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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 -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대를 찾아서

林 山 2016. 12. 13. 19:35



남도기행을 마치고 국도15호선 백아로를 타고 돌아가다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를 지나게 되었다. 옹성산(甕城山, 572m) 옹암(甕岩, 395m)을 바라보자마자 나는 동복면 안성리에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동복유격대는 37,8년 전 내가 2주일 동안 유격훈련을 받았던 곳이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라도 하듯 옹암 기슭에 자리잡은 동복유격대를 찾았다. 동복유격대를 바라보니 내가 유격훈련을 받았던 당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현대식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에는 내무반 건물이 없어서 우리는 연병장 한쪽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유격훈련을 받아야만 했었다.


동복천 강천대


동복천 수중담력훈련장


동복유격대를 나와 동복면 연월리 동복천 협곡에 자리잡은 수중담력훈련장을 찾았다. 동복천 강천대에서 상류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물막이 보를 건너자 곧 수중담력훈련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중담력훈련장을 바라보자마자 나는 타임 머신을 타기라도 한 듯 37, 8년 전인 1979년 5월 초순으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123학군단 ROTC 17기 출신으로 군번은 79-01309번이다. 1979년 2월 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된 나는 호남선 열차를 타고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상무대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했다. 육군보병학교에서 나는 제5학생중대 제1구대에 편성되었다. 


당시 육군보병학교 초군반 장교들에게 가장 악명 높은 훈련이 있었으니 바로 2주일 과정의 유격훈련이었다. 육군에는 빡세기로 유명한 3대 유격훈련장이 있다. 바로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장, 육군제3사관학교 화산유격장, 육군부사관학교 고산유격장이다. 그중에서도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장은 육군 최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곳이라 훈련의 강도가 엄청나게 셌다. 유격훈련을 받다가 종종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1979년 5월 초 드디어 제5학생중대가 유격훈련에 들어가는 날이 왔다. 완전군장을 꾸리고 연병장에 집합을 한 다음 도보로 동복유격대를 향해 출발했다. 적 후방으로의 침투훈련을 겸한 행군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진 채 무등산을 넘을 때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 들었다. 허리까지 빠지는 하천도 건넜다. 이름모를 산을 넘을 때는 해가 져서 야간행군을 해야만 했다. 얼마나 피곤한지 휴식을 취할 때마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무명봉 산자락에서 1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 얼마쯤 걸었을까? 동기생 한 명이 갑자기 '총을 놓고 왔다!'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 열 명의 대원들은 그자리에 얼어붙은 듯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망연자실했다. 총기분실은 곧 군법회의감일 뿐만 아니라 팀원 전체의 연대책임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게 가해질 얼차려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동기생은 지나온 길을 되밟아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 다행스럽게도 동기생이 총을 찾아서 돌아왔다. 총은 바로 전 휴식을 취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한숨을 '휴~!' 하고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동복유격대에 도착한 우리는 쉴 틈도 없이 2인 1조가 되어 A텐트를 쳐야만 했다. 2인용 좁은 텐트는 나와 동기생이 앞으로 2주일 동안 생활할 공간이었다. 텐트를 치고 나자 하의 사타구니와 상의 왼쪽에 갑바를 덧댄 유격복과 계급장 대신 번호표가 부착된 철모가 지급되었다. 유격복으로 갈아입자 우리는 장교가 아니라 'ㅇㅇ번 올빼미'가 되었다. 그렇게 동복유격대에서의 유격훈련이 시작되었다. 


유격훈련 과정에는 구보와 피티체조(PT체조, 유격체조), 목봉체조, 참호격투 등이 들어 있었다. 또, 산악장애물을 극북하기 위해 줄타기, 암벽타기, 레펠하강 훈련, 수상 또는 수중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수영, 수직낙하, 하향횡단낙하 훈련도 과정에 있었다. 이런 극한의 훈련들은 보병장교들로 하여금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배양하여 어떠한 특수전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지휘관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PT체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동복유격대 교관들과 첫 대면하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험악하고 무시무시한 인상을 가진 하리마오 대위가 전 교육생들을 뒤로 취침시켜 놓고 군화발로 가슴팍을 마구 밟고 돌아다니면서 고함을 지르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갈비뼈가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리 올빼미들은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공포에 떨곤 했다. 하리마오는 인도네시아어(語)로 호랑이란 뜻인데, 동복유격대에서 그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구보부터 한다. 아침식사 후에는 공포의 피티체조가 이어진다. PT는 Physical Training의 약자로 원래 미 육군에서 채용한 체력단련 체계이다. 피티체조는 1번 높이뛰기부터 시작해서 2번 굽혀닿기, 3번 엉덩이 올리기, 4번 쪼그려 뻗히기, 5번 쪼그려 굽히기, 6번 발벌려 뛰기, 7번 옆구리 운동, 8번 온몸비틀기,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10번 몸통젖히기, 11번 쪼그려 뛰기, 12번 몸통 비틀기, 13번 팔 올려 발에 닿기, 14번 팔동작 몸통받쳐, 15번 노젖기로 구성되어 있다. 


