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불안공포증 환자의 알밤 선물

林 山 2014. 8. 30. 15:43



중년 여성이 갑자기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답답하다고 내원했다. 입맛도 뚝 떨어지고 거기다 불면증까지 겹쳐 고통스럽다고 했다. 며칠 동안 잠을 못자서인지 얼굴에는 초췌한 빛이 역력했다. 이런 상태로 며칠 더 지나면 꼭 죽을 것만 같다고도 했다. 


맥진을 해보니 촌관척(寸關尺)에서 다 동맥(動脈)이 뛰고 있었다. 무엇에 크게 놀란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맥이었다. 맥상으로 보면 심담허겁증(心膽虛怯症)이었다. 나는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민속신앙을 믿는 사람이었다. 친정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녀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민속신앙을 믿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당한테 갔더니 집안에 줄초상이 날 거라며 굿을 해서 액막이를 해야 한다고 겁을 주더란다. 무당의 말을 들은 날부터 그녀는 심계(心悸), 불안, 흉민(胸悶), 식욕부진, 수면장애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당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그녀는 많은 돈을 주고 굿을 했다. 그런데도 불안공포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당에게 불안공포증을 호소하자 액살이 들었으니 살풀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또 큰돈을 주고 살풀이굿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공포증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더 이상 참다 못한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끌다시피 해서 내게 데려왔다.


나는 우선 백회, 단중, 영도, 부류혈을 중심으로 영심안신(寧心安神)하는 침법을 시술했다. 그리고, 심담허겁증을 치료하는 귀비온담탕을 처방했다. 


세 번째 치료를 받고 돌아간 다음 날 그녀가 환한 표정으로 내원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증상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면서 알밤 한 봉지를 내밀었다. 나들이를 갔다가 알밤을 주웠다면서 내 생각이 나서 가져왔단다. 


한의사로서 보람을 느끼는 날이다.  


2014.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