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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2 -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도 차운시 '식영정이십영'을 짓다

林 山 2017. 12. 13. 19:17

정철은 환벽당과 식영정을 오가면서 당대의 문인 학자들인 송순과 임억령, 김윤제, 김인후, 양응정, 기대승 등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김성원과 고경명, 백광훈 등과 교유를 하였다. 정철은 김성원과 함께 환벽당에서 글 공부를 하면서 식영정에서는 임억령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담양 식영정


이때 고경명도 식영정에서 김성원, 정철과 함께 시 공부를 했다.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은 환벽당과 식영정을 오가며 스승 임억령의 '식영정제영'에서 차운한 연작제영시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을 지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했다. 


김성원의 '식영정십팔영' 편액


瑞石閑雲(서석한운) - 김성원


偶從山上飛(우종산상비) 짝지어 산위를 따라 날다가

還向山中斂(환향산중렴) 도로 산속을 향해 사라지네

倦跡自無心(권적자무심) 나른한 자취 절로 무심하니

悠悠看不厭(유유간불염) 유유한 모습 볼만도 하구나


瑞石閑雲(서석한운) - 고경명


飄空亂絮彈(표공난서탄) 허공에 어지러이 흩날리는 구름

釋嶠脩眉斂(석교수미렴) 석교봉은 흰눈썹을 휘감은 듯해

濃淡摠相宜(농담총상의) 짙음과 옅음이 모조리 알맞으니

詩材多不厭(시재다불염) 싯거리 많아서 싫증나지도 않네


瑞石閒雲(서석한운) - 정철


初從低處生(초종저처생) 처음엔 낮은 곳에서 생겨나

更向何方歛(갱향하방렴) 또 어디를 향해 모여드는가

去來本無心(거래본무심) 오고 감이 본래 무심하거늘

可怡不可厭(가이불가염) 기뻐하는 것도 싫지가 않네


무등산 위를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각이 다 다르다. 김성원은 구름을 유유한 모습, 고경명은 어지러이 흩날리는 모습, 정철은 무심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철의 '서석한운'이란 시는 식영정 편액에는 없고, '서하당유고'에만 실려 있다. 


濸溪白波(창계백파) -고경명

 

映日光搖練(영일광요련) 햇살이 비치면 비단처럼 일렁이고

涵虛界作銀(함허계작은) 허공을 적시면 은더미를 만드누나

夜來堪盡處(야래감진처) 어둠이 내려앉아 곳곳을 살펴보니

孤渡月中人(고도월중인) 사람이 달속으로 외로이 건너가네


蒼溪白石(창계백석) - 푸른 시내의 하얀 돌(정철)

 

細熨長長練(세울장장련) 곱게 다림질한 긴긴 비단처럼

平鋪漾漾銀(평포양양은) 평평히 펴져 은처럼 일렁이네

遇風時吼峽(우풍시후협) 바람을 만나면 산골을 울리고

得雨夜驚人(득우야경인) 비내린 밤이면 사람 놀래키네


김성원의 '창계백파' 시는 없다. 정철은 '창계백석'이란 제목으로 한시를 지었다. 고경명이 수면에 비친 풍경을 '사람이 달속으로 외로이 건너가네'로 표현한 구절이 멋지다.  


水檻觀魚(수함관어) - 김성원


潛伏於幽穴(잠복어유혈) 어두운 굴에 가만히 숨어있다가

遊揚于淺灘(유양우천탄) 얕은 여울에 올라와 노니는구나

已知魚自樂(이지어자락) 물고기 스스로 즐김을 알았으니

重覺我之閒(중각아지한) 나도 한가로움 거듭 깨닫네그려


水檻觀魚(수함관어) - 고경명


在藻相忘水(재조상망수) 물풀에서는 물 잊은 듯하다가

跳波逆上灘(도파역상탄) 물결 튀어 여울 거슬러오르네

俯看風定處(부간풍정처) 바람이 잔잔한 곳을 굽어보니

濠上意俱閑(호상의구한) 호상의 뜻은 모두 한가롭구나


水檻觀魚(수함관어) - 정철

 

欲識魚之樂(욕식어지락)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자 하여

終朝俯石灘(종조부석탄) 아침 내내 돌여울 굽어보았다네

吾閒人盡羡(오한인진선) 내 한가함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猶不及魚閒(유불급어한) 되레 물고기에도 미치지 못하네