피티체조는 강-약-강-약 순으로 되어 있어 순서대로만 하면 상당히 이상적인 체력 훈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복유격대 피티체조 교관은 순서대로 하는 법이 없었다. 교관들은 얄밉게도 가장 힘든 체조만을 골라 우리 올빼미들을 괴롭혔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체조는 단연 8번 온몸 비틀기였다. 온몸 비틀기를 제대로 몇 번 하고 나면 정말 온몸이 골병든 것처럼 뻑적지근하고 쑤셔 왔다. 그래서 온몸 비틀기만을 반복적으로 시키는 날은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온몸 비틀기는 다이어트에도 매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피티체조 순서 하나를 마칠 때 마지막 끝에는 번호를 붙이면 안된다. 그런데, 체조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 꼭 번호를 붙이는 올빼미가 한두 명씩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피티체조는 배로 늘어났다. 온몸 비틀기에서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 번호를 붙이는 올빼미는 동료 올빼미들에게 집중적으로 원망을 듣곤 했다. 나도 한 두어 번 마지막에 번호를 붙였다가 동료 올빼미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목봉체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목봉체조는 보통 5~8명이 1조가 되어 굵은 통나무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다시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무한반복해서 옮기거나 목봉을 안고 허리를 구부렸다가 펴는 동작을 무한반복하는 지극히 단순한 체조이다. 목봉을 든 채로 선착순 달리기를 할 때도 있다. 목봉체조는 요령을 피울 수가 없다. 내가 요령을 피우면 다른 올빼미가 그만큼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체력단련이라는 미명하에 얼차려를 주기에 아주 좋은 종목이다.


참호격투(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참호격투는 진흙탕 참호속에 10 : 10명 또는 20 : 20명씩 들어가 상대편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밖으로 다 들어내면 이기는 게임이다. 참호격투가 시작되면 한마디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살벌한 격투가 벌어진다. 참호격투가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참호격투에서 승리하면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지만, 패배하면 곡소리 나는 피티체조와 목봉체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호 속에 거꾸로 처박혀서 코와 입 속으로 진흙탕이 들어가는 대참사도 종종 일어난다. 당시 내가 속한 팀도 상대편에 패해서 이가 갈리도록 목봉체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두줄타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세줄타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암벽타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암벽타기(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구보와 피티체조, 목봉체조, 참호격투 등으로 어느 정도 체력이 단련되면 산악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외줄타기, 두줄타기, 세줄타기, 암벽등반, 레펠하강 등 산악훈련으로 들어가게 된다. 산악등반과 레펠하강 훈련은 실제로 옹암의 60m 암벽에서 실전적으로 이루어진다. 각 코스에서 임무 수행에 실패하거나 실수를 할 때마다 피티체조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산악훈련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줄타기로 기억된다. 외줄타기는 수평으로 가로지른 외줄을 타고 협곡을 건너가는 훈련인데, 균형을 잃으면 줄에서 떨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수중수직낙하(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하향횡단낙하(출처 네이버 블로그 headhunt2002님)


유격훈련의 마지막 피날레는 동복면 연월리 동복천 협곡의 수중장애물훈련장에서 받는 수직낙하, 하향횡단낙하 훈련이었다. 5월 초였지만 강물은 얼음물처럼 차가왔다. 아침에는 살얼음이 얼 정도였다. 교관들은 입수시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틈만 나면 피티체조를 시켰다. 물 밖에 있으면 더 추워서 차라리 물 속에 들어가 있는 편이 덜 추웠다. 산기슭에는 산벚꽃이 환장하게 피어 있었다. 경치는 아름다왔지만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초조했으며, 몸은 천근만근 무겁게 늘어졌다.


수직낙하훈련은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m 높이의 줄에 매달려 있다가 교관의 지시에 따라 물 속으로 떨어지는 훈련이었다. 줄에서 손을 놓는 순간은 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수직낙하하면 물 속으로 한참이나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올빼미들에게는 참 극복하기 힘든 훈련이었다. 올빼미들이 물에 빠질 때마다 조교는 긴 장대 갈고리로 건져내곤 했다.


피날레 중 마지막은 하향횡단낙하훈련이었다. 동복천 피안 높이 44m의 산 중턱 출발 지점에 서면 교관이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올빼미들에게 공포심을 없애주기 위함이었다.


교관 : ㅇㅇ번 올빼미 활차를 잡습니다. 자신있습니까?

올빼미 : 자신있습니다.

교관 : 애인 있습니까?

올빼미 : 있습니다.

교관 : 애인 이름을 세 번 부릅니다. 실시~!

올빼미 : ㅇㅇ야~! ㅇㅇ야~! ㅇㅇ야~!

교관 : '유격대~!' 3회 복창하면서 하강~!

올빼미 : 하강~! 유격대~! 유격대~! 유격대~!

교관의 지시와 함께 올빼미들이 활차에 매달려 189m를 활강으로 횡단해서 통제교관의 수기와 호각 신호에 따라 몸을 ㄴ자형으로 만든 뒤 엉덩이로 착수하면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물보라가 일어나곤 했다. 활강도하훈련을 마지막으로 동복유격대 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유격훈련 종료 선언과 함께 올빼미들은 교관과 조교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다가 동복천의 차가운 물속에 빠트렸다. 그것으로 우리 올빼미들은 2주 동안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도망을 칠 수도 있었을 텐데 올빼미들에게 잡혀 물 속에 거꾸로 처박힌 교관과 조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괜시리 미안해진다.    


동복천 수중담력훈련장에서 필자


당시 제5학생중대 제1구대에서 내무반을 함께 쓰면서 동고동락했던 동기들 가운데 몇 명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나머지 동기들은 오랜 세월의 흐름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 버렸다. 함께 땀을 흘렸던 동기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2016.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