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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자기행] 임억령의 식영정을 찾아서 13 - 정철 스승 임억령을 위해 '성산별곡'을 짓다

林 山 2017. 12. 14. 18:57

많은 시인 문객들이 식영정을 찾아왔지만 임억령도 가깝고 먼 정자들을 찾아가 많은 누정시들을 남겼다. 우선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서하당에 들러 '송창(松窓)' 등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14수를 남겼다.


담양 서하당 


임억령의 '서하당잡영' 편액


서하당잡영(棲霞堂雜詠) - 서하당에서 이것저것 읊다(임억령)


송창(松窓) - 소나무 그림자 어리는 창 


岑寂空山月(잠적공산월) 적막한 산 봉우리에 달이 뜨자

扶疎影入窓(부소영입창) 솔 그림자가 창으로 따라 드네

濤聲撼幽夢(도성감유몽) 파도 소리가 깊은 꿈을 깨우니

風雨浪飜江(풍우낭번강) 비바람에 이는 물결 강 뒤집네


월호(月戶) - 달창


山翁淸小睡(산옹청소수) 산옹이 선잠을 달게 자다가 깨어

長嘯鶴未應(장소학미응) 긴 휘파람을 불어도 학은 모른체

對影人何在(대영인하재) 그림자를 보고 사람 어디 있는지

看天一問僧(간천일문승) 하늘 보며 스님에게 슬쩍 묻노라


금헌(琴軒) - 거문고 있는 집


我有震焚琴(아유진분금) 나에게 소리 기막힌 거문고 있어

中含鳳鸞音(중함봉란음) 봉황과 난새의 소리 머금고 있네

旣令山月白(기령산월백) 산에 떠오른 달은 이미 환해졌고

又使石灘深(우사석탄심) 또 돌여울을 더욱 깊어지게 하네


서가(書架) -책장


玉笈三山記(옥급삼산기) 옥장식 책장에 꽂혀 있는 삼산기

靑苔五嶽篇(청태오악편) 푸른 이끼가 낀 오래된 오악편을

高聲讀月夕(고성독월석) 밝은 달밤에 소리 높여서 읽으니

桂子落窓前(계자락창전) 계수나무 씨가 창 앞에 떨어지네


'옥급(玉笈)'은 옥으로 장식한 책상자로 진기한 책들을 모아놓은 상자에 대한 미칭이다. '삼산(三山)'은 봉래(蓬萊), 영주(瀛州), 방장(方丈) 등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삼산기(三山記)'는 '삼신산기(三神山)'를 가리킨다. 필사본 '옥급삼산기(玉笈三山記, 임형택 교수 및 동아대 소장)'라는 책이 실제로 있다. '오악(五嶽)'은 중국의 태산(泰山, 東岳), 화산(華山, 西岳), 형산(衡山, 南岳), (恒山, 北岳), 숭산(嵩山, 中岳)을 가리킨다. '오악편(五嶽篇)'이라는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약포(藥圃) - 약초밭


