 알제리의 대표적인 전통음악으로는 알제의 샤비(Chaâbi), 틀렘센의 안달루지(Andalouse), 콩스탕틴과 안나바의 말루프(Malouf), 오레스(Aures) 지방의 샤우위(Chaoui), 카빌리(Kabylie) 지방과 사하라 지방의 그나위(Gnawi) 등이 있다. 지역 및 민족에 따라 그들만의 특색 있는 음악이 있다.
알제리에서는 민속음악인 멜훈(Mellhun)에서 파생되어 1920년대 오랑을 중심으로 기본틀이 형성된 음악 장르인 라이(Rai)가 유명하다. 라이는 소외받는 주변부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 외에도 락이나 랩, 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존재한다. 유명한 알제리 가수로는 수아드 매시(Souad Massi), 칼레드(Khaled), 이디르(Idir), 와르다 알자자이리아(Warda Al-Jazairia) 등이 있다.
알제리의 전통 민속악기 역시 다양하며, 각 지역마다 고유악기가 있다. 탬버린, 북 같은 타악기, 나무로 만든 관악기, 비교적 크기가 작은 현악기 등이 있다. 게스바(Guesba), 임자드(Imzad), 카눈(Kanoun), 만돌르(Mandole), 데르부카(Derbouka), 벤디르(Bendir), 겔랄(Gellal) 등이 대표적이다.
14. 엘제리 스포츠
알제리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이다. 축구는 남성들이 향유하는 문화이며, 경기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등으로 축구 경기를 관람한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취미로 축구를 한다. 알제리계 프랑스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의 국민적 영웅이다.
다른 스포츠로는 핸드볼, 배구, 농구, 복싱, 유도, 사이클, 육상경기 등에서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알제리에서 태권도는 유도에 비해 인지도가 낮지만 알제리 태권도협회가 있으며, 지속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15. 알제리 음식
알제리의 음식은 역사적 배경과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꾸스꾸스(Couscous), 메시위(Méchoui), 따진(Tajine), 부렉(Bourek) 등이 유명한 요리이며, 식사할 때 빵을 곁들여 먹는다. 특히 꾸스꾸스는 매주 금요일 대부분의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가정식 요리이며, 지역에 따라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다.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아주 단 과자가 많고, 커피와 여러 가지 차를 넣어서 오래 끓이는 전통차를 가장 많이 마신다. 우리가 생각하는 커피숍(Café)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으로, 지금도 이곳에 가면 남성들끼리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16. 알제리의 기후와 지리, 자연 환경
알제리는 12∼3월에 비가 오며, 나머지 기간에는 가뭄이 계속된다. 연강우량은 100㎜ 이하이다. 알제리 북부는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 습한 곳은 강우량이 800mm~1000mm정도이다. 11월~2월 평균기온은 12℃ 미만, 7~8월 평균기온은 30℃이다. 아틀라스 산맥(Atlas Mountains)의 높은 곳은 항상 눈이 쌓여 있으며, 강우량은 약 200~400mm 정도이다. 남부에는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낮에는 45℃ 이상인 경우가 많고, 밤에는 10℃ 내외로 떨어지며 일교차가 매우 심하다.
아틀라스 산맥은 모로코 동부와 알제리 북부에 걸쳐 있는 광활한 오 고지대(Hauts Plateaux)-오 대평원(Hautes Plaines)-를 에워싸고 있다. 이 산맥은 동쪽으로 튀니지의 테베사 산맥(Tébessa Range), 메제르다 산맥(Medjerda Mountains)과 만나고, 서쪽으로 모로코에서 미들 아틀라스(Middle Atlas)와 하이 아틀라스(High Atlas)의 높고 험한 봉우리들이 길게 뻗어 있는 습곡지대로 이어진다. 안티 아틀라스 (Anti-Atlas)는 하이 아틀라스에서부터 남서쪽으로 대서양까지 뻗어간다.
알제리 북부에는 텔 아틀라스(Tell Atlas)가 병풍처럼 솟아 있다. 텔 아틀라스는 모로코에서 알제리 북부를 지나 튀니지까지 이어지는 산맥이다. 텔 아틀라스의 북쪽은 지중해 해안지대, 그 남쪽은 평원지대이다. 텔 아틀라스에 위치한 대초원 오 고지대는 알제리 북동부 오레스(Aurès)에서 모로코 북동부까지 남서쪽으로 600km 이상 뻗어 있다. 텔 아틀라스 최고봉은 투브칼 산(Mount Toubkal, 4,165m)이다.
