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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용소골에서 물매화를 만나다

林 山 2015. 10. 30. 11:10

10월 중순이 지나면서 설악산발 단풍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온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산에 들에 산국도 피고 있을 것이었다. 문득 까맣게 잊고 있었던 덕풍계곡(德豊溪谷) 용소골(龍沼谷) 물매화가 떠올랐다. 지금쯤 용소골 물매화도 피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산국


산국


부랴부랴 차를 몰아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으로 향했다. 덕풍교를 건너 덕풍계곡으로 들어가니 추색이 완연했다. 덕풍계곡은 풍곡마을에서 응봉산(應峰山, 999m) 북서쪽 기슭의 덕풍마을에 이르는 길이 6㎞의 계곡으로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노송이 장관이다. 응봉산 서북능선 끝에 솟은 범바위봉(626m)의 서쪽 산기슭에 있는 내삼방은 조선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상량목(上梁木)으로 썼던 삼척목(三陟木)이 났던 곳이다. 


덕풍천을 가로지르는 성황교와 버릿교, 부추밭교, 칼둥보리교를 건너 용소골 입구가 있는 덕풍마을로 들어섰다. 길가에는 노오란 산국이 피어 있었다. 덕풍계곡의 상류 덕풍마을에서 제3용소에 이르는 계곡을 용소골이라고 한다. 응봉산 서북릉과 남동릉, 삿갓봉(1,119.1m)의 동릉과 북릉 사이에 있는 용소골은 금강산 내금강만큼은 아니지만 방축소, 요강소, 제1, 2, 3용소와 폭포, 사천왕상과 흰바위, 매바위 등의 기암절벽, 수목 등이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 


덕풍마을-제1용소는 1.7㎞, 제1용소-제2용소는 1.1㎞, 제2용소-제3용소는 5.6㎞이다. 용소골에는 장군바위골, 큰다래지기골, 작은터골, 큰터골, 난제골, 작은당귀골, 큰당귀골, 왼골, 재당골 등의 작은 계곡들이 있다. 삿갓봉 북릉 서쪽에는 문지골이 있다. 삿갓봉에서 발원하는 덕풍천은 북서쪽으로 흘러 도계읍 신리 육백산(1,244m)과 응봉산(1,267.3m) 사이의 산당골에서 발원하는 도화천(桃花川)과 풍곡리에서 합류하여 가곡천(柯谷川)을 이룬 뒤 동해로 들어간다.  


용소골에는 의상대사와 나무 비둘기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서 나무로 만든 비둘기 3마리를 날렸는데 1마리는 울진의 불영사, 1마리는 안동의 흥제암, 나머지 1마리는 삼척 용소골의 용소로 떨어졌다. 나무 비둘기가 떨어지자마자 용소골 일대는 천지개벽이 일어나 아름다운 경치로 변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덕풍계곡 용소골 초입


물매화


물매화


물매화


덕풍마을에서 용소골로 접어들었다. 용소골 초입에서 바위 절벽에 놓인 철계단을 바라보았다. 철계단이 끝난 지점의 암반지대가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1년만에 만나는 물매화와의 상봉 장소가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사정이 있어서 지난해보다 1주일 정도 늦게 용소골에 왔다. 과연 물매화가 아직도 피어 있을까?


서둘러 바위 절벽의 철계단을 지나 암반지대에 이르렀을 때 반갑고 또 반가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마 지지 못한 물매화가 그 자리에 그렇게 기다리고 서 있었다.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준 나를 물매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매화는 이제 끝물이었다. 다 지고 몇 송이의 물매화만 남아 있었다. 일주일만 더 늦게 왔더라도 물매화를 만날 수 없을 뻔했다. 지난해 물매화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용소골


용소골


용소골 단풍


용소골


용소골


용소골을 따라 위로 더 올라가 보았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심산유곡(深山幽谷)이었다. 가뭄 탓으로 용소골은 만산홍엽 (滿山紅葉)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떠나는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용소골을 따라 위로 더 올라가보았다. 용소골의 끝에는 이주홍의 소설 '메아리'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용소골의 끝 어딘가에는 소설 속의 그 소년이 아직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언제인가 잃어버린 내 유년의 기억도 어쩌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제 떠나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물매화와 내년에 꼭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물매화도 작별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용소골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슬픔인 듯 슬픔 아닌 슬픔 같은 것이 가슴 한켠에 밀려왔다. 그렇게 물매화와 작별했다.        


2015.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