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폭포' 지온노타키(慈恩の滝)는 규슈(九州) 오이타 현(大分県) 구스 군(玖珠郡) 구스 정(玖珠町) 야마우라(山浦)에 있다. 타키(滝)는 폭포를 뜻하는 말이다. 지온노타키는 구스 군과 히타 시(日田市) 아마가세 정(天瀬町)과의 경계 지점에 있다. 규다이혼센(九大本線)과 국도 201호선 지쿠고카이도(筑後街道)가 지온노타키 바로 옆으로 지나간다. 규다이혼센(九大本線)을 타면 히타 시 아마가세 정 아카이와(赤磐)에 있는 스기카와치 역(杉河内駅)에서 내려야 한다. 지온노타키는 스기카와치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
지온노타키는 하네야마(万年山)와 요시부야마(吉武山), 간메이시잔(亀石山)에서 발원한 하천이 구스가와(玖珠江)로 합류하기 직전에 있다. 편의점이 있는 주차장에서 내려 쥬와리소바(十割蕎麦) 전문점 '수이게츠(水月)'를 지나면 바로 지온노타키가 나타난다. 지온노타키 옆에는 용틀임을 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형상과 함께 '上昇喜龍(상승희룡)'이라고 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지온노타키는 상단 20m, 하단 10m의 2단 폭포라고 알려져 있는데, 위에 올라가서 자세히 보면 4단 폭포임을 알 수 있다. 수량은 제법 많은 편이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
지온노타키에는 '자비로운 용' 또는 '은혜 갚은 용'(慈恩の龍)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야마우라 마을의 지온노타키에 오래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마을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내 해마다 풍년이 들게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가 갑자기 병이 들었다. 이무기가 병이 들자 비가 내리지 않아 큰 흉년이 들었다. 마을에는 이무기의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때 한 스님이 지온노타키를 지나가다가 병든 이무기를 보았다. 스님은 이무기의 목에 거꾸로 박혀 있는 비늘이 병의 원인임을 알았다. 이른바 역린(逆鱗)이었다. 스님은 이무기의 역린을 바로잡아 주고 불경을 들려주었다. 깨달음을 얻어 용이 된 이무기는 환희에 찬 마음으로 용틀임을 하면서 하늘로 올라갔다(上昇喜龍). 이때부터 용의 보살핌으로 마을에는 가뭄이 들지 않고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비로운 용을 기리기 위해 폭포 이름을 지온노타키(慈恩の滝)라고 지었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
지온노타키는 용이 승천할 때의 용틀임으로 인해 1단이던 폭포가 갈라져 2단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우리나라에도 지온노타키와 비슷한 서사 구조의 설화나 전설을 간직한 폭포가 많이 있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
지온노타키는 폭포 뒤쪽으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다. 그래서 일명 우라미노타키(裏見ヶ滝)라고도 한다. 폭포를 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면 병이 낫거나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물벼락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겨울에는 길이 얼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의 불전(佛殿)
지온노타키 바로 옆에는 작은 불전(佛殿)이 세워져 있다. 불전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서낭당의 신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양쪽 기둥에는 지조보사츠(地藏菩薩), 나무다이시헨죠콘고(南無大師遍照金剛)라고 쓴 표지판이 걸려 있다.
지조보사츠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입멸(入滅) 후부터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부처 없는 세상에서 육도(六道) 중생을 구원한다는 대비보살(大悲菩薩)이다. 이른바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들의 구원자다. 지조보사츠는 지옥에 떨어지는 사자(死者)들을 모두 구원할 때까지 성불(成佛)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일본에서 익사나 추락사, 교통사고 등으로 비명횡사하여 구천을 떠도는 사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조보사츠를 모신 불전을 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조보사츠 불전은 대개 사고를 당한 장소 근처에 세운다.