고경명의 시에 보이는 '호상(濠上)'은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호상락(濠上樂)'을 말한다. 장자와 혜시(惠施)가 호수의 징검다리에서 물속을 구경하다가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 서로 토론했다. 호수(濠水)는 안훼이성(安徽城) 봉양현(鳳陽縣)에 있다.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莊子曰:魚出遊從容,是魚樂也。惠子曰:子非魚,安知魚之樂 莊子曰:子非我,安知我不知魚之樂 惠子曰:我非子,固不知子矣;子固非魚也,子之不知魚之樂全矣。莊子曰:請循其本。子曰 汝安知魚樂 云者,已知吾知之而問我,我知之濠上也.(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징검다리 위를 걸으며 산책하고 있었다. 장자가 '물고기가 참 한가로이 노네요,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혜자는 '물고기도 아니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찌 안다고 하나요?'라고 반문했다. 장자는 '그대가 나도 아니면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내가 모른다고 어찌 알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혜자도 '나는 그대가 아니기에, 진실로 그대를 알지 못 합니다! 그대도 물고기가 아니기에 그대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장자는 '본래로 되돌아가 봅시다.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는 그대의 말은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이미 알아서 그렇게 질문한 겁니다. 난 호수의 제방에서 그걸 알았지요.'라고 말했다. 혜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장자의 말빨은 가히 세계 최고봉이잖은가! 


陽坡種瓜(양파종과) - 고경명


越石初劉藿(월석초류곽) 돌무더기 너머 갓심은 콩을 베고

靑門學種瓜(청문학종과) 청문에서 외 심는 법을 배웠다네

聞君治小圃(문군치소포) 그대 작은 밭 가꾼다고 들었는데

幽興動煙簑(유흥동연사) 깊은 흥 안개 도롱이에 일렁이네


陽坡種瓜(양파종과) - 정철

 

身藏子眞谷(신장자진곡) 자진처럼 깊은 골짝에 몸 숨기고

手理邵平瓜(수리소평과) 진나라 소평처럼 외 손수 가꾸네

雨裏時巡圃(우리시순포) 비 속에도 때맞춰 채마밭 살피고

閒來着短蓑(한래착단사) 도롱이 쓴 채 한가로이 돌아오네


김성원의 '양파종과' 시는 없다.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청문(靑門)'은 중국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을 말한다. '삼보황도(三寶黃圖)'에 한(漢)나라 장안성에서 동쪽으로 나가는 남쪽 첫 번째 문인 패성문(覇城門)이 푸른색이어서 백성들은 청성문(靑城門), 또는 청문(靑門)이라고 불렀는데, 그 문밖에서 예로부터 맛 좋은 오이가 나왔다고 한다. 진(秦)나라 소평(邵平)이 동릉후(東陵侯)로 있다가 나라가 망하자, 일개 백성이 되어 청문 부근에서 외를 심어 먹고 살았는데, 그 외를 동릉과(東陵瓜) 또는 청문과(靑門瓜)라 했다. 


정철의 시에 나오는 '자진곡(子眞谷)'은 정자진(鄭子眞)이 살았던 곡구(谷口)를 말한다. 은자가 숨어 사는 곳을 뜻한다. '소평과(邵平瓜)'는 동릉과(東陵瓜), 청문과(靑門瓜)와 같은 말이다.

 

碧梧涼月(벽오량월) - 김성원


寒宵萬籟寂(한소만뢰적) 차가운 밤 온갖 소리도 고요해지니

不語據枯梧(불어거고오) 말없이 마른 오동나무에 기대 서네

靜對空山月(정대공산월) 고요히 빈 산의 달을 바라보노라니

方知我亦夫(방지아역부) 방금 나 또한 범부임을 깨달았다네


碧梧凉月(벽오량월) - 고경명


隱隱山銜月(은은산함월) 산은 은은하게 달을 머금고

泠泠露滴梧(냉랭로적오) 서늘한 이슬 오동잎 적시네

胎仙冠爲側(태선관위측) 학 머리 비스듬 기울었으니

此景汝知夫(차경여지부) 이 경치를 그대는 아시는가


碧梧凉月(벽오량월) - 정철

 

