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삼척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삼척시 오분동에서 근덕면 상맹방리로 넘어가는 한재(大峙, 큰재)다. 지금은 한치터널이 뚫려 한산한 고개가 되고 말았지만, 한재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할 정도로 전망이 매우 좋은 곳이다. 여행자들이여, 삼척에 가면 한재에 꼭 올라 드넓은 동해바다를 바라보시라.
한재소공원 정자
한재 정상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공원 전망 좋은 곳에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풍류가 사라진 지 오래인 요즘이다. 언제 달 밝은 밤 팔각정에 올라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곡차 한 잔 하고 싶다. 시 한 수 읊으면 금상첨화다.
한재에서 바라본 정라항
한재에서 바라본 명사십리 맹방해변
한재에서는 일망무제의 푸르른 동해바다를 마음껏 가슴에 담을 수 있다. 북쪽의 정라항에 이르는 해안, 남쪽의 명사십리 맹방해변도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최근 한재 정상 바로 밑에 모텔 건물들이 들어서 아름다운 해안의 풍치가 다소 훼손되었다.
강원도에는 험준한 백두대간이 세로놓여 있어 그 옛날 신라에서 실직국(悉直國, 지금의 삼척)이나 하슬라(何瑟羅, 지금의 강릉)를 오가려면 반드시 한재를 넘어야만 했다. 서기 505년(신라 지증왕 6) 실직국의 군주로 임명된 장군 이사부(異斯夫)도 한재를 넘어서 삼척에 왔을 것이다. 실직국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파사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고,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지증왕) 때 신라의 한 주(州)가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강원도 간성에서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유배지를 옮겨 가던 고려 공양왕(恭讓王)도 울면서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이성계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공양왕은 1392년 7월 11일 왕자 왕석(王奭), 왕우(王瑀)와 함께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 그래도 불안했던지 이성계는 공양왕의 유배지를 강원도 간성으로 옮겼다가 1394년(조선 태조 3) 3월 14일 다시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옮겼다. 후환이 두려웠던 이성계는 자객을 보내 4월 17일 궁촌리 고돌산(지금의 대왕산) 사래재(살해재)에서 두 아들과 함께 공양왕을 죽였다.
큰 권력이나 돈 앞에서는 부모자식도 없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지만, 고려 왕조의 존속을 위해서는 위화도 회군의 죄를 물어 이성계의 목을 쳤어야 한다. 이성계를 살려준 댓가로 고려 왕씨는 망국과 멸문의 화를 당했던 것이다.
2017.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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