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부르기라도 한 것일까?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이다. 불현듯 호암지(虎岩池)에서 해돋이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 호암지에 도착하니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붉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호암지에는 정말 오랜간만에 왔다.
호암지에서 바라본 계명산의 해돋이
호암사거리에서 가까운 장미원에서 시작하여 진달래원, 수생생태원, 촉감생태원, 수중생태원으로 이어지는 호암지 동쪽의 생태탐방로를 따라 걸었다.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로 물안개가 마치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호암지 제방 한가운데 막 이르렀을 때 계명산 중턱 위로 눈부신 햇님이 불쑥 솟아 올랐다. 해가 떠오르자 호암지의 수면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새빨간 불덩어리 하나가 생겨났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아침이었다.
호암지의 아침 풍경
호암지에서 바라본 계명산
호암지의 아침 풍경
호암지의 아침 풍경
호암지 동남쪽에서 필자
호암지 사업성공기념비
모시래들
호암지는 1898년에 나온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에 '충주읍의 남쪽 5리 남변면(南邊面)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충주시 호암동 사직산(社稷山)의 서쪽에 자리잡은 호암지는 옛날 연꽃이 만발하여 연지(蓮池)라고도 하였고, 남서쪽 수청골(옛 대제동)에 있는 대제저수지(大堤貯水池)보다 작아서 소제(小堤)라고도 하였다. 대제저수지는 함주제(含珠堤)라고도 불렀으며, 저수지의 모양이 함지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함지라고도 했다. 요즘 충주 시민들은 대제저수지라는 이름을 거의 모르고 함지 또는 함지못이라고 부른다.
옛 호암지 나룻터(일명 뱃집)에는 1933년 5월 1일에 세워진 ‘호암지 수리조합장 사업 공공기념비’가 있다. 일본인 충주수리조합장 스즈끼 세이찌가 쓴 비문에는 호암지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비문을 보면 호암지는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시대 스즈끼 세이찌가 1922년부터 충주면(현 충주시)의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해서 1923년 3월에 준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17년에 준공된 대제저수지에 이어 호암지를 건설한 주목적은 천수답이었던 모시래들(달천평야, 충주평야)을 곡창지대로 만들어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할 식량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1927년 대제저수지와 함께 대규모 확장 공사를 시작한 호암지는 1932년에 완공되었다. 1932년 당시 호암지의 사수면적(死水面積)은 3.1㏊, 몽리면적(蒙利面積)은 336㏊이었다. 1956년 8월 21일에는 호암지 주변이 호암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1년부터 1982년까지는 호암지에 대량의 잉어 치어를 방류하였다. 2007년 말 현재 호암지는 만수면적 29㏊, 총저수량 104만 7천 톤, 유효저수량 103만 톤, 수혜면적 248㏊, 유역면적 1,006㏊로 나타났다. 제방의 길이는 255m, 폭은 5m, 높이는 10m이다. 호암지 둘레는 약 4km에 이른다.
1999년 9월 호암지는 관개저수지로서의 용도가 폐지되었다. 2008년 도심 속의 인공호수 호암지에는 충주 시민들을 위한 친환경 휴식공간 및 자연학습장 역할을 하게 될 호암지생태공원이 들어섰다. 호암지생태공원에는 2.7km에 이르는 산책로를 따라 장미원과 진달래원, 수생생태원, 촉감생태원, 수중생태원, 습지수생식물원, 자원식물원, 생태전시관, 생태개울, 생태연못, 식물섬, 전망대, 관찰데크 등이 갖추어져 있다.
호암지 산책로 곳곳에는 체육 시설과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호암지 주변에는 호암예술회관, 호암체육관, 택견전수관, 우륵당, 청소년수련원 등 충주시의 문화, 체육 관련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호암지에서 보트놀이도 즐길 수 있었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다.
호암지의 철새
호수 위에는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있었다. 마침 호숫가에서 정답게 나란히 유영을 하고 있는 한 쌍의 철새를 만났다. 청둥오리 같기도 하고 흰뺨검둥오리 같기도 했다. 청둥오리 암컷과 흰뺨검둥오리는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데, 다만 몸집이 청둥오리가 조금 더 클 뿐이다. 흰뺨검둥오리는 부부 금슬이 좋기로 유명한 새이다. 따라서 저 한 쌍의 새는 흰뺨검둥오리일 가능성이 많고, 청둥오리라면 부부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겨울에는 청둥오리 수컷의 머리가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호반의 숲 가을 풍경
호암지 서쪽 야산의 숲에는 늦가을이 노란 낙엽과 함께 내려와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을이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호암지의 가을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오다.
2016.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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