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예산 상가리 미륵불을 찾아서

林 山 2015. 3. 9. 15:29



상가리 미륵불


가야산에서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을 만나고 내려오다가 길가에 '백제의 미소길 상가리 미륵불(上加里彌勒佛, 충남문화재자료 제182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가까운 곳이라 상가리 미륵불을 보고 가기로 했다. 미륵불은 상가리 주차장에서 덕산천변의 '백제의 미소길'을 따라 500m쯤 올라가다가 예산군 운산면 원평리로 넘어가는 길 초입에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미륵불의 머리에는 풀과 꽃 무늬로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보관의 한가운데에는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었다. 석불입상은 미륵불이 아니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왜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지 않고 미륵불이라고 했을까?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얼굴은 길쭉하고 볼이 통통한 편이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으며, 눈은 명상에 잠긴 듯 반쯤 감고 있다. 오똑한 코는 떨어져 나간 코끝을 보수한 흔적이 있다. 미륵불의 코를 떼어 가면 불임 여성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속설을 믿고 누군가 떼어갔다는 소문이 전한다. 머리 양쪽에는 머리띠 매듭이 어깨까지 닿았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입은 단정하게 다물고, 크고 도톰한 귀는 길게 늘어졌다. 


불의(佛依)는 왼쪽 어깨에만 걸친 우견편단(右肩偏袒)을 선으로 새겼다. 평행사선형 옷주름은 오른쪽으로 몸을 감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오른팔은 몸에 붙인 채 팔꿈치를 굽혀 가슴까지 들어올린 뒤 엄지와 중지를 맞잡은 손을 외장(外掌)하고 있다. 왼팔도 몸에 붙이고 손바닥을 배에 대고 있다. 대좌 위에 표현된 두 발은 불의 밑으로 나란히 나와 있다. 


돌기둥 형태의 상가리 미륵불은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조성되었다. 수인(手印) 등으로 볼 때 이러한 표현 양식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널리 유행한 것이다.  


석불 너머로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의 묘가 눈에 들어왔다. 흥선대원군 이하응(興宣大院君 李昰應)은 가야사(伽耶寺)를 불태우고 그 자리에 자신의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썼다. 가야사 터가 왕을 배출할 명당(明堂)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었다. 이하응의 자손은 고종에 이어 순종까지 왕위에 올랐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멸망당하고 말았으니 과연 저 자리가 명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연군묘는 이하응의 가문에게는 명당이었을지 모르지만, 조선의 민중들에게는 흉당(凶堂)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명당이 남에게는 흉당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상가리 주민들은 오랜 세월 이 석불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해마다 추수가 끝나거나 정월에 떡을 해서 제를 올려왔다. 미륵불 머리에 돌을 얹으면 자식을 낳는다고 해서 치성을 드리는 아낙네도 있었고, 우환이 있는 사람들도 이 석불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  


상가리 미륵불은 토라지기라도 한 듯 남연군묘를 등지고 서 있다. 이 석불은 원래 가야사터를 바라보고 서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사르고 남연군묘를 쓰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고 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본래 상태로 되돌려 놓았으나 곧 다시 돌아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99개의 암자를 거느릴 정도로 큰 절이었던 가야사는 서산과 예산 등 이 지역 민중 신앙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야사를 흥선대원군이 불태우고 남연군묘를 쓰자 승려와 민중들은 미륵불을 돌려세움으로써 분노와 반감을 표출했을 수도 있다.


최대승의 '상가리 미륵불'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이 시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다. 


상가리 미륵불-최대승                  


절이야 있건 없건 관심도 없지

무덤 하나 만든 게 대순가

다만 보기 싫을 뿐


애초에 풀잎 새긴 관(冠) 하나 쓰고 서 있었어

내가 어디를 보든 그건 나의 일

가야사는 내 보물이었지만 애달플 거 없어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뭐

불질러버린 흥선을 욕하고 남연군이 차지해도 상관없는 일

그저 치졸이 나를 갉아먹을 뿐


물소리 바람소리 벗하며 산다 한들

누가 뭐라겠어

바람은 이제 친구가 된 걸

골짜기는 오히려 푸근히 나를 감싸는 걸


눈은 겨우 반쯤 뜨고 있지만

그렇다고 볼 거를 못 보는 것은 아니야

세상 돌아가는 거 보기 싫어

반쯤 감았다고 여겨 주시게나


당부하세

미륵불이라 부르지 말게나

북망이 그리운 관세음보살이길 간원할 뿐이니

  

2015.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