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첫눈을 맞으면서 출근을 했다.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다. 이젠 본격적으로 겨울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모양이다.
오전에 요양병원 간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경관영양을 해야겠다면서 나의 동의를 구했다. 어머니의 회복을 위해서 나는 경관영양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비위가 허약하셨다. 중풍 재발 이후에는 저작기능도 떨어지고 입맛마저 잃으셔서 음식 섭취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래서 하루 세 끼 죽만 드셨으니 어쩌면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도 당연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요양병원에 들러 오전에 간호사와 주고 받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려 주었다. 그리고 경관영양이 무엇인지 설명해 드렸다. 코로 삽입한 관을 통해서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나의 설명을 듣자마자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어지셨다.
"나 콧줄 안 할란다."
"어머니의 영양실조가 심각하대요. 지금처럼 식사를 안 하시면 콧줄을 하셔야 한대요."
"콧줄 안 한대도!"
"콧줄 안 하시면 영양실조로 큰일날 수도 있대요. 그래도 콧줄 하기 싫으세요?"
"그래."
"그럼 앞으로 식사를 잘 하시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제가 콧줄 하지 말라고 주치의한테 이야기할게요."
어머니는 코에다가 관을 끼우는 것이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왜 안 두렵겠는가! 내 코에 관을 삽입하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간호사가 오더니 내일부터 경관영양을 하겠단다. 나는 어머니가 식사를 잘하시겠다고 약속했으니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머니의 표정에는 김장감이 역력했다. 간호사가 주치의에게 말해서 경관영양을 보류하겠다고 말하자 어미니의 표정은 금세 밝아지셨다.
"식사도 오른손으로 직접 숟가락질을 해서 드시도록 하세요."
"알았다."
지금까지는 간병사가 음식을 일일이 먹여 드렸다. 오른손의 재활 운동을 위해서도 식사를 직접 하시는 것이 필요했다.
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다가 건측인 오른쪽 무릎이 점점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긴 매일 누워 계시니 무릎 관절이 굳는 것도 당연했다. 완전히 마비된 왼쪽 팔다리만 신경을 쓰다 보니 오른쪽 팔다리가 퇴화되어 가고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까지 왼쪽 팔다리를 중점적으로 운동시키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오른쪽 팔다리도 왼쪽과 똑같이 운동을 시켜 드리기로 했다. 먼저 양쪽 다리의 발가락-발목-무릎-대퇴 관절 순서로 운동을 시켜 드린 다음 발바닥-종아리-허벅지 순서로 근육을 풀어 드렸다. 이어 왼쪽 팔은 손가락-손목-팔꿈치-어깨 관절 순서로 운동을 시켜 드린 다음 손바닥-아래팔-위팔 순서로 근육을 풀어 드렸다. 각 순서마다 20회씩 해 드렸다. 오른쪽 팔은 움직일 수 있기에 들어올리기 20회를 스스로의 힘으로 하시도록 했다.
재활 운동을 마치자 어머니는 아침에 대변을 보지 못 해서 속이 불편하다고 호소하셨다. 나는 한방 변비약 쾌통원을 야쿠르트에 타서 드렸다. 그리고 간병사에게 생맥산을 한 봉 데워 오라고 일렀다. 생맥산을 다 드시기를 기다렸다가..... 문득 어머니의 정신이 온전하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대뜸 물었다.
"어머니 제가 누구에요?"
"큰애."
"어릴 때 제 이름 기억하세요?"
"그래."
"어릴 적 제 이름이 뭔데요?"
"종옥이."
내 어릴 때 이름은 종옥이었다. 임종옥! 빨간 웃옷을 입고 왼쪽 가슴에는 손수건을 매단 채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의 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입학하던 날부터 같은 반 아이들은 내 이름을 계집애 이름이라고 놀려 대기 시작했다.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계집애라고 놀려 댔다. 나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된 나는 슬프고 괴로왔다. 담임 선생님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내가 기운이라도 셌다면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 정반대였다.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어떤 때는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어느 날 나는 이름을 바꾸면 내 고민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에게 이름을 바꿔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름을 바꿔 주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계속해서 떼를 쓰자 아버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셨던가 보다. 당시에는 한 번 정한 이름을 바꾸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얼마 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종헌으로 다시 짓고 면사무소에서 개명 절차까지 마치셨다. 어떻게 이름을 바꿀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이름을 새로 바꾼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하늘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나도 남자다운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학교에서 내 이름을 갖고 놀리는 아이는 사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의 내 모습과 이름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던 기억만은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2012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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