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함백산
살다 보면 문득 산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작정 차를 몰고 산을 만나러 떠나곤 한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백두대간 함백산(咸白山, 1,573m)이었다. 함백산은 온통 눈으로 덮혀 있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2001년 6월 19일 함백산에 올랐었다. 당시 함백산 정상에서 날은 어두워지는데 길마저 잃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더 함백산이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함백산 기원단에 서서 백두대간 함백산 정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느덧 내 가슴은 함백산으로 가득찼다.
합백산을 뒤로 하고 국내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晩項峙, 1,330m)로 내려왔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와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운탄고도
한국의 차마고도(茶馬高道)라고도 불리는 운탄고도(運炭古道) 하늘길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만항재에서 북서쪽으로 백운산(白雲山, 1,426.6m)-화절령(花折嶺, 꽃꺼끼재)-두위봉(斗圍峰, 1470.1m)-질운산(1,172m)-새비재(鳥飛峙)로 이어지는 운탄고도는 옛날에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었다.
운탄고도 초입에는 '혜선사 3km'라고 쓴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길임에도 꽤 여러 대의 차량이 다닌 흔적이 눈 위에 찍혀 있였다. 운탄고도를 타고 상동읍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초행길임에도 모험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경사가 급한 길에서 차가 미끄러질 때는 운탄고도로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떠난 길 끝까지 가보리라 마음먹고 혜선사 방향으로 계속 내려갔다. 혜선사에 도착해서 길이 끊어진 것을 보고는 아차 싶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노우체인도 없는 상태에서 차를 돌려 만항재까지 나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혜선사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100m도 채 못 가서 빙판길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를 세워둔 채 걸어서 혜선사로 내려와 자동차보험 긴급견인 서비스를 요청했다.
혜선사 비구니 스님이 견인차가 올 때까지 방으로 들어와 기다리라고 했다. 스님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왔다. 스님은 45년 전에 혜선사에 들어왔다고 했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더니 스님이 나를 안채에 있는 법당으로 안내했다. 산신각은 조금 높은 곳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산신령님께도 인사를 드리려고 했으나 산신각 문이 잠겨 있었다.
견인업체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산악지대 눈길이라 미끄럽고 위험해서 견인차로 견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안을 물으니 스노우체인을 사서 갖다 줄 수는 있다고 했다. 가격은 10만원이라고 했다. 깊은 산속에서 '을'의 입장에 처하고 보니 견인업체가 하자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에 가까운 열사흘 달이 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두 사람이 탄 SUV 한 대가 혜선사로 가려고 왔다가 내 차에 가로막혀 도로 돌아갔다. 차안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견인업체 직원이 도착했다. 밤 8시가 넘어서야 앞바퀴에 스노우체인을 치고 가까스로 운탄고도를 탈출할 수 있었다.
겨울철 눈이 많이 쌓여 있을 때는 만항재 초입의 차단기가 열려 있더라도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거나 스노우체인이 없다면 운탄고도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속담의 참뜻을 몸으로 절실하게 깨달은 하루였다.
201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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