人懷五色羽(인회오색우) 사람은 가슴에 오색 깃을 품었는데

月掛一枝梧(월괘일지오) 달은 오동나무 가지끝에 걸려 있네

白髮滿秋鏡(백발만추경) 백발이 가을 거울 속에 가득하노니

衰容非壯夫(쇠용비장부) 쇠잔한 얼굴은 이제 장부도 아닐세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태선(胎仙)'은 학을 가리킨다. '상학경(相鶴經)'에 '학은 160년이 지나면 암수가 서로 만나 다정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새끼를 잉태하며, 앞모습이 훤칠하기 때문에 꼬리가 짧다. 육지에서 살기 때문에 다리는 길고 꼬리는 보잘것없다. 구름 위로 날기에 털은 풍성하지만 살집은 적다.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모래톱이나 섬에 의지하고, 머물 때는 반드시 숲속의 나무로 모여든다. 무릇 새들의 우두머리로서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내용이 있다. 학은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잉태를 한다고 해서 태선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정철의 시에 보이는 '오색우(五色羽)'는 봉황이다. 여기서는 임억령을 비유한 것이다. 가슴에 봉황을 품었다는 것은 큰 뜻을 품은 대장부라는 뜻이다. 스승이 큰 뜻을 펼치기도 전에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안타까와하면서 장수를 기원하는 시다. 정철의 '벽오량월' 시는 '식영정잡영' 편액에 없다. 


蒼松晴雪(창송청설) - 김성원


粘多松鬣亞(점다송렵아) 물기 먹은 솔가지 못지않게

凍合鶴巢傾(동합학소경) 얼어붙은 학 둥지 기울었네

萬玉相輝映(만옥상휘영) 온갖 옥들이 환하게 비추니

寒光宿客驚(한광숙객경) 자던 나그네 찬빛에 놀라네


蒼松晴雪(창송청설) - 고경명


六出漫松頂(육출만송정) 흰 눈은 소나무 꼭대기를 뒤덮고

瓊瑰亂倒傾(경괴란도경) 옥덩이 같은 눈 거꾸로 매달렸네

開窓白頭仰(개창백두앙) 창 열고 흰머리 우러러 바라보니

飛屑醉魂驚(비설취혼경) 날리는 눈가루에 취한 혼 놀라네


蒼松晴雪(창송청설) - 정철

 

白玉峯巒矗(백옥봉만촉) 옥같은 봉우리가 우뚝 솟았는데

蒼龍鬐鬣傾(창룡기렵경) 큰 소나무 가지들은 휘늘어졌네

月中光不正(월중광부정) 하늘에 뜬 달빛은 어슴프레하고

風外響堪驚(풍외향감경) 멀리서 부는 바람소리에 놀라네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육출(六出)'은 육출화(六出花), 곧 눈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정철의 시에 보이는 '창룡(蒼龍)'은 푸른 용, 늙은 용, 또는 노송(老松)을 뜻한다. '식영정잡영' 편액에는 정철의 '창송청설' 시가 없다.


조대쌍송(釣臺雙松) - 김성원


澗壑雙龍起(간학쌍룡기) 물 흐르는 골짝에 쌍룡 일어나

長身蹙巨鱗(장신축거린) 긴 몸이 큰 비늘처럼 주름졌네

何須支大廈(하수지대하) 어찌 반드시 큰 집만 떠받치리

下有把竿人(하유파간인) 그 아래 낚시하는 사람도 있네


조대쌍송(釣臺雙松) - 고경명


鶴髮映蒼鬣(학발영창렵) 백발은 푸른 솔 사이에 아른대고

風竿抽素鱗(풍간추소린) 낚싯대 한들한들 흰 고기 낚인다

二松誰對樹(이송수대수) 누가 두 소나무를 마주 심었을까

煙雨摠宜人(연우총의인) 안개비가 내리면 쉴 만도 하겠네


조대쌍송(釣臺雙松) - 정철


日哦二松下(일아이송하) 낮엔 쌍송 아래서 시를 읊으며

潭底見遊鱗(담저견유린) 못 속에 노니는 고기들 보았네

終夕不登釣(종석부등조) 고기는 하루 종일 낚지도 않고

忘機惟主人(망기유주인) 주인이 잊은 건 오직 세상사뿐

 

김성원의 시에는 도연명처럼 은자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나타나 있. 큰 소나무가 반드시 큰 집의 대들보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낚시하는 사람의 그늘이 되어 주기만 해도 족하다. 소나무는 김성원을 비유한 것으로 벼슬에 큰 뜻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고경명은 조대에서 낚시하는 노인의 모습을 읊으면서 누가 쌍송을 심었는지 묻고 있다. 정철의 시는 임억령처럼 낚시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사를 잊은 채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삶을 노래했다.


