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전주에서 국도를 따라 대전으로 가던 도중에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유적지(사적 408호)에 들렀다. 비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왕궁면은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져 있으며, 왕궁리는 마한 또는 백제의 궁궐터였다고 전해진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었는데, 후대에 궁궐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을 세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찰 전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하나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층석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었다. 1965년 해체 수리할 때 탑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과 함께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사리장엄구(국보 제123호)가 발견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탑을 백제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첨가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왕궁리유적전시관
왕궁리 유적지 남쪽에 있는 왕궁리유적전시관에도 들렀다. 2008년 12월 23일 개관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영상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왕궁리 유적', '왕궁리 유적의 백제 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 왕궁' 등 5개 분야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 금 또는 유리 세공품과 왕궁 지붕의 연꽃무늬 수막새, 수부(首府)라고 찍힌 기와, 왕궁에서 쓰던 토기류, 사찰 관련 기와류도 전시되고 있었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은 관람객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의 희망에 따라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기와 만져보기,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목판 찍기, 유물 이미지 스탬프 찍기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왕궁리를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유적지를 되돌아보았다. 백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을 오층석탑이 말없이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문득 고려가 망한 뒤 야은 길재 선생이 송도를 찾았을 때의 감회를 읊은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왕궁리 유적지를 바라보면서 야은 선생의 시조 패러디로 백제를 노래하다.
백제의 왕궁지를 불원천리 찾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무왕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201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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