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이별 연습을 하다 8

林 山 2012. 11. 29. 11:38

어머니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생일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11월 18일 일요일이 생일이었는데..... 서울에서 작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생일 선물로 뭘 해주면 좋을까?"

"현찰로 주시면 좋겠는데요. 헤헤헤."

"알았다.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먹어라."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인터넷 뱅킹으로 아들에게 20만원을 보내주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교육민주화운동이니 뭐니 해서 밖으로만 돌아다니다가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앞서곤 한다. 지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아빠 노릇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녁이 되자 밤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겨울용 털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섰다. 길거리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오늘도 포도당 링거 주사바늘을 꽂은 채 나를 맞이하셨다. 식사는 잘 하셨느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침과 점심은 병원에서 나온 죽, 저녁에는 아버지가 사오신 호박죽을 드셨단다.

 

"대변은 잘 보셨어요?"

"그래. 다섯 번이나 눴다."

 

어머니가 또 뭐라뭐라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머니 입 근처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감기 들리지 않게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니거라."  

"예,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내가 혹시라고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신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어머니에겐 철부지 어린아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없다."

 

이번에는 어머니 맞은 편에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복수가 차오른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어요?"

"2층 집중치료실로 옮겼는데 다행히 아직 식사는 잘하고 있대요."

 

복수가 차오른 할머니는 간경변이었다. 간경변 말기에 이르면 간의 문맥이 막히면서 영양공급이 안돼 피골이 상접해지고 배가 복수로 북처럼 뻥그렇게 차오르게 된다. 복수와 함께 간성 혼수에 빠지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 할머니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는 것이다.

 

소식을 전해준 맞은 편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연수동 주공 3단지 아파트에서 살다가 요양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건강할 적엔 시내에 있는 중앙교회를 열심히 다니셨다. 할머니의 남편은 6.25 때 전사를 했다. 젖먹이 아들 하나만 남긴 채..... 청상이 된 할머니는 행상으로 아들 하나를 키우느라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단다.      

 

오늘은 침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팔다리만 주물러 드렸다. 관절과 근육을 풀어 드리면서,

 

"일어나시면 막내딸이 사는 아르헨티나에 모시고 갈게요."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몇 년 전 여동생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살 때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인천공항에서 홍콩 첵랍콕공항을 경유하여 요하네스버그 왈탐보공항까지 총 17시간 걸리는 비행을 매우 고통스러워 하셨다. 휠체어와 우선 입출국 수속 편의가 제공되는 패밀리 서비스를 받았음에도 공항에 도착했을 즈음 어머니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 있으셨다. 남아공에서 돌아와서 어머니는 앞으로 다시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노라고 하셨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요하네스버그보다 훨씬 더 멀어 비행기로 23시간이나 걸린다. 어머니도 남아공보다 아르헨티나가 더 멀다는 것을 아시는 듯했다. 어머니는 고통스런 비행을 또 겪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어머니는 피딱지가 앉은 아랫입술과 혀가 조금 아프다고 하셨다. 어제는 괜찮다고 하시더니..... 내일이 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어머니를 달래 드렸다.

 

어머니의 양말은 오늘도 여전히 어제 그대로였다. 양말을 갈아 신겨 드리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내일은 어머니에게 반드시 양말을 갈아 신겨 드리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어머니에게 밤인사를 드리고 거리로 나섰다. 하룻밤새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잎이 다 떨어진 채 벌거숭이로 서 있다. 은행나무 빈가지에는 차오르는 반달이 걸려 있다.

 

2012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