환벽영추(環碧靈湫) - 김성원


閣下寒潭碧(각하한담벽) 정자 아래 차가운 연못 푸르니

常惺泛酒船(상성범주선) 항상 깨면 술실은 배를 띄우네

誰知幽窟裏(수지유굴리) 그 누가 알리요 깊숙한 굴속에

龍子抱珠眠(용자포주면) 용이 여의주 안고 잔다는 것을


환벽영추(環碧靈湫) - 고경명


白日喧雷雨(백일훤뇌우) 환한 대낮에도 우르르 쾅 우뢰소리

顚風簸釣船(전풍파조선) 세찬 바람에 낚싯배 마구 흔들리네

村翁傳怪事(촌옹전괴사) 시골 늙은이가 괴이한 일 전하기를

石竇老蛟眠(석두노교면) 바위 굴에 늙은 이무기가 잠잔다나


환벽용추(環碧龍湫) - 정철


危亭俯凝湛(위정부응담) 아슬한 정자 위에서 연못 굽어보다가

一上似登船(일상사등선) 한 번 올라가니 배에 오르는 듯하구나

未必有神物(미필유신물) 꼭 신령스런 존재가 있는 건 아니지만

肅然無夜眠(숙연무야면) 밤이면 삼가 두려워 잠도 못 이룬다네


김성원은 용이 영추의 바위굴 속에서 여의주를 안고 잔다고 생각한다. 항상 깰 때마다 술 실은 배를 띄웠다는 것으로 보아 그도 정철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고경명은 용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정철은 배를 빌어서 환벽당을 묘사하고 있다. 정철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용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松潭泛舟(송담범주) - 김성원


古澗澄無滓(고간징무재) 옛 시냇물은 티 없이 맑아

浮舟月滿磯(부주월만기) 달 밝은 물가에 배 띄우네

夜深橫玉篴(야심횡옥적) 깊어 가는 밤 옥피리 부니

松鶴掠人飛(송학략인비) 솔 학이 사람 스치듯 나네


松潭泛舟(송담범주) -고경명


松影低寒水(송영저한수) 소나무 그림자는 찬 냇물에 드리웠고

松根絡古磯(송근락고기) 소나무 뿌리는 오래된 바위 휘감았네

褰蓬載琴鶴(건봉재금학) 풀숲을 헤치고 거문고와 학을 실으니

如月小舟飛(여월소주비) 달처럼 작은 배가 잘도 떠다니는구나


松潭泛舟(송담범주) - 정철

 

舟繫古松下(주계고송하) 오래 묵은 소나무 아래에 배를 대니

客登寒雨磯(객등한우기) 손님 오르자 강가에 찬 비가 내리네

水風醒酒入(수풍성주입) 물기 머금고 부는 바람에 술이 깨니

沙鳥近人飛(사조근인비) 모래밭 새도 사람 가까이 나네 그려


노송들이 빙 둘러싼 연못에서 뱃놀이하는 정경을 노래한 시들이다. 시 속에 선경 같은 그림이 들어 있다. 산과 물, 달과 소나무, 학, 바위를 벗삼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고경명의 '식영정20영' 편액 


石亭納涼(석정납량) - 김성원


濃陰密如幄(농음밀여악) 짙은 그늘은 휘장을 쳐놓은 듯하고

盤石穩於床(반석온어상) 널찍한 바위는 평상보다 더 편안해

不用煩揮扇(불용번휘선) 번거롭게 부채 휘두를 필요도 없이

蕭蕭滿袖凉(소소만수량) 서늘한 바람 소매에 가득 시원하네


石亭納凉(석정납량) - 고경명


輕颸吹葉葉(경시취엽엽) 가벼운 바람 산들산들 잎마다 일고

濃影布床床(농영포상상) 짙은 그늘은 상마다 펼쳐져 있구나

散髮蒼苔上(산발창태상) 산발하고 푸른 이끼 위에 올라서서

被襟滿壑凉(피금만학량) 옷깃을 푸니 시원한 바람 가득하네


石亭納涼(석정납량) - 정철

 

萬古蒼苔石(만고창태석) 오랫동안 푸르른 이끼 덮인 돌을

山翁作臥床(산옹작와상) 산옹이 평상 만들어 거기 누웠네

長松不受暑(장송불수서) 큰 소나무는 더위를 먹지 않으니

虛壑自生涼(허학자생량) 빈 골짜기에 서늘함 저절로 이네


김성원, 고경명, 정철 세 사람은 계곡의 그늘진 널찍한 바위에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피하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이보다 더 좋은 신선놀음도 없을 것이다.  


鶴洞暮煙(학동모연) - 김성원


白日隱天末(백일은천말) 밝은 해는 하늘가에 숨어 버렸고

靑烟橫樹腰(청연횡수요) 푸른 안개는 숲 허리에 걸려 있네

此間迷去路(차간미거로) 이 사이에서 갈 길 잃어버렸으니

何處有幽巢(하처유유소) 그윽한 둥지는 어느 곳에 있는고?


