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충주호 둘레길을 가다

林 山 2015. 3. 10. 15:48

봄빛이 완연한 주말 처조카가 결혼을 약속한 신랑감과 함께 내 집에 다니러 왔다. 신랑감이 제주도 출신이라 충주호를 보여주기로 했다.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탑평삼거리에서 시작해서 충주호반을 따라 제천시 금성면 주민자치센터 소재지까지 이어지는 532번 지방도(호반로)는 비포장도로가 많아 호젓하면서도 산과 물이 어우러진 멋진 경치가 눈을 즐겁게 하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하천대교 상류 제천천


하천대교 하류 충주호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와 하천리를 이어주는 하천대교를 건넜다. 하천대교는 제천천이 충주호로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다리였다. 충주호의 잔잔한 수면 위로 작은 모터 보트 한 대가 충주조종시험장 앞을 오가고 있을 뿐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하천리 면위산(免危山, 780m) 서남쪽 기슭에는 충주호리조트콘도미니엄, 충주호리조트관광호텔, 에이치아이리조트, 코타놀이동산, 굿모닝캠핑장, 휴캠핑랜드, 충주호캠핑월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부산(釜山, 솥뫼)이라고도 불리는 면위산은 서남쪽 가까이 옥녀봉(玉女峰, 672m)을 거느리고 있었다.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하천리 개천안(開天安)을 지나는 길에 면위산 남쪽 기슭에 세워진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 국보 제 102호) 모조탑과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보물 제17호)에 들렀다. 탑비 주변으로는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홍법국사실상탑은 고려 목종대의 승려인 홍법국사의 부도로 1017년에 조성되었다. 이 탑은 높이 2.55m, 하층 기단폭 1.7m의 팔각원당형이다. 정토사 터에 있던 실상탑은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기고 대신 모조품을 갖다 놓았다. 


홍법국사는 나말여초의 승려로 신라 신덕왕대에 출생했다. 12세에 출가하여 장흥원년(長興元年, 고려 태조 13년, 930)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입조사시랑(入朝使侍郞) 현신(玄信)을 따라 당나레에 들어가 불법을 닦은 뒤 돌아와 선풍을 크게 드날렸다. 성종은 대선사, 목종은 국사의 호를 내려주어 봉은사에 주석하게 했다. 그가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자 목종은 국서와 함께 재물을 하사하였으며, 시호를 홍법, 탑명을 실상이라 하였다.  


법경대사자등탑비는 높이 3.15m, 폭 1.45m, 두께 31cm 규모의 비석이다. 943년(고려 태조 26)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가 최언호(崔彦鎬)가 짓고, 글씨는 구양순체의 대가 구족달(具足達)이 썼으며, 4명의 승려가 글씨를 새겼다. 귀부(龜趺)·이수(螭首)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법경은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로 이름 현휘(玄暉), 속성은 이씨(李氏)이다. 879년(신라 헌강왕 5) 출생하여 영각산사(靈覺山寺)의 심광(深光)의 문하에서 수도하였다. 906년(효공왕 10) 당나라에 유학하고 924년 귀국하자 경애왕은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정토사 주지 되기를 청하였다. 941년 63세로 입적하자 고려 태조는 ‘法鏡’의 시호와 ‘慈燈’의 탑명을 내렸다.  


비봉산


충주호 청풍대교


금수지맥의 동산-용바위봉-단백봉-금수산 능선


충주시 동량면 지동리를 지나 제천시 청풍면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청풍면 진목리, 오산리, 단돈리, 방흥리, 단돈리, 부산리, 사오리, 후산리를 지나 대덕산 기슭의 황석리에 이르자 충주호와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났다.


바다처럼 드넓은 충주호의 푸른 물결은 잔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청풍면 읍리와 도화리를 잇는 청풍대교가 아스라이 보였다. 금수지맥은 작성산에서 동산, 용바위봉, 단백봉, 금수산을 지나 말목산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비봉산 상공에는 상승기류를 탄 패러글라이더들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아름답고 멋진 경치는 그대로 한 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였다.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 삼탄을 가로지르는 동서고속도로 다리 건설 현장


삼탄


인등산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에는 인등산과 마미산을 연결하는 동서고속도로 다리 건설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면위산 북쪽 산기슭에는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동생들과 함께 저기 어디쯤에서 다슬기를 잡던 추억이 떠올랐다. 여름이면 동무들과 어울려 강줄기가 굽이진 여울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기도 했다. 충주댐이 생기기 전 삼탄(三灘)에는 물고기도 많았고, 다슬기도 지천이었다.     


명서교 상류 삼탄


명서교 하류 삼탄


'삼탄강' 시비


명서리 명서교에 서서 유유히 흘러가는 삼탄(三灘)의 강물을 바라보았다. 삼탄역을 떠난 충북선 여객 열차가 동량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삼탄이란 명칭은 명서리 도덕과 명돌 사이를 흐르는 강에 따개바우여울, 앞여울, 소나무소여울 등 세 여울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 총독부는 1914년 도덕리(道德里), 서대리(西垈里), 정암리(鼎岩里), 방대리(方垈里), 명돌리(明乭里), 삼탄리(三灘里), 신담리(新潭里)를 통폐합하여 명돌리와 서대리의 머릿글자를 따서 명서리라 하고 충주군 산척면에 편입하였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함에 따라 중원군 산척면 명서리가 되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의 통합으로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가 되었다. 


명서교 근처 삼탄유원지 초입에는 '삼탄강(三灘江)'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人登山麓下淡灘(인등산록하담탄) 인등산 자락에 맑은 여울 소리 나니

淸濁灘聲無人跡(청탁탄성무인적) 맑고 탁한 물소리 인적은 간 데 없네

地登山岩壁下谷(지등산암벽하곡) 지등산 바위 벼랑 아래 골짜기에는

淸灘散泡七色虹(청탄산포칠색홍) 맑은 여울물 튀어 일곱 색깔 무지개라


天登山萬峯盡紅(천등산만봉진홍) 천등산 봉우리마다 단풍이 물들면 

定雲飛鳥寂寞深(정운비조적막심) 구름 쉬고 새 날아 고요함 깊어가네  

人登地登天登界(인등지등천등계) 인등산 지등산 천등산 세 산 지경에

三灘曲流漢江水(삼탄곡류한강수) 세 여울 구비구비 한강수로 흐르네


해는 어느덧 서산에 지고 있었다. 서녘 하늘에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안고 귀로에 올랐다.


2015.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