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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2018 상영작 '모든 것의 이면(The Other Side Of Everything)'

林 山 2018. 8. 29. 17:21

드라간 페시칸(Dragan Pesikan) 감독의 EIDF 2018 상영작 '모든 것의 이면(The Other Side Of Everything, Druga strana svega)'은 1920년대 말 감독의 고조부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Beograd)의 중심가에 세우고, 1940년대 말 공산혁명 이후 국유화되어 4가구로 분할된 건물을 통해서 1992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Socijalistič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의 해체와 연방을 구성했던 나라들 간의 전쟁, 잔악한 인종청소 전범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독재 치하 세르비아의 민주화 투쟁 등 굴곡진 역사를 다룬 다큐 영화다. 


'모든 것의 이면'의 한 장면(출처 다음 영화)


영화가 시작되면 한 여성이 문의 놋쇠 문고리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다. 이 문은 이 여성의 가족을 70년 넘게 그들의 과거와 갈라놓았다. 굳게 닫힌 문은 공산혁명 이전의 지워진 역사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문고리를 닦고 있는 여성은 바로 유고연방의 해체와 내전, 민주화 투쟁 등 세르비아가 겪은 역사적 격동기를 몸소 헤쳐온 감독의 어머니 스라비얀카 투라일릭이다. 대학 교수였던 그녀는 1990년대 세르비아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해직된 활동가이기도 하다. 감독은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4대에 걸친 세르비아 한 가족사를 기록하면서 세르비아의 과거 기성세대와 미래의 다음 세대에게 성찰적인 질문을 던진다. 감독의 어머니 스라비얀카 투라일릭은 '내가 정말 자유의 전사라면, 내가 쟁취한 자유는 내 인생 최악의 실패다'라고 말한다. 세르비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성적 고백이다. 그녀는 또 '밀로셰비치 시대가 공산주의시대보다 낫지 않았다.'다고 단언한다. 두 시대를 모두 부정한 것이다.  


'모든 것의 이면'에 대해 변성찬은 '어머니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재구성된 4대에 걸친 세르비아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세르비아의 과거와 미래(다음 세대)에게 던지는 성찰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다. 어머니 스라비얀카의 용기와 지혜는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만들어 온 대문자 역사에 맞서는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그녀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고연방의 해체는 세르비아의 히틀러 밀로셰비치의 철권 독재정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한몫을 했다. 세르비아의 도살자 밀로셰비치는 자신의 대통령직을 더 유지하기 위해 2000년 9월 조기 선거를 실시, 개표부정을 통해 재집권을 꾀했으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2000년 10월 쫓겨났다. 2001년 4월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된 밀로셰비치는 그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11일 감옥에서 죽었다. 


내 소유였지만, 수십 년 간 몰수되어 내 소유가 아니었던 집의 문이 드디어 열린다. 70년만에 낯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투라일릭은 닫혀 있던 집이 더 좋았던 것 같다고 말한다. 밀로셰비치 독재 치하보다 공산주의 시대가 더 나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모든 것의 이면'을 보면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비밀경찰로 유지되는 공포의 독재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전제되지 않은 정치체제는 어떠한 것도 거부되어야 한다. 불치성 권력병자들의 선전 선동에 속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의 이면'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상기시키는 다큐다. 상향식 민주주의만이 답이다. 북유럽식 사민주의 복지사회가 인류가 도달한 가장 진보적인 정치체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2018.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