鶴洞暮煙(학동모연) - 고경명

獨樹全迷頂(독수전미정) 홀로 선 나무는 멧부리를 가리고

遙山淡抹腰(요산담말요) 저 멀리 산허리 어슴푸레 감도네

洞門深不見(동문심불견) 마을 어귀 깊어서 보이지 않으니

歸鶴失危巢(귀학실위소) 돌아오는 학 제 둥지도 못찾겠네


鶴洞暮烟(학동모연) - 정철

 

長天看獨鶴(장천간독학) 먼 하늘에 외로운 학을 바라보니

露頂更藏腰(로정갱장요) 머리만 내놓고 또 허리는 감췄네

終日有烟氣(종일유연기) 하루 종일 연기 잔뜩 끼어있으니

無心歸舊巢(무심귀구소) 옛집으로 돌아갈 마음을 잊은 듯


세 수의 시는 학골에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정경을 읊었다. 생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요즘은 시골에도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은 거의 사라지고 볼 수 없다. 정철의 '학동모연'은 한시 편액에 들어있지 않다.   


平郊牧笛(평교목적) - 김성원


罷牛跨雨中(파우과우중) 비내리는 가운데 지친 소를 타고

短篴橫蓑裏(단적횡사리) 도롱이 속에는 단소도 비껴 찼네

村遠暮烟沈(촌원모연침) 먼 마을 저녁연기 속에 가라앉아

不知其所指(부지기소지) 가리키는 곳 그 어딘지 모르겠네


平郊牧笛(평교목적) - 고경명


牧牛在前郊(목우재전교) 기르는 소는 앞 들판에 있고

短簑煙草裏(단사연초리) 도롱인 안개 낀 풀숲에 있네

迎風一笛豪(영풍일적호) 바람 맞아 피리 멋지게 부니

絶勝師襄指(절승사양지) 그 빼어남 사양 손가락일세


平郊牧笛(평교목적) - 정철

 

飯牛煙草中(반우연초중) 안개 자욱한 풀숲에서 소 먹이고

弄笛斜陽裏(롱적사양리) 저물녘 노을 맞으며 피리를 부네

野調不成腔(야조불성강) 서툰 가락 곡조를 이루지 못해도

淸音自應指(청음자응지) 맑은 소리 절로 손가락에 응하네


들판에서 피리 부는 목동들의 목가적인 풍경을 노래한 시다.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사양(師襄)'은 춘추시대 공자가 거문고를 배웠다고 하는 사람이다.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공자(孔子)는 장홍(萇弘)에게 음악을 배우고, 노나라 악관 사양(師襄)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노담(老聃)에게 예를 배웠다.'고 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도 '공자가 사양(師襄)에게 거문고 타는 법을 배웠는데, 거문고를 배우는 것은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심금(心琴)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短橋歸僧(단교귀승) - 김성원


對影山僧去(대영산승거) 그림자 마주하고 산승 가는데

溪橋日欲曛(계교일욕훈) 시냇가 다리에는 해 넘어가

閒情厭塵土(한정염진토) 한가로운 마음은 속세가 싫어

飛錫趁歸雲(비석진귀운) 지팡이로 고향가는 구름 좇네


短橋歸僧(단교귀승) - 고경명


寺在煙蘿外(사재연라외) 절은 안개낀 넝쿨숲 너머에 있고

林深畏日曛(림심외일훈) 산 깊어 날 저물녘부터 두렵다네

溪橋飛一錫(계교비일석) 시내 다리에 지팡이 하나 날리며

瞥眼度行雲(별안도행운) 언뜻 지나가는 구름 헤아려 보네


斷橋歸僧(단교귀승) - 끊어진 다리로 돌아가는 스님(정철)

 

翳翳林鴉集(예예림아집) 저물어 어두운 숲엔 까마귀 모여들고

亭亭峽日曛(정정협일훈) 우뚝 솟은 골짜기엔 석양빛이 감도네

歸僧九節杖(귀승구절장) 스님은 구절 지팡이 짚고 돌아가는데

遙帶萬山雲(요대만산운) 아스라이 온 산마다 구름을 둘렀구나


해질녘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모습을 읊은 시다. 정철은 김, 고 두 사람과는 달리 시제를 '단교귀승(斷橋歸僧)'이라고 붙였다. '끊어진 다리'에서 속세와의 단절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白沙睡鴨(백사수압) - 김성원


