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이별 연습을 하다 7

林 山 2012. 11. 28. 11:32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점심 때쯤..... 오늘이 음력으로 10월 7일 아버지의 생신이자 세째 동생의 생일이라는 것을 그만 깜빡했다. 내 건망증도 건망증이지만 그만큼 가족에 대해 무신경했다는 증거다. 무신경을 반성하면서 죄송스런 마음에 우선 아버지에게 전화로,

 

"생신하드려요. 점심은 드셨어요?"

"큰메누리가 와서 차려 주어서 잘 먹었다."

"용돈 조금 보내 드릴 테니 맛있는 거 사 드세요"

"그래, 고맙다."

 

하신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인터넷 뱅킹으로 아버지에게 10만 원을 보내 드렸다. 

 

세째를 불러 생일 축하와 함께 1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세째 동생 부부는 어제 시골 고향집에 들어가서 하루 묵고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 미역을 끓여 드렸다고 한다. 어제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퇴근 후 어머니에게 들렀다. 오늘도 어머니의 팔에는 포도당 링거 주사바늘이 꽂혀 있다. 간병사는 어머니가 대변을 새벽에 50g, 낮에 30g씩 찔끔찔끔 세 번 보셨다고 전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도 속이 답답하고 불편하신지 관장을 해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대변도 스스로의 힘으로 보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장 기능이 점점 나빠져요. 저녁에 한방 변비약 드셨나요?"

 

고개를 끄덕이신다.

 

"쾌통원을 드셨으니까 내일은 틀림없이 대변을 시원하게 보실 거에요. 그건 그렇고..... 오늘 식사는 잘 하셨어요?"

"잘 했다."

 

아침과 점심에는 병원에서 나온 죽, 저녁에는 아버지가 사오신 호박죽을 드셨단다.

 

"어제 뜨거운 호박죽 드시다가 덴 입술과 혀는 괜찮으세요?" 

"괜찮다."

 

문득 지난 일요일 머리를 깎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모자를 벗고 어머니에게 보여 드리면서,

 

"제 머리 어때요?"

"이쁘게 잘 깎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고개를 끄덕이신다.

 

"무슨 날이에요."

"아부지 생일."

"또요?"

"세째 생일."

 

아버지와 세째 생일을 기억하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당신의 남편과 자식이 태어난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셨던가 보다.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아버지에게 10만 원 보내 드렸어요. 세째에게도 10만 원 줬고요."

"잘 했다." 

 

어머니도 흐믓한 표정이시다.

 

어머니의 건측에 중풍칠처혈 위주로 침을 놓아 드렸다. 백회와 염천혈도 추가했다. 유침하는 동안 마비된 왼쪽 팔다리의 관절과 근육을 풀어 드릴 생각으로 양말을 벗기는데..... 어머니가 벌써 며칠째 같은 양말을 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말을 갈아 신겨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새 그만 또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내 건망증을 원망하면서 어머니에게 매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일은 꼭 양말을 갈아 신겨 드리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했다.

 

오늘은 504호 병실에 두 할머니가 새로 들어와 식구가 늘었다. 창가 2번 침상 주인은 칠금동에서 오신 할머니, 3번 침상 주인은 교현동 중흥S 클래스 파크 애비뉴에 살다가 오셨다는 할머니다.

 

발침을 하면서,

 

"어머니, 동생들 보고 싶지 않으세요?"

"아니....."

"동생들이 왜 안 보고 싶으세요?"

"....."

"동생들 연락처는 아세요?"

"아니."

"동생들 이름은 아세요?"

"아니."

"제가 외삼촌과 이모들을 찾아 드릴까요?"

 

어머니가 고개를 강하게 저으신다.

 

"또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없으세요?"

"없다."

 

어머니에게 내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은 어떤 의미였고 어떤 존재였을까? 비록 아버지는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서로 인연을 끊고 살았다는 것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끔 안부 정도는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이모들을 갈라 놓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에게 밤인사를 드리고 병실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밤공기가 귀가 시릴 정도로 차다. 은행나무 가로수에는 아직도 노오란 은행잎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하늘에는 반쯤 숨은 달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