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9일 을미년(乙未年) 새해 설이 돌아왔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앙성면 진달래공원묘원에 모신 조상님들의 묘소에 들러 성묘(省墓)를 했다. 아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보물 제1401호)을 찾았다. 봉황리 안골(內洞) 내동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서 한포천(漢浦川)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해발 80m 높이의 햇골산 중턱에 마애불상군 유적지가 나타난다.
봉황리 햇골산 마애불상군 유적지
마애불상군 유적지
마애불상군
여래좌상과 공양상
반가사유상과 보살상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자 먼저 커다란 바위에 본존불(本尊佛)과 공양상(供養像), 보살상(菩薩像),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새겨진 마애불상군을 만난다. 너비 약 5m, 높이 약 1.7m의 암벽에 양각되어 있는 마애불상군은 모두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애불상이 새겨진 바위 위에는 암반이 튀어나와 있어 지붕 구실을 하고 있다.
마애불상군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암벽에는 본존불인 여래좌상(如來坐像)과 공양상, 북쪽 암벽에는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1구, 오른쪽에 3구의 보살상이 부조(浮彫)되어 있다. 반가사유상 뒤에서 상체만 내밀고 있는 보살상도 있다. 불상들은 파손과 마멸이 심해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남쪽 암벽의 본존불은 하반신, 공양상은 우반신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북쪽 암벽의 반가사유상과 그 왼쪽,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구 건너편의 보살상은 모두 두상이 심하게 파손되었다.
마애불상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래좌상과 반가사유상이다. 여래좌상은 머리 위의 육계(肉髻)가 매우 큰 편이고, 귀가 길게 늘어져 있다. 수인(手印)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수인이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옷주름이 가슴 위에 층단형으로 늘어져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 상태의 하반신과 대좌의 형태는 파손되어 알 수 없다. 공양상은 여래좌상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무언가를 들어 바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상을 연상시킨다.
반가사유상은 높은 대좌 위에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려 발목을 왼쪽 허벅지에 얹은 채 반듯한 자세로 선정에 들어간 모습이다. 반가사유상은 도솔천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미륵보살을 상징한다. 두상은 파손되어 형체를 알 수 없지만 머리털이 어깨 위까지 늘어져 있고, 옷자락이 대좌를 덮고 있다.
보살상들의 얼굴은 좁고 긴 편이다. 불의는 발끝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어 날씬하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손은 구슬을 든 보살상, 합장을 한 보살상,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는 보살상 등 다양하다. 보살상들이 밟고 있는 대좌는 연꽃줄기로서 반가사유상의 대좌 밑에 있는 연밥과 연결되어 있다.
여래좌상은 미륵불(彌勒佛), 반가상은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이 불상군은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한 미륵신앙의 미륵상생(彌勒上生)과 하생(下生)을 표현한 석탱(石幀)일 수도 있다. 여래좌상의 수인과 두터운 옷주름, 공양상의 고리장식과 허리띠 양식은 삼국시대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보살상의 갸름한 얼굴과 반가상의 원추형 대좌로 볼 때 이 불상군은 고구려 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몸체를 둥글게 표현하여 볼륨감을 준다거나 불의를 이중으로 표현하는 등의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이 불상군의 조성 연대는 6세기 후반~7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좌상 유적지
마애여래좌상
마애불상군에서 남서쪽으로 약 30m쯤 떨어진 암벽에는 높이 2m 정도의 마애여래좌상이 부조되어 있다. 상체가 짧은 반면에 하체는 넓고 높게 표현되어 있어 안정감이 두드러져 보인다. 오른쪽 팔과 옆구리, 다리 아래는 파손 상태가 심하다.
두광(頭光) 안에는 5구의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다. 앙련좌(仰蓮座)에 앉은 화불은 무릎을 든 상태에서 반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다. 머리에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눈두덩의 형태만 표현되어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래좌상의 상호(相好)는 사각형에 가깝고, 머리는 나발(螺髮)로 정수리에 매우 큰 육계가 올려져 있다. 거의 감긴 듯한 눈과 꼭 다문 입은 선정(禪定)에 들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양쪽 귀는 마애불상군의 여래좌상과는 달리 어깨에 닿지 않는다. 두 불상이 서로 다른 시기에 조성되었음을 시사한다. 목은 짧고 삼도(三道)가 없다. 불의는 통견이 확실하지만 암면의 균열과 파손, 마멸이 심해 옷주름을 확인할 수 없다. 수인은 오른팔과 왼손이 크게 파손되었음에도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팔을 들어올려 외장(外掌)한 손 끝과 왼팔을 내려서 외장한 손이 그 증거다. 대좌는 표현하지 않은 듯하다.
두광의 화불, 사각형 얼굴, 넓은 어깨, 결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왼발이 뾰족하게 나와 있는 점 등은 삼국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표현 양식으로 이 여래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불교가 북쪽의 고구려 지역에서 남쪽의 백제와 신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태안 마애삼존불과 단석산 신선사지 마애불은 봉황리 마애불상군과 비슷한 7세기 초에 조성된 불상들이다. 이들은 삼국시대 불교 문화의 전파 경로와 불상 양식의 연구에 좋은 소중한 자료가 된다.
봉황리 마애불상군 앞에서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다.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존재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다. 을미년 한해도 만사형통하기를~!
2015. 2. 19(음력 을미년 새해 초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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