浴水水同潔(욕수수동결) 물에서 멱감으니 물 같이 깨끗하고

立沙沙共娟(립사사공연) 모래톱에 서 있으니 모래처럼 곱네

隔花拳一足(격화권일족) 꽃들 사이에 다리 하나 구부리고서

盡日自閒眠(진일자한면) 하루종일 절로 한가로이 졸고 있네


白沙睡鴨(백사수압) - 고경명


蘋風吹纚纚(빈풍취사사) 부평초 잎은 바람 불어 산들거리고

沙雨洗娟娟(사우세연연) 모래밭은 비에 씻겨 곱고도 곱구나

浴罷還相並(욕파환상병)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나란히 서서

斜陽一霎眠(사양일삽면) 저녁나절 잠깐 동안 달게 자볼까나


白沙睡鴨(백사수압) - 정철

 

風搖羽不整(풍요우부정) 바람에 날려 깃털은 단정하지 못해도

日照色增姸(일조색증연) 햇살이 비치니 자태가 더욱 우아하네

纔罷水中浴(재파수중욕) 잠시 동안 물속에서 몸을 씻고나더니

偶成沙上眠(우성사상면) 쌍쌍이 짝지어 모래 위에서 조는구나


모래톱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는 오리를 노래한 시다. 정철은 자신의 시 둘쨋 구에서 임억령의 운자 '예쁠 연(娟)'을 따르지 않고 '고울 연(姸)'을 쓴 점이 다소 특이하다.    


鸕鶿巖(노자암) - 김성원


有鳥立蒼巖(유조립창암) 새는 푸른 바위에 앉아있고

長湫風靜處(장추풍정처) 긴 웅덩이엔 바람 잔잔하네

生涯卽此多(생애즉차다) 사람 삶이 이처럼 다양하니

湖海何須去(호해하수거) 강호를 떠나갈 수야 있으리


盧玆巖(노자암) - 고경명


西日照盧玆(서일조노자) 저물녘 노을이 노자암 비추니

蒼巖晒翅處(창암쇄시처) 창암은 날개 말리는 곳이로다

亭上句垂成(정상구수성) 정자에 올라 싯구를 완성하니

人驚遠飛去(인경원비거) 인기척에 놀라 멀리 날아가네


鸕鶿巖(노자암) - 정철

 

偶因水中巖(우인수중암) 우연히 물속에 바위가 있어

目以鸕鶿處(목이노자처) 갯가마우지 있는 곳을 보네

其意不須魚(기의불수어) 물고기에는 뜻이 없는 건가

烟波自來去(연파자래거) 연파 속을 왔다갔다 하누나


가마우지바위의 정취를 노래한 시다. 고경명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시제를 '盧玆巖(노자암)'이라고 붙였다. 정철의 '노자암' 시는 '식영정잡영' 편액에 없다.   


紫微灘(자미탄) - 김성원


灘響已堪聽(탄향이감청) 여울물 소리는 들을 만한데

名花誰復栽(명화수부재) 이름난 꽃은 누가 심었을까

山家新濯錦(산가신탁금) 산가에서 새 비단 빨았으니

賈客莫相猜(고객막상시) 장사치 길손 시기하지 말게


紫薇灘(자미탄) - 고경명


天姿元富貴(천자원부귀) 타고난 모습이 원래 부귀하나니

寧待日邊栽(녕대일변재) 어찌 양지에 심어지길 기다리랴

夾岸紅霞漲(협안홍하창) 골짜기에는 붉은 노을 가득하니

漁郞恐眼猜(어랑공안시) 젊은 어부들 시샘할까 두려워라


紫薇灘(자미탄) - 정철

 

花能住百日(화능주백일) 예쁜 꽃이 백일이나 피기에

所以水邊栽(소이수변재) 그래서 물가에다 심은 걸세

春後有如此(춘후유여차) 봄이 지나서도 이와 같으니

東君無乃猜(동군무내시) 봄이여 이를 시샘하지 마오


자미화(紫薇花, 백일홍)가 흐드러지게 핀 자미탄의 아름다운 정경을 읊은 시다. 발그레 물든 자미화를 장사치와 손님(김성원), 고기잡이들(고경명), 봄신(정철)이 시샘할 정도로 조선시대 담양의 백일홍이 아름다왔던가 보다. '동군(東君)'은 태양의 신 혹은 봄을 맡은 동쪽의 신을 말한다. 정철의 '자미탄' 시는 '식영정잡영' 편액에 없다. 


