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3일은 단기 4352년 개천절(開天節)이다. 개천절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 고조선(古朝鮮)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開天)'은 하늘을 열었다는 뜻이다. 개천절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국경일이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김부식( 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따르면 하늘의 신 천제(天帝) 환인(桓因)에게는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었다. 서자로 태어났으니 어려서부터 괄시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하늘나라에 있어봤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환웅은 하늘을 떠나 지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했다. 자신이 통치할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환웅 초상
환웅의 뜻을 간파한 환인은 한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지상에 내려가 인간을 다스리도록 허락했다. 환웅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데리고 3,000 무리와 함께 하늘에서 태백산(太伯山)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태백산은 백두산(白頭山)이다. 환웅은 왕으로 추대되어 신시씨(神市가 되었다.
환웅이 중국의 타이산(泰山) 또는 둔황(燉煌))에 내려왔다는 설도 있다. 환웅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푸시(伏羲), 셴농(神農), 쉬렌(燧人)과 동시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푸시는 전설 속에서 상고시대 동이족(東夷族)의 유명한 수령으로 타이하오(太皞)로 불리기도 한다. 성은 펑(風)으로 전한다. 셴농은 황띠(黃帝) 이전에 한족(漢族)에게 농사법을 알려주었으며, 한의학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쉬렌은 불과 음식의 조리법을 전했다고 한다.
환웅은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환웅은 풍백에게 바람, 우사에게 비, 운사에게 구름을 관장하게 했다. 치우(蚩尤)에게는 사나운 짐승과 독충을 다스리게 하고, 고시(高矢)에게는 곡식을 주관하도록 했다. 신지(神誌)에게는 글자를 만들도록 하고, 주인(朱因)에게는 혼례법을 만들게 했다. 또, 역리(易理)의 기본법칙도 만들었다.
셴농의 후예 치우는 황띠와의 전쟁 중에 콰푸주렌(夸父族人), 펑보위싀(風伯雨師), 치메이왕량(魑魅魍魎, 도깨비)의 도움을 받았다. 펑보위싀는 중국 신화와 한국 신화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다. 고시는 농사법과 화식법(火食法)을 가르쳤다. 이후 백성들 사이에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준 고시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는 고시례(高矢禮)의 풍습이 생겨났다.
신시에는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렀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 먹으면서 사람이 되기 위해 굴속에서 근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성질이 급한 호랑이는 배고픔을 못 참고 굴을 뛰쳐나가 인간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곰은 21일 동안 근신한 끝에 마침내 여자의 몸이 되었다.
사실 곰에게 21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서너달은 먹지도 않고 굴속에서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다. 신화학적으로 단군신화는 하늘족(태양족)과 곰족, 호랑이족 간의 융화와 반목 과정이 나타나 있다. 여기서는 신화학적인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웅녀(熊女)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아기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이 탕까오(唐高, 堯)가 즉위한 지 50년 되는 경인년(庚寅年)에 평양성(平壤城)을 도읍으로 정하고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단군 초상
단군은 건국에 이어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아사달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 (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쩌우(周)나라 우왕(武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 단군의 나이 1,908세였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왕위를 양보하는 경우는 없다. 왕위를 찬탈당하고 폐위됐을 가능성이 많다. 태백산 신시-백악산 아사달-장당경-아사달로 이어지는 노정은 보다 강대한 세력에 쫓겨다닌 과정의 흔적일 수도 있다.
단군조선(檀君朝鮮) 기원전 2333년 건국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기원전 2333년 건국설은 조선시대 서거정(徐居正) 등의 주도로 편찬한 사서인 '동국통감(東國通鑑)'에 따른 것이다. 숭(宋)나라 샤오캉지에(邵康節)는 탕야오(唐堯)의 개국시기를 갑진년(甲辰年, 기원전 2357년)으로 추정했고, 쓰마광(司馬光)은 '즈지통지엔(資治通鑑)'에서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동국통감'은 또 '즈지통지엔(資治通鑑)'의 탕야오 기원전 2357년 개국설을 그대로 수용했다.
탕야오 개국은 샤오캉지에의 갑진년설, 단군조선 개국은 '제왕운기'의 무진년설(戊辰年說)을 받아들인 결과 단군조선 개국연도가 탕야오 25년(기원전 2333년, 무진년)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는 일연의 탕야오 무진년 개국설과는 차이가 있다. 일연처럼 탕야오 50년 정사년(丁巳年)에 단군조선이 개국했다고 본다면 기원전 2284년이 건국년도가 된다.
개천절이 10월 3일로 정해진 것은 민족종교인 대종교(大倧敎)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종교 경전인 '삼일신고(三一神誥)'에는 '한배님이 갑자년 10월 3일 태백산에 강림하여 125년 간 교화시대를 지내고 무진년 10월 3일부터 치화(治化)를 시작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대종교에서는 기원전 2,457년 음력 10월 3일 단군이 환인의 뜻을 받들어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했다고 본다.
1900년 1월 15일 나철(羅喆)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창설되면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했다고 한다.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李離和)에 따르면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은 당시 대종교 창시에 가담했던 구한말 정치가이자 학자 김윤식(金允植)의 생일에 맞춘 것이라는 설도 있다. 김윤식은 대종교 초대 교조 나철의 스승이다.
2333년 단군조선 개국설에 따르면 서기 2019년은 단기 4352년이 된다. 2284년 개국설에 따르면 서기 2019년은 단기 4303년이 된다. 단기는 우리나라에서 1962년까지만 국가의 공식 연호로 사용했다. 이후 국가 공문서에는 서기만 사용한다.
개천절 노래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백두산 높은 터에 부자요 부부
성인의 자취따라 하늘이 텄다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이날이 시월 상달에 초사흘이니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핀 단목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 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 하노니
'개천절 노래'는 한문학의 대가이자 국문학자인 정인보(鄭寅普)가 작사했고, 김성태(金聖泰)가 작곡했다. 단기 4352년(서기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을 맞이하여 '개천절 노래'를 한번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단기 4352년(서기 2019년) 10월 3일
'시사 이슈 화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날 573주년을 맞아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대사(信眉大師)를 생각하다 (0) | 2019.10.09 |
---|---|
박지훈 변호사의 조국 사태 정리 (0) | 2019.10.05 |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종훈, 김낙년, 이우연에게 준 정부 지원금 12억 원 회수하라! (0) | 2019.09.26 |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류석춘,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이우연 (0) | 2019.09.23 |
문재인 정부 조국 법무부 장관 과연 검찰 개혁 가능할까? (0) | 2019.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