瀟灑書窓畔(소쇄서창반) 기운이 맑고 깨끗한 서재 창가에

栽培細雨餘(재배세우여) 가랑비 지나간 뒤 약초를 심고서

病身須藥物(병신수약물) 병약한 몸을 위해 약재를 달이며

閒坐閱方書(한좌열방서) 한가로이 앉아 한의학 책을 보네


연지(蓮池) - 연꽃 연못


山雨無端打(산우무단타) 끝없이 퍼붓는 산중에 내리는 비

空堂皆夜喧(공당개야훤) 빈 집을 밤새도록 시끄럽게 하네

猶嫌俗客到(유혐속객도) 만약 속세의 객이 올까 저어하여

葉漸遮門(신엽점차문) 새로 자라난 잎이 문을 가리누나


가산(假山) - 정원의 돌산


方丈三韓外(방장삼한외) 방장산은 삼한 나라의 밖에 있고

奇峰千萬重(기봉천만중) 기이한 봉우린 수없이 겹쳐 있네

波衝餘瘦骨(파충여수골) 물결에 부딪치고 깎여 호리한 몸

來對古仙翁(래대고선옹) 와서 보니 옛날의 신선 노인이네


소계도화(小溪桃花) - 시내의 복사꽃


上長長柳(긍상장장류) 언덕 위엔 길게 늘어진 수양버들

巖邊短短桃(암변단단도) 바위 벼랑엔 키 작은 복사꽃나무

近來人不到(근래인부도) 하지만 요즘 사람도 오지 않나니

水沒武陵橋(수몰무릉교) 무릉원 건너는 다리 물에 잠겼네


장정류서(長汀柳絮) - 길게 뻗친 바닷가 버들개지


沙岸微風日(사안미풍일) 모래 언덕에 산들바람이 부는 날

山陰暮雪天(산음모설천) 산 그늘에 저녁 눈이 내리는도다

荷翁與不淺(하옹여불천) 연잎옷 입은 노인과 깊게 사귀니

直欲近漁船(직욕근어선) 곧 고기잡이 배로 다가서려 하네


산들바람에 날리는 버들솜을 눈이 내린다고 표현했다. '하옹(荷翁)'은 연잎 옷을 입은 노인이라는 뜻으로, 신선을 가리킨다. 


촌휴만도(村畦晩稻) - 시골 들녘의 늦은 벼


秋天零白露(추천영백로) 가을 하늘에서 하얀 서리 내리자

平野滿黃雲(평야만황운) 너른 들녘엔 황금 물결 가득하네

日夕西風起(일석서풍기) 해 저무니 서쪽에서 바람이 일고

微香路上聞(미향로상문) 길 위에는 은은한 향내음 풍기네


절산장추(節山長湫) - 절산의 긴 웅덩이


流水匯成潭(유수회성담) 흐르는 물 돌아들어 못을 이루니

夕陽明似鏡(석양명사경) 저녁 해 비치자 거울처럼 밝구나

游魚出復潛(유어출부잠) 나왔다 또 숨고 노니는 물고기는

應駭行人影(응해행인영) 아마 행인의 그림자에 놀랐을 걸


단애자미(丹崖紫薇) -붉은 벼랑의 배롱꽃


幽花何窈窕(유화하요조) 그윽한 꽃 저리도 곱고도 이쁠까

國色淡臙脂(국색담연지) 연한 연지색 꽃 천하의 국색일세

照水如臨鏡(조수여림경) 물에 비치니 거울을 보는 듯하고

偎林似隔帷(외림사격유) 숲에 가까우니 장막을 친 듯하네


죽오청풍(竹塢淸風) - 대나무 언덕의 시원한 바람


松竹本同族(송죽본동족) 소나무와 대나무는 본래 한 무리

松間又種竹(송간우종죽) 소나무 사이에 또 대나무를 심네

誰云夷叔枯(수운이숙고) 백이 숙제 굶어 죽었다고 했는가

萬古風生谷(만고풍생곡) 먼 옛부터 바람 이는 골짝이라네


'죽오청풍(竹塢淸風)'은 '면앙정삼십영'에도 같은 제목의 시가 있다. '이숙(夷叔)'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말한다. 임억령의 시에는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이 시적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그가 중국 고대사와 문학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정영원(石井靈源) - 돌우물의 신령한 샘


半畝方塘水(반묘방당수) 네모지게 생긴 조그만 연못의 물

連筒玉井分(연통옥정분) 대나무 홈통 따라 물길 갈라지네

猶嫌南澗達(유혐남간달) 혹시 또 남간에 이를까 저어하여

別向柳邊聞(별향류변문) 따로 버드나무 옆에서 듣네 그려


'방당(方塘)'은 네모진 연못, '연통(連筒)'은 대나무를 이어 만든 홈통이다. '남간(南澗)'은 주자(朱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온 말로, '양지쪽 산골짜기 개울물' 또는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이란 뜻이다. '南澗'과 '南磵'은 서로 뜻이 서로 통한다. '남간(南磵)'은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남간중제(南磵中題)'라는 시의 제목에 딸린 주()에 '영주(永州)의 조양암(朝陽巖)에서 동남쪽으로 물길을 따라가면 원가갈(袁家渴)에 이르고원가갈에서 서남쪽으로 가면 채 100가 못 되는 곳에 돌개천이 있고 돌개천이 다하면 돌시내가 남쪽에 있으니이것이 바로 남간이다.'라고 하였다.