정철의 '식영정잡영' 편액


桃花逕(도화경) - 김성원


竹逕綠溪出(죽경록계출) 대숲길은 푸른 골짝에서 나오고

桃花夾岸齊(도화협안제) 복사꽃은 양 언덕마다 만발했네

武陵橋已斷(무릉교이단) 무릉의 다리는 끊어져 버렸으니

那有世人迷(나유세인미) 세상사람들 길 잃음이 있으리요


桃花徑(도화경) - 고경명


細線縈雲迥(세선영운형) 오솔길은 구름에 얽혀 아득하고

崇桃滿樹齊(숭도만수제) 복숭아꽃은 나무에 가득 피었네

四圍紅錦障(사위홍금장) 사방이 붉은 비단에 가려졌으니

人到路應迷(인도로응미)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겠구나


桃花逕(도화경) - 정철

 

麗景三春暮(려경삼춘모) 아름다운 봄날도 다 저물어 가는데

夭桃一色齊(요화일색제) 예쁜 도화 온통 흐드러지게 피었네

古來花下路(고래화하로) 예부터 꽃나무 아래로 지나는 길은

迢遞使人迷(초체사인미) 멀리서도 길 가는 사람을 유혹하네


산 오솔길에 복사꽃이 만발한 풍경을 노래한 시다. 봄에 발그레하게 핀 복사꽃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춘정의 불을 지른다. 강 언덕이나 산기슭에 복사꽃이 연분홍으로 물들면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따로 없다. 정철의 '도화경' 시는 '식영정잡영' 편액에 없다. 


芳草洲(방초주) - 김성원


春洲可步屧(춘주가보섭) 봄 물가 나막신 신고 걸으니

芳草碧芊綿(방초벽천면) 꽃다운 풀 푸르고 무성도 해

誰識余心樂(수식여심락) 누가 내 마음의 즐거움 알리

花紅柳欲眠(화홍류욕면) 꽃 붉고 버들은 조는 듯한데


芳草洲(방초주) - 고경명

 

燒痕回嫩綠(소흔회눈록) 불탄 자리에 새싹들 다시 돋아나니

芳嶼草綿綿(방서초면면) 꽃다운 섬엔 풀들 끝없이 가득하네

醉後爲茵臥(취후위인와) 술에 취한 뒤 자리삼아서 누워보니

沙尊傍岸眠(사준방안면) 술항아리 언덕 옆에서 졸고 있구나


芳草洲(방초주) - 정철


古峽深如海(고협심여해) 오래된 골짜기는 깊어 바다처럼 넓고

芳洲草似綿(방주초사면) 향기로운 모래톱 풀들은 솜결 같구나

初宜雨後屐(초의우후극) 처음엔 비오고 나막신 신기 좋겠더니

更合醉來眠(갱합취래면) 다시 생각하니 취하면 잠자기 좋겠네


향기로운 풀이 우거진 모래톱의 정경을 노래한 시다. 요즘 사람들은 나막신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나막신은 나무를 파서 만든 신인데, 주로 비가 온 진땅에서 신었다. 정철의 '방초주' 시는 '석영정잡영' 편액에 들어있지 않다. 


芙蓉塘(부용당) - 김성원

 

菡萏高於丈(함담고어장) 연꽃봉오리는 한 길도 넘고

池塘深沒臍(지당심몰제) 연못은 깊어 배꼽까지 오네

微微香入袖(미미향입수) 은은한 향 소매에 스며들고

皎皎月分溪(교교월분계) 교교한 달빛 시내를 가르네


芙蓉塘(부용당) - 고경명


葉卷弓彎袖(엽권궁만수) 접힌 잎은 휘청휘청 궁만무를 추고

花明照夜齊(화명조야제) 꽃이 피어나니 밤에도 환하게 밝네

香風傳谷口(향풍전곡구) 향기로운 바람 골 어귀에 전해지니

乘月訪耶溪(승월방야계) 달을 타고서 저 약야계나 찾아볼까


芙蓉塘(부용당) - 정철


龍若閟玆水(용약비자수) 용이 연못에 숨어 나오지 않으면

如今應噬臍(여금응서제) 이제 와서는 응당 후회할 것이라

芙蓉爛紅白(부용란홍백) 희고 또 붉은 연꽃 흐드러졌으니

車馬簇前溪(거마주전계) 말과 수레 시내 앞으로 모여드네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부용당의 정경을 노래한 시다. 부용(芙蓉)은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7~8월 부용당에 갔을 때는 연꽃이 보이지 않았다. 부용당에 정작 연꽃이 없으니 정자 이름이 무색하다. 정철의 '부용당' 시는 '식영정잡영' 편액에 없다.


