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스케르초) 전곡
스케르초는 베토벤이 소나타나 교향곡에 사용하면서 만들어 낸 형식이다. 스케르초는 해학미를 지닌 경쾌한 곡조가 특징이다. 프레데릭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은 스케르초로 'Scherzo No.1 in B minor Op.20(스케르초 1번)', 'Scherzo No.2 in B flat minor Op.31(스케르초 2번)', 'Scherzo No.3 In C Sharp Minor Op.39(스케르초 3번)', 'Scherzo No.4 In E Major, Op.54(스케르초 4번)' 등 네 개의 곡을 만들었다. 하지만 쇼팽은 폴란드인이기 때문에 독일인과 같은 해학을 담지는 않았다. 오히려 침울한 느낌조차 줄 정도이다.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1 in B minor Op.20(스케르초 1번)
<스케르초 1번(Scherzo No.1 in b minor Op.20)>은 쇼팽이 1831~1832년에 작곡해서 토마스 알브레히트에게 헌정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스케르초 1번〉은 1831년 빈에서 작곡되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832년 파리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에서는 전쟁에 대한 그의 감정을 묘사하듯 어둡고, 불안정한 느낌이 나타나 있다.
쇼팽이 이 작품을 작곡했을 당시 쇼팽의 조국이었던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분할 지배하에 놓여있었다. 애국심이 강했던 청년 쇼팽은 조국의 독립 투쟁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의해 함락되자 끓어오르는 분노와 절망 그리고 격정을 자신의 음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쇼팽은 이 곡을 파리 주재 작센 대사관의 서기관인 토마스 알브레히트에게 헌정하였다. 두 사람의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쇼팽은 알브레히트가 낳은 딸의 대부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스케르초는 본디 ‘농담’ 혹은 ‘익살’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스케르초는 해학의 의미가 담긴 명랑하고 경쾌하며 장난기 있는 성격의 장르를 말한다. 그러나 쇼팽의 스케르초는 농담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슈만은 쇼팽의 스케르초에 대해 “만약 농담이 어두운 베일에 싸여 있다면 진지함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라고 말했다. 쇼팽은 스케르초의 규모를 확대하고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사용하여, 이전에는 기악곡의 한 악장이었던 스케르초를 하나의 독립된 악곡으로 확립했다.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곡 안에 투영하여 우울하고도 정열적이며 때로는 서정적이고 우수에 찬 선율을 효과적으로 대비시켜 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있다.
타지에서 바르샤바의 함락 소식을 들은 쇼팽은 자신의 일기 속에서 사태를 그저 멀리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본인의 무력함에 대해 서술했다. 그러면서 쇼팽은 “내 절망을 피아노에 온통 쏟아부을 뿐”이라고 적었다. 〈스케르초 1번〉 역시 전쟁에 대한 그의 감정을 묘사하듯 어둡고, 불안정하며,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곡은 도입부부터 2개의 심한 불협화음으로 시작된다. 뒤이어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 쉴 새 없이 속도감을 가지고 이어지는 선율에서 쇼팽의 분노와 격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곡의 중반부에서는 고요하고 서정적인 선율이 나타나는데 이는 쇼팽의 조국 폴란드의 크리스마스 캐롤인 〈잘자요, 아기 예수(Lulajze Jezuniu)〉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2 in B flat minor Op.31(스케르초 2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2 in B flat minor Op.31(스케르초 2번)
<스케르초 2번(Scherzo No.2 in b♭ minor Op.31)>은 쇼팽이 27세 때인 1837년에 완성해서 아델 드 퓌르스텐스타인 남작 딸에게 헌정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쇼팽의 스케르초 중 가장 잘 알려지고 인기 있는 곡이다. 이 시기의 쇼팽은 결혼을 꿈꾸었던 마리아 보진스카와 헤어지고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며 여인과의 사랑으로 인한 감정의 굴곡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쇼팽의 감정들이 잘 반영된 이 곡은 다른 스케르초보다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운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1835년 쇼팽은 여행 중 드레스덴에서 자신의 친구 펠릭스 보진스카를 우연히 만났다. 당시 보진스카 일가는 드레스덴에서 몇 달 간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쇼팽과 마리아 보진스카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수준급 피아니스트였던 마리아 보진스카는 작곡도 조금 하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는 총명한 아가씨였다. 쇼팽이 마리아에게 정식으로 청혼하자 마리아는 승낙했고 그녀의 어머니도 두 사람의 결합을 지지해 주었다. 그러나 병약한 체질이었던 쇼팽의 건강을 우려한 보진스카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두 사람의 약혼은 깨지게 된다.
쇼팽은 1836년 가을 조르주 상드를 처음 만났다. 그 무렵 쇼팽보다는 상드가 훨씬 더 유명했다. 상드는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를 하고 시가를 즐겨 피며 남장을 즐기는 여류소설가였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쇼팽은 상드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했지만 상드의 적극적인 구애에 두 사람은 차츰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상드는 허약한 체질에 수줍음이 많았던 청년 쇼팽에게 모성적인 사랑을 느껴 자상하게 그를 보살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10년간 지속되며 쇼팽의 인생에 있어서 조르주 상드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슈만은 쇼팽의 〈스케르초 2번〉에 대해 “아주 매력 있는 곡으로 다정함과 대담함, 사랑과 경멸이 넘쳐흐른다.”고 평하며 이 곡을 바이런의 시와 견주었다. 바이런은 비장하면서도 낭만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의 시인이다. 〈스케르초 2번〉은 p로 셋잇단음표 연주를 시작한 후 곧이어 f의 격렬한 화음으로 연결된다. 쇼팽의 제자인 폰 렌츠의 증언에 따르면 쇼팽은 이 전반부가 어떠한 의문을 나타내고 후반부는 그에 대한 응답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다. 화려한 선율과 고요히 명상에 잠긴 듯 진행되는 화음의 대조는 이 곡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다.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3 In C Sharp Minor Op.39(스케르초 3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3 In C Sharp Minor Op.39(스케르초 3번)
<스케르초 3번(Scherzo No.3 in c# minor Op.39)>은 쇼팽이 1839년에 작곡해서 아돌프 구트만에게 헌정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이 곡은 1839년 쇼팽이 조르주 상드와 함께 마요르카 섬에 머물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그 무렵의 쇼팽은 건강의 악화와 섬 주민들의 배척으로 인해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섬으로 플레옐 피아노가 도착하자 쇼팽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담은 걸작들을 왕성하게 창작해 낸다. 〈스케르초 3번〉도 그중 하나이다.