서하당에는 임억령의 '서하당잡영'에서 차운한 김성원의 '서하당팔영(棲霞堂八詠)' 8수와 정철의 '서하당잡영' 4수가 판각되어 걸려 있다. 식영정 4선 중 고경명의 시는 보이지 않는다. 이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다. 


정철은 창평의 성산에서 '식영정이십영'을 비롯해서 가사(歌辭) '성산별곡(星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을 지었다. 그리고, '하당야좌(霞堂夜坐)', '차환벽당운(次環碧堂韻)', '소쇄원제초정(瀟灑園題草亭)', '서하당잡영' 등 수많은 한시와 단가를 남겼다. 이처럼 한국고전문학사에서 식영정가단을 포함한 호남가단이 차지하는 위치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가단을 제외하면 한국고전문학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담양 식영정 


1560년(명종 15) 정철은 스승 임억령을 위해 송순의 '면앙정가(免仰亭歌)' 형식을 차용하고, 도연명(陶淵明)의'도화원시(桃花源詩)'에서 착안하여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임억령의 유유자적한 삶과 성산(별뫼)의 사시사철 빼어난 풍광을 이렇게 읊었다.


    서하당의 '성산별곡' 편액


엇던 디날 손이 星山(성산)의 머믈며셔 棲霞堂(서하당) 息影亭(식영정) 主人(주인)아 내 말 듯소. 人生(인생) 世間(세간)의 됴흔 일 하건마ᄂᆞᆫ 엇디ᄒᆞᆫ 江山(강산)을 가디록 나이 너겨 寂寞(적막) 山中(산중)의 들고 아니 나시ᄂᆞᆫ고. 松根(송근)을 다시 쓸고 竹床(죽상)의 자리 보아 져근덧 올라안자 덧던고 다시 보니 天邊(천변)의 ᄯᅵᆺᄂᆞᆫ 구름 瑞石(서석)을 집을 사마 나ᄂᆞᆫ ᄃᆞᆺ 드ᄂᆞᆫ 양이 主人(주인)과 엇더ᄒᆞᆫ고. 滄溪(창계) 흰 물결이 亭子(정자) 알ᄑᆡ 둘러시니 天孫雲錦(천손운금)을 뉘라셔 버혀 내여 닛ᄂᆞᆫ ᄃᆞᆺ 펴디ᄂᆞᆫ ᄃᆞᆺ 헌ᄉᆞ토 헌ᄉᆞ할샤. 山中(산중)의 冊曆(책력) 업서 四時(사시)를 모ᄅᆞ더니 ᄂᆞᆫ 아래 헤틴 景(경)이 쳘쳘이 절로 나니 듯거니 보거니 일마다 仙間(선간)이라.(어떤 지나가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만은,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어가고 아니 나오시는가. 솔뿌리를 다시 쓸고 대나무 침대에 자리를 보아, 잠시 올라앉아 어떤가 하고 다시 보니,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이 서석을 집을 삼아. 나가는 듯하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주인과 어떠한가. 시내의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 하늘의 은하수를 누가 베어 내어, 잇는 듯 펼쳐 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 속에 달력이 없어서 사계절을 모르더니. 눈 아래 헤친 경치가 철을 따라 절로 생겨나니, 듣고 보는 것이 모두 신선이 사는 세상이로다.)


梅窓(매창) 아 벼ᄐᆡ 香氣(향기)예 잠을 ᄭᆡ니 山翁(산옹)의 ᄒᆡ욜 일이 곳 업도 아니ᄒᆞ다. 울 밋 陽地(양지) 편의 외씨ᄅᆞᆯ ᄲᅵ허 두고 ᄆᆡ거니 도도거니 빗김의 달화 내니 靑文故事(청문고사)ᄅᆞᆯ ᄇᆡ야 신고 竹杖(죽장)을 흣더디니 桃花(도화)  시내 길히 芳草洲(방초주)의 니어셰라. 닷봇근 明鏡(명경) 中(중) 절로 그린 石屛風(석병풍) 그림재ᄅᆞᆯ 버들 사마 西河(서하)로 ᄒᆞᆷᄭᅴ 가니 桃源(도원)은 어드매오 武陵(무릉)이 여긔로다.(매창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 깨니, 산늙은이의 할 일이 아주 없지도 아니하다. 울타리 밑 양지 편에 오이씨를 뿌려 두고, 김을 매고, 북을 돋우면서 비 온 김에 가꾸어 내니, 짚신을 죄어 신고 대나무 지팡이를 흩어 짚으니,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어졌구나. 잘 닦은 거울 속에 저절로 그린 돌병풍, 그림자를 벗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여기가 바로 그곳이로다.)


