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족(Zazas)은 터키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주로 툰젤리 주(Tunceli ili)와 시바스 주(Sivas ili)를 중심으로 디야르바크르 주(Diyarbakır ili), 빙괼 주((Bingöl İli)등 터키 동부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자자족의 인구는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터키의 자자족
알레비파의 상징인 알리의 모습을 담은 그림
이들은 자자어라는 인도유럽어족 페르시아어군에 속하는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다. 쿠르드족이 사용하는 쿠르드어와 같은 계열이지만 상당히 이질적인 언어로 거의 통하지도 않는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자자족은 대부분 알리를 추종하는 알레비파라는 점에서도 쿠르드인과 차이가 난다.
툰젤리 주도 툰젤리 시
시바스 주도 시바스 시
디야르바크르 주도 디야르바크르 시
빙괼 주 주도 빙괼 시
하지만 쿠르드족과 자자족은 혈연, 문화적으로 근연관계에 있기 때문에 언어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자자-쿠르드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민족주의의 정의를 최초로 내린 오스만 제국의 사회학자인 자자족 출신의 지야 괵알프(Ziya Gökalp)는 '터키 영토에서 터키어와 터키 문화 속에서 거주하며 스스로를 터키인으로 여기는 남녀노소는 모두 터키인이다'라고 주장했다. 터키 민족주의 이론을 자자족 출신의 사회학자가 제시한 것이다.
지야 괵알프(Ziya Gökalp)
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는 그의 민족주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아 '지야 괵알프는 내 사상의 아버지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자자족인 괵알프의 터키 민족주의 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타튀르크가 자자족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었다.
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자자족은 쿠르드족 마찬가지로 튀르크인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이주하기 전부터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기간에도 자자족은 쿠르드족과 마찬가지로 자치를 누렸다. 그러나 아타튀르크가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고 칼리파제를 폐지한 이래 자자족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기 시작했다.
셰이흐 사이드와 그의 처형 장면
자자족은 터키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1925년 디야르바크르의 이맘이었던 셰이흐 사이드(Şeyh Sayd)는 오스만 제국과 칼리파제의 부활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아타튀르크는 자자족을 학살하고 반란을 집압했다. 셰이흐 사이드와 그의 추종자 46명은 디야르바크르에서 처형되었다.
툰젤리 주 데르심 시
1938~1939년에도 터키 중동부 툰젤리 지역의 자자족이 아타튀르크 중앙정부의 간섭에 항의해 데르심(Dersim) 반란을 일으켰다. 툰젤리 주를 1936년 이전까지는 데르심 주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Dersim'은 터키어로 '구리의 땅'을 뜻한다. 자자족의 반란을 모두 무자비하게 진압한 뒤 터키 정부는 이들을 다른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민족의식을 붕괴시켰다. 이후 민족의식이 사라진 자자인들은 빠르게 터키화되었다.
터키 공화인민당(CHP) 대표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
2018년 현재 터키 제1 야당인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 CHP)의 대표는 자자족 출신 케말 클르츠다르오울루(Kemal Kılıçdaroğlu)이다. 자자족의 친터키, 친케말주의 성향 덕분에 1980년대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쿠르드어 사용과 교육이 전면 금지되었던 시절에도 자자어는 박해받지 않았다. 마르딘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아랍계 소수민족인 쉬리야니(Süryani), 터키 거주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도 박해를 받지 않았다. 터키의 법적 공용어는 터키어임에도 법정에서 이들 언어로 증언을 하더라도 통역을 대동하고 공증된 문서화 작업을 거치면 정식 증언으로 채택될 수 있다. 하지만 쿠르드어는 2015년까지도 불가능했다.
기타 쿠르드족
쿠르드족은 아르메니아 남서부 지역과 러시아의 북캅카스 연방관구에도 흩어져 살고 있다. 그밖에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에도 소규모로 거주하고 있다. 유럽으로 간 쿠르드족도 적지 않다. 독일에 100만~150만 명이 살고 있고, 프랑스에도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에는 쿠르드계 유대인 15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사이타마 현(埼玉県) 와라비 시(蕨市)와 가와구치 시(川口市)에도 터키의 박해를 피해서 입국한 쿠르드족이 약 2,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일본 당국은 터키를 배려해서인지 쿠르드족의 난민 신청에 대해 2017년 9월 13일 현재 단 한 명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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