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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8 상영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A Mother Brings Her Son to Be Shot)'

林 山 2018. 8. 28. 17:20

아일랜드의 시네아드 오셔(Sinead O'Shea)가 5년에 걸쳐 인터뷰를 통해서 만든 EIDF 2018 상영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A Mother Brings Her Son to Be Shot)'는 오도넬(O'Donnell) 가족사를 통해서 수십 년에 걸친 영국의 얼스터(Ulster, 아일랜드 동부 6개 주) 즉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점령과 얼스터의 독립을 목표로 한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IRA) 간의 분쟁이 1998년 '굿프라이데이 조약(Good Friday Agreement)'이 체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여전히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재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 영화다. 여성 감독 오셔가 용감하게 폭력적인 남성들의 고백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의 한 장면(출처 다음 영화)


어떻게 엄마가 아들을 총으로 쏠 수 있을까? 어느 날 마젤라 오도넬은 자신의 십대 아들 필립을 The IRA에 끌고 가 다리에 총상을 입힌다. 하지만 이 다큐는 가정폭력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한 얼스터 주민들의 수십 년에 걸친 저항과 그 중심에 있는 IR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69년 12월 더블린에서 개최된 '신페인 회의' 후 IRA는 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의견 차이로 공식파(Official Irish Republican Army; OIRA)와 임시파(Óglaigh na hÉireann, 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 PIRA)로 분열되었다. 연속파(Continuity Irish Republican Army; CIRA)는 임시파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이다. 공식파는 혁명 사회주의 아일랜드 공화국 아래 모든 아일랜드인과 얼스터의 가톨릭교도, 신교도들을 통합하자고 주장했다. 반면에 분파주의 얼스터 가톨릭교도들인 임시파는 자신들과 아일랜드를 통합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북아일랜드로부터 영국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폭력전술의 사용을 주장했다. 1970년대 초반 얼스터 기독교도들과 영국군을 살상하는 테러 활동을 왕성하게 펼친 단체가 임시파다. 


급진적인 조직 The IRA는 과거의 정신을 계승해 반체제 공화국군을 만들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한다. 오도넬 가족이 살고 있는 데리 시(Derry city)는 The IRA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분쟁 당시 2,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데리에서는 The IRA가 정부이자 경찰이다. 영국 정부와 경찰의 치안이 미치지 못하는 데리는 The IRA의 의지에 따라 많은 일들이 암묵적으로 벌어지고, 또 묵인되는 곳이 데리다. IRA의 분열로 인해 데리 시민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데리는 무장단체 간의 폭력과 마약으로 신음하는 지역이 되었다. 


마젤라와 장남인 19세의 필립 오도넬, 차남인 15세의 케빈 베리는 베리 시 주민이다. 케빈 베리는 The IRA의 멤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살상용 칼, 톱, 도끼와 고문용 쇠집게 등 자신의 무기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면서 사용법을 태연하게 설명한다. 총도 사용할 줄 안다. 케빈의 친구도 총에 맞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케빈은 가족의 흉을 본 여교사를 구타하고, 교실 문을 발로 찬 벌로 퇴학을 당한다. 사람들은 케빈을 골칫덩어리로 생각한다. 


IRA 소속인 필립의 아버지는 경찰서를 폭파하고 감옥에 들어가 있다. 그는 데리의 영웅이자 전설이다. 아버지의 오랜 수감 생활로 가족의 곁을 떠나자 필립 오도넬은 마약과 술로 폐인 같은 삶을 살아간다. 마약에 취한 채 환각상태로 엄마를 죽인다고 협박하고, 집안의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도 한다. 데리를 관할하는 The IRA는 필립을 범죄자로 간주하고 '처벌 사격'을 선고한다. '처벌 사격'이란 지역 사회에 피해를 주는 인물을 The IRA가 직접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The IRA를 거역할 수 없는 마젤라는 필립을 직접 처벌 장소로 데려간다. The IRA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아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필립은 결국 다리에 두 발의 총을 맞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 뒤 데리에서 추방된다. 


엄마가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르면서 아들을 The IRA에 데리고 간 것은 정상적인 나라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데리 시민들이 영국 정부와 경찰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영국 정부와 경찰은 얼스터를 강제 점령한 압제자들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영국 정부와 경찰 대신 The IRA의 통치를 용인하는 것이다. 


과거 IRA 출신 휴는 데리에서 The IRA과 The IRA로부터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 사이에서 창구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러기에 그는 The IRA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제점도 인식하고 있다. 휴는 The IRA가 영국에 저항할 때의 IRA가 갖고 있던 목적이나 상징성은 모두 잃어버린 채,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서 지역 사회를 지키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본다. 심지어 필립은 The IRA를 총을 든 강도라고 말한다. The IRA가 뇌물을 받고 마약상들의 뒤를 봐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RA에서 갈라진 분파 간의 경쟁과 갈등도 매우 심각해 보인다. 감옥에서 나온 필립의 아버지도 며칠 뒤 The IRA가 쏜 총에 양쪽 무릎을 맞았다. 필립 오도넬 주니어와 시니어를 쏜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5년의 세월이 흐르고 오도넬가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지만 얼스터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은 어려워 보인다. 20세가 된 케빈은 마약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The IRA로부터 총을 맞는 것이 정당한 일이냐고 묻는다. 감독은 The IRA의 타락상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영국 정부와 경찰을 향해 무기를 들었을 때는 The IRA가 정당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무장 폭력단일 뿐이라고..... 


데리는 자살률이 매우 높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법과 질서 대신 무장단체의 폭력과 공포, 그리고 빈곤이 만연한 데리는 나아가 얼스터가 현재 처한 암울한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폭력의 악순환이 얼스터에서 과연 종식될 수 있을까? 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에도 얼스터에서는 아직도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음울한 이야기다. 


2018.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