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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이별 연습을 하다 11

林 山 2012. 12. 4. 10:23

퇴근 후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504호실로 들어갈 때면 항상 긴장이 되곤 한다. 어머니의 얼굴만 봐도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환한 얼굴로 맞아주시면 비로소 안도가 되지만 표정이 안 좋으시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504호실로 들어가니 어머니는 두 눈을 꼭 감으신 채 깊은 잠에 빠지셨다. 어머니는 오늘 아침부터 하루종일 계속 잠만 주무셨다고 5번 침상의 소이 할머니가 전한다. 맞은편 6번 침상의 주공 3단지 할머니는 어머니가 어제 밤새도록 사람 이름을 중얼거리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누구를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것일까?

 

나는 어머니를 깨웠다. 그러나 어머니는 좀처럼 눈을 뜨시지 못하신다. 내가 몇 번이나 큰소리로 깨우자 어머니는 겨우 눈을 뜨셨다. 내가, 

 

"제가 누구에요?

"....."

"저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

"큰아들?"

 

하자 그제서야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정말 알아보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제 이름 아세요?"

"....."

"제 이름이 뭐에요?"

"....."

 

몇 번을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는 금방 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신 듯 코를 고셨다. 옆 침상의 할머니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담당 간호사가 와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식사를 갖다 드려도 입을 꼭 다물고 안 드신다는 것이다. 지금도 영양실조 상태인데 식사를 안 드시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심각한 영양실조는 체력은 물론 면역력을 급격히 저하시켜 합병증이 발생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담당 간호사는 튜브를  코를 통해 식도로 넣어서 경관영양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내 동의를 구했다. 어머니의 영양실조로 인해 체중은 빠질 대로 빠지고 체력은 고갈될 대로 고갈된 상태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경관영양에 동의했다. 

 

담당 간호사가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어머니를 깨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잠깐 눈을 뜨셨다가는 금방 도로 감으셨다. 나는 속이 탔다. 이대로 어머니가 깊은 잠에 빠져 다시는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옆 침상의 할머니들도 안타까운 눈으로 마음의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어머니가 어제 섬망 증세에 시달리느라 너무 피곤하고 고단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를 깨워서는 안되었다. 어머니는 지금 잠과 휴식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겠다.

 

나는 이불을 잘 덮어 드린 뒤 잠든 어머니에게 편안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옆 침상의 할머니들에게도 인사를 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근처 고향막창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돼지 항정살과 소주를 시켰다. 쓴 소주를 털어 넣었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맹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밤이 이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쿠나마타타!

 

2012.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