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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피아노 협주곡 1번)

林 山 2017. 9. 25. 10:15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피아노 협주곡 1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피아노 협주곡 1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피아노 협주곡 1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피아노 협주곡 1번)


프레드릭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은 폴란드가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다. 또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였다. 그는 19세기 중엽 헝가리의 리스트, 독일의 슈만 등과 함께 낭만주의 음악의 꽃을 피웠다. 그의 증조부 쇼프(Szop)는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이주하여 프랑스 이름인 쇼팽으로 고쳤다. 쇼프의 손자 니콜라스가 조국 폴란드로 돌아와 1810년에 낳은 아들이 바로 쇼팽이다. 


쇼팽은 인생의 후반기를 파리에서 살면서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그의 명곡들은 대부분 피아노 작품이기 때문에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른다. 쇼팽의 명곡들은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 감미로우면서도 우울함이 깃든 듯한 정열적인 연주가 특징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Piano Concerto No.1 in e minor Op.11)>은 쇼팽이 1830년 8월에 완성해서 프리드리히 칼크브레너에게 헌정한 관현악 협주곡이다. 초연은 1830년 10월 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이뤄졌다. 편성은 독주 피아노,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호른4, 트럼펫2, 트롬본, 팀파니, 현5부로 되어 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당시 스무 살이었던 쇼팽이 첫사랑을 생각하며 고국 폴란드를 떠나기 얼마 전인 1830년 8월에 완성한 곡이다. 이 작품은 같은 해 10월 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의 쇼팽의 고별 연주회에서 그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으며 파리의 음악원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칼크브레너에게 헌정되었다.


청년시절 쇼팽은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각각 1830년, 1829년에 작곡되어 〈피아노 협주곡 1번〉이 〈2번〉보다 1년 더 늦게 작곡되었지만 작품번호는 순서가 뒤바뀌어 출판되었다. 작품번호가 뒤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쇼팽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어 이 작품을 먼저 출판했다는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쇼팽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고작 30여회 정도의 대중연주회를 가졌고 그곳에서 절반 이상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먼저 출판했다는 기록은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다. 이밖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이 〈1번〉에 비해 난이도가 높아 출판을 미루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 또한 정확한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쇼팽이 협주곡을 작곡했을 당시 19세기는 많은 연주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하여 직접 협주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고전형식에 따르면 협주곡은 본래 관현악 부분과 피아노 독주부분이 대조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19세기에 기교를 중심으로 작곡된 협주곡은 독주부분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쇼팽도 청년시절 이에 영향을 받아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노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고전 비평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본래 협주곡의 1악장은 발전부에서 조성이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주제나 동기가 발전되어야 하는데 쇼팽의 곡에서는 주제와는 상관없는 에피소드가 제시되거나 단순히 피아노 독주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피아노를 위한 관현악곡’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아쉬움을 가진 많은 작곡가들은 쇼팽의 사후에 이를 수정하였고, 그중 타우지히(Karl Tausig)의 개정판이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연주가들은 쇼팽이 의도적으로 피아노와의 조화를 위하여 관현악을 단순하게 작곡한 것이라 주장하며 원곡의 형태로 많이 연주하고 있다.(클래식 백과)


2017.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