파리에서 쇼팽의 건강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상드와 쇼팽은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떠날 것을 계획하였다. 1838년 상드와 그의 자녀 둘, 그리고 쇼팽은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 도착했다. 처음 한두 달은 마요르카 섬의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쇼팽은 늘 상드의 자녀들과 섬의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따뜻한 지방에서의 휴식은 쇼팽의 건강에 어느 정도 차도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곧 마요르카 섬에 우기가 닥쳤고 강풍과 습기로 인해 쇼팽은 다시금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섬에서는 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통해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구해야만 했는데 섬 주민들은 특이한 이 이방인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더군다나 섬 주민들은 모두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렸지만 상드와 쇼팽은 성당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한 점이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주민들은 이들을 배척하고 냉담하게 대하였다. 그 무렵 선편으로 뒤늦게야 플레옐 피아노가 도착하였고 쇼팽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던 자신의 감정들을 담아 우울한 감성의 단조곡들을 많이 창작해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이 이에 속하며 〈스케르초 3번〉도 이러한 시기에 작곡되었다.
쇼팽은 1839년 〈스케르초 3번〉을 자신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아돌프 구트만에게 헌정하였다. 쇼팽이 남자 제자에게 곡을 헌정한 것은 이 스케르초가 유일하다. 구트만은 남들보다 일찍이 쇼팽에게 사사하였으나 피아니스트로서 뛰어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그가 왜 쇼팽의 애제자인지 의아해했다. 구트만은 탁자에 구멍을 낼만큼 힘이 강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구트만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이 곡에는 옥타브 진행이나 ff의 웅장하고 힘찬 화음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그러한 에너지 넘치는 도입부를 지나 곡의 중반에 들어서면 차분한 코랄 분위기의 화음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의 하행하는 아르페지오는 별빛처럼 쏟아지며 곡이 한층 더 돋보이도록 한다.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4 In E Major, Op.54(스케르초 4번)
프레드릭 쇼팽(Fryderyk Chopin) - Scherzo No.4 In E Major, Op.54(스케르초 4번)
<스케르초 4번(Scherzo No.4 in E Major Op.54)>은 쇼팽이 1842년에 완성해서 잔 드 카라만, 크로틸드 드 카라만에게 헌정한 피아노 독주곡이다. 이 곡은 1842년 여름 프랑스 노앙에 있던 상드의 별장에서 작곡되었다. 폐결핵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쇼팽은 여름이면 노앙으로 가 일시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며 작곡 활동에만 전념하곤 하였다. 쇼팽의 스케르초 4개 중 유일한 장조곡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요르카 섬에서 돌아온 쇼팽은 의사에게서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앙에 있던 상드의 별장으로 간 쇼팽은 그곳에서 만난 상드의 주치의 페페 박사에게서 폐결핵이 아니라는 엉터리 진단을 받는다. 의사의 오진이었지만 그에 안심한 쇼팽은 여름철 몇 달 동안의 요양을 통해 일시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파리에서의 레슨 생활에서 해방된 쇼팽은 노앙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작곡에만 몰두하였다. 상드는 쇼팽이 “종일 방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펜을 내던지고, 한 마디를 수없이 고쳐 쓰는 일을 매일 반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작곡된 중요한 작품들에는 〈스케르초 4번〉 이외에도 〈발라드 4번〉, 〈폴로네즈〉 Op.53이 있다.
기존의 스케르초 1, 2, 3번은 그 안에서 쇼팽 자신의 분노와 절망, 우울함과 열정 등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스케르초 4번〉은 유일하게 장조로 작곡된 스케르초로서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행복한 정서를 담고 있다. 상드는 당구장과 극장 무대까지 갖추어진 자신의 별장에 사람들을 즐겨 초대하였기 때문에 노앙의 별장에는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누구나 한번쯤 묵어갔다.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는 노앙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이러한 글을 남겼다. “산들바람은 쇼팽의 창가에 음악을 실어오며, 그 소리에는 꾀꼬리 울음과 장미 향기도 뒤섞인다.” 〈스케르초 4번〉의 따뜻한 분위기는 이러한 작곡 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스케르초 4번〉의 도입부는 선율보다 리듬이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빠르고 화려한 선율은 곡에 윤기를 더해준다. 곡의 중간 부분에서는 다소 가라앉은 듯이 차분하고도 우울한 색조를 띠는 a#단조 선율이 잠시 등장하여 앞부분과의 대비를 이루지만 이내 다시 본디의 분위기로 돌아가 E장조의 상행 스케일로 화려하게 곡을 끝맺게 된다. 생상스는 이 곡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의 〈협주곡 g단조〉의 스케르초 악장에 이 곡의 한 소절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클래식 백과)
201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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