사하라 아틀라스(Saharan Atlas)는 알제리에서 튀니지까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뻗어 있는 아틀라스 산맥의 일부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 주요 지맥으로는 크수르 산맥(Ksour Range), 아무르 산맥(Amour Range), 울레드나일 산맥(Ouled-Naïl Range), 잡 산맥(Zab Mountains), 오레스 산맥 등이 있다. 텔 아틀라스와 사하라 아틀라스는 동쪽에서 만나 테베사 산맥과 메제르다 산맥으로 이어진다.
알제리의 우엔자 산(Mt Ouenza) 근처에는 철광산이 있으며, 테베사 시 근처에는 대규모 인산염 광산이 있다. 사하라 아틀라스 최고봉은 크수르 산맥에 솟아 있는 아이사 산(Djebel Aissa, Mount Issa, 2,236m)이다.
사하라 아틀라스의 남부 경계선에서 사하라 사막이 시작된다. 알제리 남부의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은 전 국토의 85%를 차지한다. 남부 사막지대에는 아하가르 고원(Ahaggar Plateaux) 또는 호가르 고원(Hoggar Plateaux)이 있다.
아하가르 고원은 해발 900m가 넘는 산간고원으로 남북 길이 약 1,550㎞, 동서 길이 약 2,092㎞에 이른다. 아하가르 고원의 최고봉은 타하트 산(Mount Tahat, 2,918m)이다. 아하가르 고원으로부터 침식지형으로 이루어진 사암고원(tassilis)이 뻗어나간다.
북부의 텔 조산대는 주기적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171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오랑(Oran)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1790년에는 알제에서만 2만여 명이 사망했다. 1954과 1980년에도 엘아스남(El-Asnam)에서 지진으로 약 5천2백 명이 사망했다.
알제리의 대표적인 하천은 북쪽의 셸리프 강(Chelif River)과 하미즈 강(Hamiz River)으로 전국 관개용수의 약 1/3을 공급한다. 삼림은 북동부와 텔 아틀라스에만 분포하며, 오 고원에는 풀과 덤불만이 자란다. 이곳에 서식하는 표범과 치타, 여러 종의 가젤 영양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17. 알제리의 정치
알제리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인민공화제 국가이다. 2016년 2월 대통령은 1회 연임만 가능하도록 헌법이 개정되었다. 외형상으로는 3권분립 체제를 지향하지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대통령 유고시에는 상원의장이 권한대행을 하며, 90일 이내에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심각한 건강 문제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하원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상원의장이 45일 동안 대통령직을 대행할 수 있다.
의회는 양원제이다. 상원은 144석, 하원은 462석이다. 하원이 제출한 법률안은 상원 3/4의 찬성이 있어야 확정된다. 임기 5년의 하원의원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하원은 법률안 발의 및 수정, 제정권, 조약 비준권, 내각 해산권 등의 권한이 있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6년이다. 3년마다 선출직의 1/2을 개선한다. 상원 정원의 2/3(96명)는 48개 도에서 각각 2명씩 간선제로 선출하고, 1/3(48명)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상원은 하원 가결 법률안에 대한 심의권이 있다, 하원 가결 법률안은 상원 3/4의 찬성으로 확정되며, 법률안 발의 및 수정권은 없다.
정당은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요 정당에는 민족해방전선(FLN), 민주국민회의(RND), 사회평화운동(MSP), 노동당(PT), 사회주의전선(FFS), 민족민주동맹(RND), 문화민주동맹(RCD) 등이 있다.
일제리 대법원은 일반 재판소로서 하위 각급 법원을 관장한다. 행정법원은 국가 행정 관련 사안에 관한 재판을 담당한다. 권한쟁의 법원은 대법원과 행정법원 간 권한, 쟁의만 관할한다.
18. 알제리의 경제
알제리의 명목 GDP는 2019년 기준 1,728억 달러, 1인당 명목 GDP는 3,980달러이다. 경제성장률은 2.6%, 실업률은 12.5%이다. 교역 규모 877억 달러 가운데 수출액은 422억 달러, 수입액은 455억 달러이다.