南風(남풍)이 건듯 부러 綠陰(녹음)을 헤텨 내니 節(절) 아ᄂᆞᆫ 괴ᄭᅩ리ᄂᆞᆫ 어드러셔 오돗던고. 羲皇(희황) 벼개 우ᄒᆡ 풋ᄌᆞᆷ을 얼픗 ᄭᆡ니 空中(공중) 저즌 欄干(난간) 믈 우ᄒᆡ ᄯᅥ 잇고야. 麻衣(마의)ᄅᆞᆯ 니 ᄎᆞ고 葛巾(갈건)을 기우 쓰고 구브락 비기락 보ᄂᆞᆫ 거시 고기로다. ᄒᆞᄅᆞ밤 업시셔 萬山(만산)이 향긔로다. 廉溪(염계)ᄅᆞᆯ 마조보아 太極(태극)을 믓ᄌᆞᆸᄂᆞᆫ ᄃᆞᆺ 太乙眞人(태을진인)이 玉字(옥자)ᄅᆞᆯ 헤혓ᄂᆞᆫ ᄃᆞᆺ 노자암 건너보며 紫微灘(자미탄) 겨ᄐᆡ 두고 長松(상송)을 遮日(차일)사마 石逕(석경)의 안자ᄒᆞ니 人間(인간) 六月(유월)이 여긔ᄂᆞᆫ 三秋(삼추)로다. 淸江(청강) ᄯᅵᆺᄂᆞᆫ 올히 白沙(백사)의 올마 안자 白鷗(백구)ᄅᆞᆯ 벗을 삼고 ᄌᆞᆷ ᄭᅵᆯ 줄 모ᄅᆞ나니 無心(무심)코 閑暇(한가)ᄒᆞ미 主人(주인)과 엇더ᄒᆞ니.(남풍이 문득 불어 녹음을 헤쳐 내니, 철을 아는 꾀꼬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희황 베개 위에 선잠을 얼핏 깨니, 공중의 젖은 난간이 물 위에 떠 있구나. 삼베옷을 여며 입고 갈건을 비껴 쓰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기대면서 보는 것이 고기로다. 하룻밤 비 온 뒤에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이 섞어 피니, 바람기가 없어서 모든 산이 향기로다. 염계를 마주하여 태극성을 묻는 듯, 노자암을 건너보며 자미탄을 곁에 두고, 큰 소나무를 차일삼아 돌길에 앉으니, 인간 세상의 유월이 여기는 가을이로구나. 청강에 떠 있는 오리가 흰 모래에 옮겨 앉아, 흰 갈매기를 벗삼고 잠깰 줄을 모르나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과 비교하여 어떤가.)


