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시 한 수

旗ㅅ발(깃발) - 유치환 시, 김성장 서

林 山 2019. 10. 17. 17:08

旗ㅅ발(깃발) - 유치환 시, 김성장 서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여 흔드는/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순정(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은 목표, 이상향, 또는 추구하는 어떤 지향점을 상징한다. 그 이상향은 '저 푸른 해원'이다. 그곳은 '순정'하고, '맑고 곧은 이념'의 이상향이다.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은 '아우성'처럼 강렬하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은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일 뿐이다. 즉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그곳은 도달할 길 없는 이상향일 뿐이다. 그리하여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고, 남는 것은 '슬프고도 애달픈' 절망일 수밖에 없다. 이 시는 제목을 '애수'로 바꿔도 무방하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의 '깃발'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시여서 지금까지도 거의 외고 있다. 시는 시 자체로 느끼고 감상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당시는 대학 입시를 위해 이 시를 주제, 비유법, 시어, 상징 등을 주입식으로 공부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주입식 암기 위주의 시 공부는 아주 잘못된 시 공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학교에서 시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유치환은 친일파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형 유치진(柳致眞)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이미 당대에 인증한 거물급 친일파였다. 여성동아 1999년 4월호와 교보생명 사보에는 유치진이 이명박(李明博) 정권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낸 유인촌의 부친이라고 나와 있다. 유치진이 유인촌의 부친이 맞다면 유치환은 그의 삼촌이 된다.


유치환은 1942년 2월 6일 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기고한 친일성(親日性) 산문이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에 의해 발견되면서 기존의 애국 시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거물 친일파 형인 유치진 때문에 유치환의 친일 행적은 상대적으로 묻힌 편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나무위키는 '유치환은 재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인 형과 달리 그는 매우 전형적인 친일과 애국적 행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변절자 혹은 나약한 인텔리라고 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나무위키는 이어 '잘한 것도, 옹호할 가치도 없지만 당시에는 조선 문학을 한다는 행위자체가 목숨을 건 일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며, 또한 현대와는 다르게 당대 몇 없던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운 행위를 했다는 것 역시 생각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유치환은 생명파 시인이다. 골수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친독재행위자 서정주도 유치환과 함께 생명파 시인이다. 생명파 시인들의 어두운 단면이다.


김성장 시인의 글씨는 언뜻 보면 삐뚤빼둘 마구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씨가 한 자 한 자 공들여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자 한 자는 제각각인 듯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서 숲을 이루듯이 말이다. 김성장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 글씨체는 신영복 민체라고 한다. 


2019.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