알제리의 주요 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이다. 석유 매장량은 약 122억 배럴(세계 16위, 아프리카 2위, 0.7% 점유), 천연가스 매장량은 4.3조㎥(세계 9위, 2.2% 점유)이다. 수은(세계 4위), 중정석(세계 5위), 인광석(세계 8위) 등도 알제리의 주요 자원이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유일의 수은 생산국으로 세계 수요량의 약 10%를 공급한다. 화폐는 알제리 디나르(Algerian Dinar, DZD)이다. 1달러는 110DZD이다.
19. 알제리의 외교와 남북한
알제리는 독립 이래 한국과 적대시하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1985년 소련에 개혁 물결이 일어나자 알제리도 민주화와 경제 개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을 경제개발의 모델로 삼았다. 이후 양국은 상호 경제협력과 통상 교역이 증가하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1990년 1월 알제리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4월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1992년 알제리는 한국에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2003년 12월에는 부테블리카 대통령이 방한했으며, 2005년 9월에는 UN 총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과 부테블리카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였다. 2006년 3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알제리를 방문한 바 있다. 알제리에는 한국 교민이 약 765명(2019년 현재) 체류하고 있다.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266명의 알제리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알제리는 한국보다 훨씬 빠른 1963년 4월 18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북한은 혁명 역량과 연대 강화 등 소위 3대 혁명 역량의 강화 노선에 따라 1958년 알제리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FLN과 ANP애 대한 인적, 물적 지원을 했다. 1962년 알제리 독립 후에도 북한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되었다. 1960~1970년대 제3세계의 발언권이 확대되면서 비동맹 의장국이었던 알제리는 소련, 중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원하였다.
1971년 부테플리카는 외무장관 재직시 북한을 방문한 바 있고, 1975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알제리를 방문한 바 있다. 또 북한은 알제리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알제리 대통령 경호실 요원을 초청하여 훈련시키는 등 알제리가 사회주의 국가였던 시절에는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 양국 간의 실질적 협력 관계는 미미한 실정이다. 1998년 알제리와 북한은 서로 상주공관을 철수하였다. 2013년 9월 주알제리 북한 대사관이 재개설되었다.
2020년 6월 6일 현재 한국 외교부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알제리 북부 지중해 연안의 카빌리(Kabylie) 산악지역의 부메르데스, 부아라, 티지 우주, 베자이아, 보르즈부아레리즈, 지젤 주 등 6개 주에 대해 철수를 권고하는 여행경보를 내렸다. 또 알제리 북동부 튀니지와의 국경 지대 테베사, 엘웨드 동부, 오아글라 동부도 철수 권고 지역이다. 알제리 남동부 리비아와의 국경지대 일리지 동부도 철수 권고 지역이다. 알제리 남부 니제르와 말리, 모리타니와의 국경 지대 타만라셋 남부, 아드라르 남서부, 틴두프 남서부도 철수 권고 지역이다. 알제리를 여행할 때 황열병 예방접종은 필수, 말라리아 예방접종은 권고 사항이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연합, 아랍 연맹, OPEC, 유엔의 회원국이다. 또, 아랍 마그레브 연합 창립국 중 하나이다. 알제리는 독립 이후 세 차례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외교기조로 좌경중립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독립과 반제국주의, 비동맹의 3대 원칙을 일관성 있게 고수해 왔다. 특히 알제리는 전 세계의 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하고, 반식민 반제국주의 및 자원 민족주의 운동의 기수로서 제3세계의 지도자적 소임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성격이 온건 실용주의로 변모해 가고 있고, 국내 정치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등 이념보다는 실리 위주로 외교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2020. 7. 10. 최종 수정
'아프리카 바로 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아프리카(North Africa) - 서사하라(Western Sahara) (0) | 2010.01.27 |
---|---|
북아프리카(North Africa) - 모로코(Morocco) (0) | 2010.01.27 |
북아프리카(North Africa) - 튀니지(Tunisia) 1 (0) | 2010.01.27 |
북아프리카(North Africa) - 리비아(Libya) 1 (0) | 2010.01.27 |
북아프리카(North Africa) - 수단(Sudan) (0) | 2010.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