梧桐(오동) 서리ᄃᆞᆯ이 四更(사경)의 도다 오니 千巖萬壑(천암만학)이 나진ᄃᆞᆯ 그러ᄒᆞᆯ가. 湖洲(호주) 水晶宮(수정궁)을 뉘라셔 옴겨 온고. 銀河(은하)ᄅᆞᆯ ᄯᅴ여 건너 廣寒殿(광한전)의 올랏ᄂᆞᆫ ᄃᆞᆺ ᄶᅡᆨ 마ᄌᆞᆫ 늘근 솔란 釣臺(조대)예 셰여 두고 그 아래 ᄇᆞᄅᆞᆯ ᄯᅴ워 갈 대로 더뎌 두니 紅蓼花(홍료화) 白蘋洲(백빈주) 어ᄂᆞ ᄉᆞ이 디나관ᄃᆡ 環碧堂(환벽당) 용(龍)의 소히 뱃머리예 다하셰라.  청강(淸江) 녹초변(綠草邊)의 쇼 머기난 아해들이 석양의 어위 계워 단적(短笛)을 빗기 부니, 믈 아래 잠긴 龍(용)이 ᄌᆞᆷ ᄭᆡ야 니러날 ᄃᆞᆺ ᄂᆡᄭᅴ예 나온 鶴(학)이 제 기ᄉᆞᆯ 더뎌 두고 半空(반공)의 소소 ᄯᅳᆯ ᄃᆞᆺ 蘇仙(소선) 赤壁(적벽)은 秋七月(추칠월)이 됴타 호ᄃᆡ 八月(팔월) 十五夜(십오야)ᄅᆞᆯ 모다 엇디 과ᄒᆞᄂᆞᆫ고. 纖雲(섬운)이 四捲(사권)ᄒᆞ고 믈결이 채 잔 적의 하ᄂᆞᆯ의 도단 ᄃᆞᆯ이 솔 우ᄒᆡ 걸려거ᄃᆞᆫ 잡다가 ᄲᅡ딘 줄이 謫仙(적선)이 헌ᄉᆞᄉᆞᆯ샤.(오동나무 사이로 가을달이 사경에 돋아오니, 천암만학이 낮보다도 더 아름답구나. 호주의 수정궁을 누가 옮겨 왔는가. 은하수를 뛰어 건너 광한전에 올라 있는 듯.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 백빈주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푸른 풀이 우거진 강변에서 소 먹이는 아이들이, 석양의 흥을 못 이겨 피리를 비껴 부니, 물 아래 잠긴 용이 잠을 깨어 일어날 듯, 연기 기운에 나온 학이 제 집을 버려 두고 반공에 솟아 뜰 듯. 소동파의 적벽부에는 가을 칠월이 좋다 하였으되, 팔월 보름밤을 모두 어찌 칭찬하는가. 잔구름이 흩어지고 물결도 잔잔한 때에, 하늘에 돋은 달이 소나무 위에 걸렸으니,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태백의 일이 야단스럽다.)


空山(공산)의 싸힌 닙흘 朔風(삭풍)이 거두 부러 ᄯᅦ구름 거ᄂᆞ리고 ᄂᆞᆫ조차 모라오니 天公(천공)이 호ᄉᆞ로와 玉(옥)으로 고ᄌᆞᆯ 지어 萬樹千林(만수천림)을 ᄭᅮ며곰 낼셰이고. 압 여흘 ᄀᆞ리 어러 獨木橋(독목교) 빗겻ᄂᆞᆫᄃᆡ 막대 멘 늘근 이 아ᄂᆞ 뎔로 간닷 말고. 山翁(산옹)의 이 富貴(부귀)ᄅᆞᆯ ᄂᆞᆷᄃᆞ려 헌ᄉᆞ 마오. 瓊瑤屈(경요굴) 隱世界(은세계)ᄅᆞᆯ ᄎᆞᄌᆞ리 이실셰라.(공산에 쌓인 낙엽을 북풍이 걷으며 불어, 떼구름을 거느리고 눈까지 몰아 오니, 온갖 나무들을 잘도 꾸며 내었구나. 앞 여울물 가리워 얼고 외나무 다리 걸려 있는데, 막대를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늙은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소문내지 마오. 경요굴 은밀한 세계를 찾을 이가 있을까 두렵도다.)