'나무(南無)'는 '귀의한다'는 뜻이다. 일본에는 타이시(太子) 신앙과 다이시(大師) 신앙이 있다. 타이시 신앙은 우마야토노미코(厩戸皇子) 또는 우마야토노키미(厩戸王)의 후세 명칭인 쇼토쿠타이시(聖徳太子, 574~622), 다이시 신앙은 고보다이시(弘法大師, 774~835) 구카이(空海)를 숭앙하는 것이다.
고보다이시는 일본 밀교(密敎)의 하나인 신곤슈(眞言宗)의 개조(開祖)다. 사이쪼(最澄)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고보다이시는 기도를 중시하는 밀교 신곤슈를 창시했다. 신곤슈는 국가의 진호(鎭護)와 개인의 초복(招福)을 강조함으로써 일본 귀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고보다이시는 고야산(高野山) 오쿠노인(奥の院)의 영굴(靈窟)에서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루어 생신(生身) 그대로 오늘날까지도 계속 살아 있는 존재로 숭앙받고 있다.
쇼토쿠타이시는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552~645)의 황족이자 정치가다. 아버지는 요메이 덴노(用明天皇, 518~587), 어머니는 긴메이 덴노(欽明天皇, 509~571)의 황녀 아나호베노하시히토노히메고토(穴穂部間人皇女)다. 쇼토쿠타이시는 일본 최초의 여자 덴노인 스이코 덴노(推古天皇, 554~628)의 섭정(攝政)으로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협력하여 당시 국제적인 긴장 속에서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중국의 선진 문물제도를 받아들이는 한편 12계(十二階)의 관위와 17개조 헌법을 제정하는 등 일본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다.
쇼토쿠타이시는 또 독실한 불교 신자로 일본에 불교를 보급시키고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는 중국 남북조 시대 천태종의 개조(開祖)라 불리는 천태지의(天台智顗)의 스승 남악혜사(南嶽慧思, 515~577)의 환생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그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환생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쇼토쿠타이시는 나라 현(奈良県)의 호류지(法隆寺, 일명 斑鳩寺, 이카루가데라)와 오사카 부(大阪府)의 시텐노지(四天王寺) 등 41개의 사찰을 건립했다. 호류지는 고구려의 승려 담징(曇徵, 579~631)이 벽화를 그렸다는 사찰이고, 시텐노지는 백제 기술자 3명을 일본에 데려와 지은 사찰이다.
쇼토쿠타이시를 본존으로 행하는 법회를 타이시에(太子會)라고 한다. 쇼토쿠슈(聖德宗)는 쇼토쿠타이시를 개조(開祖)로 하고, 호류지를 총본산으로 하는 불교 종파다. 쇼토쿠슈는 1950년 홋소슈(法相宗)에서 독립하였다. 주요 경전은 쇼토쿠타이시가 지은 '삼경의소(三經義疏)'다. 호류지는 현재 29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헨죠콘고(遍照金剛)는 중국 진언종의 종조 혜과(惠果, 746~805)가 밀교의 이대 법문(二大法門)인 태장계(胎藏界)와 금강계(金剛界)를 구카이에게 전수한 뒤 그에게 내린 밀호(密號)다. 헨죠콘고는 또 밀교의 가장 절대적인 부처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대일여래는 밀교에서 모든 부처의 진신(眞身)인 법신불(法身佛)로서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의역한 것이다. 밀교에서 대일여래는 우주의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내는 절대적 중심의 본존, 우주의 실상을 불격화(佛格化)한 근본불, 모든 부처와 보살이 출생하는 본원이자 궁극의 귀결처이다.
지온노타키(慈恩の滝)에서 필자
지온노타키는 설악산의 대승폭포(大勝瀑布)나 토왕성폭포(土王城瀑布), 제주도 서귀포의 정방폭포(正房瀑布)를 본 사람이라면 그다지 감탄할 만한 폭포는 아니다. 그럼에도 지온노타키를 잘 정비하고 설화나 전설을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 관광자원화하는 일본의 문화적 마인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2018.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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