'궁만(弓彎)'은 소매를 마치 활등처럼 구부려 추는 춤을 말한다. '이문록(異聞錄)'에 '어느 미인이 노래하기를 "장안의 소녀가 봄 경치를 좋아하노니 어느 곳 봄 경치인들 애가 끊이지 않으랴만 춤추는 소매 궁만의 모양 모두 망각하고서 비단 휘장 안에 공연히 구추를 보낸다오.(長安少女翫春陽 何處春陽不斷腸 舞袖弓彎渾忘却 羅帷空度九秋霜)"라고 하였다. 그러자 누가 궁만(弓彎)에 대해 묻자, 그 미인이 즉시 일어나 소매를 벌려 두어 박자 춤을 추면서 마치 활등처럼 굽은 모양을 지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곡구(谷口)'는 골짜기 입구, 또는 한나라의 은사 정박이 도를 닦던 산시성(陝西省) 리취안현(醴泉縣) 동북쪽에 있는 지명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야계(耶溪)'는 소흥(紹興)의 약야산(若耶山)에서 나오는 약야계(若耶溪)를 말한다. 예로부터 연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월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여기서 비단을 빨았다고 하여 일명 완사계(浣紗溪)라고도 한다. 이백(李白)은 '채련곡(採蓮曲)'에서 '약야계 가에 모여 연꽃 따는 아가씨들, 연꽃을 사이에 두고 서로 웃고 얘기 나누니, 해는 화장한 얼굴을 비춰 물속에 환히 비치고, 바람은 향기론 소매에 불어 공중에 펄럭이네(若耶溪傍採蓮女 笑隔荷花共人語 日照新粧水底明 風飄香袖空中擧).'라고 읊었다.    


仙遊洞(선유동) - 김성원


千年五鬣松(천년오렵송) 천 년이나 묵은 아름드리 오렵송

偃盖蒼烟裏(언개창연리) 푸른 연기 속에 비스듬히 누웠네

月下浪吟翁(월하랑음옹) 달아래 낭랑하게 시 읊는 늙은이

誰知廻道士(수지회도사) 돌아오는 도사임을 그 누가 알리


仙遊洞(선유동) - 고경명


窈窕洞仙遊(요조동선유) 그윽한 이 동천에 신선이 노니니

依然玉壺裏(의연옥호리) 의연한 것이 옥항아리 속 같구나

創名之者誰(창명지자수) 이름을 지은 사람은 그 누구인가

荷衣老居士(하의노거사) 연잎 옷을 입은 늙은 거사로구나


仙遊洞(선유동) - 정철

 

何年海上仙(하년해상선) 어느 해에 바닷가의 신선이

棲此雲山裏(서차운산리) 구름 낀 산속에 깃드셨는가

怊悵撫遺蹤(초창무유종) 남긴 자취 슬피 어루만지네

白頭門下士(백두문하사) 머리도 하얀 문하의 제자가


선유동천(仙遊洞天)의 깊고 그윽한 정취를 읊은 시다. 동천(洞天)은 신선이나 노닐 듯한,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좋은 곳을 말한다. 김성원 시의 '도사(道士)'와 고경명 시의 '하의노거사(荷衣老居士)'는 임억령을 비유한 것이다. 


고경명의 시에 나오는 '하의(荷衣)'는 신선이나 도사, 은사(隱士)가 입는다는 연잎으로 만든 옷을 가리킨다. 초사(楚辭) '구가(九歌)' <소사명(少司命)>의 '연잎 옷에 혜초의 띠를 띠고 금방 왔다가 훌쩍 떠나네(荷衣兮帶 儵而來兮忽而逝).'에서 나온 말이다. 초사 '이소경(離騷經)'에도 '연잎을 재단하여 옷을 만들고, 연꽃으로는 치마를 짓도다(製芰荷而爲衣兮 集芙蓉而爲裳).'라는 구절이 있다. 


한때는 바다신선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구름 산속에 누워 있다. 머리 하얀 제자는 신선의 유품을 어루만지며 슬퍼한다. '송강집(松江集)'에는 ‘해상선(海上仙)'이 김인후를 말한다고 적혀 있다. 김성원의 '서하당유고'에는 '해상선'이 임억령을 가리킨다고 했다. '선유동'이 고인을 기리는 시라면 '해상선'은 김인후가 맞다. 김인후는 1560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임억령은 아직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식영정에는 임억령의 시 20수와 김성원의 시 18수, 고경명의 시 20수, 정철의 시 10수가 판액되어 있다. 정철의 '식영정잡영' 10수는 '식영정이십영' 중 일부이다. 정철의 '송강집(松江集)'에도 '식영정잡영'이라는 제목으로 10수만 실려 있다. 식영정 판액의 시들은 시인 각각의 문집에 실려 있다. 특히 김성원의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에는 이들 네 명의 시 전문이 모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