山中(산중)의 벗이 업서 漢紀(한기)ᄅᆞᆯ ᄲᅡ하 두고 萬古(만고) 人物(인물)을 거ᄉᆞ리 헤여ᄒᆞ니 聖賢(성현)도 만커니와 豪傑(호걸)도 하도 할샤. 하ᄂᆞᆯ 삼기실 제 곳 無心(무심)ᄒᆞᆯ가마ᄂᆞᆫ 엇다ᄒᆞᆫ 時運(시운)이 일락배락 ᄒᆞ얏ᄂᆞᆫ고. 모ᄅᆞᆯ 일도 하거니와 애ᄃᆞᆯ옴도 그지업다. 箕山(기산)의 늘근 고불 귀ᄂᆞᆫ 엇디 싯돗던고. 박소ᄅᆡ 핀계ᄒᆞ고 조장이 ᄀᆞ장 놉다. 人心(인심)이 ᄂᆞᆺ ᄀᆞᆺᄐᆞ야 보도록 새롭거ᄂᆞᆯ 世事(세사)ᄂᆞᆫ 구롬이라 머흐도 머흘시고. 엇그제 비ᄌᆞᆫ 술이 어도록 니건ᄂᆞ니 잡거니 밀거니 슬ᄏᆞ장 거후로니 ᄆᆞᄋᆞᆷ의 ᄆᆞ친 시ᄅᆞᆷ 져그나 ᄒᆞ리ᄂᆞ다. 거믄고 시욹 언저 風入松(풍입송) 이야고야. 손인동 主人(주인)인동 다 니져 ᄇᆞ려셔라. 長空(장공)의 ᄯᅵᆺ는 鶴(학)이 이 골의 眞仙(진선)이라. 瑤臺(요대) 月下(월하)의 ᄒᆡᆼ혀 아니 만나신가. 손이셔 主人(주인)ᄃᆞ려 닐오ᄃᆡ 그ᄃᆡ 귄가 ᄒᆞ노라(산중에 벗이 없어 서책을 쌓아 놓고, 만고의 인물들을 거슬러 세어 보니, 성현도 많거니와 호걸도 많고 많다. 하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어찌 무심하랴마는, 어찌 된 시운이 흥했다 망했다 하였는가. 모를 일도 많거니와 애달픔도 끝이 없다. 기산의 늙은 고불(古佛) 귀는 어찌 씻었던가. 소리가 난다고 핑계하고 표주박을 버린 허유의 조장이 가장 높다. 인심이 얼굴 같아서 볼수록 새롭거늘, 세상사는 구름이라 험하기도 험하구나.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술잔을 잡거니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구나, 거문고 줄을 얹어 풍입송을 타자꾸나.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도다. 높고 먼 공중에 떠 있는 학이 이골의 진선이라. 이전에 달 아래서 혹시 만나지 아니하였는가? 손님이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곧 진선인가 하노라.)


정철은 '성산별곡'에서 별뫼와 식영정, 서하당, 환벽당, 무등산, 증암천(甑巖川. 자미탄, 창계천), 조대, 쌍송, 용추, 노자암, 방초주, 밤하늘의 은하수가 어우러진 경치를 바라보면서 선경 같다고 찬탄하고 있다. 가사에는 식영정 이십경이 거의 다 등장하고 있다. 정철이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등 식영정 4선이 지은 '식영정이십영' 20수를 바탕으로 이를 부연, 설명하고 탈태(奪胎)시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산별곡'의 구성은 서사(詞), 춘사(春詞), 하사(夏詞), 추사(秋詞), 동사(冬詞), 결사(結詞)로 되어 있다. 서사는 서하당에 머물며 세상에 나가지 않는 임억령의 풍류와 식영정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읊었다. 춘사는 성산의 봄 풍경(春景)과 임억령의 삶의 모습, 하사는 성산의 시원하고 한가한 여름 풍경(夏景), 추사는 성산의 가을 달밤 풍경(秋景), 동사는 성산의 눈 내린 겨울 풍경(冬景)과 성산에 은거하는 노인의 부귀를 노래하고 있다. 결사는 전원 생활의 멋과 풍류를 읊고 있다. 특히 결사는 산중에 벗이 없어 독서를 통하여 고금의 성현과 호걸들을 생각하고 그 흥망과 지조를 느끼며, 뜬구름 같은 세상에 술 마시고 거문고나 타는 신선 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주제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의 경치와 임억령의 풍류 예찬이다. '성산별곡'을 정철이 김성원을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식영정 주인', '신선', '노인' 등의 시어로 볼 때 '성산별곡'은 정철이 스승 임억령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성산의 사계를 노래한 '성산별곡'은 한국 고전문학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뛰어난 가사(歌辭)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생겨난 가사는 시조와 더불어 양반, 평민, 부녀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지어 불렀다. 평민, 부녀자들의 가사 중 정철의 작품 못지 않은 가사도 많이 있다. 가사문학은 특히 면앙정, 식영정 등 정자원림이 많은 담양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